미일관계
1. 개요
대국관계일람 가운데 미국과 일본의 관계를 말한다. 일본은 미국에게 동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우방으로 인식되고 있다
美日關係. 미국에서는 United States-Japan relations이라고 표시하고, 영어 위키백과에선 Japan-United States relations로 쓰였다.[1] 일본에선 일미관계(日米関係)[2] 라 표시한다. 반면 중국에서는 미일관계(美日关系)[3] 라 표시한다.
2. 현황
3. 역사
미국이란 집단이 다른 지역에 비해 출현이 늦다보니 주로 미국의 태초가 생겨나면서 접촉이 발생했다.
3.1. 최초 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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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세쿠라 츠네나가(支倉常長, 1571-1622)[5] 가 미국의 원형인 아메리카 식민지를 1614년에 방문한 것이 미일의 첫 만남이지만 당시 미국이 독립된 국가로 존재하지는 않았다. 1650년에 도쿠가와 막부가 쇄국령을 내리면서 일본인들은 더 이상 해외로 나가지 못 하고 나가사키에서 제한적인 무역만 허용된다.
1791년에 미국인 탐험가 존 켄드릭이 항해 중에 기오시마 제도에서 11일간 머물렀다. 1797년부터 1809년 사이에는 미국 배들이 네덜란드 깃발을 달고 나가사키에서 교역했다. 그 외에도 몇몇 인물이 일본 열도에 간간히 들르긴 했다.
3.2. 페리와 쿠로후네
미 해군 소속의 매튜 페리 제독은 1852년 버지니아 주 노포크를 출발해 1853년 7월 8일에 에도 앞바다에 나타났다. 도쿠가와 막부는 그에게 나가사키로 가라고 했지만 페리는 밀러드 필모어의 국서를 전달하러 왔다며 버텼다. 일본 수군의 배가 어떻게 해보려고 했지만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일본인들은 그 배를 쿠로후네(흑선)라고 불렀다. 그는 요코스카[6] 에 들러 편지를 전달하고 중국으로 떠났다. 그리고 1854년에 다시 나타난다. 카나가와 조약이 체결되고 일본은 개항하게 된다. 다만 미국인들은 곧 남북전쟁이 터지면서 일본 문제에 집중하지 못하게 된다.
3.3. 근대
미국은 남북전쟁에 바빴고 일본은 내부에서 번들이 막부를 곧 뒤엎었고, 일본 제국이 세워진다. 미국과 일본의 관계는 19세기 말에 가서 가까워지는데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각자 필리핀과 대한제국을 집어삼켜 식민지로 만든다.
1912년엔 우호적인 의미로 일본에서 수백 그루의 벚나무를 미국에 기증하기도 하였다. 또한 하와이 쪽으로 많은 일본인이 이민을 가기도 하였다.
일본의 입장에서는 다행스러웠던 것이 일본 문화에 심취하고 일본에 호감을 가졌던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다는 점이었다.[7]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일본에 대한 개인적인 호감과 미국의 태평양 정책이 맞물려 20세기 초반 미국과 일본의 관계는 순탄했다. 그러나 만주철도 이권 관련으로 마찰이 있었던 거나 1910년대 부터 미국에서 일본을 경계하는 움직임이 없지 않았다는 걸 본다면 완전히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3.3.1. 제1차 세계 대전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에 미국과 일본은 연합국에 참전했다. 사실 연합국이라지만 미국은 유럽 전선에 참가했고 일본은 아시아에 있던 독일의 식민지인 남양군도나 칭다오 등을 영국과 연합하여 공격해서 점령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식민지 쟁탈전이란 표현이 적절할 듯 하다. 두 나라 다 서로에게 우호적인 편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미국은 극동에서 일본의 세력이 커지는걸 경계 하기도 했다
3.3.2. 1920년대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베르사유 조약에서 일본의 요구가 거의 수락되고 극동에서 일본의 세력 확장을 경계한 미국은 일본에 압력을 넣어 워싱턴 조약을 체결하여 군사력을 축소시켜 일본을 견제하였고 또한 일본은 또 21개조 요구 대부분을 포기 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대공황이 터지고 일본이 만주 사변을 저지르기 이전에는 양국간 관계는 비교적 좋았다. 하야카와 셋슈 같은 일본계 미국인 배우가 찰리 채플린 급으로 인기를 끌고 미국의 주요 인사들이 일본을 방문하기도 했다. 근데 이건 당시 서양에서 흔한 일이었다. 아시아에서 그나마 서양인들이 관심있는 곳이 일본과 중국 정도였고 그 중국조차 베이징시, 난징, 시안, 청두, 톈진, 상하이, 홍콩, 마카오를 빼면 아웃 오브 안중이던 시절이라.
3.3.3. 1930년대
'''일본이 국제연맹을 탈퇴하고 만주사변을 저지르면서 급격히 악화된다.''' 1920년대는 세계 각국이 군사력을 축소하던 시대였는데 일본은 탈퇴하고 곧 해군력을 확대하고 중국 대륙 침략을 본격화한다. 미국에선 공화당 정권[8] 이 물러나고 민주당 정권이 들어섰고 일본은 1936년 이후 2.26 사건 이후로 군부가 정부를 장악하며 중일간 일촉즉발의 상황이 지속되다가 1937년 일본이 중일전쟁을 일으키자 미국은 일본과의 협력을 끝내고 중화민국을 원조한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일본을 제재하기 시작하며 충칭 대공습을 계기로 비행기 부품 수출을 중단하기도 했다.
3.4. 제2차 세계 대전
태평양 전쟁을 참고할 것.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전쟁은 시작된다. 이를 계기로 미국인들의 반일감정이 폭발하였고 일본을 응징하자는 여론이 들끓으며 청년들은 스스로 군대에 자진 입대 하기도 했다. 일본 역시 당시 제국 정부의 세뇌 교육을 통한 선전으로 반미감정이 매우 짙었다. 오죽했으면 귀축영'''미'''라는 선전 문구가 나올 정도이다.
미국과 일본은 열악한 전황과 항복을 하지 않는 일본군 등을 이유로 치열하게 싸운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군 사망자 18만 5,924명이 유럽/대서양 전선에서 발생했고 15만 6,283명이 태평양/아시아 전선에서 사망했다. 역사상 가장 넓은 범위에서 일어난 전쟁이었고 육해군 합동작전이 주효하게 작용한 전쟁이었다. 일본군의 육해군 대립은 합동작전 개념을 완전히 말아먹었다.
당시 미군의 규모는 육군이 1,126만 명(육군 항공대 340만 명), 해군 418만 명, 해병대 66만 명, 해안경비대 24만 명, 상선사관 24만 명 등 총 1,659만 명이 동원됐으며 이 중 120만 명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이었고 35만 명은 여성이었다. 여성 가운데 16명이 전사했다.(출처) 일본군의 경우 육군이 630만 명, 해군이 210만 명 규모였다. 당시 두 나라의 인구가 1억 3천만과 7천만 수준임을 감안하면 20-30대 청년 남성의 대부분이 전선에 갔다고 봐도 무방하다. 일본과 인구가 비슷했던 독일(6,985만 명)은 1,820만 명을 군인으로 뽑았다. 소련(1억9,000만 명)은 3,447만 명이 참전했고 군인만 1천만 명 가까이 전사했다. 민간인도 1,500만에서 2,000만 가량이 사망한 것으로 본다.
3.5. 전후
1945년 일본이 항복한 후 일본 열도에 상륙한 미군은 연합군 최고 사령부, 즉 GHQ를 세우고 일본을 1952년까지 통치한다. 자세한 것은 연합군 점령하 일본을 참고할 것.
국공내전에서 공산당이 승리하여 중국이 공산화되고 6.25 전쟁까지 터지자 미국은 한반도에 빠르게 미군을 투입시키고 이를 계기로 대일 정책도 변화하여 일본을 부흥시켜 반공 기지로 삼기 위한 정책을 펼치기 시작하며 일본에 수많은 공장을 지어 군수물자를 생산하며 한반도에 물자를 수송하였다 1954년에는 일본의 방위를 위해 자위대를 창설시킨다. 1952년에 미일안전보장조약을 체결한 이후 미국과 일본은 주요 우방으로 지내고 있으며 반공 성향의 일본 우익들은 미국과의 연대를 굉장히 중시한다. 전후 일본의 대미 외교노선은 속국을 방불케 하는 일방적 친미자세를 지향하게 된다. 실제로 장기 집권한 총리들의 경우 전부 미국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 다만 일본 제국 시절을 경도하는 일부 극우 같은 경우에는 반미 성향을 보이기도 하는데 분케이슌슈(文藝春秋)의 마르코 폴로란 잡지가 유대인 갖고 비아냥대다가 미국의 분노를 사자 폐간한 사건도 있었다.
1950년대에는 대규모 안보투쟁이 있기도 했다. 1960년대에 가면 일본은 좌파 성향의 학생운동이 일어나는데 이는 1960년대 후반 전세계적인 현상이었다. 이 운동은 대규모로 일어나긴 했지만 현실 정치에 거의 변화를 바꾸지 못했고 지방선거에서 약간의 혁신 세력이 집권하는 수준으로 끝났다. 특히나 1970년대에 운동권이 과격화되고 1980년대의 대규모 호황으로 일본이 미국을 뛰어넘을 것이란 예측이 나왔고 일본에게 제1의 경제 대국 자리를 내줄 것을 두려워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으며 당시의 대중문화 작품을 보면 그런 기질이 두드러진다.[11]
3.6. 1980~90년대 미일 무역 마찰
(중앙 SUNDAY)미·중 ‘엔드게임’ 80년대 미·일전쟁처럼 10년 넘게 걸린다
(한겨레)투자자도 알아야 할 무역분쟁의 역사
(뉴스1)미중 무역전쟁, 미일 무역전쟁과 같은 점-다른 점
1980년도는 미국과 일본이 경제 분야에서 거세게 충돌했던 사건이다. 그 이전에 발생한 갈등도 대부분 1980년도 전후이다.
미일 무역 마찰에서 미국이 승리를 거두었다.
이후 2010~2020년대에 걸쳐 미국-중국 무역 전쟁이 시작되자 과거 미국이 일본을 상대로 치뤘던 미일 무역 마찰이 다시 언론들에 의해 재조명 되었다.
3.6.1. 플라자 합의
레이건 행정부는 일본에게 압력을 행사하여 플라자 합의를 체결한다. 그리고 이것이 결정적 한방으로 작용하여 일본의 부실한 대응까지 겹쳐 수출은 감소하고 소련 붕괴 이후 1990년대에 버블이 꺼지면서 일본은 침체되었고 미국은 인터넷과 정보통신 기술 등을 바탕으로 세계 최강국의 지위를 확고히 한다.
3.6.2. 미일 반도체 무역 분쟁
(이코노믹매거진)일본 반도체 몰락은 ‘삼성’ 아닌 ‘미국’ 탓
미국과 일본사이에 있었던 반도체 분야에 대한 무역 마찰. 1996년도에 종료된다.
우선 일본 정부에서 일본의 차세대 육성 산업으로 반도체 업종을 선정, 후발 주자였던 일본 반도체 산업에 적극적인 진흥 정책을 펼쳐 지원하면서 1980년대 일본 반도체 업체가 압도적인 성장세를 기록하며 미국의 반도체기업을 위협하게 된다. 이에 미국 정부에서 심각성을 인지, 일본에 대해 대대적인 조사에 착수한다.
어찌보면 이는 예견되었던 것이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반도체는 최첨단 산업 기술들[12] 이 집약된 산업의 꽃이였기 때문이며 그에 걸맞게 반도체 산업과 함께 이에 연관되는 부가 산업들의 가치가 엄청났기 때문에 설령 대상이 미국에게 있어 중요한 동맹국인 일본일지라도. 미국은 국가경쟁력과 위상 약화를 용납할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었다.
분쟁 도중 올림픽 붐이 꺼지면서 시장의 상황이 변하였으며 여기에 일본 반도체의 거센 공세에 미국 반도체 업체가 큰 타격을 입으면서 미국 정부와 일본 정부 사이의 갈등은 더 깊어져갔다. 이에 1986년 미일 반도체 협정이 체결되었지만 갈등은 줄어들지 않아 미국 대통령이 직접 일본에 대해 비판하며 반도체 협정을 위반한 것에 대해 손해 배상을 요구하며 일본제 제품에 대해 보복 관세를 발표하기까지 한다. 미국 정부에서도 일본 기업에 대한 적대적 보복을 행한다.
이에 일본은 축적된 기술과 산업 기반을 바탕으로 반도체 생산 기술 향상으로 미국의 보복에 대응하는데 성공한다. 일본 반도체 산업의 공세를 저지하는데 1차 실패한 미국에서는 재차 새로운 미일 반도체 협정을 체결, 보복 관세를 해체하는 대신 일본 시장에서 미국 반도체의 일정 비율 사용을 요구함과 동시에 미국 반도체 업계에서도 지금까지 지지부진했던 일본 반도체 업계에 대한 기술 특허료 요구를 본격화하며 압박해나간다.
결국 미국의 집요한 공세에 굴복한 일본은 반도체 분야에서 서서히 손을 떼기 시작한다. 이후 미국 반도체가 90년대를 기점으로 경쟁력을 회복하면서 미일 반도체 협정은 종료된다.
3.7. 1997년 미일가이드라인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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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9월, 미국과 일본이 미-일 방위협력 지침을 19년 만에 개정해서 일본 자위대가 해외에 군사 개입할 수 있는 길이 열려 논란을 빚기도 했다.
1년 5개월만의 개정협상 끝에 합의된 미-일 방위협력 지침에는 일본 주변사태에 관한 항목이 새로 등장했는데 이 규정에 따라 일본의 육·해·공 자위대는 미군을 지원한다는 명목 아래 군사적 역할의 범위를 사실상 해외로 확대할 수 있게 됐다. 미국과 일본은 일본 주변의 개념이 지리적인 것이 아니라는 외교적인 수사를 합의문에 명기했다. 그러나 가장 먼저 한반도, 그 다음은 중국과 대만간의분쟁을 상정한 것으로 일본군 해외군사 개입의 근거를 마련한 셈이다. 우선 미국은 일본과 방위 협력을 강화함으로써 전력을 극대화하고 군사비부담을 덜 수 있게된다. 일본 측은 군사 안보 면에서의 역할 증대를 노려 자국방위라는 기존의 동맹 틀을 의도적으로 깼다. 당시 일본 내에서는 신 방위협력에 대한 위험 론이 고개를 들고 있으며, 국민적 합의 과정 없이 안보를 종속화시켰다는 비난도 만만치 않았다. 미국과 일본은 유사시 주변 사태의 대상국이 된 한국과 중국에 사절을 보내 군사팽창주의의 우려를 해명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과거사를 청산하지 않은 일본이 미국의 대리 역할을 구호처럼 평화와 안전을 위해서만 수행할지, 전쟁 피해 대상국들의 시선은 예사롭지 않아 논란을 빚었다.미국.일본 방위협력지침 개정, 주변국들의 우려 높아져
최첨단 장비로 무장돼있는 육상과 해상 그리고 항공을 포함하는 일본의 자위대 병력은 모두 20만 3천. 앞으로는 새로운 가이드라인에 따라서 아시아와 태평양 전지역에 출동할 수가 있게 됐으며 자위대가 맡게 될 후방지원은 우선 미군의 전투지원을 위해서 일본 열도의 군사기지 뿐만 아니라 민간공항과 항만시설을 미군에게 제공하게 된다. 또한 무기와 탄약을 비롯해서 전쟁수행에 필요한 일체의 물자와 연료를 일본의 자위대가 수송을 맡게 된다. 아울러 미군기와 함정의 수리와 정비도 일본이 담당한다. 달라지는 자위대의 역할 가운데 주목할 만한 것은 위기에 처한 미군의 수색과 구조작전에 자위대가 참여한다는 사실이다. 긴급한 사태일 때는 적지에도 들어가는 상황도 예상할 수 있다. 미국-일본 방위협력지침 확정; 일본의 군사적 역할 확대
당시 미일가이드라인에 대해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후보는 "미일가이드라인의 골자는 유사시 자위대가 한반도에 진출하여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려하는 것이 큰 문제"며 "주권국인 대한민국의 동의 없이 이런 법안이 통과된 것과 우리정부의 무관심과 무능에 분노할일"이라고 김영삼 정부를 비판했다.남북정상회담 개최될 것 김대중후보 발언 김대중 후보는 유사시 자위대의 한반도 군사개입에 대해 한국의 사전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 자위대의 한반도 군사개입에 대해 조건부허용 입장을 내놨다. 97대선 정책대결로
4. 현재 (201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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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버락 오바마 정권 시절의 中-日-美 3국의 모습.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시간이 상당히 많이 흐른 터라 미국의 반일감정이나 일본의 반미감정은 굉장히 희석된 상태이며 현재는 양국간 국민감정이 서로 우호적이다. 무엇보다도 과거 동아시아 패권을 거머쥐었던 중국이 과거의 침체기를 딛고 부상하면서 이를 견제하고자 하는 미국과 일본 두 국가의 공조는 가면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중국과 일본간 마찰이 생길 경우 난징 대학살이나 위안부 등 일본의 잔혹한 전쟁범죄 등 민감한 문제를 제외하면 미국은 거의 일본의 편을 들어주는 수준이다
다만 트럼프 집권 이후로 동맹에 다소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며 오바마 때와는 달리 손발이 다소 맞지 않는 등 마찰도 어느 정도 생기고 있다.
그러나 미중간 무역전쟁이 경제뿐만 아니라 군사/문화등 여러 방면으로 갈등이 심화되자 트럼프의 반중(反中) 전선을 강화하는 정책으로 협력을 강화하는 움직임도 있는 편이다.
2018년 여론조사에서는 미국인 87%가 일본에 호감을 표시하여 캐나다/영국등과 함께 미국인이 호감을 갖는 국가로 나타났다. 참조 문서
2019년 여론조사에선 일본인 67%가 미국에 호감을 표시하여 영국/호주 다음으로 일본인이 호감을 갖는 국가로 나타났다. 참조 문서
4.1. 외교적 관계
심지어 국방비 부담 등으로 재정 적자에 크게 시달리고 있는 미국은 일본의 재무장을 지지하고 있을 정도.[14] 2014년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아시아 순방 중 일본을 방문해 아베 신조 총리와의 정상 회담에서 센카쿠 열도 역시 미군의 방어 의무 대상이며, 일본의 집단 자위권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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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례로 2016년 5월 오바마는 일본 히로시마 평화기념관을 방문하고 원폭 피해자를 만나 위로를 했다. '''오바마의 히로시마 원폭지 방문 및 피폭자들 위로, 한국인 원폭 피해자 위령비 헌화는 하지 않음''', 일본 아베 총리를 박근혜 대통령보다 우선시, 2016년 12월엔 '''아베 신조가 전후 일본 총리 최초로 진주만 방문과 더불어 미국의 답례로 오바마의 미일 동맹 칭송''', 아베 총리가 12월 말, 진주만을 방문하자 '''오바마 대통령은 "미·일 관계는 세계 평화의 주춧돌이며 두 나라의 동맹은 어느 때보다 굳건하다"고 선언'''
2017년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또한 마찬가지로 센카쿠 열도를 보호한다고 천명했다. 트럼프·아베 정상회담…“센카쿠 열도 안보 대상” 중국 견제, 한국의 이명박 정권 시절만 해도 미국은 한미일 관계에서 중립을 유지했으나 박근혜 정부가 지나친 친중 행보를 보이자 미국과 일본은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이러한 움직임을 보면 미국과 일본은 제2차 세계 대전 과거사를 청산하고 떠오르는 중국에 대항하기 위해 앞으로도 협력을 더욱 강화하자는 수순으로 볼 수 있으며, 그로 인해 미국이 일본에 대한 지지를 확고히 한다는 걸 볼 수 있다. 현재, 미국의 일본에 대한 인식은 극히 호의적으로 바뀐 반면에, 한국에 대해서는 '한국 피로증'이라는 말이 미국 내에서 먹히고 있다는 소문이 나오는 등 예전에 비해서 인식이 안 좋아진 것[15] 은 분명해 보인다. 미일관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고로 순항 중이며 신밀월이란 말까지 나오고 있다.'''미-일 동맹이 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중요하며, "역내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절대적"이라는 미국 카터 국방장관 장관의 발언''' '''대통령이 바뀌어도 미국과 일본은 계속 확실한 진짜 동맹일 것이라고 믿고 있다며 향후 미일동맹의 강고함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는 미국 태평양 군사령관 해리스의 발언''', '''태평양 전쟁 참전 용사 자격으로 미/일 정상 기자회견장에 참석한 미국 노병은 "아베는 최고다. 사죄할 필요 없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일 동맹은 아시아·태평양 평화와 안정의 주춧돌이고 그 어느 때보다 굳건하다''' 라고 까지 말하기도 하였다. 다시 말해 아베의 진주만 방문은 미국 참전 용사 및 미국 대중들의 시각에서 매우 좋은 인상을 주었음에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트럼프 대통령 또한 '''트럼프 “美·日 안보동맹 확고''', '''트럼프 “미국은 100% 일본과 함께한다” ''', 펜스 부통령 또한 '''펜스 美부통령 "미국은 100% 일본과 함께 할 것"'''
즉 몇년 전까지만 해도 이명박-오바마의 관계 및 한미관계가 미일관계 이상으로 돈독하고 주목을 받았다고 해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으나, 이명박 대통령 교체 이후와 아베 신조의 출현 이후 다소 양상이 변하였다고 볼 수 있을 듯 하다.
트럼프는 취임 이후 최우방인 영국의 메이 총리와 먼저 정상회담을 했고 그 다음으로 아베 총리를 만났다.[16]트럼프-아베, 20시간동안 골프 27홀·식사 네끼
이후 '''일본이 최고 동맹국이고 한국은 하나의 중요한 파트너로 차등화한다는 미국 국무부 장관 렉스 틸러슨의 발언까지도 나왔다.''' 세계일보. 다만 이는 오역인듯. 이후 미국측에서 한, 일 모두 중요한 동맹이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하지만 립서비스일 경우도 충분하다. 외교적 언사로는 그렇게 말을 하지만, 몇년사이 미일간의 행보는 한미관계보다 더 밀착해왔던게 사실이다. 박근혜 정권 시절 사드 배치 전까지의 친중외교 여파로 미일관계가 한미관계보다 한층 더 돈독한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2015년까지 꿈쩍도 안하던 한국이 여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일 위안부 협상이나, 한일군사정보호협정을 급속도로 체결했는데 이러한 조약에 미국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드러났다. 미국이 이러한 조약들을 한국에게 반강제한 것을 볼때 일본이 더 중요한 동맹인건 사실이다.''' ''''아베-바이든 통화, 위안부 합의 美 압력 확인'''', ''''속전속결' 한·일 군사협정…미국 '입김''''
2017년 3월부터 북한 문제가 국제적인 이슈로 급부상하면서 미일간의 공조가 긴밀하다는 점을 국제사회에 부각시켰다.트럼프, 아베와 35분 통화…"北 도발 대응 모든 선택지 검토" 심지어 (아무리 탄핵정국인점을 감안해도) 한국은 한반도 문제 당사자임에도 전화통화에서조차 배제되는 모습이다.트럼프, 日아베와만 통화…한국은 왜 뺐을까?
2017년 9월에는 6차 북한 핵실험 공동대응으로 관계가 더더욱 친밀해지는 중이다. 트럼프-아베, 6일새 3번 전화통화…"美, 日과 100% 함께할 것"(종합)
아베가 구상한 미일과 인도, 호주가 참여하는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외교전략을 트럼프가 받아들일 정도로 대 아시아 정책은 트럼프는 아베에게 의지하고 있다. "美·日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외교전략 추진", 트럼프 "일본과 지금보다 가까웠던 적 없다"...아베 극진한 접대, 일왕 만난 트럼프 "美日 관계, 그 어느 때보다 좋다"
최근 남북 관계개선에 관련하여 국내에서 한미동맹군사훈련 축소 및 폐지설도 제기되는 와중 미일동맹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한 한미동맹이 경제에서도 간접적으로 배격을 받는지 우려되고 있다. 2018년 2월 16일 미 상무무는 “외국산 철강이 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동맹국인 한국을 브라질·중국 등과 함께 53%의 관세를 적용할 12개국에 포함시켰다. 하지만 대미 철강수출 1위인 캐나다를 비롯해 일본·독일·영국 등 미국의 다른우방이나 동맹들은 대부분 빠졌다. "철강 관세 빠진 일본 '동맹인 일본철강은 미국 안보에 위협 안 돼'"
미국과 일본은 외교적, 문화적으로 우호적이라고 해도 일본측에서 미국인과 결혼해 낳은 자녀를 빼돌린 사건과 관련해서 갈등이 있고, 이러한 방식으로 1994년부터 25년간 약 400명의 미국인 자녀들이 일본으로 유괴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고 일본은 1983년 발효된 ‘국제 유괴사건 민사 협약’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다.#
4.2. 문화적 관계
미국인의 68%가 일본을 신뢰하고, 청년층의 대부분이 일본이 사과를 충분히 했다고 생각. 전통적으로 일본 총리들은 미국에 가서는 과거사를 외면하거나 대놓고 미화하지는 않고 적당히 돌려 말하고 넘어가왔으며, 미국도 별로 문제시하지 않았다.
일본에 대한 미국인의 인식은 제2차 세계 대전때나 일본의 버블경제가 한창일 1980~1990년대 초반[17][18] 을 제외하면 대체적으로 좋은 편인데 일본 문화가 미국에 널리 퍼지면서 긍정적인 이미지가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스시는 미국에서도 많이 대중화 되었으며, 라멘, 사시미 등의 일본 식문화는 미국 내에서 트랜디한 문화로 자리잡았다. 매년 봄마다 워싱턴에서는 일본을 상징하는 벚꽃이 만개하며, 하이쿠는 미국 교과서에 오르게 되었고[19] 일본 만화, 일본 애니메이션으로 대표되는 대중문화도 미국에서 인기를 얻었을 뿐 아니라 현대 미국 대중문화에서도 일본의 영향을 진하게 받은 작품들이 계속 나오게 되었다. 수많은 와패니즈가 양성되었고 이들은 일본 문화에 대한 열광을 넘어서 일본 자체에 대한 호감을 보이며 일본에 대한 긍정적 감정을 표하거나 지지를 보내곤 한다. 몇몇 사람들은 과거사 문제에서 노골적으로 일본을 옹호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물론 미국이 일본에게 영향을 받은 것보다 일본이 미국의 영향을 받은 것이 훨씬 거대한데, 미국 문화는 종전 후 일본 문화와 일본인들 자체를 완전 바꾸어놓을 정도의 엄청난 영향력을 주었다.[20] 현대 미국에서 제법 인기를 끌고있는 아니메, 망가, 비디오 게임 모두 결국에는 미국에서 넘어간 문화이며 이외에도 음악, 영화 등 다양한 대중문화 장르도 미국의 영향을 안 받은 분야는 없다. 이런 예술 산업 말고도 햄버거, 피자 등 미국의 많은 대중 산업들 역시 일본에서 크게 성공하였으며 일본인들의 생활 속에 깊숙하게 자리 잡았다.[21] 그러나 거대한 자본과 기술력으로 전 세계를 호령하고 있는 미국 대중문화에, 그것도 다른 문화권이며 어레인지된 일본 대중문화가 다시 역수출되어 미국과 서구권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분야에 따라서는 인기를 끌며 문화의 일방통행에서 벗어나는 모습은 그 예가 많지 않은 경우로 마땅히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영미권과 유럽권의 문화 산업을 합치면, 그러니까 서구권의 문화가 사실상 현대 문화의 거의 전부라 할 수 있는데 거기서 영향을 받은 어떤 동양권의 국가가 세계 시장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것만 해도 대단하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아직도 언어의 차이와 가치관의 차이, 선호하는 외모, 음악 장르의 차이점, 때문에 일본 배우나 가수가 자연스럽게 미국에 건너가서 성공한다든지 하는 경우는 소수이다. 캐나다, 호주, 남미, 영국과 기타 유럽에서는 미국으로 건너가서 크게 성공하는 연예인, 영화배우, 가수들이 굉장히 많음을 생각하면 이는 극복하기 어려운 강고한 벽이 여전함을 알 수 있다.[22]
무엇보다도 미일관계가 크게 개선된 가장 중요한 요인은 현실적인 이유와 상황의 변화인데 바로 '''일본이 결코 미국을 위협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일본인으로 착각하고 중국인을 살해한 미국인들의 사례와 같이 1980~1990년대 초반 미국에서는 경제적으로 급부상한 일본이 앞으로 미국을 추월하고 위협할 것이라는 예측에 대한 막연한 공포감과 혐오감을 가졌었다. 그로 인하여 일본에 대한 적개심도 매우 심했었는데 이후 끝날 줄 모르고 팽창하기만 하였던 일본의 경제적 국력이 감소하고 날이 가면 갈수록 영향력을 상실하면서 미국의 경제패권은 확고하며 일본은 단지 잠잠해질 돌풍이었을 뿐임이 입증되고 미국 사회에서도 일본은 미국을 위협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님이 확고하게 밝혀지면서 일본에 대한 미국인들의 공포와 혐오는 점차 자취를 감추었다.
그 와중에 과거 일본보다 훨씬 상대하기 골치아픈 중국을 급부상하면서 이를 막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일본은 미국을 위협하는 존재이긴 커녕 오히려 미국에게 매우 중요한 동맹국이 된 것이다. 게다가 과거 경제적 위기론을 불러오는데 그친 일본의 경제적 위협과는 달리 중국은 경제적 위협뿐 아니라 군사적 분쟁 및 미국의 동아시아 영향력에 대해 도전까지도 동시에 진행중이기에 미국에게 있어 과거 일본의 위협은 매우 쉽다고 생각되어질 정도로 중국은 여러 분야에서 미국을 귀찮게 하고 있다.
게다가 군사력과 경제력등 전체적인 국력의 강대함과 이후 성장의 잠재력조차도 과거 일본에 느꼈던 두려움을 훨씬 능가한다는 것이 문제점. 결국 미국은 중국의 압도적인 팽창에 발등에 불이 떨어졌고 그로 인해 중국을 같이 견제해줄 수 있는 일본의 중요도는 매우 높으며 이 때문에 과거 언제 일본을 경계했던 것에서 태도가 바뀌어서 일본의 재무장화 움직임에 미국이 오히려 적극 지지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는 중이다.
미일관계의 유례없는 돈독함은 단순히 한가지 분야로 인한 우호감 증대라는 논리가 아닌 여러 가지 요인들과 무엇보다도 현실적인 국제정세의 변화에 의한 미국의 현실적인 필요성이 근본적인 배경인 것이다.
일본계 미국인의 숫자는 약 130만 명 정도이며 일본 내에 체류하는 미국인은 주일 미군을 제외하고 약 5만 명 수준이다.
4.3. 2017년 트럼프 미 대통령의 방일
현재 미국과 일본은 돈독한 군사/외교적 우호관계와는 별개로 경제 분야에서는 큰 입장차를 보이고 있다. 과거 오바마 정권에서도 미국의 일본에 대한 막대한 무역적자를 지적했지만 이와 더불어 일본과 TPP를 통한 경제적인 공조를 모색했다. 반면 현재 집권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경제적인 문제에 관해서는 누구에게도 결코 양보할 수 없음을 공개적으로 천명하며 다른 나라들과의 경제교역에서 미국을 최우선으로 둘 것을 거듭 밝혔다. 그리고 그 대상은 현재 우호관계를 가지고 있는 일본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로 인해 군사/외교에서 돈독한 미일관계는 변함이 없지만 이와 별개로 경제 분야에서는 크나큰 이견을 보이고 있다.[24][25] TPP가 바로 대표적 사례.[26]우리는 공정하고 개방된 무역을 원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와 일본의 무역은 공정하지도 개방돼 있지도 않다. 지금 우리와 일본의 무역은 자유롭지도 상호 호혜적이지도 않다. (미국은) 수년간 막대한 무역 적자를 겪었으며 미국에서 일본산 자동차 수백만 대가 판매되고 있지만 일본 내 미국차의 판매는 없다.[23]
우리는 이를 협상해야 한다.트럼프 “美·日 무역 관계 불공정…수년 간 막대한 적자”
이번 트럼프의 방일 당시 일본 아베 정권은 트럼프의 방일에 대해 극진하게 환대하며[27] 우호적인 발언과 제스처를 여러번 하였으며 트럼프도 이에 화답하여 미국과 일본의 관계가 오늘만큼 좋았던 적은 없었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경제부분에서만큼은 트럼프도 정색하고 일본에 대해 책임을 크게 추궁하며 개선할 것을 줄기차게 요구했다.[28] 이미 2월 초 일본은 미국에게 1500억 달러의 인프라 투자 경제협력을 약속하는 등 막대한 경제협력 투자를 발표하는등 미국에게 크나큰 액수의 선물을 준 상태였다.[29] 하지만 이번 방문에서 트럼프는 또다시 일본에게 자동차 산업과 미국 무역 적자를 거론했다. 이미 일본에게 1~2월초에 거액의 경제협력 금액을 약속받았는데도 미국에서 왜 저러나 싶겠지만 트럼프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현재 미국의 막대한 액수의 대일 무역적자가 발생하는게 여전히 개선이 되지 않은 상황인 만큼 강한 불만이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
의외지만 일본은 미국과 FTA를 체결하기를 꺼려하고 있다. 일본은 이미 미국 시장에서 상당한 영역을 확보했으며 일본의 주력 수출상품인 자동차 및 가전 부문에 대한 미국의 관세가 낮기 때문이다. 일본으로선 미국과의 FTA보다 자동차 및 가전 부문에서 높은 관세율을 고수하고 있는 한국, 태국, 중국 등과의 FTA에서 보다 큰 관세철폐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30] 만약 일본이 미국과 FTA를 체결한다면 농업, 건설, 공공서비스 등 취약한 부문들이 개방되어 일본도 상당한 출혈을 각오해야만 한다. 실제로 2017년도 10월경 미국은 일본에게 FTA 협상 개시를 요구했다. 다만 이번 방일에선 별다른 의견제시가 없었다.[31]
여담으로 미국 대통령의 방일이 코앞이기에 일부러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싶지 않았던 일본 언론들에선 크게 부각시키진 않았지만 트럼프는 일본으로 향하며 "진주만을 기억하라. 애리조나함을 기억하라. 그날을 잊지 않을 것이다(Remember Pearl Harbor. Remember the USS Arizona! A day I’ll never forget)"라는 트위터를 올렸다.[32] 다만 이미 일본의 공개적인 사과를 여러 번 받았던 과거사를 굳이 방일을 앞두고 꼭 이걸 트위터에 작성해야 했냐며 좀 지나쳤다는 반응이 미국에서도 상당했다.
그런데 2018년 평창 올림픽을 기폭제로 급속도로 훈훈해지는 남북 관계, 북미 관계의 틈바구니 속에서 아베의 아이덴티티가 점점 잊혀지고 있으며 아베한테 접대 받을만큼 받아놓고 철강 관세 같은 경제적 이슈에서 트럼프가 아베를 엿먹이고 있다. 그래서 아베의 한 국가의 대표가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살살이 외교 행보가 되려 웃음거리가 되는 중. 다만 아베도 트럼프에게 자택 저녁식사 부부 동반으로 초대받은 경력이 있어서 그런 것도 있다. 아무 이유없이 살살거린 것은 아닌 셈.
4.4. 2018년 미일정상회담
트럼프는 일본의 미국 항공기 수입 결정, 방위 무기들의 수입에 대해 언급하며 이를 호의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또다시 일본의 자동차 수출은 관세를 거의 내지 않는다고 지적하며 공개 기자회견에서 불만을 표출했다. 결국 2017년도에 이어 또다시 일본의 자동차 수출에 대해 공개적으로 거론되면서 일본에서 어느정도 미국이 만족시키고 달랠 수 있는 경제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33]
추가로 일본과 미국 양국의 경제 사항들에 대한 협상을 확정지었다. 이에 일본에서는 자칫 미국에서 원하는 미일 FTA 협상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시각이 있다.
일본 기업들이 기대하던 철강, 알루미늄 제품의 관세 면제 합의는 미국측이 일본에 대한 엄청난 무역 적자를 이유로 거절하여 결국 실패하였다. 다만 이는 아베의 협상력 문제이기 보다 애초부터 미국에서 일본에 대한 협상 카드[34] 를 쓰기 위해 우선은 허가하지 않은 것이라는 전망이 강하다. 다만 일본 기업들 입장에서 크게 아쉬워하긴 했다.
이후 일본의 평가는 대북 공조 확정은 만족스럽지만[35][36] 그외에는 전혀 만족스럽지 못했다는 반응.[37][38] 때문에 미일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아베의 지지율은 추락했다.
4.5. G7 정상회담
캐나다 퀘벡주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는 한마디로 말해 트럼프를 제외한 나머지 G6 국가들의 일방적인 미국 성토장으로 바뀐 최악의 회담 진행을 보여준 사건이였는데[39] 여기서 난민 문제가 의제가 되어 논의하던 도중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일본은 난민 유입에 대처하지 않아도 돼 행운이라며 아베 총리에게 퇴진이라는 발언을 하였다고 보도되면서 논란이 되었다.[40]
4.6. 2018년 6월 정상회담
2018년 6월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베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트럼프가 아베에게 진주만을 기억한다고 했다 아니다로 인하여 논란이 일었다.
이에 대해 아베 본인이 직접 부정하며 이는 미국 언론의 오보라고 일축하였다.
다만 이에 대해 과거 트럼프가 오바마가 히로시마를 방문한 것에 대해 진주만을 왜 거론하지 않았냐고 비난했던 것 출처 등을 고려하면 실제로 했을수도 있다는 의혹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4.7. 일본 일대일로 참여/TPP 제안
2018년 10월 일본이 중국의 일대일로사업 참여와 함께 미국이 이탈하여 일본만이 대형 국가로 남게 된 TPP에 중국이 참여를 검토한다는 소식이 들려서 충격을 안겨주었다. TPP가 왜 결성되었는지 생각하면 충격 그 자체.
현재 이에 대해 미국의 천문학적인 무역적자 해결을 위해 일본에게 경제 협상을 요구하는 상황에 대해 불만을 품었으며 일대일로 참여등을 선언 미국에 대해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현재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의 정책에 견제를 하고자 한다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상당하다. 현재 미국이 무역전쟁에서 중국에 대해 강경한 자세를 나선 상황에서 이는 찬물을 뿌리는 꼴이 될 수도 있기 때문. 트럼프 본인부터가 시진핑 면전에다 일대일로 프로젝트가 전 세계 무역을 혼란스럽게 만들 뿐 아니라 본인에게도 매우 ‘모욕적’이라고 말한 사항이기 때문. 왜냐하면 미국에게 있어 일대일로는 결코 양보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41]
때문에 수상한 중일 밀월이라거나, 아베의 친중행보가 트럼프의 분노를 일으킬 수 있다, 대만까지 이번 중일회담을 경계하는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그외에도 유럽에서도 초창기 일대일로에 동참하는 듯 했다가 이후 일대일로 사업 진행이 대놓고 중국만의 이득을 추구하자 중국에 대해 다시 차가워졌다. 왜냐하면 일대일로는 추진과정에서 국제 기준들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일방적 추진이 이뤄지고 있는데다 친중 국가 중심의 국제 질서 개편의 의도가 있다고 의심하고 있기 때문.
4.8. 2019년 신 밀월 관계 구축
4월 19일 미일 양국은 2+2 구조의 장관급 회담을 개최하고 미국과의 공조 강화, 북한의 FFVD 때까지 대북 제재 유지, 북한과 중국 문제 등에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무엇보다 미국과 일본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북한의 비핵화를 이룰 때까지 대북제재에 공감을 표했으며, 4월에 있던 미일 정상회담에서는 9시간 동안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골프 회담을 포함한 독대가 이루어졌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총리 사이에 무역 갈등은 여전히 있었다. 미국은 동맹국들 중 유일하게 일본에게만 F-35 설계 기밀을 제공하겠다고 하였다. 또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최신형 함대를 일본에 배치했으며, 한국과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과 관련해 WTO에 패소한 일본의 입장을 미국이 대놓고 지지하였다. 일본은 WTO는 개혁할 필요성이 있다고 국제사회에 여론전을 펼치며 WTO를 압박하고 있으며, 미국, 캐나다, 사우디는 일본을 지지하여 아베 총리는 이들 국가 정부 관계자에게 사의를 표하였다고 한다. 2019년 6월 오사카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담에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할 예정이지만, 이례적으로 한달 전인 5월에도 일본을 국빈 방문하기로 하였다. 6월에 정상회담이 열려서 굳이 5월에 일본을 방문할 필요가 없는데도 5월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하기로 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며, 그만큼 미국과 일본의 관계가 가까워졌다고 전문가들은 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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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지바현 모바라컨트리클럽에서 26일 골프 라운드를 마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웃으며 '셀카'를 찍고 있다. [사진 제공 = 아베 총리 트위터]
트럼프 대통령은 5월 25일~28일 일정으로 방일했다. 아베 총리와 골프 회담을 한 이후 도쿄에서 스모 경기를 관람했으며, 스모 우승자에게 직접 미 대통령배 트로피를 수여하였다. 수상 연설에서 레이와 1년(원년)이라고 신 연호를 직접 언급하여 많은 일본인들의 환호를 받았다. 27일에 트럼프 대통령과 멜라니아 영부인은 일본 나루히토 천황과 마사코 황후를 직접 만나 회담했으며, 북한에 납치된 납북 일본인 가족들과 면담도 가져 일본의 입장을 지지하였다. 또한, 아베 총리와 1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기자회견을 가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북 제재 유지와 북한과의 외교 관계에서 일본과 완전히 일치한 입장을 가진다고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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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 부부와 나루히토 천황 부부
하지만 이달 초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을 놓고 아베 총리는 UN 제재 위반을 주장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제재 위반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으며 양 정상은 이견을 노출했다. 방일 첫 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에 이어 또다시 미국 - 일본 양국간의 민감한 이슈인 무역불균형을 시정한다는 발언을 다시 하였고, 아베 총리의 바람대로 해당 이슈를 7월에 있는 참의원 선거 이후로 미루기로 하였다. 또한, 일본의 자위대 함정에 트럼프 대통령이 아베 총리와 함께 승선하여 일본의 중국에 맞서기 위한 군사력 강화를 지지하였으며, "동해"라는 명칭 언급 없이 일본해라고 단독 발언하기도 하였다.
2019년 5월 30일 일본 정부는 16년만에 미국 소고기에 대한 수입제한을 철폐했다.
2019년 8월 G7에서 미일정상회담에서 일본은 미국이 중국에 수출하려다 남은 옥수수 70억 달러어치(8조원)를 대신 구매해주기로 합의되었다. 아베는 이를 보고 '정부가 아닌 민간에서 수입하는 것'이라고 언급하고 뒤이어 트럼프가 '일본의 민간부분은 미국과 달리 정부 말을 잘 듣는다'고 쐐기를 박으며 사실상 일본 정부에서 이를 구슬려서 해결할 수 있음을 언급하였다. (조선일보)아베가 美농산물 사주겠다고 나서자… 트럼프 "환상적인 친구, 정말 고맙다"
미군의 최고위 장교가 일본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일본이 재무장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10월 22일에 보도했다.#
4.9. 2020년대
5. 군사력 비교
자위대의 경우 특히 해상자위대가 미 해군을 제외한 어느 해군과도 대적할 정도로 손에 꼽히며, 항공자위대 또한 역시 상당한 전력을 가지고 있다. 자세한건 미군 vs 자위대 문서 참조.
6. 관련 문서
- 미국/외교
- 일본/외교
- 미일동맹
- 인도-태평양 / Quad
- TPP
- 주일미군
- 일본계 미국인
- 미국/경제
- 일본/경제
- 주요 7개국 정상회담
- 대국관계일람/아시아 국가/동아시아 국가
- 대국관계일람/아메리카 국가/북아메리카 국가
[1] 이 경우는 그냥 자국타국 여부에 상관없이 알파벳 순서대로 적었을 가능성이 높다. 위키백과가 영어 사용 '''국가의''' (즉 미국 또는 영국 등의) 위키백과가 아니라 영어'''로 된''' 위키백과이기 때문. 그래서인지 애국 정신이 투철한 미국인들은 발끈하여 United States-Japan relations라고 표기해야 한다고 지미 웨일스 등 운영진들에게 강력히 주장하며, 이 때문에 영어 위키백과에서는 이 항목이 여러 번 수정전쟁이 벌어진 흠좀무한 사건도 일어났고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2] 발음은 にちべいかんけい Nichibeikankei(니치베이칸케이)이다.[3] 발음은 Měi Rì guānxì(메이르관시)이다.[4] 두 나라 다 공용어가 정해져 있지는 않다.[5] 가톨릭 신자로 유럽과 아메리카 등을 방문했다.[6] 당시에는 쿠리하마란 지명이었다.[7] 오륜서와 추신구라를 애독하고 백악관에 유도와 스모선수들을 초빙해 대련했다.[8] 시어도어 루즈벨트가 대표적인 친일파였다. 물론 이 시점엔 고인이 됐지만...[9] 자연사, 병사 이런 거 말고 전쟁 때문에 죽은 민간인을 말한다. 대부분 일본 본토에서 미군의 공습으로 사망한 사람들이다.[10] 당시 20만 가량이 군인과 군속으로 끌려갔고 1만 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본다. [11] 1980년대에 제작된 영화 백 투 더 퓨처 시리즈에 미래(2015년) 모습 묘사가 나오는데 일본의 경제적 국력이 강해졌음을 암시하는 모습이 나온다. 제작진이 미래에 일본이 미국을 뛰어넘으리라 생각하고 그런 분위기를 상상하여 제작했다고 한다.[12] 반도체 생산의 핵심공정중 하나인 반도체 계측만 하더라도 응용과학의 집약체이다. 광학, 소재, 시뮬레이션, 이미지 프로세싱, 로봇 컨트롤, 통계학, 시스템공학 등 방대한 분야의 첨단 기술들이 요구된다.[13]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 법적 근거를 마련한 미일 가이드라인에서 일본은 97년 7월 캄보디아 자위대 수송기 파병을 통해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반응을 떠보고 한반도 북핵위기시 자위대의 한반도 합법적 군사활동 근거를 이 법안을 통해 공식화하기도 했다. 미일 대등한조건서 군사협력[14] 과거 소련의 위협이 있을 당시 서독을 포함 서유럽을 부흥시켰던 맥락과 유사한 전략이다.[15] 한국이 사드배치 전까지 친중 성향을 보였던 것도 문제가 됐다. 사실 반일보다는 친중이 더 문제인 것이, 미국의 입장에서 중국은 가상 적국이다.[16] 트럼프는 이후 2017년 3월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악수를 청하는 메르켈을 일부러 못 듣는척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확실히 영국과 일본의 총리를 대하는 모습과는 많이 달라 논란을 일으켰다.더군다나 트럼프의 어머니는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민온 케이스인데 메이에게는 어머니의 출신까지 거론하며 우애를 다졌지만 트럼프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독일 바이에른 출신의 이민자임에도 메르켈에게는 별다른 언급이 없었다. 무역문제 및 나토 국방비 분담금 문제 등으로 소원해진 미국-독일 관계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17] 이때는 경제동물이라고 부르며 경제 패권이 일본으로 넘어갈지도 모른다는 경계의 시선이 강했는데, 디트로이트에서는 일본 자동차의 인기로 직장을 잃은 미국 자동차 회사 실업자들이 중국인을 일본인으로 착각하고 때려 죽였을 정도였다.(...) 이를 피해자의 이름을 따 빈센트 친(Vincent Chin) 사건이라고 부른다. 중국인을 일본인으로 착각하고 때려 죽인 이 범인들은 무죄 판결을 받아 큰 논란이 일어났다.[18] 1990년대 초반의 경우 일본은 버블이 꺼져 침체의 길을 걸을 시기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일본 위협론이 먹히던 시기였으며 1990년대 중반을 거치며 수그러들었다[19] 미국 내에서 하이쿠는 상당히 인기가 많은데 회사의 CEO가 직원들에게 신년맞이 기념으로 자신이 지은 하이쿠를 적은 카드를 보내는 곳도 있다. 하이쿠 짓는 법을 알려주는 강좌도 있다.[20] 애초에 일본뿐만 아니라 현대 대중문화에서 미국의 영향을 안받은 나라는 없다.[21] 비단 일본 뿐만 아니라 세계의 현대 문화는 미국의 영향력을 피해가기 힘들지만, 일본은 과거 전쟁까지 치뤘던 나라의 문화들도 받아들인다는 게 차이점. 이는 독일도 마찬가지다.[22] 선호하는 이성상만 하더라도 아시아와 서구계는 매우 다르다. 앞으로도 바뀔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23] 실제로 일본 시장은 자동차와 전자제품 업계에서 외국의 수입품에 대해 굉장히 배타적인 것으로 악명이 높다. 삼성전자만 하더라도 국제적으로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지만 일본에선 여전히 변함없이 고전중이다.[24] 2017년 1월 초에 트럼프가 중국, 멕시코와 함께 일본을 거론하며 무역적자에 대해 불만을 터뜨렸다. 일본에서도 이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상당히 거셌는데 일본상공회의소 회장이 기자회견에서 “모든 나라와의 무역 불균형을 바로잡는 것이 옳은 것인가”라고 반문하며 “(상대국에 따라) 무역 적자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반발하였다.[25] 이후 트럼프는 아베 총리에게 무역 불균형 문제의 시정을 요구하며 "빨리 눈에 보이는 결과를 내기를 바란다"고 발언했다고 교도통신이 미·일 관계 소식통을 인용해 9일 보도했는데 일본 정부는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가을 중간선거 전에 성과를 내려 하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고 보도하였다.트럼프, 아베에 "무역적자 해소 조속히 결과 내라" 압박[26] 오바마 집권 당시 미국에서 주도적으로 추진했지만 트럼프 집권 이후 태도가 180도 바뀌어서 현재 미국은 TPP를 공식 탈퇴한 상태이다. 공화당이야 예전부터 오바마가 TPP를 추진하는 것에 대해 냉소적이었고 민주당 내부조차도 상당수의 인원들이 TPP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강하며 대통령인 트럼프야 예전부터 TPP에 가입할 의사가 없음을 예전부터 줄곧 표방해왔고 이후로도 그 생각에 변화가 없었기 때문에 사실상 미국에서 TPP를 재추진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결국 일본은 이번 2017년 방일에서도 미국의 TPP 재가입 설득에 또다시 실패하였다. 여담으로 미국 없는 TPP에 한국이 굳이 안달할 필요는 없기에 TPP에 대한 관심도는 급격하게 식었고 일부에선 아예 TPP 자체가 실패했다는 평가까지 나올 정도다.[27] 트럼프를 접대하기 위해 세계 랭킹 4위인 프로 골프 선수 마쓰야마 히데키가 와서 아베와 더불어 밀월골프를 쳤으며, 패스트푸드와 고기를 좋아하는 트럼프를 위해 점심에는 수제 햄버거와 쇠고기 철판 구이를 접대하는 등의 세심함까지 보였다. 실제로 트럼프는 일본의 극진한 접대에 아주 크게 만족하였다는 후문.[28] 도쿄의 미국 대사관저에서 열린 미·일 기업 경영자 초청 강연에서 트럼프는 일본에게 크게 불만을 터뜨렸는데 "일본은 미국에 많은 자동차를 수출하고 있지만 미국 기업들은 사실상 일본에 수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과 현재 미국이 무역에서 연간 700억달러에 가까운 거액의 무역적자 발생하고 있음을 이야기하며 일본도 미국의 적자 해결에 협조를 주문하며 미국산 무기의 수입을 요구했다.[29] 이때 일본 내에선 미국과의 관계 우호는 좋지만 좀 심한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을 정도.[30] 한국이 일본과 FTA를 하는게 별로 이득이 없기 때문에 추진하지 않은 것과 같은 맥락.[31] 일본에서는 이러한 미국의 FTA 요구에 대해 일본 기업, 정부 차원에서 막대한 액수의 현지 투자, 경제협력 등으로 무마해왔는데 현재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도 미국의 새로운 시장과 성장동력의 확보 차원에서 일본과의 FTA는 상당히 매력적인 대상이기에 여전히 협상을 요구하고 있다.[32] 트럼프는 예전에도 오바마 전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에 대해 트위터에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에 있는 동안 한 번이라도 일본의 진주만 공격을 언급했나? 당시 수천 명의 미국인이 목숨을 잃었다"라는 글을 올린 적이 있었다.[33] 일본으로서도 이것을 당장 한다는 것은 큰 부담이다. 때문에 시간이 필요한 상황. 하지만 트럼프가 언제까지 참아줄 수 있을지가 미지수. 지금까지 아베와 일본 정부는 트럼프와 미국 정부에게 실무자 면담등을 통해 여러가지 수치상 자료들을 제시하며 줄곧 설득해왔지만 헛수고였다.[34] 특히 미국 일본 FTA 체결을 위한 조건.[35] 미국에서 미북정상회담에서 납북 일본인 문제를 거론하겠다고 확약하였다.[36] 문제는 이마저도 미일정상회담치고는 성과로 부르기 민망하다는 것이다. 이미 일본은 오래전부터 미국과 줄곧 대북 공조를 해왔기 때문. 게다가 이미 미국은 북한과 정상회담을 하겠다고 해버렸기 때문에 일본의 북한에 대한 강경한 입장은 크게 타격을 입은 상태이다. 여기에 아베 총리 본인도 북일정상회담을 추진하겠다고 기존의 입장을 죄다 깨트렸다.[37] 이번에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아베 총리와의 공식 기자회견에서도 TPP로 돌아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공식 발표하며 미국과 일본 양자간의 협상을 원한다고 쐐기를 박았다. 결국 이번 미일정상회담에서도 TPP 논의를 전혀 진전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미국과 일본의 경제/무역 사항에 대한 양자 협의가 확정되었다. 문제는 일본은 미국과의 양자 경제 협상에 대해 FTA로 나아가는 발판이 될 것으로 우려하여 꺼려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무역 적자를 줄여야 하는 미국에서 일본과의 무역에서 생기는 엄청난 무역 적자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입장을 강경하게 고수하며 물러서지 않고 있다.다만 오히려 이 FTA로 나아가게 되는 발판이 일본경제에 더 유리하다는 입장도 존재한다.[38] 하지만 이미 일본은 미국 시장에서 자리를 잡은지 꽤 되었기 때문에 FTA로 얻는 시장 확장 이익보다 미국과의 FTA로 인한 잠식이 심할 것이기에 FTA만큼은 안 된다는 입장이 더 거세다. 미일 정상회담 전에도 이미 아소 다로 재무상이 미일 FTA는 없다고 분명하게 밝혔다.[39] 좀 복잡한데 이것의 원인이 메르켈 독일 총리라고 알려졌지만 사실 메르켈은 사진의 임펙트가 강해서 그런 것이고 진짜 심각한 것은 캐나다의 트뤼도 총리가 저지른 것이다. 트뤼도는 트럼프 앞에서는 트럼프의 의견에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개진하지 않고 있다가 이후 트럼프가 정상회담 자리를 떠난 후 기자회견을 통해 미국의 입장에 반하는 의견을 이번 G7 정상회담의 의견으로 올려버린 것이다. 이에 트럼프가 폭발해서 캐나다가 '부정직'하다고 말하며 G7 공동성명 승인을 거부했다.[40] 트럼프가 말한 것은 "일본은 이민 문제를 겪고 있지 않지만 우리나라에 들어온 2,500만 명의 멕시코 난민을 보내면 상황이 달라질 것"이며 이민자 문제가 발생하면 총리 자리에서 물러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였다. 해당 보도의 출처는 일본 아사히 신문에서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을 인용하는 방식으로 보도된 것이라고 한다. @[41] 일대일로 항목 참조. 일부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일대일로는 단순한 경제적 목적에 초점을 둔 정책의 수준이 절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