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일
1. 개요
反日 / 反日本
'''반일'''은 일본이나 일본의 정책·사상·문화 등에 반감을 갖거나 적대적인 성향을 의미한다. 이러한 반일감정이 극대화되어 일본인에 대한 혐오발언이나 인종차별적인 행위마저 정당화하려는 수준에 이르면 혐일이라고 부른다.
반일 감정은 역사적으로 일본과 끊임없이 충돌해왔던 한국과 북한, 중국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개중에서도 한국의 경우 전체적으로 서서히 완화되는 경향을 보이는 반면#, 중국의 경우 대부분의 조사에서 일본에 대한 호감도가 최저치를 기록하는 편이다.# 한편, 아시아-태평양 권역 내 다른 국가들인 미국[1] ·호주[2] ·필리핀[3] 이나 유럽권 국가들은 그다지 반일 정서가 두드러지지 않는다#.
일본에 대한 반감은 주로 한·중 양국의 일본 불매운동#s-2이나 국가 주도의 무역제재, 그리고 위안부와 강제징용 문제를 둘러싼 시민 사회의 여론전과 같은 형태로 드러난다. 다만 2020년 현재까지 반일 정서가 각국의 국가 대전략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사례는 없으며,[4] 특히 같은 서방 세계의 일원이자 선진국인 한국의 경우 스포츠 등 문화적인 영역에서의 라이벌리가 강한 편이다.
정치적으로는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이러한 성향을 띄는 경우가 많다. 이는 강성 친문 세대인 30-40대가 일본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고수하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에 크게 호감을 표한다는 것을 한 예로 들 수 있다.[5]
2.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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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대한민국의 반일
3.1. 시작
일본은 삼국시대에 백제와 가야와는 우호적이었고 동맹 관계에 교류 역시 활발히 진행되었으며 고구려의 경우 그리 국가관계가 나쁘진 않았으나[6] 지리적으로 워낙 멀어 양국 교류가 백제보다는 적었다.[7] 그리고 신라와는 최악의 관계였다. 역사 기록을 보면 초기 신라는 심심하면 왜구에게 약탈을 당했다.
이 관계는 후에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에도 나아지지 않았고, 신라의 전성기인 성덕왕 때와 경덕왕 때에 일본은 수백 척의 배를 동원해 신라 원정을 준비했지만 주도자였던 후지와라노 나카마로가 사망하며 중지되었고, 발해와 친교를 맺고 신라를 견제하는 차선책을 선택했다. 다만, 백제만큼은 아니라도 나중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비하면 신라 때까지는 일본과의 교류는 매우 많은 편이었다.[8] 8세기 중후반으로 가면서 일본의 자존의식이 지나치게 커지면서 자국을 상국으로 모실 것을 신라에 요구하는 형식적 외교관례에 집착했고, 이러면 신라도 무례하다고 사신을 쫓아내고 개무시하면서 차츰 정부간 교류가 줄어들게 되는데 그래도 장보고로 대표되는 사무역이나 민간 교류는 9세기에도 꽤 많긴 했다.
신라가 몰락한 나말여초 때에는 신라구 해적의 피해로 일본과의 사이가 틀어졌고, 이후 일본이 국풍이 강해지고 고립주의적으로 나가면서 고려시대 들어서 두 나라의 우호적 교류는 삼국, 신라 때와 비교하면 거의 없는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도이의 난으로 일본이 여진족들에게 초토화했을 때 고려가 지원을 해주는 등 우호적인 입장을 취하고 이후 일본과의 관계는 그냥저냥 평범한 상태로 이어졌지만 고려가 몽골의 침입을 겪은 후 다시 관계가 크게 틀어진다.
여몽연합군의 일본원정으로, 고려는 이후에 벌어진 왜구의 침탈로 양국간의 감정이 험악해진 것. 정확히 말해 왜구의 침탈은 고려가 몽골에게 한참 얻어터지던 원종 시기부터 서서히 나타났다. 이 때 각국의 속사정이 굉장히 복잡했다. 여몽 연합군의 일본 원정의 경우 고려는 하기 싫었지만 억지로 했고, 왜구 같은 경우는 남북조 시대의 분열로 일본 중앙 정부에서 손을 쓸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당시에 전체상을 알 방법이 없었다. 세종대왕 때 간행한 삼강행실도를 보면 상당수가 왜구의 잔인한 면모를 보인다. 특히 열녀부분을 보면 왜구에게 욕을 보이고, 아니면 그 직전에 자살하거나 기타 방법으로 절개를 지키려는 열녀들의 모습을 강조한다. 비록 과장한 측면이 있더라도, 당대 왜구와 그 속에 들어간 조선의 일본 이미지를 보여준다.
결국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으킨 임진왜란으로 전 국토가 황폐화하고 백성들의 삶이 파탄 지경에까지 이르자, 조선의 대일 감정이 최악으로 치닫았다. 그나마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에도 막부가 나오고 겉으로나마 조선과 일본이 화해했지만, 양쪽의 앙금은 전혀 풀어지지 않았고 조선 통신사로 관계를 유지했지만, 조선 측의 경우 통신사를 통해 필사적으로 일본의 경제와 군사 상황을 알아내 경각심을 가지려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통신사 제도는 문화 교류의 성격이 커졌다. 특히 왜란은 변경의 전투가 아닌 전면전으로 나라 전체가 비극의 현장이었다. 때문에 다른 국경의 전투나 변경 외적의 노략질과는 다른 차원으로 온나라 백성이 함께 공유하는 기억이 되었다.
3.2. 절정
현대 한국의 반일 감정의 근간은 근세 대한제국, 그리고 일본의 메이지 유신과 그에 따른 조선 침략 정책이 본격화하는 19세기 후반부터 일제강점기 이후 이어지는 사건들과 식민지 통치에서 기인한다.
1945년 해방 이후에도 일본의 전후 처리 미흡을 비롯해 역사 왜곡, 박정희 정권이 독단으로 처리하고 묻은 한일협정과 그에 따른 일본의 태도, 재일교포 차별, 군사대국화 시도, 기존의 사과 발언을 자주 뒤집는 행보가 현재 반일감정의 원인이다. 일본 내 극우 정치인들의 문제(일본군 위안부,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 등)들과 독도 문제 등으로 반일 감정은 계속해서 지속되고 있다.
그리고 1970~80년대 당시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들의 경우, 당시 군사 독재 정권은 의도적으로 일본에 대해 부정적인 면들만 가르치고 보도했었다. 반일 성향이 강한 기성세대는 자녀들에게 집에서 애니를 못 보게 하거나 J-POP 같은 것들을 마음대로 못 듣게 하는 경우도 많고, 그러다가 피규어나 아트북이라도 샀다간 '''집에서 나가라는 식의 폭언'''도 들을 수 있다.
3.3. 변화
현대 한국인들에게도 반일감정은 남아있지만, 1980년대 중후반생 밑으로는 개인주의와 글로벌리즘 성향이 두드러져, 젊은 세대일수록 반일감정 자체도 조금 약해지고 있다. 1990년대만 해도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이루어지기 전이었기 때문에 반일감정이 굉장히 잘 먹히던 시절이어서 이런 사설이 신문에 실릴 정도였으며[9][10] '일본은 있다 vs 없다' 식으로 일본에 대한 두 가지 견해가 충돌했다.
일본과 관련된 것을 죄악시하던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다. 일본에서 좋은 사례만 나오면 "일본의 좋은 점을 배우자"라고 한다거나, 로바다야끼를 경영하거나 출입하는 것만으로 친일파로 몰아붙이는 일이 당시에는 흔했다. 가요계에서도 이런 반일감정을 이용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1997년에 발매된 컬트삼총사 1집에 실린 곡 중 하나인 '''부활 대한민국'''은 반일감정을 선동하는 내용의 노래였다. 텔레비전 방송매체에서도 3.1절과 광복절마다 반일 성향을 내포한 특집 다큐멘터리와 드라마를 줄곧 편성해왔으며, 관련 매체 중 가장 이슈화된 작품은 1992년작 MBC 드라마 <분노의 왕국>이 있다. 해당 드라마는 문영남 작가의 소설이 원작이며 제1화에서의 천황 암살미수 장면 때문에 한-일 간 외교마찰로까지 번진 바 있었다.
1980년대 이후 세대들은 "일제강점기는 그때 어른들이 잘못해서 그런 거라 우리랑 상관없다"는 식으로 일본 문화와 역사성에 철저히 선을 긋는 편으로 알려져 있으나, 반일 감정이 '''다른 세대보단''' 약할뿐이지 여전히 강한 편이다. 워낙 현대에도 일본이 독도, 과거사 문제 등등으로 어그로를 끄는지라 좋게 볼 수가 없기 때문. 문화 교류를 해서 일본에 대한 인식이 나아졌다고는 해도 반일 감정은 강하다. 일본 대중문화에 호감을 가지는 사람들도 일본의 우경화는 당연히 좋게 보지 않는다. 당장 서브컬쳐에서 욱일기가 등장한다거나 작가가 우익이면 사람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일본의 아베 정부 등장 이후 양국 간의 갈등이 격화된 이후로는 다른 세대보다 강경한 입장을 보이기도 한다. # ## 관대해진 건 문화나 여행 관련 정도지, 역사 관련으로는 다른 세대와 다를게 거의 없다.
제국주의에 당한 역사가 있는 국가들은 이렇게 배타적으로 뭉치는 유대감이 강한 경우가 많다. 유럽에서도 서유럽의 아일랜드나 동유럽의 폴란드, 발칸반도의 세르비아 등지의 국민들도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서 상당히 민족적인 유대감이 강한 모습을 보이며, 영국, 러시아, 독일에 대한 증오/악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흔하다. 후술할 리영희 교수 칼럼에 의하면 일본인 망언 등에 대한 한국 정부와 언론, 관변단체 등의 규탄은 '반짝' 수준에 머무르는데, 초반엔 항의와 규탄으로 시작했다가 망언 당사자가 유감을 표하면 문제가 해결됐다고 섣불리 간주해 급속히 잠잠해지는 식이다.
원로 진보 언론인 리영희 교수는 <월간 말> 1994년 6월호 기고문 '일본인 망언 규탄 전에 국민 총반성이 필요하다'에서 감정적 반일에 대해 경계한 바 있다.[11] 그는 일본 우익들의 망언이나 역사왜곡에 규탄하기 전에 친일파 기용 등 우리의 잘못된 점부터 총체적으로 반성해야 한다고 하면서, 망언은 주로 극우들이 해왔고, 규탄은 좌익 인사들이 해왔다고 견해를 제시했다. 그동안 반일을 줄기차게 외치던 한국 정부는 친일부역 경력자들을 숙청하긴 커녕 오히려 중용했고, 상당수 독립 투사들은 사실상 멸시당해 가난하게 살아왔다. 한국에선 총리나 대신, 주한 일본대사가 부임하여 한국의 민족감정을 충족시키는 립서비스 한두마디 던져 주면 '친한파'나 '지한파'라고 치켜세우곤 하는데, 실상 이들조차 본국에서는 천황제를 지지하거나 왜곡된 과거사 인식을 가진 경우가 종종 있었다. 또 우리는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해 규탄하지만, 정작 우리 역사교과서도 좌파 진영의 항일 독립투쟁이나 해방 이후 권력자들의 친일청산 문제, 반민족 행적들을 제대로 다루고 있지 않다.
일본에서는 아베 신조가 처음으로 집권한 2006년에는 극우성향이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다시 집권한 2010년대부터 이러한 풍조는 줄어들기는 커녕 더더욱 증가하게 되었다. 아베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거나 개헌의 움직임을 보이는 등의 행보를 보인 것. 다만 개헌은 주로 아시아의 지탄을 받았고 서방에서는 오히려 러시아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 일본을 지지하는 모양새를 보였다. 2015년 3월 8일 무라야마 총리가 침략을 부정해서는 안된다고 직접적으로 비판했으나 아베는 같은 날 당대회에서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여자 피겨 스케이팅 경기 당시 NBC 해설자 스콧 해밀턴이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와의 경쟁을 두 국가의 뿌리깊은 역사적 배경이 있어 경기가 더욱 긴장넘치게 되었단 해설을 할 정도로 외부에 알려져있다.
4. 특정 목적에서 반일 조장
4.1. 종북 세력
소위 민족감정을 계속 자극해서 정치적 목적으로 반일을 이용하는 무리도 있다. 북한의 갓끈전술을 철저히 신봉하는 종북세력의 반일 전술인데 한국과 일본과의 외교관계를 파탄 내어 양국의 협력관계를 약화시킬려는 의도가 숨어있다. 그간 종북주의자들이 철저히 민족주의자 행세를 하며 우리민족끼리를 강조하고 일본과 한국과의 협력을 파탄 낼려는것도 이러한 전술의 일환이다. 황장엽을 비롯한 고위 탈북자들과 미국 역시 이런 움직임을 매우 경계하고 있었다.
한국인의 역사적 피해에 대한 반감을 이용해 시도때도 없이 반일 선동과 친일몰이로 한국-일본간의 우호관계를 끊을려고 하는 공작의 일환인 것이다. 관련기사, 기사2, 기사3, 기사4, 기사5, 아예 대놓고 북한과 연합하자고도 한다, 북한의 반일 선동, 정체불명의 민족 단체들이 북한과 공조하고 있다.
4.2. 일본 우익
반대로 일본 내 혐한 감정 조장을 위하여 우익들이 역으로 반일을 조장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일본 우익들은 한국의 반일 감정을 이용해 자신들의 영향력을 성장시켜 왔으며 그러한 연장선 상에서 한국 내 반일 감정을 조장하는 경우도 있다.
넷우익들이 한국 포털이나 커뮤니티에서 어그로 댓글이나 글을 적은 뒤, 한국인들이 원색적인 반응을 보이면 그것을 캡쳐해 2ch 등지에 올려 혐한을 부추기는 것은 이미 고전적인 방법이고, 최근에는 아베 정부의 한일 레이더 갈등때 한일관계를 위해서 방위성은 영상 공개를 반대 했는데도 공개를 강행하고# 대 한국 무역제재도 한국 내 반일 감정 조장을 통한 일본 내 한류 등 친한 정서 축출 역시 목적 중 하나일지 모른다는 지적이 있다. 기사
4.3. 정치/경제적 이득
한국은 역사적으로 일본에게 갖은 수모를 당해왔기에, 역사적으로도 반일 감정이 뿌리깊게 남아있고 지금도 유효하다. 이러한 감정을 이용해 언론사들은 애국 마케팅이라 써놓고 억지로 일본에 대한 분노, 적개심을 조장하며 경제적 이득을 보려는 경우들이 존재한다.
이를 이용한 사례는 매우 많은데, 어느 정도 들어맞는 대표적인 예시로 기무치 논란과 일본의 Korea 표기 조작설, 아인 지우개 논란, 동해 표기 조작설과 같은 사례나 아예 일본인을 겨냥하여 일본 내의 혐한 단체만 보여주며, 이와 반대되는 한국과의 친선을 바라는 일본인은 없는 취급 하는 등 일본과 일본인은 악한 존재라는 여론을 이용하며 자극적인 여론을 조장하여 이득을 취하려는 경우들이 매우 많다.
정치권에서도 민중에게서 이득을 얻으려고 반일감정을 부추기는 경우도 빈번하다. 예로 2019년 일본 상품 불매운동을 들 수 있다.[12] 그리고 꼭 들어맞는 예시는 아니지만 정의기억연대 위안부 피해자 이용 논란도 일본군 위안부라는 태평양 전쟁 시기 일본군이 저지른 전쟁범죄에 대한 문제 해결이 활동 목적이었으나, 그 과정에서 관련 단체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각종 부정와 비리를 저질렀다는 문제이며, 그 중에 반일감정을 조장한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 있다.[13] 그 밖에도 이전의 종북, 빨갱이 논란과 같이 토착왜구 명명으로 대표되는 낙인 찍기도 정치적으로 유리한 입지에 서기 위한 정치적 술수로 해석할 수도 있다.
5. 온라인에서의 반일 감정
당연히 인터넷이 발달한 시대에도 일부 한국인들을 거쳐서 반일 감정은 그대로 이어졌으며 수많은 사이트에서 극도의 반일 감정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볼 수가 있다. 대개 익명인 인터넷인 만큼 노골적 표현이 많은데 일본에 관한 얘기만 나오면 원색적인 욕설 및 공격성 글이 올라오기도 한다. 특히 과거사 문제나 독도 문제 같은 명백한 일본의 잘못이 나오면 그 공격성은 평소보다 커진다.
또한, 포털 사이트나 언론사에서 일본 관련 기사가 올라와도 욕설과 비방을 잇는데, 특히 일본 지진에 관한 기사가 올라오면 조롱하는 글을 올리는 극단적인 일도 있다. 특히 과거사 문제나 독도 문제가 터지면 댓글 수가 늘어서 일본에 대한 원색적인 글로 반일 감정도 부추기며, 그 밖에도 일본과 관련한 기사는 대부분 부정적이고 혐오적인 시선으로 악플이나 일본을 조롱하는 댓글들이 장식한다. 이런 와중에 조금이라도 친일 성향이 있거나 반격하는 글이 올라오면 공격성 글로 배척도 한다. 일부는 해당자의 홈페이지까지 쫓아간 뒤 서슴없이 모욕적인 글을 올리며, 더 나아가서는 범죄 수준으로 개인용 메일이나 쪽지로까지 공격적인 말도 한다. 게다가 최근 일본 애니메이션의 원활한 유입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에 빠지거나 그와 연관이 있는 코스프레만 해도 욕설(친일파라든지, 매국노라든지 하는)을 퍼붓는 사람도 있다.
문제는 애니메이션을 빠는 오타쿠 문화에 속한 사람들 중에 실제로 친일,매국 성향을 가지고 함부로 언행을 하거나 심하면 무조건적인 국까일뽕으로 변하는 사례가 상당수 있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선 자업자득이라는 평도 있다.
밑에 있는 온라인에서의 반일감정 사례를 참고할때, 일본의 넷 우익 뺨칠 만큼 한국 온라인상의 반일 감정이 얼마나 심한지 드러난다.
5.1. 온라인에서의 반일감정 사례
- 2011년에 전북 현대와 일본 세레 오사카와의 경기에서 전북 현대 서포터즈에서 대형 플래카드에 일본 대지진을 축하한다라는 글을 써서 걸어두었다.
- 2012년에는 20대의 한 한국인 청년이 유튜브로 일본인들은 지진이 났을 때 모두 죽어주셨으면 싶습니다. 일본인들이 이 세상에서 멸종하는 것이 저의 바람입니다라는 망언을 한 동영상을 올렸다. 솔직히, 이건 반일이 아닌 혐일이다.
- 일본의 코로나19 대응에 무차별적인 비난을 하며 인종차별적인 발언과 함께 "일본 확진자가 100만명이 넘었을 것이다", "도쿄에서 수천명이 코로나로 죽었다"등의 근거없는 발언과 함께 통계 조작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6. 오타쿠 혐오
저질 오타쿠 애니 문화를 퍼뜨리는 오타쿠 종주국이라는 이유로 반일을 외치는 이도 있다. 그들은 일본의 무분별한 저질 오타쿠 애니 양산 행위 때문에 동아시아, 아니, 세계가 오염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디시인사이드 등에서 활동하는 오타쿠 중엔 일본 애니를 찬양하는 것을 넘어 일본을 찬양하는 이들이 꽤 있다 보니 그에 대한 혐오감이 기존의 반일감정에서 극렬한 혐일감정으로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이들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게, 일반인들은 평소엔 일본에 대해 관심이 없다가도 이들의 행태에 대한 반발로 반일로 돌아서는 경우가 많다. 일본의 넷 우익이나 정치인들의 어그로성 발언이야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터트려주지만, 이들은 정말 꾸준하다. 오히려 일본 넷 우익이나 정치인들보다도 이들의 행태에 몸서리치는 사람들도 많다. 한일우호를 외치며 자신들의 취향들을 인정받고 싶어하지만, 현실은 시궁창.
사실 이런 부류들이 작성하는 글들을 읽어보면 정말 제정신으로 쓴 것인지 이해가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이 패전하지 않았으면 한국에서도 일본어를 사용하고 애니메이션 등이 흥행했을 거라며 아쉽다고 한다거나, 독립투사 등을 욕하는 경우 등이 대다수.
순서를 적자면 친일 오타쿠를 혐오 → 오타쿠를 혐오 → 일본 애니를 혐오 → 일본을 혐오.
사실상 저런 극단적 사례들은 이미 반일의 수준을 넘어선 혐일의 영역에 들어선 셈. 그러나 일본 애니메이션의 인기가 점점 증가해 예전처럼 마냥 혐오하는 분위기는 줄어들고[14] , 이렇게 반일 감정이 종전에 비해 다소 사그러드나 싶었지만 아베 내각 집권 이후 일본 정부의 온갖 망언과 갖은 도발, 그리고 넷 우익들의 적극적인 활약(?) 등으로 한국 내의 반일감정이 반일을 넘어 혐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한일관계 문서 참조. 한국 내에서 오타쿠의 대한 일반인의 인식이 최악이기 때문에 혐오하는 분위기가 다시 살아나기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온라인에 별로 밀접하지 않은 중노년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극도의 혐오와 반감이 여전히 남아있으며 지금도 이들은 여론 조사상에서도 '''반일감정이 여전히 깊은 세대'''임을 체감할 수 있다. 온라인의 밀접상 이들의 정서가 반영되지 못해서 그렇지 실제로 이들 사이에서 반일정서의 여운은 남아있는 편. 특히 일부 노년층 사이에서는 일본 글씨가 쓰여진 음식점 간판만 봐도 "여기가 왜놈 쪽발이들 사는 데여? 한국 땅인데 왜놈 글씨가 왜 써져있어?"라며 혐오하는 듯한 발언도 내뱉는다. 다만 이 경우 그 분들은 '''일제강점기의 여파를 직접 겪거나 그 영향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등 그 모진 세월을 온 몸으로 겪어내신 분들이기에 단순히 반일로 치부하기엔 어폐가 있다.'''
7. 일본에서의 남용
일본에서는 빨갱이와 비슷하게 정치적으로 자신들에 동조하지 않는 대상을 비난할 때 자주 등장하는 만능 단어다. 일본 우익들, 그중에 특히 넷우익들이 상당히 악용하고 있다. 일본의 우익 정권, 정치인에 동조하지 않고 비판하면 반일분자로 낙인 찍으려 하며, 비판에 가장 앞장서고 있는 주류 언론 아사히신문은 반일, 날조 신문으로 매도당하기 일쑤다. 자민당 소속 정치인들조차 일본의 국익을 위해 외국인(아시아계)을 적극 활용하거나 한국, 중국과 정상적 범주 내의 교류를 하는 것도 종종 반일 정치인으로 매도당하기 십상이다. 특이하게도 넷 우익들은 기존의 용례와는 달리 일본인을 반일로 몰이질하는 사례가 많다. 거의 제국주의 시대의 비국민과 같은 의미로 쓰이는 수준. 재일몰이도 여전히 적지않지만 한때 넷 우익들의 재일메이슨급 음모론이 일반인들에게 비웃음거리가 된 기록이 있고 헤이트 스피치에 대한 경각심이 커진 이후엔 재일드립은 그냥 꼴통극단주의자 인증이라 상식인인척 하고 싶어하는 넷 우익들은 반일몰이를 애용하는 듯 하다. 한국에서는 일본 우익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일빠들이 남용하고 있으며, 일본을 비판하게 되면 이들로부터 반일분자 몰이는 물론이고 종북주의자로까지 매도당할 수 있다. 이들로부터 반일 몰이를 당하지 않으려면 무조건 일본 우익 정권에 동조하거나 일본의 긍정적인 부분만 찬미해야 한다.
위의 서술의 한국 버전은 친일몰이 참조.
8. 세계의 반일감정
9. 관련 문서
[1] 불호 16%, 호감 68%[2] 불호 11%, 호감 81%[3] 불호 11%, 호감 83%[4] 한국은 일본을 적대하기보다는 모호성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러한 거리두기는 '적성국은 아니지만 상호 신뢰도 쌓이지 않은 두 국가'가 취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전략이라는 점에서 특별히 국민정서에 굴복한 결과라 보기는 어렵다. 북한과 중국은 국민감정과 무관하게 원래부터 일본과 적대적인 진영의 국가이고. 반대로 일본 역시 미국에게 등을 돌릴 수 없는 한국의 외교적 위치를 알기 때문에 감정적 충돌과 별개로 적성국으로 상정하지는 않는다.[5] 대표적인 문재인 정부의 대일 강경 정책인 지소미아 연장 종료 결정에 대해, 이를 잘했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20대에 비해 30-40대가 20% 더 높고, 60대 이상과 비교해서는 30%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6] 다만 광개토대왕 시절 신라를 도와 일본을 적대할 때는 일본 정규군을 왜구라고 부르며 적대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7]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까웠던 백제, 신라와 달리 고구려는 워낙 먼 데다 험한 동해 바다가 가로막아 고구려와는 교류, 접촉이 적었다.[8] 가령 조선 통신사 파견이 조선 후기 200여년간 고작 9회에 불과했지만 신라 때는 한일 양국의 사료를 종합해보면 670년부터 779년까지 1세기 동안 신라에서 일본으로 사신단이 39차례나 파견됐고, 동시기 일본 사신단은 신라를 25차례 방문했다. 사신단의 규모에 있어서도 성덕왕 2년(703)에 204명의 사신단을 파견했다는 기록을 참고하면, 압도적으로 많은 횟수까지 감안했을 때 1회에 3~5백명을 파견한 조선 통신사에 크게 밀리지 않는다.[9] 이 사설 내용이 문제가 되는건 단순히 친일에만 국한되지 않고 외국문화를 모조리 나쁜 것으로 규정하고 배척하는 극단적인 국수주의를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시는 이러한 주장이 먹히던 시절이었다.[10] 반면 정치/경제 쪽은 남북분단 및 한-미-일 3국 동맹을 이유로 친일 스탠스를 유지해왔다.[11] 해당 칼럼은 저서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에 수록됐다.[12] 이는 기본적으로는 일본의 수출규제에 따른 민간 운동이었고, 중구 반일기 게양 사건과 같이 정식적인 관의 동조를 거부하는 흐름도 있었으나, 여당 내부 싱크탱크에서 반일을 통해 선거에서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문건이 나오는 등 정부가 뒤에서 의도적으로 반일 선동을 했다는 의혹은 짙게 깔려있다.[13] 단, 정의연(구. 정대협)이라는 시민단체의 운영과 관련하며 수많은 문제가 나온 것과는 별개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 관련 활동 자체가 단순히 특정 집단의 이득을 위했던 것은 아니다. 이 부분은 최초 발언의 당사자인 이용수 할머니도 지난 30년간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움직임을 폄하하지 말라고 한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용수 할머니 "30년 활동성과 폄훼, 소모적 논쟁 지양해야"[14] 다만 일본 애니를 좋아하는 것과 반일감정은 전혀 다른 별개로 치부될 수 있는 문제이다. 실제로 일본 애니나 음악같은 문화를 좋아하면서도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서는 반감을 갖고 있는 국민들도 상당히 많으며, 이런 상황을 비꼬는 신조어로 반일씹덕이라는 용어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것은 문화를 사랑하는 것이 곧 국가를 사랑하는 것으로 이어지지는 않기 때문. 매의 눈으로 얼핏 지나가는 군국주의 옹호나 반한 소재조차 판별해내 비판하는 사람들은 매우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