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노스 문명

 


1. 개요
2. 언어 및 문자
3. 문화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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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토리니에서 발굴된 어부 소년을 묘사한 프레스코화, 기원전 17세기로 추정되며 크레타 문명권이였던 산토리니 아크로티리에서 발견됨
그리스 최초의 문명이자 유럽에서 처음으로 나타난 문명[1]으로 대략 기원전 3000년경에 크레타 섬에서 생겨났다. 이후 기원전 1900년경부터 '궁전 시대' 가 시작되며 크노소스를 비롯해 파이스토스[2], 자크로스, 말리아 등의 도시에서 화려한 궁전을 건축하고 문명을 발전시켜나갔고, 원시 크레타 상형문자와 선형문자 A도 이 시기부터 발견된다. 기원전 1750년경부터는 궁전의 증축이나 재건의 흔적같은 대규모 토목공사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기원전 1450년경부터는 북쪽에서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원시 그리스어를 쓰는 뮈케나이(미케네) 인들이 침입하여 사회의 주도권을 차지한 것으로 보이며, 기원전 1100년경에 다른 청동기 문명들처럼 멸망하고 만다. 대표적인 유적으로 크노소스 궁전이 있다.

2. 언어 및 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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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자 A 와 선문자 B 가 기록된 점토판의 모습 각각 Sitia 박물관과 이라클리온 박물관이 소장
미노스 왕 전설과 관련된 문명이라서 미노스 문명이라는 이름이 붙었다[3]. 미노스인들이 자신을 무엇이라 불렀는지에 대해선 기록이 없다[4]. 일단 유력한 것은 이들은 이후 미케네(뮈케나이) 문명이나 히타이트와 달리 인도유럽어족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학자들은 아프리카아시아어족의 베르베르어(함어파) 계열 언어 혹은 셈어파 언어를 썻을것이라고 추정한다.[5] 미노스인들은 기원전 2100-1700년에는 원시 크레타 상형문자를, 기원전 1900년경부터 선형문자 A라는 문자를 사용했는데, 이것은 훗날 미케네 문명에도 영향을 주어 미케네 문명에서 쓰던 선형 B 문자의 기원이 되었다. 선형 B 문자는 마이클 벤트리스(1922~1956)의 노력으로 해독되었으나 원시 크레타 상형문자와 선형 A 문자의 의미는 여전히 안개 속에 묻혀 있다.

3.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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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영국의 고고학자 에번스가 수많은 유물과 크노소스 궁전을 발굴하여 연구가 진척될 수 있었다. 벽화에 의하면 기원전 17~16세기에 에게 해를 휩쓴 산토리니 섬 화산 폭발로 크레타 섬들의 건축물과 크노소스 궁정이 파괴되었다 재건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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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노소스 궁전의 고위층 여성을 그린 프레스코화 BCE 1500년대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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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소 뛰어넘기(bull leaping)를 하는 남녀의 모습 흰색이 여자, 갈색이 남자이다. 밑의 사진은 무희 소녀를 그린 프레스코화이다.
여성이 제물 의식과 무용, 악기 연주에 참여하고, 신체적 노출에 거부감이 적었으며 남성과 같이 투우 비슷한 종교 의식에 동참한 벽화로 미루어 보아 여성의 사회 참여가 활발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특이한 것으로는 당시 여성들의 복식은 가슴을 모두 노출하는 형태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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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클리온 박물관의 뱀 여신 조각상[6]
또한 소를 숭배하는 풍습이 있어서 대부분의 유물에 황소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으며 뱀의 여신을 숭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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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토리니 Fira 박물관의 아프리카인 프레스코화 파편, 아크로티리에서 발견됨
그 밖에 알려진 것은 평화를 구가하다가 미케네 문명에게 정복당해 멸망했다는 것과[7]
이집트 문명이나 레반트 지역[8]과의 문물 교류가 있었다는 것 정도이다. 다만 남아있는 유물과 유적을 통해 이러한 문물 교류가 상당히 활발하였고 생기 넘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아틀란티스의 실체로 꼽히는 문명이기도 하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


[1] 다만 미노스 문명이 유럽 최초의 문명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다뉴브 강 일대에서 발원한 켈트족 문화가 최초의 유럽 문명이라는 설도 있다. 게다가 실제 문명으로 보아야 하는지 의견이 엇갈리기는 해도 현재 그리스 영토 내에 이미 키클라데스 문화와 같은 더 오래된 문화권이 있었다.[2] 흔히 오파츠로 불리는 파이스토스 원반이 발견된 그곳 맞는다[3] 영어의 Minoan civilization을 직역해서 미노아 문명이라고도 부른다.[4] 다만 고대 이집트 문명에서 크레타 섬을 '케프티우'(Keftiu)라고 불렀다는 주장이 있어서 이게 미노스인들이 자신들을 칭하는 이름이 아닌가 하는 설도 있다.[5] 역사시대 일련의 민족대이동이 있기 전 몰타 같은 지중해 남부와 대서양 제도(ex:카나리아 제도의 구안체 족) 곳곳에는 베르베르 계열 민족들이 살고 있었으며 구릿빛 피부와 녹안 혹은 벽안이 흔했다고 한다.[6] 이름은 아사사라로 추정중이다.[7] 학자들은 미노타우로스테세우스의 이야기가 원래는 그리스가 공물(예전에는 사람도 공물이었고 미노스 문명에서도 인신공양의 흔적이 일부 발견된다.)을 바치는 입장이었으나 점차 강해져서 역으로 크레타를 침공해 승리한 것을 나타낸다고 해석한다.[8] 지금의 시리아,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요르단, 레바논에 해당하는 지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