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나리아 제도
스페인어: Islas Canarias
영어: Canary Islands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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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에 포함되는 테네리페 섬의 최대 도시이자 라스팔마스(Las Palmas)와 더불어 카나리아 지방의 공동 주도인 산타 크루즈 데 테네리페(Santa Cruz de Tenerife).
카나리아의 어원이 되는 아프리카 서북쪽 해안의 스페인령 제도다.[1] 스페인 본토에서는 1400~2200 km 거리인데 이 정도면 한반도에서 '''필리핀'''까지 닿는다. 그래서 다른 스페인령인 세우타, 멜리야와 더불어 지리적으로 아프리카의 일부로 취급된다. 정남쪽으로 가면 카보베르데 제도가 있다. 섬들의 면적을 모두 합하면 7493 km²로 충청북도와 얼추 비슷해지고 인구는 215만 3389명이다.
카나리아 제도 자체는 자치지방(comunidad autónoma)의 지위를 가지고 있고 테네리페,[2] 라 고메라, 엘 이에로, 라 팔마 등의 섬이 속하는 서쪽의 산타크루스 데 테네리페 주와 그란 카나리아 섬, 푸에르테벤투라, 란사로테 섬[3] 등의 섬이 속하는 동쪽의 라스팔마스 주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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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7개의 섬으로 구분된다. 엘 이에로[4] , 라 팔마, 라 고메라, 테네리페, 그란 카나리아, 푸에르테벤투라, 란사로테가 있다. 그 외에도 큰 섬에 딸린 몇 개의 작은 부속 섬이 있다.
2014년 농구 월드컵에서 오랜만에 본선에 진출한 대한민국 대표팀이 여기서 경기를 치르면서 잠깐 농구 팬들에게 알려졌다. 광부와 간호사들이 독일에 갔던 것처럼 원양 어업을 위해서 한국인 선원들이 갔던 곳이기도 하다. 1966년 ~ 1987년까지 라스팔마스에 정착해 일하며 한국의 경제 발전에 공을 세웠다.[5]
후안 카를로스 발레론, 페드로 로드리게스, 헤세 로드리게스, 다비드 실바 등의 축구 선수들이 이 지역 출신이다.
원양어업의 전진기지로도 이용되며 수도 라스팔마스에는 한국 영사관이 존재한다.
현재도 스페인령 카나리아 근해는 지브롤터 해협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항로 중 하나이다. 아메리카를 연결하는 중앙 대서양 항로와 남대서양 항로, 아프리카와 희망봉 남단을 돌아오는 거대 선박들이 이용하는 항로가 지나며 물동량도 만만치 않다. 다시 말해 '''지정학적 요충지'''이다.
2. 기후와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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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봉인 테이데 산(Pico del Teide, 해발 3,718m)
대부분이 화산 섬으로 화산 활동이 매우 활발하다. 하와이와 함께 대표적인 열점으로 꼽힌다. 아열대 기후로 피한지로써 유럽, 특히 매일같이 비가 오는 등 날씨가 영 좋지 않은 영국이나 독일 등의 사람들이 도시 생활, 추위에 질려 많이 여행가는 곳으로 스페인 본토, 발레아레스 제도의 마요르카 섬, 포르투갈과 함께 유명하다.
기후를 보면 연 평균 기온은 약 20 ℃로 겨울에도 10 ℃ 밑으로 잘 안 내려가고 여름도 그렇게까지 극단적으로 더운 기후는 아니다. 일조 시간이 매우 길고 강수량은 산지가 많은 특성상 지역별로 다양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적은 편이다. 특히 동쪽의 푸에르테벤투라와 란사로테 섬은 아프리카 대륙과 가장 거리가 좁은 지점에서는 100여 km 수준으로 매우 가까워 사하라 사막에서 불어오는 모래 바람 덕분에 거의 사막 비슷한 자연 환경을 갖고 있다.
3. 역사
원래 관체족들이 거주하던 지역이었으며, 기원전 40년경에는 명목상 로마 제국의 일부였다. 그 이후 14세기 들어 유럽인들의 대서양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유럽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5세기 초 프랑스 탐험가 베텡쿠르가 카스티야의 엔리케 3세로부터 지원받아 본격적인 정복을 수행했고, 이후 교황에게 인정받아 카나리아 왕국의 왕[6] 으로서 즉위했다.
베텡쿠르가 죽고 왕위를 이어받은 조카는 통치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섬들을 포르투갈에 팔아먹고 만다. 하지만 이미 이주해 와 있던 카스티야인들이 이런 상황을 인정하지 않고 반란을 일으키면서 포르투갈이 섬들을 접수하는데 실패하고 이후 알카코바스 조약(1479)[7] 에 따라 포르투갈은 카나리아를 카스티야의 땅으로 인정했다. 이후 카스티야의 원정대가 섬들의 통제권을 확실히 확보하면서 카스티야, 스페인의 일부가 되었다.
이탈리아의 탐험가 콜럼버스도 카나리아 제도를 기지로 해 대서양을 횡단하였고 1833-34년에는 유럽과 미국 간에 설치된 해저 전선의 중계지가 되었다.
특히 대항해시대 이후 범선의 전성기 때는 아메리카의 스페인 제국과 스페인 본토를 연결하는 기착 항로로 번영했다. 위도 20도 부근에서 부는 북동풍인 무역풍의 혜택으로 스페인령 카나리아와 카리브해를 잇는 항로로 각광받았다. 유럽 방향으로 돌아올 때는 위도 30도 부근 편서풍을 이용했다. 현대까지 유지되는 유서 깊은 항로.
1936년 스페인의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카나리아 제도에서 반란을 일으켜 스페인 내전을 시작했다. 테네리페 섬의 산크리스토발데라라구나에는 1710년에 창립된 라 라구나(La Laguna) 종합대학이 있다.
현재 카나리아 제도의 법적 지위는 EU내 최외곽 지역(Outermost Regions)으로써 EU법 규정의 예외가 존재하고 EU 관세조항과 부가가치(VAT) 조항이 적용되지 않는 특수한 지역이다. 비슷한 지위로 프랑스령 기아나, 과들루프, 마르티니크, 레위니옹 등이 있다.
스페인인이 최초로 정복한 식민지이자 마지막까지 보유한 식민지인 셈. 이들이 정복하여 세운 도시인 산 크리스토발 데 라 라구나는 아바나, 멕시코 시티, 리마와 같은 중남미 정복도시들의 원형이 되었다.
4. 인종 구성
아프리카 대륙과 매우 가까워서 사하라의 베르베르족 계통인 관체족이 건너와 살고 있었지만 15세기 이후 이주한 스페인인들과 섞이면서 거의 동화되었다. 그래도 카나리아 제도 주민 사이에서 베르베르족의 흔적은 남아 있는데 실제로 유전자 등을 검사해보면 인구의 20% 정도는 베르베르계의 후손이다. 카나리아 제도 주민들을 카나리아인들이라고 하는데 이들은 2009년 기준 카나리아 제도 인구의 73.7%를 차지한다. 관체어는 17세기 이후에는 소멸되었지만, 관체어는 스페인어에도 영향을 줘서 카나리아 제도 스페인어에는 관체어의 영향이 일부 남았다.
그 외에는 스페인 본토에서 이주한 스페인 사람들이 인구의 12%를 차지하고 영국, 독일, 이탈리아 등의 타 유럽 국가에서 이주한 사람들이나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같은 라틴아메리카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도 많다. 1970년 ~ 80년대에는 원양 어업의 전진 기지로 각광을 받아 선원 가족을 비롯한 한인도 많이 진출했다. 원양 어업이 쇠퇴하면서 규모가 많이 줄기는 했지만 라스 팔마스 쪽에는 지금도 여전히 상당수의 한인이 살고 있다.
5. 주 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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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는 농업과 관광업이 중심이다. 한때 특산물이었던 코치닐 염료는 쇠퇴했지만 1년 내내 20도를 웃도는 온화한 기후와 화산질의 기름진 땅에서 포도 ·사탕수수 ·바나나 ·토마토 ·감귤류를 재배한다. 그 밖에 수산업도 활발하고 대서양 원양 어업 기지로도 활용된다. 유럽 등에서 놀러 오기도 하고 전세계적으로 라스 팔마스가 많이 알려져 있어 관광 산업이 발달했다. 스페인 본토에 비해 물가가 낮기 때문에 스페인어권으로 유학가려는 사람들이 카나리아 제도로 오기도 한다.
6. 대지진 논란
화산 활동이 매우 활발한 지역이라서 여기서 큰 지진이 나면 강력한 쓰나미가 발생해 미국의 뉴욕, 보스턴, 플로리다 지역 등 인구 밀집 지역을 덮쳐 도호쿠 대지진이나 남아시아 대지진의 쓰나미 대참사와 같은 대 재앙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대지진 논란이 있다.[8]
7. 정치
7.1. 분리주의
스페인 영토지만 스페인 본토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섬 지역이기 때문에 카탈루냐나 바스크만큼은 아니지만 분리 독립 열기가 있다. 현재는 사라졌지만 과거 카나리아 제도의 독립을 지향하는 테러 조직 MPAIAC(Movimiento por la Autodeterminación e Independencia del Archipiélago Canario, 카나리아 제도 독립운동)가 있었던 적도 있다. IRA와 ETA로 대표되는 분리독립 운동이 활발했던 1960 ~ 80년대 사이에 활동하였으며, 한때는 폭력 테러도 저질렀고 급진 사회주의를 추종했기 때문에 소련의 지원을 받았다는 말도 있다. 1976년 라스 팔마스의 쇼핑몰을 폭파시키기도 했다. 라디오 프로그램을 만들어 카나리아 원주민들의 언어였던 베르베르어 사용을 권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폭력적인 방법과 작은 섬의 규모 때문에 조직원의 수가 100명을 넘지 않아 활동이 어려워졌고, 결정적으로 항공기 사고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이 희생된 테네리페 참사로 인해 조직이 위축되었다. MPAIAC가 로스 팔마스 공항에 폭탄을 설치했다고 공항에 통보하자, 사고기를 포함한 대형 비행기가 시설이 부족했던 테네리페 로스로데오 공항에 임시로 머무르게 되면서 사건의 원인을 제공한 것. 물론 사고 자체의 책임이 이들에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국제 여론은 대단히 나빠졌다. MPAIAC는 '사고는 공항 관제사와 조종사들이 잘못한 탓이지 우리 탓이 아니다. 우리는 분명히 관광객들은 카나리아 제도에 오지 말라고 경고했었다.'는 성명을 발표했으나 카나리아 섬 내부에서조차 여론이 크게 악화되었다.
결국 1982년 갓 민주화된 스페인 정부가 카나리아섬의 자치권을 보장하면서 조직활동을 중단했다.
8. 기타
1977년 3월, 제트기 발명 이후 최악의 항공 참사인 테네리페 참사가 일어났다.
이 곳을 연고로 하는 프로 축구 팀으로 UD 라스팔마스와 CD 테네리페가 있다. UD 라스팔마스는 2014년-2015 시즌 세군다 디비시온 승격 플레이오프에서 우승하면서 라리가로 승격, 레알 마드리드 CF나 FC 바르셀로나 같은 명문 팀들과 붙을 기회가 생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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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고지가 스페인 본토에서 너무 멀어서 카나리아 연고 팀은 시즌당 최대 19번이나 수천 km 원정을 가야 한다.
마이클 잭슨이 1993년 Dangerous World Tour 때 이 곳을 방문해 공연한 적이 있다.
세계적으로도 큰 규모의 드랙 축제로 유명한 Gala Drag Queen Las Palmas가 라스 팔마스에서 매년 개최한다.
테네리페 섬의 귀마르 마을에 있는 귀마르의 피라미드 중에서 가장 큰 피라미드 정상에 서면 해가 하루에 두 번 지는 광경을 볼 수 있다.
라 팔마 섬에는 세계 최대의 천체 망원경 그란테칸( Gran Telescopio Canarias, GranTeCan)이 있다. 카나리 대망원경이라고도 부른다. 반사경의 크기는 10.4 m로 2015년부터 합성 개구가 아닌 단일 광학 망원경으로는 세계 최대의 천체 망원경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거울 36개를 조립하고 8800만 파운드를 들여 7년에 걸쳐 제작했다. 앞으로 세계 최대가 될 30 m 망원경(TMT)도 원래 하와이의 마우나 케아산 정상에 세울 예정이었지만 원주민들이 극심히 반대하여 좌절되자 카나리아 제도에 건설하기로 스페인 정부와 합의했다.
2020년 코로나19 사태 당시, 속절 없이 늘어나는 이주민에 골머리를 앏기도 했다.#
9. 매체에서
대항해시대 4와 대항해시대 온라인에서는 라스 팔마스가 카나리아 제도의 도시로 등장한다. 대항4에서는 유럽에서 아프리카로 나가기 위한 최중요 관문. 여기 점유율을 발데스군이 100% 먹고 있으면 자동 항해에 애로 사항이 된다. 대항온에서는 온갖 대 아시아 무역(남만 무역, 후추 무역, 육메 무역 등)을 하는 사람들이 유럽의 관문 리스본으로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거치는 위험 해역이다.
따라서 유저 해적들이 떼거지로 카나리아 제도 근방에서 매의 눈으로 상인들을 노린다. 또한 라스 팔마스 앞바다 옆 작은 곶은 다랑어 어장으로써 매일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다랑어 낚시를 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진풍경이다. 이곳은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에 세우타, 카사블랑카와 더불어 스페인와 포르투갈의 투자 전쟁으로 바람 잘 날이 없다.
크루세이더 킹즈 2에서는 극하드코어 플레이어들이 주로 시작하는 지방으로 특히 샤를마뉴 패치 이후의 티카나리옌 백작 플레이는 최고의 난이도를 가진 시작점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시작 지역이 세력 확대에 불리한 섬 지역인데다가 시작시 종교도 마이너 종교인 서아프리카 토속이기 때문에 상륙하자마자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세력에게 박살날 수 있고 용병빨도 기대하기 어렵다.
아라키 히로히코의 만화 죠죠의 기묘한 모험 제3부 스타더스트 크루세이더즈에서는 최종보스 DIO가 잠들어 있던 철제 관이 카나리아 제도 앞바다에서 인양되었다.
일본에서는 오타키 에이이치(大瀧詠一, 1948-2013)가 1981년 '카나리아 제도에서'(カナリア諸島にて)라는 노래를 발표해서 유명한 지역이다. 작사가인 마츠모토 타카시는 한 번도 카나리아 제도에 가본 적이 없지만 카나리아 제도라는 이미지만으로 작사를 했고 히트를 쳤다고. 쓰고 나서 실제로 가봤는데 그란 카나리아섬에 도착했을 때 가사 분위기와 달라서 당황했다고 한다. 그래도 테네리페섬에 갔을 땐 가사와 그럭저럭 맞는 이미지라서 [9] 안심했다고.
왕좌의 게임 시즌 7의 촬영지 중 하나다.
윤식당2가 이곳 테네리페에서 촬영했다.
땡전뉴스 영상에서 "우리는 그 (전두환)를 라스 팔마스에서 보았다."라고 하는 곳이 바로 여기다.
[1] 정작 카나리아(스페인어로는 Canarias)라는 단어는 스페인어로 'can (개) + arias (땅) (개들의 땅)' 이라는 뜻이다. 같은 맥락으로 Gran Canarias는 큰 개들의 땅.[2] 역사상 최악의 항공 사고인 테네리페 참사가 일어난 곳.[3] 작가 주제 사라마구가 만년에 이 곳에서 살았다.[4] 카나리아 제도의 최서단이다.[5] #[6] 동시에 카스티야의 봉신이기도 했다.[7] 카스티야 왕위 계승 전쟁을 종결짓는 조약으로서 카스티야와 아라곤이 동군연합이 되는 기초가 되었다. 영토면에서는 이후 맺게 되는 토르데시야스 조약과 유사한 점이 있다.[8] #[9] 정확히는 테네리페 섬을 둘러본 뒤, 실제로 보고 썼더라도 지금 가사와 비슷했을 거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