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주 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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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쏘 미라주 G(Dassault Mirage G)'''
1. 제원(Mirage G8-02)
2. 개발 배경
3. 미라주 III.G 및 미라주 G
4. 미라주 G4
5. 미라주 G8
6. 영향


1. 제원(Mirage G8-02)


승무원 : 1명
전장 : 18.8 m / 전폭 : 15.4 m~8.7 m / 전고 : 5.35 m
임무 중량 : 14,740 kg
동력 : SNECMA Atar 9K50 터보제트 엔진(추력 11,020~15,800 lbf) 2기
최대속도 : 마하 2.2
항속거리 : 3,850 km
상승한도 : 18,500 m
제작수 : 3대

2. 개발 배경


냉전이 한창이던 1960년대에 프랑스 국방부가 요청한 가변익 전투기 개발 프로젝트를 받아들인 다쏘 사에서 개발한 '''미라주 G'''는 미라주 시리즈는 물론, 프랑스제 전투기를 통틀어 유일무이한 가변익기였다. 이 전투기는 이륙이나 착륙할 때처럼 양력이 많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주날개를 활짝 펼치고, 순항 비행시에는 날개의 후퇴각을 키우며 초음속 비행을 할 때는 완전히 뒤로 젖혀 동체와 일체화시켜 일종의 델타익 항공기와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 그 형태나 기체의 규모는 차이가 있지만, 훗날 가변익 전투기의 대명사이자 함상전투기의 제왕으로 불리게 될 그루먼 F-14 톰캣과 같은 컨셉으로 만들어진 프로토타입 전투기였다.
실제로 비행 중에 작동하는 가변익을 처음 만들어본 다쏘-브레게 기술진들이었으나, 쟝 자끄 사민(Jean-Jacques Samin : 1926~1991)[1]과 쟝 폴 에모르(Jean-Paul Emoré : 1937~2013) 같은 엔지니어를 중심으로 사전 연구는 그전부터 해오고 있었던 덕분에 완성된 시제기들은 비행 시험을 통해 거의 모든 면에서 좋은 결과를 보여주었다. 그렇지만 가변 후퇴익 최고의 단점이라고 할 수 있는 복잡한 구조와 비싼 가격, 주날개 강도의 제한은 필연적으로 이 날개를 채택한 항공기의 무게를 늘리고 정비 소요는 훨씬 더 커지고 가격의 상승을 불러왔기 때문에 계획이 취소되었다.

3. 미라주 III.G 및 미라주 G


1964년에 단좌 단발의 가변익 전투기에 관한 소요를 받아들인 프랑스 국방부는 1965년 6월에 다쏘 측에 이 프로젝트를 맡아줄 것을 제안했고, 이때부터 미라주 III의 기본 설계를 활용해 크게 개량한 '''미라주 III.G'''의 개발이 시작되었다. 같은 해 10월, 영불 합작으로 진행하던 가변익 전투기(AFVG : Anglo-French Variable Geometry) 계획에 프랑스는 아직 도면도 채 나오지 않은 미라주 III.G를 후보로 제시했고, 이 초안은 좀 더 보완을 거쳐 미라주 G로 완성되었다. 1966년 1월부터 1호기 제작을 개시한 이 전투기는 기존의 미라주 F1의 동체를 바탕으로 후퇴 날개를 도입한 것으로 미라주 III.F2를 기반으로 삼은 복좌 가변익 전투기였기 때문에, 자국산 스네크마 엔진으로는 추력이 부족해 미국제 최신 터보팬 엔진인 프랫&휘트니 TF30[2]을 1기 장착했다. 앞서 설명했듯이 가변익에는 날개의 가동 부분을 확보해야만 하고 더 큰 용량의 유압 구동 시스템이 필요했던 관계로 기체의 규모는 기본소체가 되어준 미라주 F1 보다 더 커졌다.
가변날개는 날개 앞전의 후퇴각을 조종사가 비행 상황에 따라 자유롭게 바꾸는 방식도 검토했지만, 조작의 간편함을 위해 20도, 55도, 70도라는 3단계로 설정해 접고 펴도록 제작되었다. 1967년 3월 13일과 14일에는 AFVG 프로그램의 동반자인 영국 BAC의 대표 앨런 그린우드(Allen Greenwood : 1917~2009)가 다쏘의 생 클루(Saint-Cloud) 공장에서 프레임 조립 중인 프로토타입 1호기를 참관하였다.

11월 18일에 다쏘의 노련한 주임 테스트 파일럿 쟝 꾸로(Jean Coureau : 1928~1997)의 조종으로 처녀 비행에 성공한 미라주 G의 원형 1호기는 불과 3주 후에는 마하 2.1의 최대 속도에 보우트 F-8 크루세이더의 2배나 되는 체공시간을 보여주었고, 이륙 거리는 450m에 불과한 단거리 이착륙 성능마저 입증했다. 15,020 kg의 최대이륙중량 상태에서 실시된 테스트에서는, 450 m의 저공에서 날개를 완전히 접고 수평 비행으로 마하 1.6을 돌파하는 경이적인 성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당시 샤를 드 골 행정부가 이끌던 프랑스는 종전 이후 최악의 불경기가 덮치고 있어서 국방비에 대한 투자를 줄일 수밖에 없었는데, 이미 상당한 재원이 들어갔지만 생산기체조차 정하지 못한 AFVG 계획도 군비축소의 도마에 올려지고 말았다. 결국 1967년 7월에 프랑스 국방부는 AFVG 프로그램에서 탈퇴한다는 방침을 발표했고 미라주 G 프로그램과 그것을 만들던 마르셀 다쏘에게 이 통보는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계획은 1968년에 공식적으로 중단되긴 했지만, 이미 그전에 계획된 시험 비행도 모두 취소되었고 더 이상 일반인들은 이 가변익 전투기가 날아오르는 모습을 볼 수가 없어졌다.
프랑스 최초의 가변익 전투기 미라주 G의 1호기는 316회 / 400시간의 시험비행을 완수했으나 1971년 1월 13일에 일어난 비행사고로 기체는 대파되어 오늘날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2호기나 3호기와는 달리 그 모습을 볼수가 없다.

4. 미라주 G4


미라주 G가 시험비행에서 보여준 특출난 고성능은 프랑스 공군과 마르셀 다쏘를 크게 고무시켰고, 이에 따라 개발 주임 쟝 끌로드 브라방(Jean-Claude Brabant)의 지휘 아래 쌍발 복좌형인 '''미라주 G4'''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기체 규모가 다소 확장되어 연료 탑재량이 늘어난 미라주 G4는 그 긴 항속거리를 활용해서 장거리 전투폭격기나 전략정찰 및 전자전 임무에 쓰일 수 있었다. 이 기체에는 미국제 엔진 대신 추력 7.2톤의 자국산 스네크마 아타 9K50 엔진을 2기 장착했는데, 파워가 모자랐기 때문에 스네크마 M53이 완성되면 곧바로 교체될 예정이었다. 엔진을 자국산 터보팬으로 바꾼 것은 이즈음 드골이 미국에 대한 국방 의존도를 낮추라고 압력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추력 8.8톤이 예상되는 M53을 장비하게 되면 최대 속도는 마하 2.5에 저공에서는 마하 1.2라는 초음속으로 레이더의 탐지를 피하면서 침투하는 것이 가능했다. 프랑스 공군은 여기에 더해 공중발사 순항 미사일을 비롯한 다양한 재래식 무기도 탑재할 수 있게끔 요구했다. 그렇지만 1968년 5월에 일어난 파리 총파업으로 여론과 국내 경제가 더 악화되자 이 프로토타입은 완성되기 전에 포기되고 더 간단한 요격기 '''미라주 G8''' 개발로 전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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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미라주 G8



Dassault Mirage G8
1970년대 초 개발되었던 M53 엔진 2기를 탑재한 대형 전폭기. 200기를 양산하기로 계획되었으나, 시제기 2대가 만들어진 시점에서 프랑스 정부는 대형 쌍발 전폭기를 대량배치/운용하는데 드는 막대한 비용을 부담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프로젝트를 취소시켰다. 이는 프랑스가 토네이도 프로젝트에 참가하지 않은 이유로 제시되기도 한다. 실제로 토네이도의 유지비는 시간당 35,000파운드에 달한다. 이후 M53 엔진 1기를 탑재한 단발기 미라주 2000이 탄생해 G8의 자리를 메우게 된다.
이 형식은 쌍발 복좌의 미라주 G4를 단순화시켜 미라주 G와 비슷한 가격으로 비용을 절감한 염가판이었다. 기체를 다시 단좌형으로 바꾸고 저공 침투나 정밀 지상 공격에 필요한 복잡하고 비싼 항전장비들 - Cyrano IV 멀티 레이더, 저고도 항법장치, 레이저 거리측정기, 도플러 레이더와 폭격 컴퓨터 등등 - 은 대부분 빼버렸다. 그러자 장거리 공격에는 필요하지만 요격 임무에는 필요가 없는 긴 항속거리를 단축시켜 비용과 중량을 동시에 줄이려고 시도했다. 엔진은 G4에서 계획되었던 쌍발의 M53이었다가 프로토타입은 아타 9K50 상태 그대로 완성되었다. 1971년 5월 8일에 이스트레스 공군기지에서 쟝 마리 사제(Jean-Marie Saget : 1929~)가 조종간을 잡은 원형 1호기인 G8 01이 처음 비행에 성공했고, 1973년에 완성된 2호기 G8 02는 같은 조종사에 의해 당시 유럽에서 가장 빠른 속도인 마하 2.34의 최대속도를 42,000피트의 고도에서 세워 기록을 경신했는데 이 기록은 1995년까지 깨지지 않았다. 이처럼 미라주 G시리즈는 그 성능만큼은 만만치 않았지만 가변 후퇴익 자체의 복잡함과 고비용에 의해 계획은 중단 되고 만다.

6. 영향


미라주 G의 개발 지연과 포기로 인해 프랑스 공군은 그야말로 별 기대없이 보조 전투기로 구입했던 미라주 F1을 주력 전투기로 채택할 수밖에 없게 되었고, 이는 곧 차기 주력 전투기로 미라주 2000의 개발을 서두르게 되었으니 결국 비용을 아낀다는 원래의 목표도 달성하지 못했다. 잘 알려진 대로, 미라주 2000은 기본적으로는 미라주 G를 위해 개발된 스네크마 M53 엔진을 단발로 장비하는 설계를 도입해 개발 기간과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그렇지만, 다쏘 개발진들은 여전히 대형 쌍발 전투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고, 이것은 나중에 미라주 4000이라는 프로토타입으로 소소한 결실을 맺게 되었다.
경영감각이 뛰어난 마르셀 다쏘는 G시리즈의 발목을 잡고 만 가변익 구조를 버리고 기존의 미라주 전투기와 흡사한 델타익으로 바꾼 새로운 G 시리즈에 관한 설계도 제안했으나, 프랑스 공군은 채용을 거부했고 그러자 구매 리스트에 이 가변익 전투기를 올려놓고 있던 이라크사우디아라비아도 수입을 취소했다.

[1] 미라주 F1과 쉬페르 에탕다르, 미라주 2000의 개발 책임자[2] 톰캣의 초기형과 F-111, 그리고 A-7이 장비했던 군용 터보팬 엔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