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주 F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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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Dassault Mirage F1
1. 제원
2. 개요
3. 실전
4. 미국에서의 화려한 부활
5. 대한민국 공군이 도입할 뻔한 전투기
6. 관련 문서
7. 둘러보기
8. 참고 링크


1. 제원


'''Dassault Mirage F1'''
'''초도 비행'''
1966년
'''취역'''
1973년
'''전장'''
15.3m
'''전폭'''
8.4m
'''전고'''
4.5m
'''자체 중량'''
7.4톤
'''최대 이륙 중량'''
16.2톤
'''최고 속도'''
마하 2.2
'''실용 상승 한도'''
20,000m
'''항속거리'''
3,300km
'''엔진'''
SNECMA Atar 9K-50 터보제트 1기
'''무장'''
DEFA 30mm 기관포 2문
매직 AAM, AIM-9 AAM, Matra Super 530 AAM
AM-39 엑조세 대함 미사일
AS-9 대지미사일, 유도 폭탄

2. 개요


미라주 F1은 프랑스 다쏘사에서 개발한 다목적 전투기로 미라주 시리즈 중 유일하게 주날개와 꼬리날개를 모두 가지는 일반적인 형태로 만들어진 전투기이다. 특이하게 프랑스 정부의 지원이나 의뢰없이 다쏘의 자체적인 자본으로 개발된 기종이다. 수평꼬리날개 없이 델타익만 달린 미라주 3와 달리 고익형의 주익에 수평꼬리날개가 조합된 좀 더 안정적이고 일반적인 디자인으로 만들어졌는데 이렇게 된 이유는 단거리 이착륙 성능 때문으로 미라주 3에 비해 착륙 속도와 착륙 거리가 20% 정도 감소했다고 한다. 또 좀 더 가혹한 조건의 활주로에서도 사용하기 위해 랜딩기어도 한 쪽당 2개의 바퀴를 붙이는 형태로 강화되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아프리카 전장의 열악한 환경의 활주로에서도 운용이 가능했다. 가벼운 무게와 빠른 상승속력을 지닌 미라주 F1을 프랑스는 프랑스 공군에서 요격기로 운용했다.
엔진의 교체와 동체 내에 연료탱크의 확장으로 미라주 3 대비 연료탑재량은 40% 가량, 전투행동반경은 1.8배가 증가하였으며 기존의 매직 단거리 미사일과 지상공격용 폭탄 외에 마트라 쉬페르 530D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을 탑재하여 BVR 교전이 가능했으며 엑조세 대함 미사일을 운용할 수 있어 퍼포먼스에서 초기형 F-16A/B형과 비견된다. 3세대에서 4세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단계의 전투기로 평가된다.
미라주 F1이 이렇게 출중한 성능을 지녔지만 해외수출에서는 비슷한 시기에 F-16이라는 베스트셀러가 수출 시장에 나오는 바람에 F-16에 밀렸다. 그 중 가장 결정적이었던 것이 기존의 F-104를 대체하는 NATO 공용 전투기를 채택하는 사업에 미라주 F1과 F-16이 경쟁했는데 최종적으로 해당 사업에서 F-16이 선정되었고 이후 유럽을 넘어서 전세계로의 수출길이 크게 열렸다. 미라주 F1이 탈락한 이유를 분석해보자면 미라지 F1 자체가 50~60년대에 등장했던 미라주 3, F-104, MiG-21 같은 전투기들과 이들이 참전한 2, 3차 중동전쟁의 전훈을 통해 만든 전투기인데, 이와 달리 F-16은 베트남 전쟁의 전훈을 통해 10년 정도 앞선 최신 전투교리로 만들어졌고 성능면에서도 미라주 F1이 F-16보다 특출나게 나은 것이 별로 없었다. 미라주 F1의 초도비행은 베트남전 초창기인 1966년에 이루어졌으며, F-16의 초도비행은 미국이 베트남전에서 발을 뺀 뒤인 1974년에 이루어졌다. 10년 가까운 시기차이가 나는 미라지 F1의 개발 컨셉이 F-16에 비해 시기상 뒤떨어지는 것은 어쩔수 없었으며 따라서 진보한 컨셉과 FBW 등의 신기술이 탑재된 사업당시의 F-16의 선정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또한 당시 전투기 사업의 선정에는 NATO의 수장국이었던 미국의 정치적인 영향력이 크게 작용했다고 보는게 정설이다. 해당사업의 결과로 유럽국가인 벨기에, 노르웨이, 덴마크, 네덜란드가 F-16을 차기 전투기로 선정했다.
이후 프랑스는 미국의 F-16과 비슷한 성능과 전투교리를 적용한 미라주 2000을 1970년대 말에 개발하여 1980년대초 실전배치했다. 미라주 F1은 미라지 2000이 배치되기 전까진 활발하게 개량이 진행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다양한 파생형 기체가 등장하였다. 하지만 새로운 프랑스의 주력 전투기인 미라지 2000이 대량배치되어가는 1990년대 이후에는 몇몇 소소한 개량 이외에 대규모 개량없이 운용되었는데 그 이유는 개발국인 프랑스가 미라주 2000의 개량과 수출에 주력하였고 그와 반대로 자국의 미라주 F1의 대규모 개량에 그다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몇 수입국들은 적극적으로 미라주 F1의 대규모 개량에 나섰는데 대표적인 나라가 스페인 공군과 모로코 공군이다.
특히 모로코 공군의 미라주 F1은 2006년부터 2011년까지 27대의 자국기체를 프랑스의 미라지 2000-5 전투기에 적용된 기술과 장비를 대거 투입하여 현대화시켜 인도에 수출되는 미라지 2000-5에 장착되는 탈레스제 레이더를 장착하고 미카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까지 운용가능하게 마개조 되어 지금까지도 운용중이다.
F-16에게 해외시장에서 밀린 상황에서도 저렴한 가격에 공대공, 공대지, 공대함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출중한 성능과 저렴한 유지비로 총 720기 정도가 생산되었고 자국의 공군에 배치된 246대 이외에도 모로코, 그리스, 이라크, 요르단, 스페인, 에콰도르, 남아프리카 공화국, 쿠웨이트, 카타르 등 여러 나라에서 자국물량의 2배에 달하는 수량을 구입해가서 매우 성공적인 수출실적을 기록했다. 이는 전작인 미라주 3처럼 미국제 전투기도 소련제 전투기도 구입하기 힘든 상황이었던 곳에 틈새시장을 확보해 500대에 가까운 해외수출로 수출면에서도 성공적인 성과를 올렸다.
하지만 이러한 대외 판매량은 약간 빛이 바랜 격이 있는데 다쏘에서 미라주 F1과 같은 기간 동안 이스라엘의 의뢰로 개발된 미라주 5가 50대의 자국공군 물량 외에도 무려 500대가 넘는 해외판매를 올리는 바람에 판매량이 자사의 두 기종에 분산되어 미라주 F1의 수출량이 줄어든 것이다. 결론적으로 다쏘사는 15년 가량의 짦은 기간 동안 미라주 F1과 미라주 5를 합해 1천대가 넘는 높은 판매고를 올렸다.
개발국인 프랑스에서는 2013년을 말리 내전에서 운용된 것을 마지막으로 2014년 퇴역하였으며 다른 국가들에서도 점차 퇴역 중이다.
하지만 미국이 훈련용 어그레서 기체로 미라주 F1 80여대를 포함한 100대에 가까운 미라주 계열기체를 구입함에 따라 [1] 2030년대까지도 하늘을 누빌 예정이다.

3. 실전


1974년 실전배치 이후 다양한 전장에서 활약하였다.
프랑스 공군은 1980년 미라주 F1을 아프리카에 최초로 전개한 이래 2014년 라팔로 대체되어 퇴역할 때까지 30년 이상 지부티, 차드, 니제르등 아프리카의 프랑스 공군기지에 상시 배치시켜 아프리카 지역에 프랑스의 정치, 군사적 영향력을 유지하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하였다. 1980년대에 지속된 리비아-차드 분쟁에서도 중앙 아프리카 공화국, 차드의 공군기지에 재규어 공격기와 함께 배치되어 요격, 폭격임무등 다양한 임무에서 크게 활약했으며 높은 기온과 모래바람이 난무하는 아프리카의 열악한 환경에서도 높은 정비성과 신뢰성을 보여 주었다. 특히 1986년에 있었던 차드 북부에 건설된 리비아의 공군기지를 습격한 공습작전에서도 4대의 미라주 F1이 활주로 파괴폭탄을 장착한 12대의 재규어 공격기를 호위하는 요격기 임무를 맡았으며 공중급유를 수 차례나 받아야 했던 왕복 3000km에 달하는 장거리 임무에서도 높은 신뢰성을 보여주며 손실없이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했다. 전쟁 당시 교전국인 리비아 공군 또한 과거 프랑스로부터 수입한 미라주 F1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두 공군의 기체 사이에 공대공 교전은 발생하지 않았다.
1991년 걸프 전쟁에도 참여했지만 이라크군 소속의 미라지 F1과의 피아식별 문제덕분에 큰 활약은 하지 못하고 정찰, 요격임무에서 제한적으로 활약했다. 이후 프랑스 공군은 주력 전투기가 미라주 2000과 라팔로 대체됨에 따라 기존의 미라지 F1기체에 정찰 포드를 장착하여 무장 정찰기로 운용하였으며 이를 미라주 F1CR이라고 한다. 미라주 F1CR은 2011년의 리비아전에서는 정찰기로 투입되었으며 2013년 말리 내전에서는 정찰 및 폭격임무에 투입되기도 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군이 도입한 미라주 F1은 1980년대 초, 앙골라와의 국경분쟁에서 앙골라 공군소속의 MIG-21을 격추시키기도 했으며 앙골라군의 지대공 미사일에 피격된 미라주 F1이 무사히 귀환하여 전장에서 수리된 전적이 있다.
에콰도르 공군 소속의 미라주 F1은 1995년 페루와의 국경분쟁에서 페루 공군소속의 Su-22 전투기 2대를 격추하기도 했으며 이 공중전은 남미대륙에서 최초의 마하2급 전투기간 공중전으로 기록되었다.
그리스 공군소속의 미라주 F1은 1992년 터키 서부해안에 인접한 그리스 실효지배 도서지역 상공에서 터키 공군 F-16에게 격추당한 적이 있다. 이 때 피격되어 사망한 그리스 공군 미라지 F1 조종사를 추모하는 동영상은 유튜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3년 후인 1995년, 그리스 공군 미라주 F1과 터키 공군 F-16이 맞붙어 요격과정에서 터키 F-16 1대가 격추된 일이 있다. 격추된 F-16 조종사는 그리스 공군에 의해서 구조돼 치료를 받고 송환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활약과 대조적으로 후세인 치하의 이라크 공군은 1970년대 말 프랑스로부터 100대가 넘는 미라주 F1을 도입했지만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지닌 미국 기체와 대결에서의 패배와 이라크 공군의 미숙한 운영으로 미라주 F1의 명성에 먹칠을 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당시 이라크도 어쩔수 없었던 것이 당시 이라크 공군이 보유하고 있던 전투기중 그나마 공중전능력에서 가장 뛰어난 전투기가 미라주 F1이었기 때문이다.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이라크군이 운용하여 이란 공군 소속의 F-4, F-5 전투기를 격추시켜 동세대 기체와의 공중전 대결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보여주었으며 1983년에는 터키 공군의 F-100F 슈퍼세이버를 R530 공대공 미사일로 격추시키기도 했다.
또 Super 530D[2]중거리 공대공 미사일로 팔레비 왕조 시기 오일달러로 미국에서 수입한 이란의 최신예 전투기였던 F-14를 격추하는 등의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격추당한 F-14A 2대는 AIM-54A와 AIM-7F같은 이란 공군의 장거리 •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을 탑재하지 못하고 사이드 와인더만 탑재한 상태로 다수의 미라지 F1과 교전하였다. 즉,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황에서의 교전이었던 것. 이는 이란-이라크 전쟁 휴전을 앞둔 시점의 공중전이었으며, 당시의 이란 공군은 이미 남아있는 AIM-7F와 AIM-54A가 얼마되지 않았고 그나마도 대부분 신관 부품과 열전지 재고 소진으로 사용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란 공군은 F-14로 방어해야 하는 전략 요충지는 많은데 가동 가능한 F-14A는 부족하다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불과 1대 또는 2대의 F-14A를 방어제공에 투입하고 KC-707 공중급유기를 최대한 활용하는 식으로 각 방어목표에 대한 F-14의 24시간 방어태세를 유지하였다. 불과 1대 ~ 2대의 F-14A를 띄우더라도 AIM-54A 또는 AIM-7F라도 제대로 탑재해서 작전에 투입하면 다수의 적기와 교전하여 승리를 거두는 무쌍을 발휘하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수많은 이라크 공군 미라지 F1이 이란 공군 F-14A에 의해 격추되었으며, 미라지 F1이 격추한 F-14A는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 격추당한 2대가 전부인지라 이란-이라크 전쟁 8년 동안의 F-14A와 미라지 F1의 격추 교환비만 보더라도 압도적으로 F-14A의 승리이다. 물론 F-14A와 이라크 공군 전체 전투기의 격추 교환비를 따지면 더욱 압도적으로 F-14A에게 우세한 격추교환비가 나온다.
하지만 당시의 F-14는 전세계에서 오직 미국 해군항공대와 이란 공군만이 보유했던 현대의 F-22급에 해당하는 최상위 하이급 쌍발전투기로 사기적인 레이더성능과 사거리 100km가 넘는 AIM-54등 장착가능한 무장까지 종합적인 능력면에서 저가 다목적 단발전투기로 설계된 미라주 F1과 비교불가인 기체였다. 거기다 당시에 흔치 않았던 공중급유기의 지원을 받아 체공시간까지 늘어난 이란공군의 F-14A를 미라주 F1이 이길 턱이 없었다. 당시 F-14와 미라주 F1의 대결을 현대의 공중전에 비유하자면 다목적 단발전투기인 F-16과 고성능 쌍발 공중제압기인 F-22를 대결시키는 격.
1991년 걸프 전쟁 당시에는 미국을 주도로한 다국적군과의 공중전에서 급속도로 격추수가 증가하고 제대로 활약도 못하고 동네북이 되었다. 미국이 주도하는 전쟁초기의 폭격에 의해 당시 이라크 방공망이 대부분 파괴었으며 당시 이라크군이 보유한 미라주 F1은 공군기지의 벙커나 활주로에 주기된 상태에서 대부분 파괴었으며 그나마 전투를 위해 이륙한 기체들도 조기경보기전자전기의 지원기들의 지원을 받는 미국 공군소속 전투기에 의해 일방적으로 격추되었다.
심지어 이때는 비무장 전자전기인 EF-111을 격추하려들다 도리어 기동 미숙으로 자기가 추락하는 통에, 킬 스코어만[3] 올려주는 추태도 보였다. 걸프전 이후에도 1994년 1월 사우디아라비아 영해에서 사우디 공군의 F-15C와 격돌하여 2대가 격추(사우디 측 피해 0)되면서 참혹한 기록만 남겼다. 거기에 그 경험 많다는 이라크군의 참혹한 실상이 드러나면서 더더욱 까이게 되었다(...).
걸프전에서 미라주 F1은 일방적인 패배를 당했지만 이러한 전적에는 미국의 압도적인 전력과 당시 이라크군 조종사들의 낮은 기체숙달로 인한 운용미숙도 감안해야 할 것이며 미라주 F1자체의 능력부족 때문은 아니었다. 1980년대 동서양에서 갖가지 첨단무기를 구입해서 세계의 무기 전시장이라는 별명을 얻은 이라크군이 1991년 걸프전 당시 어떤 활약(?)을 펼쳤는지 잘 생각해보자.
그러고보면 미라지 F1을 격추한 전투기들(이란 공군 F-14A, 미 공군과 사우디 아라비아 공군 F-15C, 터키 공군 F-16C)은 모두 미국제 전투기들이다.
공중전은 아니고 사고(?)에 가깝지만 엑조세 미사일로 미국 해군 함선을 공격해서 대파한 사례가 있다. USS 스타크 피격 사건 문서에 나와 잇다.

4. 미국에서의 화려한 부활


미라지 F-1은 2010년대에 들어서 개발국인 프랑스에서도 퇴역했으며 주요 수출국가에서도 대부분 퇴역하여 이대로 서서히 역사속으로 사라지는 듯 했다.
하지만 대이변이 일어났는데 미 해군 항공대, 미 공군과 계약을 맺고 각종 훈련에서 가상적기 임무를 수행하는 PMC 회사인 ATAC과 드라켄 인터네셔널(Draken International)에서 퇴역한 미라주 F1을 인수하여 미군 전투기를 위한 가상적기로 운용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프랑스에서 퇴역한 미라주 F1이 한때 경쟁기였던 F-16을 개발한 국가인 미국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된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 하다.
ATAC과 드라켄 인터네셔널은 A-4 스카이호크, F-21 크피르, L159, L-39, MK-58, MIG-21 등의 항공기를 보유, 가상적기로 운용중이며 이들을 이어받을 차세대 가상적기로 미라주 F1이 선택된 것.
ATAC는 2017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무려 63대의 미라주 F1을 인수하였으며, 드라켄 인터네셔널은 스페인 공군에서 퇴역한 미라주 F1 22대를, 남아공 공군에서는 Mirage III 12대를 인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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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미국의 두 회사는 100대에 가까운 미라주 계열기를 보유, 운용하게 되었으며 도입결정을 내린 후 2018년말부터 최초로 운용할 계획이며 장기운용을 위해 스페인 공군, 프랑스 공군, 남아공 공군에서 퇴역시켜 공군기지창고에 보관중이던 비축기체와 부품까지 싹싹 쓸어 구입하였다고 한다. ATAC의 구입 패키지에는 63대의 미라주 F1외에 151개의 예비엔진, 6백만개의 예비부품 및 장비가 포함되었다고 하며 ATAC는 향후 처음 구매량보다는 적겠지만 추가적으로 미라주 F1을 해외에서 조달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또한 단순히 가상적기로 운용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대규모 현대화 개장을 통해 최신 재밍 설비와 레이더를 탑재하여 사용될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도입된 미라주 F1은 최소15년에서 20년가까이 운용될 예정이라고 하며, 미국으로 수입된 미라주 F1의 재조립작업과 스네크마제 엔진의 유지보수와 조종사와 기술자의 훈련 및 기술지원은 미라지 계열의 정비경험이 풍부한 남아공의 파라마운트사에서 담당할 것이라고 한다.
미국에서 라이벌격인 두 회사에서 새로운 가상적기로 미라주 F1을 동시에 선정한 이유는 미라주의 특유의 민첩성을 가지고 있으며 델타익을 가진 미라주 시리즈중 유일하게 꼬리날개를 가지고 있어 델타익의 불안정성을 보완하는 안정적인 기종이라고 보았으며, 또한 현대적인 레이더를 가지고 있어 다른 비행특성을 가진 비미국제 전투기로써 타국가 기종과의 대결을 전제로 하는 미군의 고등훈련에 제격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체 또한 내구성이 매우 강했고 엔진의 연비가 비교적 우수하여 유지비가 저렴했으며, 720대라는 적지않은 대수가 생산되어 향후 운용부품 확보에도 유리한 것도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또, 기수에 각종 최신 레이더를 장착하여 운용할 수 있는 넓은 레이더 설치공간이 있다는 것도 큰 점수를 받았다고 한다.

5. 대한민국 공군이 도입할 뻔한 전투기


한때 한국 공군이 이 전투기를 도입할 뻔한 적이 있었다.
박정희가 유신시절 자주국방 정책을 표방하며 미국과 마찰을 빚었는데 카터 행정부가 대한민국에 주한미군도 철수하려 하고 무기수출도 규제하려 하자 박정희 대통령은 여기에 반발했다. 무엇보다 당시 미국이 개발한 신형전투기 도입을 희망했으나 무산되자 박정희 대통령은 미국이 자신을 엿먹이려는 거라 생각했다.[4] 신형 전투기 도입이 무산되자 이전에 액조세와 미스트랄 도입을 통해 가까워진 프랑스로부터 미라주 F1을 도입하려 했다. 게다가 이스라엘을 통해 크피르도 같이 도입해서 공군력을 강화시킬 생각을 하고 실제로 도입 절차까지 들어갔다. 그러나 도중에 엄청난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망했어요.
결국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로 인하여 한국 공군의 미라주 F1과 크피르 도입 계획은 무산되고 이후 한국 공군은 F-16을 도입하게 된다.

6. 관련 문서



7. 둘러보기




8. 참고 링크



[1] 미군 훈련에서 어그레서 운용을 담당하는 업체들이 구입[2] 최대 속도 마하 5의 고속 공대공미사일. 반능동 레이더 유도 방식을 채택했으며, 고속/고고도 비행능력을 가진 MiG-25를 주 목표물로 상정해 개발되었다.[3] EF-111의 격추기록으로 인정되었다. 격추에 사용한 무기는 maneuver(...)[4] 당시 F-15, F-16은 미국 내에서도 막 도입되어 실전배치 중이라 우방에게 당장 팔 상황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