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캉드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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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hel Camdessus
1933년 5월 1일 ~ (91세)
1. 개요
2. 상세
3. 대중매체에서


1. 개요


프랑스의 정치인, 제7대 국제통화기금 총재. 한국에선 1997년 외환 위기 당시의 총재로 유명하다.

2. 상세


파리대학에서 경제학 전공, 프랑스 국립행정학교 행정학 석사 1960년대에 프랑스 재무부 국장과 유럽경제공동체 금융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1982년 프랑스 중앙은행 총재가 되었다. 이후로 1987년 국제통화기금 총재에 취임한 후 1992년, 1997년에 연임하고 2000년에 사임하였다. 재임기간 13년으로 IMF 최장기 총재였다.
"'외환위기 당시 IMF 총재로써 IMF협상에서 여러 가지 월권행위를 자행하고 남미에 적용했던 고금리,긴축 정책을 경제기초가 완전히 다른 한국에 강제로 적용하여 외환위기를 실물경제의 위기로 확산시키는데 일조한 더할 나위 없는 악인이다."'IMF의 초강력 처방에 대해 많은 비판과 경고가 제기되었으나 IMF한테는 우이독경(牛耳讀經)에 불과했고 캉드쉬의 태도는 마이동풍(馬耳東風)었다. 작은 나라들도 IMF 구제금융을 많이 받았지만, '''브라질, 러시아, 폴란드, 인도네시아, 태국, 필리핀. 우크라이나, 아르헨티나'''같이 인구로나 영향력으로나 꽤 큰 나라도 구제금융을 받았다. 그러다보니 욕을 많이 먹을수밖에 없는 위치에 서있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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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외환 위기 당시, 극비 방한하였으며 임창렬 당시 부총리와 구제금융 합의서에 서명했다.
태국, 대한민국 등 아시아 금융위기 때 구제금융의 대가로 혹독한 경제 긴축과 구조조정을 요구하여 학계와 미국 의회의 비난을 받았다. 그간 구제금융의 혹독한 대가에 전절머리가 난 동유럽 국가에서 구공산당이 재집권하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구제금융 이후로 아르헨티나의 경제상황은 외채가 불어나고 평균임금은 지속적으로 삭감되는 바람에 2001년에 디폴트까지 가는 등 오히려 악화되었고, 말레이시아는 IMF의 조치를 거부하고 스스로 경제위기 극복를 극복해냈다는 점에서 욕을 많이 먹었다.
한국에선 가혹한 조치로 인해 '저승사자'라는 별명까지 얻었었다. 본인도 욕을 많이 먹으면서 깨달은 점이 있는지 훗날 이명박 정부가 들어설 때 쯤에 "당시 무리한 경제처방을 강요한 측면이 있었다."라고 자신의 실책을 인정했다.

3. 대중매체에서


  • 왈순아지매에선 깡그리 드슈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 손노리에서 만든 게임 강철제국에서 최종보스 이름이 캉드쉬....인데 누가 모델인지 알만하다.
  • 영화 국가부도의 날에선 캉드쉬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를 뱅상 카셀이 연기한다. 민감한 사안이어서 그런지 캐릭터 이름은 없고 IMF 총재라고만 언급되어 그냥 캉드쉬라는 캐릭터라고 생각하면 된다.
  • 한국의 IMF 외환위기 당시 KBS 뉴스의 앵커가 '캉드쉬 총재가 한국을 방문해서는 볼 것 다 보고, 할 말 다 하고 돌아갔다'고 멘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