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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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閔熙植(1895~1980). 대한민국의 관료.
2. 생애
1895년 경기도 파주시[1] 에서 민영적(閔泳迪)의 차남[2] 으로 태어났다.
조선 말기 세도가였던 여흥 민씨 삼방파 29세손이다. 증조부 민치인(閔致人)의 형, 즉 종증조부 민치구(閔致久)는 흥선대원군의 장인이자 고종의 외할아버지다.
1908년부터 1911년까지 중국 옌타이 영법학당(英法學堂)에서 수학한 후, 미국으로 유학하여 1918년 콜로라도주 골든시[3] 의 골든고등학교(Golden High School)를 졸업했다. 1922년 콜로라도 광업학교(Colorado Shool of Mines)에 입학했으나 같은 해 네바다 대학교 경제과로 전학하여 1924년 졸업했다.
1925년 귀국하여 조선총독부 철도국에 들어가 일하다 1928년 퇴직했다.
1945년 8월 교통국에 다시 들어가 1947년 2월 미군정 운수부장에 취임했고, 정부 수립 후 1948년 초대 교통부 장관에 임명되었다.
1948년 정부 수립 후 최초로 외국에 설치한 외교 공관인 주 로스앤젤레스 대한민국 총영사관의 초대 총영사로 부임하여 1960년까지 재직했다.
1980년 12월 31일 로스앤젤레스에서 사망했다.
차남인 민병수(미국명: William P. Min)는 남가주에서 한국인으로는 두 번째 미국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한미변호사협회 제3대 회장을 지냈고 '대한민국 법률대상 해외동포상'을 수상했다.
3. 여담
1928년 이후 광복 때까지 이력이 알려져 있지 않은데, 1938년 기사를 보면 중일전쟁이 한창이던 당시 골프를 즐겼던 초상류층이었다. 1938년 1월 1일자 삼천리 잡지에 실린 "서울의 상류사회, 입회비만 삼백원 드는 꼴푸장" 기사에서 경성골프구락부에 입회된 조선인 명단에 포함되어 있다.[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