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로 서신

 


1. 개요
2. 친서
3. 차명 서간
4. 목록


1. 개요


바울로 서신[1]은 신약성경에서 사도 바울로가 썼다고 여겨지는 일련의 책들을 말한다. 여기에는 바울로의 친저가 아니되 전통적으로 바울로의 저서라고 여겨진 책들, 곧 차명pseudepigraphisch[2] 서간도 포함된다. 신약성경의 전통적인 책 순서[3]에서 로마서로부터 시작하여 대략 히브리서 쯤[4]까지를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바울로 서간으로 분류한다.

2. 친서


바울로와 그의 삶·선포·신학을 이해하려면, 어떤 문헌들에 의지해야 하는가? 바울로의 선포와 신학을 파악하기 위해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쓴 편지들이다. 이 문제에서 유일하고 독보적인 원전은 이 서간들이니, 모두 일곱 개다. 성서 주석학 연구에서는 로마서, 고린토 전·후서, 갈라디아서, 필립비서, 데살로니카 전서 그리고 필레몬서를 사도가 친히 집필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요아힘 그닐카Joachim Gnilka 몬시뇰, 《바울로》Paulus von Tarsus: Apostel und Zeuge(이하: 《바울로》, 이종한 옮김, 분도출판사, 2008, 26쪽

바울로 서간 중 로마서와 두 개의 고린토서, 갈라디아서, 필립비서, 데살로니카 전서, 필레몬서가 바울로 친서에 속한다. 이들은 바울로 개인의 사상을 추적하는데 핵심이 되는 책들이며, 아울러 복음서보다 저술 연대에서 앞서기에 교회사 연구에서도 중요하다.
"바울로는 신약성경에서 만날 수 있는 최초의 신학자다. 그가 제2세대 사람으로서 지상 예수를 전혀 알지 못했고 이미 존재하던, 또는 형성되어 가던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합류했어도, 이 말은 타당하다. ...... 바오로는 이미 그리스도교 공동체들 안에서 여러 가지 신학 사상·전승·전승 단편들을 발견했으며, 그것들을 의식적으로 수용·숙고하고 자기 서간에서 계속 제공했다."[5]
바울로는 의심의 여지 없이 사목적인 동기로 서간을 썼으며,[6] "서간의 작성과 이용에 관한 이론적 성찰은 남겨놓지 않았다."[7] "바오로는 이론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어려운 문제로부터 출발하여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보여주려고 했다."[8] "오늘날 크게 달라진 상황 속에 사는 우리가 서간의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바로 이 서간들의 상황 결부성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흔히 매우 수고로우면서도 불확실할 수밖에 없는 서간 집필 상황의 재구성이 서간 이해의 전제 조건이 되며, 따라서 주석자들의 과제가 된다."[9]
아울러 처음으로 바울로 친서를 읽는 독자에게 하나의 팁을 주자면, 많은 전집들이 그렇듯이 연대 순으로 서간을 읽으면 독해에 더 도움이 된다.신약 성경의 순서에 따라 로마서부터 시작해서 차례대로 읽어도 큰 문제는 없지만 이 순서는 연대 순이 아니라 부피 순으로 배열된 것이다. [10] 바울로 친서의 대략적인 연대 순서는, 데살로니카 전서-필립비서-고린토 전서-고린토 후서-갈라디아서-로마서-필레몬서 순이다.

3. 차명 서간


바오로가 사망한 뒤 그의 이름을 내세운 편지들과 온전한 서간군들이 생겨났는데, 이것들은 사도가 친히 쓴 편지들과 구별해야 한다. 그래서 바오로 친서와 차명 서간에 관해 말한다. 후자에 속하는 것으로는 특히 옥중서간으로 꾸며진 콜로새서와 에페소서 그리고 사목 서간―이 가운데에 티모테오 2서도 옥중서간으로 꾸며졌으며, 일종의 하직 편지로 여겨지길 바란다―을 들 수 있다. 옥중서간이라는 형식을 취한 것은 수긍이 가니, 사도가 남긴 마지막 인상이 감옥살이와 처형이었기 때문이다. 바오로의 감옥살이와 처형은 그의 교회들이 큰 충격을 불러 일으켰음이 확실하다. 오늘날 통상 바오로 차명 서간은 사도 제자들의 한 동아리, 바오로 학파에서 생겨났다고 보는데, 한편으로는 콜로새서 및 에페소서와 사목 서간의 현저한 상이점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 히브리서는 콜로새서와 에페소서 그리고 사목 서간과 뚜렷이 구별된다. 관례적으로 히브리서는 바오로 서간집에 포함된다. 이 편지는 독특한 문서다. 바오로에 의존하는 부분도 더러 눈에 띈다. 특히 티모테오에 관해 언급하는 13,22-23의 끝인사가 그런 것이라 하겠는데, 사람들은 여기서 바오로와의 친연 관계가 확증되어 있다고 보았다.[11]

테살로니카 2서도 독특한 성격의 문서인데, 오늘날 통상 바오로 차명 서간으로 여긴다. 이 편지의 특징은 테살로니카 1서에의 심한 의존, 아니 모방에 있다. 명시적으로 바오로의 이름을 내세우고 있지만, 우리는 이 편지를 묵시문학의 영향을 실존해 주는 뚜렷한 사례로 보고자 한다.

-요아힘 그닐카Joachim Gnilka 몬시뇰, 《신약성경신학》Theologie des Neuen Testaments, 이종한 옮김, 433-434쪽

차명 서간 중 특이한건 히브리서인데, 히브리서는 본문에 발신자가 누구인지 스스로가 밝히고 있지 않으며 다만 이를 바울로의 저서로 보던 동방교회의 시각으로[12] 의견이 수렴하여 이를 바울로 서간으로 여기게 되었다. 그런데 훗날 루터는 히브리서가 바울로 서간이라는데 이견을 제기했고,[13] 따라서 가톨릭과 개신교의 통상적인 바울로 서간 분류법이 차이가 나게 되었다. 오늘날 성서 주석학이 에페소서 등을 바울로 차명 서간으로 봄에도 불구하고 가톨릭이든 개신교이든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바울로 서간'이라는 분류법을 여전히 사용하는데, 이 전통적인 바울로 서간 카테고리에 가톨릭은 히브리서를 포함하고 개신교는 포함하지 않는다. 이는 신학적인 차이라기보다는 이미 굳어진 전통의 차이이다.
히브리서 외의 나머지 차명 서간 중 '사목 서간'이라는 카테고리는 특별히 알아둘 필요가 있다. 이는 디모테오 전·후서와 디도서를 일컫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지만 본질적으로, 이 편지들의 핵심은 교회를 지도하는 내용이다. 그 밖에 수신인이 바오로의 협력자 개인이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이런 경우는 바오로 서간집에서 사목 서간 외에는 없다. 그런 까닭에 이 세 편지는, 바오로 친저성이 논란되긴 하지만, 통상 통일성 있는 한 묶음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각 편지가 각기 한 특수 상황에 귀속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세 편지는 애당초 함께 한 전체를 이루는 모음집Korpus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므로 세 편지를 함께 논평하는 것이 합당하다."[14]
주의할 점은, 바울로라는 한 인물을 연구할때는 친서와 차명 서간의 구분이 필요하지만, 차명 서간을 뒤떨어지는 서간이나 2등급 서간으로 여겨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가령 히브리서의 경우는 바울로 친서가 아니지만, "신약성경에서 가장 품격 있는 문서로 ....... 수사학적 재능은 바오로를 능가"하며[15] 신학적으로도 원숙하다. 또한 차명 서간은 친서와 함께 신약 성경을 이루며, 따라서 그리스도교 교의가 그 권위를 인정함은 물론이고, 수용 미학[16]의 관점에서든 영향사의 관점에서든 '전집'이라는 맥락을 고려하는 독서는 타당성을 지닌다.
아울러 신약의 차명 서간의 경우는 "저자를 허구로 내세웠다는 사실을 이미 첫 독자들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사목 서간들과 베드로 2서의 경우에는 (적어도 상당한 교육을 받은 공동체 구성원들은) 분명히 알았으리라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차명 서간의 권위는 위조 행위 자체보다는, 서간 저자가 그 서간을 통해 자신이 발 딛고 있는 전통 노선을 명시하는 데서 창출되었다고 하겠다. 그런 명시를 통해 저자는 독자들에게 그 노선의 수용을 선전했다."[17] 즉 차명 행위는 저자가 누구의 정신에 따라 쓰고자 하였는지를 명시하는 일종의 '선언'으로 여겨야 한다.

4. 목록


다음은 전통적으로 바울로 서간에 포함된 책들이다. 명칭은 공동번역 성서를 기준으로 한다.
  • 교리 서신
    • 로마서[친저]
    • 고린토 전서·[친저], 고린토 후서[친저]
    • 갈라디아서[친저]
  • 옥중 서신
    • 에페소서
    • 필립비서[친저]
    • 골로사이서
    • 필레몬서[친저]
  • 일반 서신
    • 데살로니카 전서[친저], 데살로니카 후서
  • 목회 서신[18]
  • 저자 미상
    • 히브리서[19]

[1] 대체로 개신교에서 '서신'으로, 가톨릭에서 '서간'으로 표기하는 경향이 있다. 다만 '바오로'냐 '바울'이냐처럼 강하게 굳어진 것은 아니다.[2] pseudepigraphisch(독어): '그릇된 이름이 붙은'[3] 복음서-사도행전-로마서- ...... 필레몬서-히브리서-야고보서-......-묵시록[4] 왜 '쯤'이라는 애매한 표현이 들어갔는지는 아래 설명 참고.[5] 요아힘 그닐카Joachim Gnilka 몬시뇰, 《신약성경신학》Theologie des Neuen Testaments(이하: 《신약성경신학》, 이종한 옮김, 23쪽[6] 당시 상황과 가장 관련이 적고 가장 교리적인 서간인 로마서의 경우만 하더라도, " ‘그리스도교 교리 요약’이라든가 바오로 신학의 종합으로 간주하기에는 빈틈이 너무나 많다. ...... 이렇게 볼 때, 로마서를 이 사도의 신학적 사상을 종합한 저술로 간주할 수 없음이 드러난다. 현대적 의미로 그리스도교 조직 신학서와 같은 문헌이라고 부르는 것은 더더욱 적합하지 않다."(한국천주교주교회의, 《주석 성경》,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입문[7] 마르틴 에브너 Martin Ebner·슈테판 슈라이버Stefan Schreiber (Hrsg.), 《신약성경 개론》Einleitung in das Neue Testament(이하: 《신약성경 개론》, 이종한 옮김, 389쪽[8] 《21세기 해설판 성경》(국제가톨릭성서공회 지음, 김수복 엮음[9] 《신약성경 개론》, 389쪽[10] 특히 처음 나오는 서간인 로마서는 원숙한 신학을 담고 있지만 난이도가 높다.[11] (책 속 주석)티모테오는 신약성경에서 바오로 서간집과 사도행전에만 나오는데, 사도행전에서는 바오로와 관련해서만 언급된다. 익명으로 쓰인 히브리서는 서방교회에서 380년까지 바오로가 쓰지 않은 것으로 여겨져 정경에 귀속되어야 할지도 논란거리가 되었다. 이 사정은 그 후에 바뀌었다. 참조:Q. WIKENHAUSER - J. SCHMID, ''Einleitung in das NT'' (Freiburg 61973) 43.[12] 오리게네스는 여기에 대해 굉장히 세련된 견해를 가졌는데, 그는 히브리서를 바울로의 친저가 아니되 바울로의 가르침을 충실히 다만 주체적으로 표현해 내는 한 제자의 작품이라 봤다. 이는 오늘날 성서 주석학의 견해와 비슷하다.[13] 루터는 히브리서를 거리를 두고 대해야 할 문서 중 하나로 봤다. 이런 이해는 루터 성경의 신약 순서에까지 영향을 끼쳤는데 필레몬-히브리-야고보-12베드로로 이어지는 통상적인 순서와 달리 루터 성경은 123요한-히브리-야고보-유다-묵시의 순서를 따른다. 이는 다른 개신교 성경에서는 따르지 않는 루터 성경의 독자적 순서이다. 한편 칼뱅은 히브리서를 바울로의 작품으로 간주하지 않았지만, "이전에 이 서간의 권위가 공격을 받은 사실은 사탄의 음모"라고 주장했다.(#)[14] 《신약성경 개론》, 695쪽[15] 《신약성경 개론》, 729-730쪽[16] Rezeptionsästhetik(독어): 텍스트가 내용을 그릇처럼 자체 안에 담고 있지 않으며, 텍스트의 의미는 오히려 독서 행위를 통해 창출·성립된다는 데서 출발하는 문학 이론. 여기서 텍스트는 독자와 상호 작용을 해야 하는, 반쯤 비어 있는 독서 지침으로 파악된다. Rezeptionsästhetik에 의하면 문학 유형에 따라서 텍스트의 의미는 많거나(예: 기술적인 사용 설명서) 혹은 적게(예: 픽션) 확정되어 있다.[17] 《신약성경 개론》, 399쪽[친저] A B C D E F G 주석학적으로 친저성이 지지받는 책. 친저 유무의 식별은 《바울로》 26쪽과 《신약성경개론》의 목차 구조를 기준으로 하였다.[18] 같은 말: 사목 서간.[19] 전통적으로 가톨릭과 정교회에서는 바울로 서간에 넣지만, 개신교에서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