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번역 성서

 

공동번역성서(1977년판) 속표지와 본문. 출처: 대한성서공회
1. 개요
2. 역사
3. 특징
3.1. 번역상의 특징
3.1.1. 읽기 편해진 문체
3.1.2. 적절한 의역
3.2. 간행상의 특징
4. 채택하고 있는 교단
5. 여담
5.1. 공동번역성서 평양교정본
5.2. 외국어 공동번역본들


1. 개요


공동번역 성서 전문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공동번역 성서 전문 (대한성서공회)
공동번역 성서 초판 전문 (대한성서공회)
공동번역성서(共同飜譯聖書)는 대한민국가톨릭개신교교회 일치 운동의 일환으로 1977년 부활절에 편찬한 성경의 한국어 역본으로, 한국 최초로 가톨릭개신교가 공동으로 작업한 성경 번역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가톨릭용과 개신교용으로 분리해서 간행하면서 의미가 축소되기 시작했으며, 개신교계에서의 사용률이 매우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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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부분의 공동 번역을 진행하고 있는 천주교 원주교구 선종완 라우렌시오 신부(좌측)[1], 연합감리교회 곽노순 목사(중간)[2], 문익환 목사(우측)[3]
본래 가톨릭 성서와 개신교 성서 간에 수록된 내용이 조금씩 다르고 번역의 차이도 크기 때문에 가톨릭과 개신교가 서로의 성서를 통합, 공통으로 사용하는데 합의하고 성서의 새번역 작업에 들어가 통합판 성서, 즉 공동번역성서가 1977년 부활절을 기해 출간되었다. 공동번역성서는 축자적(逐字的) 번역이나 형식적인 일치를 피하고 내용의 동등성을 취함으로써 독자들이 원문으로 읽을 때와 마찬가지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게 의역된 것이 특징으로[4], 특히 난해한 한자어와 권위적인 문어체 표현을 지양하고 성경 말씀을 우리말로 이해하기 쉽게 살려서 표현한 것이 두드러진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윤문 작업에 가톨릭, 개신교 문인들도 여럿 참여하여 번역문을 돌려 읽고 문장을 다듬는 등 적지 않게 기여했다. 가톨릭에서는 2005년에 성경이 새로 나왔음에도 공동번역성서가 더 잘 읽힌다고 평하는 일부 신자들이 있을 정도. 어쨌거나 한국어 공인 역본 중에 가장 쉽게 읽히는 역본인 셈. 다만 '~하는 것이다'는 문체가 좀 남발된 것이 옥에 티이다. 수려한 문체에 신경쓰다 보니 '''너무 의역이 되어 있다'''는 비판도 있다.[5] 현대어로 번역된 대표적인 공인역본 중 하나이지만 문체가 1970년대 문체라는 아주 사소한 문제점은 있다.
공동번역성서가 출간될 당시 가톨릭은 물론 개신교 측에서도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였고, 초판 4만 부가 1달 만에 매진되는 등 신자들의 반응 역시 좋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개신교 교단들은 공동번역이 자유주의 신학의 관점을 반영했다고 주장하면서 채택을 거부하였고[6][7], 이에 따라 공동번역성서는 가톨릭, 정교회, 성공회[8]에서만 사용되었다.

2. 역사


1962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교회 쇄신과 교회 일치의 정신을 바탕으로 세계 가톨릭개신교 사이에 교회일치운동이 일어나고, 교황청 성서위원회와 개신교 측의 세계 성서공회연합회 사이에 성서 공동 번역에 대한 합의(Guiding Principles)가 이루어져 성서를 원전(原典)으로부터 새롭게 공역(共譯)할 것을 결의하였다.
1968년 1월 한국 가톨릭과 개신교의 대표로 구성된 ‘성서 번역 공동위원회’가 만들어졌다.
1971년 부활절에 처음으로 공동번역성서 신약성서가 나왔다.
1977년 부활절에 구약성서 본문이 번역된 것을 간행하였다.
1999년 달라진 한글 맞춤법을 반영하고 일부 오역을 수정하는 개정이 이루어졌다. 야훼 용례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3. 특징



3.1. 번역상의 특징


구약은 Masoretic Text in Biblia Hebraica(3rd edition 1937) - edited by Rudolph Kittel, 신약은 The Greek New Testament (1st edition 1966) - United Bible Societies를 번역 원전으로 사용하였다. 다만 일부 구절의 경우 70인역본을 기준으로 번역했다는 주석이 종종 보인다.
가톨릭에서는 선종완 신부가, 개신교에서는 한국기독교장로회문익환 목사가 번역 원고를 마무리하고, 기독교대한감리회의 이현주 목사가 맞춤법을 교정하였다.

3.1.1. 읽기 편해진 문체


아동문학가인 이현주 목사와 시인인 문익환 목사가 참여했으므로 를 읽는 듯한 뛰어난 문체와 정승, 거뭇, 잠뱅이 등 한국어 어휘들이 사용됨으로써 한국어의 아름다움이 표현되었다는 긍정적 평가가 있다. 반면, 읽기는 편해졌으나 말씀의 권위가 가벼워진 느낌이 든다는 보수적인 비평도 존재한다.[9]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13장의 개역개정과 공동번역을 비교해보자.
개역개정
공동번역
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8.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9.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10.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12.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1.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를 말하고 천사의 말까지 한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울리는 징과 요란한 꽹과리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2. 내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전할 수 있다 하더라도 온갖 신비를 환히 꿰뚫어 보고 모든 지식을 가졌다 하더라도 산을 옮길 만한 완전한 믿음을 가졌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3. 내가 비록 모든 재산을 남에게 나누어준다 하더라도 또 내가 남을 위하여 불 속에 뛰어든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모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4.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5. 사랑은 무례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사욕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성을 내지 않습니다. 사랑은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6. 사랑은 불의를 보고 기뻐하지 아니하고 진리를 보고 기뻐합니다.
7.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냅니다.
8. 사랑은 가실 줄을 모릅니다. 말씀을 받아 전하는 특권도 사라지고 이상한 언어를 말하는 능력도 끊어지고 지식도 사라질 것입니다.
9. 우리가 아는 것도 불완전하고 말씀을 받아 전하는 것도 불완전하지만
10. 완전한 것이 오면 불완전한 것은 사라집니다.
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어린이의 말을 하고 어린이의 생각을 하고 어린이의 판단을 했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어렸을 때의 것들을 버렸습니다.
12.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추어보듯이 희미하게 보지만 그 때에 가서는 얼굴을 맞대고 볼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불완전하게 알 뿐이지만 그 때에 가서는 하느님께서 나를 아시듯이 나도 완전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13. 그러므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언제까지나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입니다.
개역개정은 90년대 후반에 개역한글을 수정한 역본임에도 불구하고[10] 옛스러운 문체와 단어, 축약이 남아있다. 이후의 개역개정판은 개역 한글의 저작권 만료 문제 + 표준새번역의 실패로 인해 대한성서공회가 일종의 임시방편으로 개역한글을 최소한으로 수정해 만든 것이기 때문. 그러나 공동번역은 어렵거나 난해한 단어를 풀어 써 서민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문체에 녹여내었고, 이 책이 서간, 즉 코린토스 지방 교회의 신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임을 반영하여 '하십시오체'로 번역하였다. 공동번역의 다른 서간들도 '하십시오체'로 번역하였다. 비록 일각에서는 문체상의 문제점이 제기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표준새번역에 비해서 번역의 질과 어휘의 선정은 보수적인 목사들도 공동번역이 훨씬 좋다는 평이 많다.

3.1.2. 적절한 의역


공동번역성서의 또다른 특징으로는 적절한 의역을 들 수 있다. 직역 위주인 가톨릭 성경과 비교하면 이러한 의역이 눈에 띄는데, 로마서 1장 22절을 보면 그것을 확연히 알 수 있다. 아래를 비교해 보자.
가톨릭 성경
공동번역성서
그들은 지혜롭다고 자처하였지만 바보가 되었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똑똑한 체 하지만 실상은 어리석습니다.
직역 위주의 가톨릭 성경에서는 앞서 사람의 어리석은 마음을 지적하는 내용이 나온 후, '그들'이라는 대명사로 인간들을 지칭한다. 물론 공동번역성서에서도 사람의 우둔함을 지적하는 내용이 있는 건 같지만, 이어서 사람을 지칭할 때 주어를 '인간'으로 바꾸어 의역한다. 킹 제임스 성서 등의 영어 성서에서도 이 부분은 they로 번역되어 있다. 하지만 이 구절만 따로 떼어서 볼 때, '그들'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제3자인 어떤 다른 집단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느껴질 수 있고 이것은 나와는 상관없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또한 한국어에서는 3인칭 대명사의 사용이 드물기에 한국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래서 공동번역성서에서는 의역을 가미하여 주어를 바꾸어 번역한 것이 돋보인다. 이것은 이 부분의 전체적인 맥락이 그렇기 때문이며, 마음대로 바꾼 것이 아니다. 또한 그래서 더 이해하기 쉬운 것 또한 공동번역성서의 장점이다.
그러나 공동번역성서는 의역이 너무 심하기 때문에 오히려 선호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또한 번역이 중립적이지 않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이 빛이 어두운데 비치되 어두움이 그 빛을 용납치 아니하니라. (사사성경)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가톨릭 새번역 성경)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개역개정)

et lux in tenebris lucet et tenebrae eam non conprehenderunt. (불가타#s-2. Nova Vulgata도 동일)

And the light shineth in darkness, and the darkness did not comprehend it. (두에-랭스 성경 [DR])

And the light shineth in darkness; and the darkness comprehended it not. (킹 제임스 성경 [KJV])

光は暗闇の中で輝いている。暗闇は光を理解しなかった。(일본어 신공동역)

et la lumière brille dans les ténèbres, et les ténèbres ne l’ont point comprise. (프랑스어 공동번역 [Traduction Oecumenique de la Bible (2010])#

Und das Licht leuchtet in der Finsternis / und die Finsternis hat es nicht erfasst. (독일어 공동번역 [Einheitsübersetzung 1980])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다. 그러나 어둠이 빛을 이겨 본 적이 없다. (공동번역)'''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니, 어둠이 그 빛을 이기지 못하였다. (개신교 새번역)

The light shines in the darkness, and the darkness has not overcome it. (영어 개정표준역 성경 [RSV], 새미국성경 개정판 [NABRE]))

a light that shines in the dark, a light that darkness could not overpower. (영어 CTS New Catholic)

The light shines in the darkness, and the darkness did not overcome it. (영어 신개정표준역 성경 [NRSV])

光在黑暗中照耀,黑暗決不能勝過他。 (중국어 思高聖經)

そのいのちは暗闇の中でさんぜんと輝いていて、どんな暗闇もこの光を消すことはできません。(일본어 Japanese Living Bible [JLB])

예를 들어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로 유명한 요한 복음서 1장 5절의 경우, 다수의 성경이 한국 공동번역처럼 번역하지는 않은 것을 볼 수 있다.[11] 문법적으로나 의미적으로, 아래보다는 위의 번역이 자연스러운 면이 있기 때문이다.

사라가 두려운 나머지 “저는 웃지 않았습니다.” 하면서 부인하자, 그분께서 “아니다. 너는 웃었다.” 하고 말씀하셨다. (가톨릭 새 성경)

사라가 두려워서 부인하여 이르되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이르시되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개역개정)

Negavit Sara dicens: “Non risi”, timore perterrita. Ille autem dixit: “Non; sed risisti”. (Nova Vulgata)

Sara denied, saying: I did not laugh: for she was afraid. But the Lord said, Nay: but thou didst laugh. (DR)

But Sarah denied, saying, "I did not laugh"; for she was afraid. He said, "No, but you did laugh." (RSV)

'I did not laugh' Sarah said, lying because she was afraid. But he replied, 'Oh yes, you did laugh'. (CTS New Catholic)

Because she was afraid, Sarah dissembled, saying, "I didn't laugh." But he said, "Yes you did." (NABRE)

撒辣害怕了,否認說:「我沒有笑。」但是那位說:「不,你實在笑了。」 (중국어 思高聖經)

サラは恐ろしくなり、打ち消して言った。「わたしは笑いませんでした。」主は言われた。「いや、あなたは確かに笑った。」 (일본어 신공동역)

'''그러자 사라는 겁이 나서 웃지 않았다고 잡아뗐으나, 야훼께서는 "아니다. 너는 분명히 웃었다." 하시며 꾸짖으셨다. (공동번역)'''

번역들이 다 그 말이 그 말 같지만, 유심히 보면 미묘한 차이를 알 수 있다. 앞 단락을 간접화법으로 번역한 것은 공동번역 뿐이고, 뒷 단락에서 '꾸짖으셨다'고 한 것 역시 공동번역 뿐이다. 그런데, 앞 단락을 간접화법으로 바꾼 것은 과잉친절이고(오히려 뒷 단락과 호응이 줄어들고, 하느님, 저는 웃지 않았습니다라는 뉘앙스가 훼손되었다), 뒷 단락의 경우, 이를테면 번역자가 독자에게 해석의 여지를 남겨 두는 대신 자신의 해석을 강요하는 셈이다. '아니다. 너는 웃었다.'가 꾸짖음이라는 해석이 정말 맞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런 식의 번역은 '중립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일부러 의역을 한 역본들을 논외로 하면, 이런 예를 무수히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공동번역성서의 지나친 의역의 예로는 로고스(기독교) 문서에 소개된 번역을 보라. 공동번역에 연문(衍文)이 많아서 원어와 뉘앙스가 달라진 것을 볼 수 있다.

3.2. 간행상의 특징


대한성서공회에서 이 성서를 간행할 적에 개신교용, 가톨릭용으로 분리해서 간행하였고, 개신교에서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은 제2경전을 수록한 '외경 포함본'을 별도로 발매하기도 했다. 그리고 1971년에 먼저 발행된 신약성경에 관련 그림, 사진 등을 추가하여 "현대인을 위한 하느님의 말씀"을 출간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간행되었던 공동번역 판본은 다음과 같다.
  • 개신교용
  • 가톨릭용 - 개신교에서 인정하지 않는 구약 부분을 '제2경전'으로 수록했다.
  • 가톨릭용 개정판 - 1999년에 나온 개정판으로, 초판에 제2경전으로 별도 수록된 부분을 불가타역 순서에 따라 재배치하고 1989년에 개정된 한글 맞춤법 및 표준어 규정을 반영하여 최소한으로 수정. 현재까지 발간 중인 공동번역성서책은 이쪽이다.
  • 외경 포함 - 가톨릭에서는 정경으로 인정되나 개신교에서는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는 책들을 신구약 사이에 '외경'으로 수록한 판본. 개신교인들 중 제2경전에 관심이 있거나 성서학, 신구약 중간사를 연구하는 신학, 기독교학 연구자들이 주로 찾았다.
2020년 현재 소량으로 판매 중인 판본은 외경(제2경전)을 가톨릭 성경 방식으로 배열하였지만 목차 페이지에 괄호안에 외경 표시한 버전이다.
성공회 성당 성물방에서 판매되고 있는 공동번역성서는 내용은 기본적으론 인터넷 서점 등에서 파는 그 가톨릭용 공동번역성서와 동일하지만 목차에서 외경 부분에 따로 표시가 되어 있다.[12] 또한, 성공회 색인이 파여 있고, 커버가 비닐이 아닌 인조가죽이라는 점도 다르다. 성공회 서울대성당 내 대성당 의자에 비치된 성경은 가톨릭용 1999년 개정판이 아닌 가톨릭용 혹은 외경 포함본 초판(1986년에 조판된 버전)이다.
제2경전(외경)이 포함되지 않고 편집된 개신교용 공동번역성서는 대한성공회 등에서 사용했었지만, 현재는 개신교용이 사실상 절판된 것으로 보인다. [13] 제2경전이 포함되어 편집된 가톨릭용 공동번역성서 구판은 절판되었으나, '''1999년에 출간된 가톨릭용 개정판은 아직도 대한성서공회에서 소량으로 출판되고 있다.'''[14] '''그러나 현재 출판되고 있는 것은 중형 판본 뿐이다.''' 물론 2005년 천주교 새번역 성경 발간 및 공식 채택 이후로 가톨릭 계열 출판사들의 공동번역성서는 이미 모두 절판되었다. 현재 공동번역성서를 구할 수 있는 곳은 Yes24, 인터넷교보문고, 알라딘과 같은 주요 인터넷 서점과 대한성서공회 직영점, 성공회 성당 내 성물방 정도 뿐이다. 2018년 12월 기준으로는 인터넷 서점 물량이 매진되었지만 대한성서공회 측에서 또 찍어내어 2018년 2월말부터 다시 구입 가능. 다만 기존의 대형 판본은 절판되었고, 현재 판매 중인 것은 2018년에 다시 디자인한 중형 판본.교보문고
1977년 초판본의 경우 글자의 가로 폭이 크고[15] 무단으로 편집되어 있어 책의 부피가 크고 페이지 수가 많았는데, 1977년판 가톨릭용 공동번역은 2,400 페이지가 넘었고 개신교용 역시 2,100 페이지에 달해 개역한글판 1,700여 페이지보다 많았다. 이후 1999년에 나온 가톨릭용 개정판은 글자의 가로 폭이 줄고 2단으로 편집되면서 어느 정도 얇아졌다.
공동번역의 구약성서 제2경전/외경 부분은 1977년 초판에서 구약과 신약 사이에 제2경전(혹은 외경) 파트로 별도 수록되었으나, 1999년 가톨릭용 개정판에서는 노바 불가타의 구약 목록에 따라 구약으로 통합 재편성되었고, 현대의 표준어 맞춤법에 따라 일부가 수정되었다(예: ~읍니다 → ~습니다).

4. 채택하고 있는 교단


처음 나올 때부터 대부분의 개신교 교단은 이 성서를 표준 성서로 채택하는데 소극적이었다. 당시에 개신교가톨릭이 관습적으로 써오던 단어가 달랐기 때문이다.[16] 심지어 당시에 모 목사는 번역에 참여한 목사들을 비판하는 글을 쓰기도 하였다.[17]
물론 가톨릭에서도 불만이 있었다. 가톨릭용에 있는 구약 중 제2경전은 라틴어 노바 불가타(Nova Vulgata) 순서대로 배열된 게 아니라 따로 빠져 카테고리가 뒤죽박죽이었던 것이다.[18] 특히 이는 가톨릭 버전의 구성이 복잡한 에스델기 독서에 문제가 되었다. 또한, 시편 번역을 만족스럽지 않게 생각해서, 공동번역성서 출판 후에도 시편만은 기존의 최민순 사도 요한 신부 역본을 썼다. 후에 개정판(개정된 표준어 맞춤법이 적용되었다)이 나오면서 순서를 라틴어 불가타순으로 맞추었지만, 결국 2005년부터 한국 가톨릭에서는 자체적으로 새로 번역한 '성경'을 표준 성경으로 사용하고 있다.[19] 가톨릭 내부에서의 주된 불만 사항으로는, 1) '''의역이 심하여 성서 공부용, 전례용으로는 부적절'''한 부분이 있다는 점[20], 2) 한국 주류 개신교에서 사실상 외면받아 공동번역성서로서의 의미가 이미 퇴색되었는데 '''천주교에서 개신교 산하 단체인 대한성서공회에 저작권료를 많이 내는 것이 무슨 의미이냐'''는 것이다.
현재 한국 기독교에서 공식적으로 공동번역성서를 표준 성서로 채택하는 교단은 성공회정교회뿐이다. 또한 개신교 중 교회 일치 운동에 참여하는 개교회들이 공동번역성서를 예배용 성경으로 사용하기도 한다.[21]
대한성공회와 한국정교회의 성직자/신학자 이외에도 일부 진보적 성향의 개신교 목회자/신학자 가운데에서 성경 구절을 인용할 때 공동번역성서를 인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교회 일치를 강조해야 하는 문서에서 의도적으로 공동번역성서를 선택하여 인용하는 경우가 흔하다.
가톨릭개신교가 함께 만들었고, 성공회[22]정교회도 쓰고 있는 성경이다 보니, 문서 인용에 중립적인 입장을 취해야 되는 곳에서도 성경 구절을 들어야 할 때 공동번역성서가 좋은 선택지가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나무위키에도 상당수 있다. 공동번역성서가 이런저런 문제점이 있지만, 가톨릭 성경과 개신교 개역개정 간의 격차가 크고 공동번역성서가 '''한국어로서 거의 유일한 초교파적 번역'''이기 때문에 특정 교파가 아닌 기독교 공통적인 맥락에서 성서를 인용할 때 아직 이만한 번역이 없기 때문이다. 단, 여기에는 번역이 중립적이어서라기보다는[23] 화법이 현대 한국어에 가깝고 문체가 미려해서 애용된다고 보는 의견이 있다.

5. 여담


  • 개신교 내 보수 교단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받은 역본이지만, 개신교 내 일부 교단(에큐메니컬 계열)은 공동번역 사업을 교회일치 운동의 결정체로 긍정적으로 보기도 한다. 특히 에큐메니컬 정신을 중시하는 대한성공회는 공동번역성서의 가치를 매우 높이 평가한다.
  • 가톨릭, 정교회, 개신교(에큐메니컬 계열 한정)가 공동으로 개최하는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회에서 쓰이는 역본이기도 하다. 이 공동번역성서가 교회일치운동의 상징이기 때문.
  • 문체의 수려함 때문에 개인적으로 사서 참고용으로 보는 일부 개신교 신자도 있다.[24] 물론 의역이 많이 된 역본이다 보니 진지한 성서 연구용으로 쓰이는 경우는 별로 없고, 주로 통독용으로 쓰인다. 그리고 가톨릭 신자들 중 천주교 새번역 성경에 만족하지 못하는 신자들도 공동번역성서를 참고용으로 보기도 하며, 신앙생활을 오래한 가톨릭 신자들은 집에 공동번역성서를 한 권 이상 소장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 한국천주교주교회의가 2005년에 자체 성경을 발간하면서, 신자들에게 기존에 보유하던 공동번역성서는 폐기하지 말고 되도록이면 참고용으로 소장하라는 지침을 내리기도 했다. 이에 따라서 기존의 교회 인가는 철회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공동번역 성서가 신학적으로 치명적인 오류가 있어서 한국 천주교가 아예 폐기한 것은 아니기 때문 (즉, 2005년에 완간된 더 나은 새 번역본이 나와서 그것으로 갈아탔을 뿐).
  • 2005년에 한국 천주교 자체 번역본이 나오면서 한국 천주교의 공식 성경의 지위를 잃었고 에큐메니컬 기도회를 제외하고는 전례용으로 쓰이지 않지만[25] 교회 인가 자체가 철회된 것은 아니어서 가톨릭 신자가 이 번역을 개인통독용으로 활용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다만 교리교육용, 일반적인(에큐메니컬적인 연구목적이 아닌 가톨릭 신앙 묵상글 등) 성구 인용 목적으로는 되도록 2005년판 천주교 성경을 쓰는 것이 권장된다.
  • 이 성경이 편찬된 20세기 중후반 당시에 전세계적으로 가톨릭계와 진보 개신교계에서 의역 위주의 성경 번역이 유행이었던 분위기[26] 때문인지 이 공동번역성서도 의역 위주의 번역으로 편찬되었다. 당시 영미권 가톨릭에서 나온 예루살렘 성경도 마찬가지.
  • 교회 일치 운동이 활발한 서구권 기독교와 달리 천주교-개신교 간 반목이 심한 한국 기독교의 현실을 고려하자면, 제2의 공동번역성서가 나오는 것은 현재로서는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
  • 진정으로 초교파적으로 사용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었다면 번역을 좀 더 보수적으로 했어야 하는데, 번역이 너무 진보적으로 나간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개신교 주류에서 공용 성경으로 사용하기를 거부한 것도 이런 측면이 일부 있었다.
  • 신약 사본비평학의 대가 메츠거 박사 등 종파별 저명 성서학자들이 협업하여 신학적 중립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노력한 영미권의 대표적 공동번역 성경인 NRSV와 다르게 이 공동번역 성서는 신학적 중립성을 위한 치열한 신학적 토론을 거친 번역이라기 보다는 파트별로 개신교측 번역자와 천주교측 번역자가 역할 분담한 것에 가깝기 때문에 그 부분에서는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다.
  • 구약성서의 경우 1930년대의 키텔 비평본문을 번역대본으로 사용하였기 때문에 1940년대 이후에 발견된 사해문서 연구 결과가 반영되어 있지 않다.
  • 개정판에서도 옛 맞춤법의 잔재가 남아있기도 하다. 대표적인 예가 아가서 4장 2절의 '쌍동이'.

5.1. 공동번역성서 평양교정본


북한조선그리스도교연맹 중앙위원회는 공동번역성서를 문화어로 교정한 번역본을 내놓았는데 편의상 공동번역성서 평양교정본이라고 한다. 조선그리스도교연맹은 공동번역성서를 북한 문화어 철자법과 표현법으로 교정하면서 일부 어휘는 개역성경이나 개역개정성경의 어휘를 차용했다. 구약성서를 1983년, 구약성서를 1984년에 출판했으며, 신·구약 합본 성경전서를 1990년과 2008년 출판했다.
조선그리스도교연맹이 한국의 많은 성경 역본들 가운데 왜 공동번역성서를 기반으로 성경 출판을 단행한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당시 다른 개신교판 번역이었던 개역한글판 성경의 문체·단어가 고풍스럽고 어려웠다는 점, 공동번역이 문자가 아닌 의미 위주의 번역을 함으로서 북한에서도 받아들이기 편했다는 점, 당시 북한 정치인과 종교인들에게 익숙한 문익환 목사가 번역에 참여했던 점 등이 그 이유로 추정되고 있다. 그럼에도 공동번역성서 평양교정본의 일부 어휘는 개역한글판 성경의 어휘를 차용하는 등 다른 한국의 성경 역본 또한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공동번역성서를 북한 문화어 철자법과 표현법으로 교정한 사람은 조선그리스도교연맹 소속 이영태 목사라고 한다. 그는 일제강점기 장로교인으로서 영어에 능통하였으며 일제시대 미국인 선교사 이눌서의 조수로 활동했다. 남북분단·한국전쟁 후에도 월남하지 않고 북한에 남아 평양신학원 교수 등 조선그리스도교연맹 간부로 활동했다. 그는 성서 편집 작업 외에도 평양신학원 교수로 재직하면서 《조선교회사》, 《세계교회사》, 《조직신학》, 《조선기독교도연맹 약사》 등 몇 권의 신학 서적을 저술했다고 한다.
공식적으로 북한에 3만 5천 부의 공동번역 평양교정본 성경이 배포되어 있다. 1983년과 1984년에 조선기독교도연맹에서 신,구약 별권으로 각각 1만 부를 발행했고, 1990년 조선기독교도연맹에서 신,구약 합본을 1만 부 발행했다. 2010년에 조선그리스도교연맹에서 추가로 신,구약 합본을 발행했다. 현재는 조선그리스도교연맹 소속 봉수교회·칠골교회·가정예배처소들과 조선카톨릭교협회 소속 장충성당 및 가정 공소들, 조선정교회연맹 운영 정백사원에 배포되어 있다.
공동번역성서 평양교정본은 공동번역과 본문 번역의 어순과 의미에서 거의 대부분 일치하지만 표현 방식에 있어 북한 사회에서 사용하는 문화어로 다듬어져 있다. 구체적인 예는 다음과 같다.
  • 두음법칙을 사용하지 않음(양식 → 량식)
  • 사이시옷을 사용하지 않음(호숫가 → 호수가)
  • 숫자 표기 시 아라비아 숫자로 표기
  • 북한식 관용어사용(아내 → 안해, 채소 → 남새)
  • 북한의 정치 사회적 상황에 따른 북한식 어휘 사용(방백 → 영도자 → 지도자)
대한성서공회 성서학도서관은 북한에서 출판된 1983년판 신약성서·1984년판 구약성서·1990년판 성경전서를 소장하고 있다. 1990년판 성경전서는 여러 종교 관련 방북자들이 이를 구했기 때문인지 인터넷 서점이나 인터넷 경매소에 가끔 판매되는 경우도 없지 않다.

5.2. 외국어 공동번역본들


영미권에도 가톨릭과 개신교가 공동으로 편찬한 일종의 공동번역 영역본이 존재한다. 원래 개신교 번역으로 발간되었으나 추후에 가톨릭교회의 승인을 받은 NLT, ESV와 같은 성경은 여기서는 제외한다.
  • Revised Standard Version - 최초의 영어 공동번역본. NRSV가 나오기 전에는 영미권 개신교에서 널리 쓰였으며, 가톨릭에서는 아직도 사실상 표준에 가까운 영어 성경(가톨릭 교리서 영문판 등)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 New Revised Standard Version - RSV를 개정한 것으로, 현재는 영미권의 에큐메니컬/자유주의 개신교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가톨릭에서는 통독용으로 승인되었으나, NRSV를 전례용 표준성경으로 쓰는 캐나다를 제외하고는 전례용으로서는 찬밥 신세다. 가톨릭 내에서는 각종 문서, 논문 인용 용도로는 RSV에 비해 밀려있지만 이쪽도 만만치 않다. 에큐메니컬/자유주의 진영의 개신교에서는 영어 표준 성경의 지위를 가지고 있다.
  • New English Bible : 영국의 주요 개신교 교파와 가톨릭 교회가 공동으로 작업한 성경.
  • Revised English Bible : NEB의 개정판.
  • Good News Bible : 쉬운 현대[27] 구어체 영어로 편찬된 성경으로 미국성서공회 주도로 편찬되었다.
  • Common English Bible : 미국 연합감리교회의 주도로 미국의 메인라인(Mainline)[28] 개신교 교단들과 소수의 가톨릭 학자들이 편찬한 성경. 가톨릭 측 인원도 참여했다고 하지만 imprimatur를 받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와 별개로 번역 자체가 다소 급진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독어권에도 공동번역이 존재한다.
  • Einheitsübersetzung der Heiligen Schrift (Verlag Katholisches Bibelwerk GmbH) : 독일 가톨릭 공용 역본.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막 직후인 1963년 가톨릭 측의 주도로 시작된 가톨릭-개신교 공동번역 성경이다. 독일 개신교회와 독일 개신교 성경협회에서 파견한 번역 위원들의 실제적 동참은 시편과 로마서와 갈라티아서, 그리고 주일과 축일 독서들에서 이루어졌다. 여기서 성경의 인명과 지명들 표기에 관한 공동 원칙도 마련되었다("Loccumer Richtlinien"). 그러나 실제로는 가톨릭에서 이 성경을 전례에 사용하는데 반해 개신교에서는 사용하지 않는다(...) 고유명사 표기 원칙의 실제적 적용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 여러모로 한국어 공동번역 성서와 비슷하다고 보면 될 것이다.

[1] 선종완 노렌조 신부로도 알려져 있다. 당시 가톨릭대학 신학과 교수였으며 공동번역성서가 출판되기 전에 선종하였다. 문익환 목사의 경우는 3.1 민주구국선언 사건으로 투옥되는 바람에 두 번역자 모두 공동번역이 출판되는 자리에 함께 할 수 없었다.[2] 당시 미국 남감리교대학(Southern Methodist University) 구약학 석사.[3] 당시 한국신학대학(현 한신대학교) 교수(구약학).[4] 다시 말해 형식일치번역(形式一致飜譯)을 피하고 내용동등성번역(內容同等性飜譯)을 시도하였다.[5] 문체가 매끄럽다 보니 공동번역성서만 읽어서는 잘 알 수가 없지만('현대인의 성경' 같은 것은 그냥 딱 읽어도 의역 티가 난다), 원문과 대조해서 읽어 보면 의역이 '심하다'는 것을 누구라도 느낄 수 있다. 일례로, 로고스(기독교) 문서에 소개된 번역 비교 참조. 이는 불가타#s-2가 직역에 가깝다는 점과 기묘한 대조를 이룬다.[6] 성서공동번역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교단은 대한성공회, 감리회, 한국기독교장로회 정도였고, 한국의 개신교 교단의 주류인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는 공동번역성서에 부정적이거나 소극적인 입장이었다. 공동번역성서가 의역이 많이 되어 있고, 문익환 등 진보 성향의 개신교 목사들이 번역에 참여했기 때문인지 근현대적인 개념인 '인권'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서 신명기 24:17이 "떠돌이와 고아의 인권을 짓밟지 마라."로 되어 있는 식인데, 이 부분의 원문은 나그네와 고아의 소송에서 재판을 억울하게 하지 말라는 구절이니만큼 보수 교단 입장에서는 깔 여지가 있다고 볼 수 있다.[7] 개신교 자체에서 내놓은 현대어 새번역본인 표준새번역이 1993년 출간되었을 때도 보수 교단을 중심으로 표준새번역이 진보주의 신학의 관점이 반영되었다 해서 공식 성경 채택을 거부하였다.[8] 공동번역성서가 출간되기 이전에는 성공회 역시 다른 개신교 교단과 마찬가지로 개역한글판을 사용.[9] 한국 개신교에서 여전히 개역개정 성경이 주류인 것은, 개역성경의 말투가 권위적인 것이 한국 개신교의 보수적 성향에 부합되기 때문이다.[10] 그에 반해 공동번역은 약 20년 앞선 70년대에 번역 작업이 진행되어 발표되었다. [11] 여기에 변론을 하자면, "이겨 본 적이 없다"는 말은 그리스어 ‘우 카텔라벤’(ou katelaben)을 옮긴 것인데, 직역하면 ‘잡지 못했다’는 뜻이다. '잡지 못했다'를 번역할 때 주로 '깨닫지 못했다'로 하고 있다. 위에서 예를 든 많은 번역 성경들 가운데 아래보다 위에 위치한 성경들이 각국에서 더 많이 쓰이는 성경이라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기지 못했다’는 번역도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이는 위에서 볼 수 있듯 다른 많은 번역 성경들에서도 공동번역성서와 같이 번역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후자로 번역한 성경 중 RSV와 NRSV는 의역 위주는 커녕 직역 위주의 번역으로서 신학대학에서 성서 연구용으로 많이 쓰이는 성경이다.''' 첨언하자면, 재미있는 점은 위의 예시를 보면, 국문이든 영문이든 중문이든 '이겨본 적이 없다'/'has not overcome'/'胜过' 등 마치 현재완료형 같은 의미로 번역한 성경이 있고, '이기지 못하였다'/'did not overcome it'/'胜' 등 기본형으로 번역한 성경이 있다는 것이다.[12] 성공회가톨릭의 제2경전을 정경으로 인정하지는 않지만, 장로회 등 주류 개신교 교단처럼 '읽을 가치가 없는 문서'로 평가절하하지 않는다.[13] 성공회는 제2경전을 정경으로 인정하지는 않지만, 다른 개신교회처럼 제2경전을 배척하는 정도까지는 아니다.[14] 가톨릭용 기준으로, 공동번역성서는 2015년 4월 20일 14쇄 발행.[15] 1977년 당시는 아직 세로쓰기 영향이 남아 있어 인쇄 활자들의 가로 폭이 지금보다 컸다.[16] 하느님, 야훼 등의 단어들을 주류 개신교 교파가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다만 공동번역 전에는 가톨릭에선 '하느님'이 아니라 '천주'라 하였고, 당시로서 '하느님'은 가톨릭 용어도 개신교 용어도 아닌 중립 용어였고, 가톨릭은 '천주'라는 용어를 개신교는 '하나님'이라는 용어를 양보하고 채택한 것이었다.(참고: 민영진 목사(대한성서공회번역자문위원)[17] 여담으로 보수 교단에서는 문익환 목사를 민중신학의 아이콘으로 보는 등 그에 대한 시선이 매우 부정적이다. [18] 불가타(Vulgata)는 가톨릭 전례용 표준 성경인 라틴어 성경으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개정 작업을 거쳐 현재는 1979년에 개정 공포된 노바 불가타(Nova Vulgata)가 쓰이고 있다. 공동번역성서가 노바 불가타보다 먼저 간행되었으므로 노바 불가타의 순서를 따를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 사실상 노바 불가타나 공동번역성서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영향으로 탄생한 것으로 작업된 시기 또한 겹친다. 결국 가톨릭 측의 요청으로 1999년에 개정판이 나왔다.[19] 엄밀히 말하면 시간전례에서는 아직 공동번역을 사용한다.[20] 반면에 평신도 통독용, 묵상용으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21] 주로 향린교회를 비롯한 한국기독교장로회의 일부 교회와 기독교 대한감리회의 일부 교회, 그리고 민통선평화교회를 비롯한 기독교대한복음교회의 일부 교회에서 쓰이고 있다. (향린교회는 현재 새번역성경을 쓰고 있으나, 교회 예배당 몇 군데에 붙여진 성경 구절에서 공동번역 문체의 말씀들을 볼 수 있다.)[22] 성공회도 넓게 보면 개신교의 범주에 든다.[23] 의역이 심하고 진보적인 신학에 편파적인 측면이 있다. NRSV에 비해서도 신학적 중립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보이지도 않는다.[24] 이는 가톨릭에 거부감이 크지 않은 개신교 신자에 한정된 이야기다. 가톨릭에 거부감이 큰 개신교 신자들은 개역성경보다 읽기 쉬운 성경으로, 공동번역성서 대신에 새번역(개신교) 성경을 찾는게 일반적이다. 개신교 새번역 성경마저도 자유주의적이라며 부정적으로 보는 강경 보수파 성향의 개신교 신자들은 바른성경이나 쉬운성경을 찾기도 한다. 다만, 신앙의 색채를 떠나 문학적이고 예술적인 관점으로 보자면 새번역(개신교)/바른성경/쉬운성경 등은 공동번역성서의 미려하고 정감있는 문체를 따라오지 못한다.[25] 전례용 인가가 취소되었는지 여부가 확인되지 않지만, 에큐메니컬 기도회가 아닌 이상 이 번역을 쓸 명분이 없긴 하다.[26] 1990년대부터는 의역 위주 번역 열풍에 비판이 제기되었는지 과거에 비해서는 직역을 지향하는 쪽으로 흐름이 바뀌었다.[27] 사실은 2010년대 영어가 아닌 1960년대 영어 어투라는 지적은 있다.[28] '메인라인(Mainline)'은 미국 개신교 내 메이저 교단을 의미하는 단어가 아니다. '메인라인(Mainline)' 교단은 장로교, 루터교, 감리교, 침례교, 성공회 교단들 중 특정 교단을 의미하는 단어다. 감리교는 지금도 미국 내 개신교 교단 중에서 메이저 교단이지만 나머지 '메인라인(Mainline)' 교단들은 현재 미국 개신교 내 메이저 교단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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