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덕

 

[image][1]
'''이름'''
박광덕(朴光德)
'''국적'''
대한민국[image]
'''출생'''
1972년 1월 1일[2](52세), 충청남도 예산군
'''학력'''
삽교초등학교
덕산중학교
운호고등학교[3]
'''종목'''
씨름
'''소속'''
LG투자증권 황소(1991~2000)
'''신체'''
183cm, 150kg
'''공격 방식'''
올드스타일 스트롱맨
'''별명'''
구마적
'''가족'''
아버지 故 박경석(1940년생/2014년 작고)
어머니 김정애(1942년생)
큰형[4] 박광호(1964년생)
배우자 이미진(1981년생)
딸 박예나(2015년생)
아들 박현준(2017년생)
'''링크'''

1. 개요
2. 선수 경력
2.1. 연예계 시절
2.2. 씨름 선수 시절
3. 은퇴 이후


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씨름 선수이며, 힘만 따지면 역대 씨름 선수들 중 1등이다.

2. 선수 경력


1990년에 LG투자증권 황소 씨름단으로 데뷔했으며, 강호동 이후 등장한 소위 '덩치계' 씨름 선수의 선두주자였다. 백두장사를 3회 기록했으나 천하장사에서는 준우승만 5회를 기록했다. 1995년에 연예계 진출을 위해 은퇴했으나 실패하고 다시 씨름판으로 돌아와 2000년에 정식으로 은퇴하였다.
동시대의 슈퍼 두꺼비 김정필과 함께 무게 씨름의 트렌드를 이끈 인물이다. 승리한 뒤 특유의 람바다 댄스가 유명했으며, 입담도 괜찮아서 장외의 스타성은 충분했으나 문제는 본편인 씨름이 재미없었다는 것이다. 당장 직전까지 강호동, 백승일 등이 이끄는 기술 씨름에 익숙하던 세대들은 박광덕의 무게 씨름에 높은 평가를 주지 않았다. 실제로 이후 선수들의 체급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그 정점으로 김영현이 등장하면서 씨름의 인기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다만 본인은 이를 커버할 수 있는 스타성이 있었고, 천하장사 한 번 하지 못했음에도 당대 강자급에서 자신의 이름을 알릴 수 있었다.

2.1. 연예계 시절


강호동이 연예계에서 대성공하자 KBS에서는 박광덕을 회유하여 연예계에 데뷔시킨다. 그러나 강호동과는 달리 예능에서는 부진했다.[5] 한동안 연예계에서 활동할 때는 주변에서 돈을 빌려달라는 부탁이 끊이지 않았고, 순진했던 박광덕은 계속해서 돈을 빌려줬는데 결국 사기까지 당하고 투자계약서와 사채를 구분하지 못해 결국 억대의 빚까지 떠안았다.
한 때 드라마 야인시대에 등장하던 아구역을 박광덕이 연기한것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도 했지만 실제로는 박광덕과 닮은 배우인 '김진형'이라는 사람이 연기했다. 김진형 본인도 인스타그램에서 자신을 박광덕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밝히기도 하였다.

2.2. 씨름 선수 시절


친정팀 LG와 한보건설간의 이중파동 논란이 일어나 복귀에 실패하나 했지만, 당시 LG에서 프랜차이즈 스타인 그를 다시 받아주게 된다. 당시 그는 복귀에 매진했고 결국 현역으로 복귀한다.
다만 리그가 축소되던 상황인지라 많은 경기에 나가지 못했고, 거액의 빚을 갚기 위해서 그는 짬을 내서 갖가지 행사도 뛰었지만 결국 선수 생활 동안은 빚을 갚지 못했다. 이 시기에 AV 출연제의를 받았으나 거절했다고 한다.

3. 은퇴 이후


2000년을 끝으로 공식 은퇴했고, 2005년에는 드디어 빚을 모두 갚는데 성공한다. 연예계 퇴출과 씨름계 방출, 이혼과 수억원의 빚 등으로 한때 자살까지 생각한 적이 있었다고 방송에서 본인이 직접 밝힌 바 있다. 이후 보수가 비싼 나이트 클럽 DJ로 일했다가 2010년인천광역시부평역 근처에 자신의 이름을 딴 '박광덕의 천하장사 족발'을 개업하며 음식점 사장으로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게다가 2014년엔 재혼을 해서 안정된 가정을 꾸렸고 족발 사업도 여러 곳에 체인점을 둘 수준까지 번창하였다. 하지만 2020년 2월 MBN 현장르포 특종세상에 출연해 사업이 기울기 시작해서 따로 직원을 두기 힘들 정도로 고전하고 있다는 근황을 전했다. 또한 심장마비로 심장수술을 받은 적이 있어서 4-5개월마다 정기 검사하는 모습도 공개되었다.
[1] 만화가 최불암의 블로그 프로필 사진이다.[2] 현장르포 특종세상에서는 50세라고 하였으몇고등학교는 1991년도에 졸업하였다. 주민등록증 상으로 1972년 1월 1일(쥐띠)이지만, 빠른 년생인 관계로 1971년생들에게는 형이라고 불렀다.[3] 1990년 당시 고등학교 3학년 때, 예산에서 운호고등학교로 전학을 왔다. 그가 전학을 온지 모르는 상태에서 아침 등교 때 교문 옆에 있던 철봉들이 모두 브이 모양으로 휘어진 모습에 놀랐었다. 아울러 월요일 조회 시간에는 교장선생이 손수 박광덕을 운동장 교단으로 불러 충청도 최고의 고교 유망주가 운호고등학교로 전학을 왔다며 많은 성원을 부탁하였다. 당시 박광덕은 교실 의자에 앉을 수 없는 가장 큰 의자 하나가 엉덩이 하나 크기보다 작았다고 한다. 그 때문에 운동 후 휴식은 맞는 의자를 찾아 학교 정문 바로 앞에 위치한 당시의 이발소 의자를 찾아야만 했다고 한다. 그나마 꽉 낑겨서 고등학교 시절부터 재기가 상당히 다분했었다고 한다.[4] 5남 중 첫째이며, 박광덕은 막내다.[5] 둘이 함께 출발 드림팀에도 나온 적이 있었다. 다이어트 프로에도 나온적이 있었는데 주로 강호동이 박광덕을 의식하고 구박하는 역할. 이래저래 많이 안나온것 같지만 CF도 찍었고 손석희가 진행하는 교양 프로에도 나와 해외의 빅사이즈 시장을 체험하는 등 상당히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