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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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寅煥
1926년 8월 15일 ~ 1956년 3월 20일
대한민국의 시인. 본관은 밀양(密陽)#.
1926년 강원도 인제군 인제면 상동리#에서 면사무소 직원이었던 아버지 박광선(朴光善)과 어머니 함숙형(咸淑亨)의 4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인제공립보통학교를 다니다가 부친과 함께 상경하여 경성덕수공립소학교(현 서울덕수초등학교)에 전학하여 졸업하였다. 이어 경기공립중학교에 진학하였는데, 재학 중에 교칙을 어기며 영화관을 출입한 것이 문제가 되어 중퇴하였다. 이후 한성학교 야간부를 다니다가, 황해도 재령의 명신중학교를 졸업하였다.
부친의 강요로 평양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였으나, 8.15 광복으로 졸업하지 못하고 학업을 중단한 뒤 서울로 내려와 종로에서 마리서사(茉莉書肆)라는 서점을 경영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절친이자 선배 시인 오장환[1] 의 낙원동 남만서점을 해방 후에 물려받은 것이다. 여기서 아내도 만난다.
마리서사에서 많은 문학인들과 교류했는데, 박인환은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도 반말하듯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굉장히 무례하고 파격적인 행동이었다. 그 이유에서 였는지 김수영이 그를 유독 깠다...
그후 1955년 '박인환선시집'을 출간했고, 이듬해인 1956년, 소설가 이상의 기일날 4일 간 폭음한 탓에 급성 알콜중독성 심장마비로 29세에 요절했다.
박인환은 이상의 기일 날 그를 기리는 시 "죽은 아폴론"을 쓴다. 그 시에는 이상의 기일이 3월 17일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이상의 기일은 4월 17일이다. 이것이 박인환의 실수인지, 4일 후 닥칠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일부러 틀리게 적은 것인지는 작가 본인만 알고 있다.
윗 문단에 기술되어 있는 이상의 기일에서 4일 후라는 박인환의 사망 날짜는 오류.
대표작으로 세월이 가면과 목마와 숙녀 등이 있다.
''세월이 가면''은 박인환 시인이 마지막으로 쓴 시로 알려져 있는데 작품 일화가 있다. 당시 문인들의 아지트였던 명동의 대포집 '은성'에서 극작가인 이진섭, 백치 아다다를 불러 유명한 나애심이 같이 술을 마시던 가운데, 시를 쓰던 박인환의 종이를 들고 이진섭이 즉석에서 곡을 붙이고 나애심이 바로 불렀다. 나애심이 먼저 술자리에서 나가자, 나중에 온 테너 임만섭이 그 악보를 받아들고 다시 노래를 불렀고, 주위에 있던 모든 손님들이 그 가게로 몰려와 노래를 감상했다고 한다. 참고로 은성의 사장은 최불암의 모친이었다.
''목마와 숙녀''의 경우 연배가 있는 분 중에는 박인희의 노래만 알고 원작의 존재를 모르는 분들도 왕왕 있다. 노래에 묘사된 가사까지만 들었을 때는 어느 정도 애틋한 감상도 들 법하지만 원작의 경우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은 구절을 비롯해 노래에서 생략된 후반 부분이 온전히 더해져 한층 더 탄식과 체념의 정서가 짙다.
양복이 더없이 어울리는 말쑥한 외모로도 유명하며, 생전에 김수영과 등단시기도 비슷해 막역한 사이였으나 후에 성향차이로 멀어진다. 2004년에 방영한 EBS 드라마 명동백작에서 주인공 3인 중 한명으로 등장한다.
키가 180cm 정도 되는 장신이었다고 한다. 그의 부인도 농구선수 출신이었는데 키가 170cm이었다고 한다. 양가가 서로 장신이 유전이었던듯 하다.
朴寅煥
1926년 8월 15일 ~ 1956년 3월 20일
대한민국의 시인. 본관은 밀양(密陽)#.
1926년 강원도 인제군 인제면 상동리#에서 면사무소 직원이었던 아버지 박광선(朴光善)과 어머니 함숙형(咸淑亨)의 4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인제공립보통학교를 다니다가 부친과 함께 상경하여 경성덕수공립소학교(현 서울덕수초등학교)에 전학하여 졸업하였다. 이어 경기공립중학교에 진학하였는데, 재학 중에 교칙을 어기며 영화관을 출입한 것이 문제가 되어 중퇴하였다. 이후 한성학교 야간부를 다니다가, 황해도 재령의 명신중학교를 졸업하였다.
부친의 강요로 평양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였으나, 8.15 광복으로 졸업하지 못하고 학업을 중단한 뒤 서울로 내려와 종로에서 마리서사(茉莉書肆)라는 서점을 경영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절친이자 선배 시인 오장환[1] 의 낙원동 남만서점을 해방 후에 물려받은 것이다. 여기서 아내도 만난다.
마리서사에서 많은 문학인들과 교류했는데, 박인환은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도 반말하듯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굉장히 무례하고 파격적인 행동이었다. 그 이유에서 였는지 김수영이 그를 유독 깠다...
그후 1955년 '박인환선시집'을 출간했고, 이듬해인 1956년, 소설가 이상의 기일날 4일 간 폭음한 탓에 급성 알콜중독성 심장마비로 29세에 요절했다.
박인환은 이상의 기일 날 그를 기리는 시 "죽은 아폴론"을 쓴다. 그 시에는 이상의 기일이 3월 17일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이상의 기일은 4월 17일이다. 이것이 박인환의 실수인지, 4일 후 닥칠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일부러 틀리게 적은 것인지는 작가 본인만 알고 있다.
윗 문단에 기술되어 있는 이상의 기일에서 4일 후라는 박인환의 사망 날짜는 오류.
대표작으로 세월이 가면과 목마와 숙녀 등이 있다.
''세월이 가면''은 박인환 시인이 마지막으로 쓴 시로 알려져 있는데 작품 일화가 있다. 당시 문인들의 아지트였던 명동의 대포집 '은성'에서 극작가인 이진섭, 백치 아다다를 불러 유명한 나애심이 같이 술을 마시던 가운데, 시를 쓰던 박인환의 종이를 들고 이진섭이 즉석에서 곡을 붙이고 나애심이 바로 불렀다. 나애심이 먼저 술자리에서 나가자, 나중에 온 테너 임만섭이 그 악보를 받아들고 다시 노래를 불렀고, 주위에 있던 모든 손님들이 그 가게로 몰려와 노래를 감상했다고 한다. 참고로 은성의 사장은 최불암의 모친이었다.
''목마와 숙녀''의 경우 연배가 있는 분 중에는 박인희의 노래만 알고 원작의 존재를 모르는 분들도 왕왕 있다. 노래에 묘사된 가사까지만 들었을 때는 어느 정도 애틋한 감상도 들 법하지만 원작의 경우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은 구절을 비롯해 노래에서 생략된 후반 부분이 온전히 더해져 한층 더 탄식과 체념의 정서가 짙다.
양복이 더없이 어울리는 말쑥한 외모로도 유명하며, 생전에 김수영과 등단시기도 비슷해 막역한 사이였으나 후에 성향차이로 멀어진다. 2004년에 방영한 EBS 드라마 명동백작에서 주인공 3인 중 한명으로 등장한다.
키가 180cm 정도 되는 장신이었다고 한다. 그의 부인도 농구선수 출신이었는데 키가 170cm이었다고 한다. 양가가 서로 장신이 유전이었던듯 하다.
[1] 이후 월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