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나비 코스테아
1. 개요
은하영웅전설 외전 5권과 OVA 외전 <나선미궁>의 등장인물.
을지해적판에서는 바나비 코스테아, 서울문화사판은 버나비 코스테어로 번역됐는데, 이타카판에서는 버나비 코스테아로 이름이 다시 번역됐다.
2. 과거와 현재
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사병으로 입대하여 동맹군 730년 마피아의 일원인 프레드릭 재스퍼 휘하 함대에서 제2차 티아마트 회전을 거쳤다.[1]
이후에는 그럭저럭 승진을 거듭하였고 에코니아 포로수용소 사건이 벌어졌던 우주력 788년 당시에는 59세의 대령으로 에코니아 포로수용소 소장 자리에 있었다. 수용소에 갓 부임한 양 웬리 소령은 자신을 맞이하는 코스테아 대령의 첫 인상을 괜찮게 보았으나 사병들은 물론 부하 장교들에도 인망이 없을 정도로 실력이나 인품에 문제가 많았다.[2] 특히 정년이 얼마 안남은 상황에서도 30대 초반의 사관학교 출신 제닝스 부소장과 마찰을 빚고 있을 정도.
3. 에코니아 포로수용소 사건
우주력 788년, 11월 10일. 양 웬리 소령이 수용소 참사관으로 부임하고 채 하루가 넘어가기도 전에 포로 프레스부르크 중위를 비롯한 80여 명의 포로들이 야간 순찰을 돌던 부소장 제닝스 중령을 억류하는 대형사고가 터졌다.
코스테아 대령은 인질 해방을 위해 교섭을 시도했으나 부소장을 대신할 수 있는 인질은 소장 밖에 없지 않냐며 교섭은 결렬되었다. 대령은 잠시 점잔을 빼다가 참사관 양 웬리 소령과 참사관보 표도르 파트리체프 대위를 부소장을 대신할 인질로 보내버린다.
그런데 대령은 교섭에도 그렇게 적극적이지 않더니 급기야 인질로 잡힌 부하 장교들의 목숨도 상관하지 않고 포병대를 동원하여 모두를 살해하려 든다. 알고보니 코스테아 대령은 수용소장으로 재직하면서 예산을 횡령하여 상당한 액수의 비자금을 조성해두고 있었다.[3] 그런데 엘 파실 탈출작전으로 일약 국가의 영웅으로 떠오른 21살의 소령 양 웬리가 느닷없이 변경 포로수용소로 발령되자 대령은 중앙에서 자신의 비리를 알아챘고 소령을 비밀조사관으로 파견했다고 확신하였고 수용된 제국군 포로 프레스부르크 중위를 포로교환 대상자로 지정해줄 수 있다며 꼬드긴 것이다. 프레스부르크가 사건을 일으켜 양 소령과 파트리체프 대위를 인질로 잡히게 한 뒤 포병대를 동원해 모두 제거하고 양 웬리 소령은 사건 해결을 위해 노력하다 '''명예롭게 전사''', 표도르 파트리체프 대위는 자신의 횡령 사실을 모두 뒤집어씌우는 것이 대령의 계획.
그러나 무려 43년간 자의로 포로의 신분을 유지하던 수용소의 최고참 제국군 포로 크리스토프 폰 쾨펜힐러 대령은 이미 대령의 비리 사실을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 쾨펜힐러는 난동의 현장에 홀연히 나타나 인질을 자처하더니 포로와 인질들을 모두 자신만이 아는 수용소의 비밀통로를 통해 대피시키고 무려 수용소 사령부까지 단숨에 숨어들었고 곧 코스테아는 체포되어 구금된다.
이후 프레스부르크 중위에게 두들겨 맞았고 긴급 보고를 받고 지역 사령부에서 파견된 무라이 중령이 올 때까지 자기 집무실에 감금되었다."대령님, 부디 제가 방아쇠를 당기게 하지 마십시오. 상관을 쏘아 공을 과시하는 것은 소관이 바라는 바가 아니니까요."
양의 언변은 이때 거의 '''야바위'''의 영역에 이르렀다.[4]
웅변이 아니라 오히려 담담한 어조가 결과적으로 가장 유효했던 것이다. 코스테아 대령은 삶은 게처럼 검붉게 변색하며 2.5초 정도 침묵하더니, 허세에 찬 목소리를 냈다."양 소령, 자네가 저지른 짓의 의미를 알고는 있나?"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해석이 성립될 여지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해석이라고?!"
코스테아 대령의 얼굴과 목소리는 분노와 땀에 젖었다. 군복의 먼지를 요란하게 털며 위압적으로 규탄했다.
"해석의 여지가 있기는 뭐가 있나! 유일무이한 사실을 가르쳐 주지. 귀관은, 아니, 네놈은 상관에게 총을 들이대고 있다. 이것을 반역행위라고 하는 짓이다, 알았나?!"
"허어, 소관은 자위행동이라고 이해하고 있는데요."
"이게 무슨 자위인가!"
"박격포에 비해 블래스터는 스케일이 작아 귀엽다고 하면, 억지일까요?"
"귀엽기는 뭐가 귀여워!"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외전 5권 <나선미궁>, 김완, 이타카(2011), p.181~182
무라이 중령이 이끄는 조사대가 도착하자 코스테아 대령은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하며 양 웬리 소령과 표도르 파트리체프 대위를 하극상 등으로 고발했으나 지역 사령부는 대령의 횡령 정황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고[5] 무라이 중령의 간단한 명령으로 즉각 구속되어 군사재판에 회부되었다.
[1] 일개 사병으로 전투에 참여했지만 코스테아는 재스퍼 제독을 진심으로 존경하게 되었다. 무려 34년이 흐른 뒤에도 자기 집무실에 재스퍼의 초상화를 걸어두었을 정도. 수용소 근무 이전까지 730년 마피아에 대한 사실을 연구하다 변방 포로수용소로 발령받은 양 웬리는 이런 기이한 우연에 잠시 의아해했다.[2] 같은 사병으로 제2차 티아마트 회전에 참여한 알렉산드르 뷰코크는 동시기 준장으로 지역 경비함대 사령관 직책을 맡고 있었고 나중에는 60을 넘긴 고령에도 사관학교 출신들을 재치고 승진을 거듭하여 정규함대 사령관까지 올랐으니 코스테아는 상부에서도 그리 유능하지 못한 인물이라고 보고 있었던 셈이다.[3] 크리스토프 폰 쾨펜힐러와 포로자치위원회의 자체적인 조사에 의하면 대령이 횡령한 액수는 약 350만 디나르. 동맹군 대령의 정년 퇴직금이 30만, 대장의 연봉이 240만, 스파르타니안 파일럿 1명을 양성하는데 드는 비용이 300만 정도 되니 대령은 거의 억대의 액수를 빼돌린 셈. 쾨펜힐러는 이를 두고 "군인으로 두기엔 아까운 상인으로서 재능(商才)"이라 비꼬았다.[4] 양 웬리의 군인으로써의 능력은 오직 두뇌에 집중되어 몸을 움직이는 것이나 총을 쏘는 것에는 못 한다의 영역을 넘어 근본적으로 재능이 없다고 평해질 정도였다. 스스로 총을 겨누고는 있지만 대령이 조금만 민첩하게 움직이면 절대로 '''맞추지 못한다'''고 단언할 정도.[5] 그저 비리에 대한 증거를 모으고 있었지 횡령 사실 등은 진작에 파악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