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프 폰 쾨펜힐러

 

''' 크리스토프 폰 쾨펜힐러
Christopf von Köfenhiller · クリストフ・フォン・ケーフェンヒラー'''
'''OVA'''
'''인물 정보'''
'''신체 정보'''
남성, ???cm, ?형
'''생몰년'''
SE 717. ??. ??. ~ SE 789. 1. 1. (71세)
'''가족 관계'''
???(배우자)
'''국적 및 소속'''
은하제국 골덴바움 왕조 은하제국군자유행성동맹
'''최종 계급'''
은하제국군 대령
'''최종 직책'''
에코니아 포로수용소 자치위원회장
'''최종 작위'''
남작
'''기함'''
없음
'''미디어 믹스 정보'''
'''성우'''
[image] '''OVA''' 야지마 마사아키
1. 개요
2. 생애
2.1. 내무성 관료 시절
2.2. 군인 시절
2.3. 포로 시절
3. 그 외
4. 관련 문서


1. 개요


은하영웅전설 외전 5권 <나선미궁>의 등장인물. OVA 외전에서의 성우는 야지마 마사아키.
인물 이름을 일본어 발음과 영어 발음으로 뒤섞어 오역,편역한 을지서적 해적판에서는 케펜힐러로 잘못 번역했으나 서울문화사와 이타카 정식판에서 제대로 독일어 발음인 쾨펜힐러로 번역했다.
은하제국남작 작위를 가진 귀족가문 출신이며, 원래는 행정관료였으나 모종의 사건 때문에 스스로 군대에 지원했다. 그리고 제2차 티아마트 회전에서 자유행성동맹군포로로 붙잡혔고, 그 뒤 무려 43년간 송환을 거부하며 자유행성동맹에코니아에서 포로 생활을 하고 있었던 괴짜 노인이다.
OVA의 죄수번호는 05023.

2. 생애



2.1. 내무성 관료 시절


쾨펜힐러 남작가를 계승한 인물이면서 동시에 지방행정 쪽이 전문인 내무성의 행정관료였다. 신분제 사회인 은하제국에서 귀족의 경우 공직 진출에 특혜가 있으며, 개념 없는 명문귀족가 자제들이 들어와서 월급도둑질을 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쾨펜힐러의 경우에는 유능한 관료였다. 그리고 22세가 되던 해에 결혼한다. 원래대로라면 문벌귀족 정도는 아니더라도 작위가 있는 귀족이자 제국 내무성의 공무원으로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가면서 무난한 삶을 살 수 있었을 인물이다.
그의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 것은, 그가 23세가 되던 해에 아내가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우는 것이 들통났고, 아내가 도리어 '''잘못된 만남'''을 주장하면서 그와의 이혼을 요구하기 시작한 것에서부터였다. 그리고 쾨펜힐러가 이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아내는 아예 '''대놓고''' 내연남과 함께 살림을 차려 집을 나가버렸다.[1]

어느 사회에서나 있을 법한 분쟁이긴 한데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제국은 신분제 사회이고, 쾨펜힐러는 남작이었지만 내연남이 은하제국 '''명문 백작'''가의 둘째 아들이었다. 즉, 급수가 다른 상대였다. 백작가에서는 아들의 소원을 들어주고자 쾨펜힐러에게 금전, 출세와 같은 조건들로 회유하면서 어떻게든 이혼을 시키려 들었다. 하지만 법적으로 남편이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니었고, 쾨펜힐러가 꿈쩍도 안 했던 관계로[2] 결국 이혼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이에 분노한 백작가에서는 내무성에 압력을 넣어 쾨펜힐러를 변경으로 좌천시키려 했다.
쾨펜힐러는 백작가에서 무슨 짓을 하건 동요하지 않았지만 아내가 내연남의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을 듣자 모든 것에 환멸을 느꼈다. 그리고 백작가의 뒷공작이 성사되어 변경으로 좌천되기 전에 선수를 쳐서 내무성에 사표를 내고, 25살의 나이로 군대에 지원해버렸다.

2.2. 군인 시절


기본적인 훈련을 마친 쾨펜힐러는 바로 '''소령''' 계급을 받고 복무하기 시작했다. 작중에서 귀족은 특혜가 있어 임관을 신청하면 우대를 받는다는 서술이 있고, 쾨펜힐러의 경우 행정관료 경력까지 있다 보니 특별임관[3] 제도나 혹은 경력직 임관 같은 제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임관한 이후 쾨펜힐러는 공을 세워나가며 빠른 승진을 한 끝에 28세에 대령까지 진급했다. 주요 보직은 나오지 않지만 통수본부에서 크리스토프 폰 미켈젠 장군의 밑에서 근무한 적도 있다. 미켈젠 장군은 서로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쾨펜힐러에게 잘해줬다는 서술이 나온다.

이후 배치가 바뀌어 전선근무를 나가게 됐고 함대 사령관 코젤 대장 밑으로 배속됐다. 하지만 그 전투가 하필 '''제2차 티아마트 회전'''이었고, 제국군이 브루스 애쉬비가 이끄는 자유행성동맹군에게 신나게 털린 '''"군무성이 눈물을 흘릴 40분"''' 사이에 코젤 대장도 전사했다. 생존한 제국군 지휘부와 참모 일원은 아직 교전이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았음에도 동맹군이 항복권고를 보내자 자신들이 불리한 상황이 몰렸다는 것을 느끼고 순순히 투항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쾨펜힐러는 자신이 포로가 된 뒤, 동맹군 병사들이 전투에서 이겼는데도 브루스 애쉬비가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동맹군이 마치 진 것과 같은 분위기에 빠지는 모습을 목격했다.
자유행성동맹은 장교라도 장성급 포로와 비장성급 포로를 별도로 수용하게 되어 있었는데, 대령이었던 쾨펜힐러는 장성급 장교들과 분리되어 에코니아 포로수용소로 보내졌다.

2.3. 포로 시절


에코니아 포로수용소에 수용된 28세의 쾨펜힐러 대령은 처음에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으나, 조국에 돌아갈 장소도 없고 자신이 확실하게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사실 덕분에 아내는 평생 내연남과 불륜의 관계만을 가질 수 있으니 자신의 힘으로써 가장 잔인한 복수를 이루었다고 생각하고 초연하게 마음을 비웠다.
수용소에서 난동을 피우지도, 포로들을 선동하지도 않고 수용된 포로들을 잘 다독여 사건사고도 일어나지 않으며 자치위원회를 통해 수용소측과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는데다가 본인의 성품까지 훌륭한 편이다보니 역대 수용소장들의 대부분은 쾨펜힐러 대령을 아주 우호적으로 대했다. 수용소장들은 포로송환식이 있을 때마다 쾨펜힐러 대령을 송환 대상자 목록의 가장 첫번째 자리에 올려놓았으나 쾨펜힐러 본인이 매번 극구 사양하고 다른 포로가 송환되도록 요청하였다. 이러기를 여러번, '''장장 43년'''의 세월을 포로수용소에서 보내며 28세의 젊은이였던 쾨펜힐러는 71세의 노인이 되었다.
쾨펜힐러는 그간 탁월한 인품으로 오고가는 포로들의 존경을 받았고 포로들이 내분을 사전에 막아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통합 자치위원회를 구성해 자신이 위원장을 맡아 포로들을 하나로 묶었다.[4] 수용소측은 이런 쾨펜힐러를 상당히 우대해주었고[5]쾨펜힐러는 1인실을 배정받고 외부에서 서적이나 자료들의 반입도 허가받아 취할 자료들을 모아 검증을 반복하고 부족한 부분은 찾거나 취합된 자료를 토대로 추론해 나가며 수용소 밖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건들을 연구하기 시작했다.[6]
일단 장기간 포로수용소에 머물렀기 때문에 유창한 동맹 공용어 구사도 가능했고 내부사정에 대해 아는 것이 많았다. 특히 쾨펜힐러는 수용소측도 잊어버린 포로 수용구역과 기지 사령부를 잇는 폐기된 통신관리터널의 존재와 이용 방법도 알고 있었다. '''즉, 마음만 먹었으면 수용소를 탈출한 후 은하제국으로 귀환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인물이었다.''' 물론 앞서 언급된 사정으로 본인에게는 그럴 마음이 없었다.
그 외에 쾨펜힐러는 동맹 정부와 군부의 사정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눈치였고, 소장 버나비 코스테아 대령의 횡령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던 것들을 보면 단수가 보통 높은 인물이 아니었다. 양 웬리표도르 파트리체프 모두 쾨펜힐러의 진면모를 알고 나서는 경악을 감추지 못했으며 '''만약 그가 동맹군의 포로로 잡히지 않고 제국군 수뇌부에 있었으면 정보계통을 틀어쥐고 동맹군을 농락했을 인물'''이라고 평했다. 양 웬리가 참사 임용하여 에코니아로 올때도 단번에 엘 파실의 영웅이라고 알아봐서 양이 씁쓸하게 웃으며 대했다.
어쨌든 "엘 파실영웅" 양 웬리엘 파실 탈출작전 이후 에코니아 포로수용소에 부임해왔고, 뒤가 구리는 것이 많았던 코스테아가 프레스부르크 중위를 내세워 모종의 사건을 꾸미자 은근슬쩍 개입하여 도와줬다. 덕분에 에코니아 포로수용소 사건은 무사히 마무리될 수 있었다. 이 사건의 처리를 담당한 무라이 중령이 감사를 표하면서 포상을 약속하자 편안한 여생을 위해 한 일이라며 포상을 거부했다.
결국 상부에서 협의 끝에 쾨펜힐러를 석방하기로 결정했다. 물론 쾨펜힐러는 나이 70 넘은 노인네를 자유랍시며 억지로 내쫓는게 어딨냐며 즉각 거부했으나 그냥 석방이 아닌 공민권 부여, 자유행성동맹군 퇴역 대령 대우로 연금 지급 등의 편의를 봐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동맹으로선 코스테아가 꾀하던 막대한 공금 횡령도 막아낸 탓[7]에 그 일부를 선심쓰듯이 주면 그만이었고 어차피 70대 노인인 쾨펜힐러가 오래 살아도 20년 전후였을테니까 이럴 여유가 있었을 것이다. 처음엔 차라리 프레스부르크를 송환시켜 달라고 요구했으나 아무리 속았다고 해도 명색이 포로로서 반란을 일으켜 사상자를 여럿 내게 한 이상,프레스부르크를 즉각 송환시키는 건 무리였다. 무라이도 그건 내 관할이 아니라며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지만 힘들다라는 투로 거부하면서 그러니, 적어도 당신에게 작은 보답으로서 연금받고 자유롭게 살아가라고 설득하니 결국 본인도 더 고집을 부리지 못했다.
석방 이후 그는 포로수용소에 있는 동안 수집한 자료와 기록을 토대로 이를 정리하는 일을 하게 됐겠지만. 그러기도 전에 행성 하이네센으로 향하던 중 중간 경유지인 행성 마스지드 우주항 로비에서 양, 파트리체프와 함께 맥주를 마시며 새해를 맞이하다가 그만 심부전증으로 숨을 거두었다. 잠자듯이 쓰러져 숨졌는데, 의사 말로는 사망 직전에 마시고 있던 맥주의 취기가 올라 있었던 탓에 고통없이 마치 잠들 듯 최후를 맞이했을 것이라고.[8] 자유의 몸으로 첫 새해를 맞이하면서 중간 경유지에서 생을 마감했다는 것이 뭔가 아련하다.
[image]
43년만에 입어본 양복차림. 그리고 죽기 바로 몇 분전.
알렉스 카젤느의 배려로 쾨펜힐러가 수집한 자료는 양이 가지게 됐고, 쾨펜힐러는 마스지드의 공동묘지에 매장됐다. 묘비에 남길 문구는 양이 직접 써줬으며(양 웬리는 나같은게 썼는데 괜찮을까 했지만 그렇다고 파트리체프가 더 잘 쓴다고 할 수도 없고 파트리체프가 양보했을 듯.) 이를 제국 공용어로 새긴 까닭에 150디나르 정도 비용이 더 들었다고 한다. 묘비명은 '''크리스토프 폰 쾨펜힐러. 제국력 408~480년. 생애 몇명인가 생명을 구했다.'''

3. 그 외


그냥 장기간 포로생활을 한 괴짜 노인네 정도로 취급됐는데 가면 갈수록 드러나는 진상이 만만치 않은 인물이다. 더불어 양 웬리에게도 많은 도움을 준 인물. 브루스 애쉬비의 숨겨진 부분에 대해서도 연구했으며 제국과 동맹 사이에 있었을지 모르는 알려지지 않은 개연성 높은 설을 발굴해내기도 했다.
참고로 양이 브루스 애쉬비에 대한 조사를 하게 된 계기는 이미 작고한 애쉬비 제독의 부인 명의로 애쉬비 제독이 모살당했다고 주장하는 투서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투서의 정체나 목적, 그리고 발송한 사람의 정체는 어느 누구도 알지 못했는데 에코니아 포로수용소 사건이 마무리된 이후 양은 쾨펜힐러에게 당신이 투서를 보낸 것이냐고 캐물었다. 이때 쾨펜힐러 노인의 반응을 보면 양의 추측이 맞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어쨌든 쾨펜힐러가 수집하고 1차로 정리한 자료는 사후에 양 웬리가 완전히 정리했고, '쾨펜힐러 문서'로 명명된 이 자료는 주요사료로 지정되어 봉인조치에 들어갔다. 카젤느는 만약 해당 연구자료를 양의 이름으로 발표했다면 능력을 인정받아 전사연구쪽으로 빠질 가능성도 있었다고 평했다. 그러나 양은 쾨펜힐러가 다 해놓은 것을 자신은 그저 자료를 정리하고 엮은 입장에 불과하기 때문에 자신이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후의 역사를 보면 봉인된 자료는 자유행성동맹이 신 은하제국에 합병당한 이후 공개됐을 것으로 보인다.
43년이나 포로로 있었기 때문에 새로 들어온 제국군 장교들 중 귀족도 꽤 있었을 것이고 그들 입을 통하여 자신의 아내에 대한 정보도 알고 있는 모습이었다. 명을 달리하기 전에 말해주었는데, 아내는 그가 죽지 않아 결국 이혼도 못 해서 애를 낳은 뒤에도 결혼할 수 없었으며, 저절로 사생아가 되어버린 아이의 존재가 귀족계에서 쭉 입소문을 타고 흥미거리로 언급되고 있기에 여전히 고생한다고 한다. 제국의 힘이 미치는 범위라면 백작가의 권위를 내세워 어떻게 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쾨펜힐러는 동맹에 포로로 잡혀 있고 버젓이 포로 명단에 있는 인물이다. 결정적으로 하위귀족이긴 해도 쾨펜힐러도 남작 작위를 이어받을 몸이었기에 별다른 권위도 없는 제국기사같은 말만 귀족인 경우나 평민과 확실히 다르다. 공문서 위조 등을 통해 사망으로 처리해버리는 방법도 있었겠지만 다른 귀족의 약점이 될 만한 건이 있으면 그걸 트집 잡아서 공격하는 동네가 은하제국이다 보니 아무리 힘 있는 백작가라도 그건 힘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황제의 칙명이나 관료 귀족들의 암묵적인 동의를 얻는다면 가능할 수 있겠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것[9]이니 그저 안습.
그래도 일단 쾨펜힐러가 결국 죽었으니 전 아내는 비로소 내연남과 결혼할 수 있게 되긴 했다.[10] 하지만 이미 무려 43년이나 흘렀고, 적게 잡아도 60대 후반인 몸으로 정식 결혼 및 혼인신고를 할 수 있게 되어봤자 이미 꽃같은 세월은 다 지나버렸다. 그 오랜 기간 동안 결혼도 못 하는 어정쩡한 관계로 지내는 데 지쳐 헤어졌을 가능성도 있고 말이다.[11][12] 게다가 그 오랜 시간 실컷 귀족계에서 입소문이 나고 흥미거리로 언급되었으니 쉽게 잊혀지기도 힘들 것이고, 결국 평생을 계속 고생했을 가능성이 크다. 더불어 쾨펜힐러 본인은 이런 점을 언급하지도 않으며 아내를 용서한다는 암시는 전혀 비치지 않았으니 끝까지 용서하지 못한 듯. 어떻게 보면 복수귀일지도 모른다.
이런 경험 때문인지는 몰라도 다른 포로들이 고향에 남겨둔 아내나 약혼자를 그리워하다 병으로 죽어가는 것을 두고 "그녀가 배신할 수도 있잖아?"라며 삐딱하게 또는 현실적으로 냉정하게 생각했다.[13]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신의 생각으로만 했을 뿐이라 고향에 둔 이를 그리워하는 이들을 탓하거나 자신의 예를 들며 비꼬거나 하진 않았다. 또 자신의 아내가 불륜을 저지르지 않았더라면, 자신도 포로로 죽었을 경우 다른 이들처럼 그리워하고 슬퍼하며 죽어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그리고 포로생활 중 죽은 사람들의 편지와 유품을 제국으로 보내는 일도 솔선수범으로 맡았는데 1년쯤 지나 죽은 다른 포로의 미망인이 쓴 감사의 답장을 받기도 했다. 아마도 이걸 받곤 포로의 부인들이 다 배신하는 것은 아니구나 생각도 했을 것이다.
어떤 의미로 보면 지하세계의 거물이라고 평가해도 될듯하다. 에코니아 포로수용소 사건당시 에코니아 포로수용소를 탈출하던 양 웬리는 이 노인이야말로 진정한 에코니아의 주인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장면도 있다.

4. 관련 문서


[1] 물론 아내 입장에서는 그가 마음에 안 들만 한 게 이 결혼이 사랑으로 이루어진것이 아니라서 아내와 나이 차이가 꽤 났다. 키 차이부터가 얼굴 하나이상 났을정도. 하지만 자기가 먼저 잘못해놓고, 이혼을 하지 않겠다고 하자 제멋대로인 사람이라고 하는 건 확실히 문제다. 이혼을 해주면 내연남과 합법적으로 재혼해 뻔뻔하게 잘 먹고 잘 살 텐데 어느 남편이 그 꼴을 보고싶어할까?(현실에서도, 바람을 피운 배우자에 대한 배신감과 실망으로 재결합 의지가 없음에도 이런 이유로 이혼을 해주지 않는 사람이 많다. 대표적으로 김민희와 바람난 홍상수의 아내)[2] 일반 평민이나 하급 귀족같다면야 압박만으로도 가능했겠지만 쾨펜힐러는 그래도 오등작을 가진 귀족이라 설득에 나섰던 것으로 보인다.[3] 비슷한 사례로 백작가의 아들인 칼 마티아스 폰 포르겐이 있다. 비사관학교 출신이고 그저 군무성 행정직 경험밖에 없는데 나이 서른에 대령 대우로 강제전출됐다.[4] 능력없는 귀족들이 장교니 장성이니 하는 고위직을 독차지하는 제국군의 특성상 병사들은 포로수용소에 들어간 뒤에도 상관이었던 사람들에게 여전히 상관 대우를 해주지는 않았다. 그렇다보니 일반적인 포로수용소에서는 병사, 부사관, 장교들이 사분오열되어 각기 자신들만의 조직을 만들어 활동하였고 보통 숫적으로 우세한 병사 혹은 부사관 조직이 수용소측과의 협상권을 거머쥐었다.[5] 양 웬리 소령이 신임 참사관으로 부임한 뒤 당연히 수용소의 1인자인 수용소장에게 부임 신고 및 인사를 하러 갔는데 수용소장 코스테아 대령은 수용소 상황에 대해 간략한 설명을 해주고 양 소령을 쾨펜힐러에게 보내 '''부임 인사'''를 하게 하였다. 일개 포로에게 수용소 장교가 인사를 하러가는 것 부터가 기이한 일인데 위계질서상 소장 다음에는 부소장과 경비주임이 있음에도 순서상 소장 바로 다음에 놓인 것, 이것이 에코니아 포로수용소의 '관례'였다. 심지어 파트리체프 대위의 말을 들어보면 소장도 새로 부임했을때는 쾨펜힐러를 찾아가서 인사를 하는 모양이다.[6] 특히 쾨펜힐러가 집중적으로 조사한 것은 미켈젠 제독 암살사건의 진상이었다.[7] 350~360만 디나르 정도 돈을 코스테아가 삥땅쳤는데 이는 원래 그가 받을 연금의 12배가 넘는 금액이자 스파르타니안 파일럿 1명을 양성할 수 있는 돈이었다. 역시 이것에 대해 쾨펜힐러는 꽤 자세히 알고 있었기에 양과 파트리체프에게 이 사실을 말했다. 즉 동맹 측에서 이러한 돈도 확보했고 코스테어는 불명예 퇴역에 쇠고랑 신세이니 연금도 박탈, 코스테아에게 원래 줘야할 연금을 보답이랍시고 쾨펜힐러에게 주면 그만이었다.[8] 원래 심장마비는 심각하게 아프게 죽는 병이다.[9] 베네뮌데 후작부인에게 정치적인 역공을 가할 당시 로이엔탈이 말하듯이, 또는 클롭슈톡 사건 당시 미터마이어를 구하기 위해서 로이엔탈이 '미터마이어가 죽는다면 암살로 규정하고 곳곳에 소문내버리겠다'고 하자 그 브라운슈바이크가 섣불리 미터마이어를 죽이지 못한데서 보듯 제국 귀족계에서 가장 큰 무기가 바로 입소문이라고 나온 걸 보면 이러한 사생활 관련 추문은 귀족계에서 절대로 암묵적으로 넘어가기 어렵다. 지존인 제국 황제조차도 온갖 입소문이 떠돌고 있는 와중이니. 황실 입장에서도 참 꼴사나울 일이니, 아무 문제없는 남편과 이혼하고 내연남과 결혼을 하라고 칙명을 내줄 이유가 없다.[10] 일단 제국에는 소식이 전해질듯 하다. 그의 유품의 일부는 페잔을 경유해 제국으로 갔기 때문이다.[11] 더군다나 헤어졌다고 해도 계속 고생했을 것이다. 아직까지는 정식으로 혼인한 남자가 있는 만큼 다른 사람과 재혼한다는 것은 법적으로 불가능하고, 어찌어찌 다른 남자를 만났다고 해도 또다른 불륜일 뿐인데다가 한번 불륜을 저질러 입소문 잔뜩 난 여자를 거둬줄만한 귀족이 있을지도 의문.[12] 심지어 지쳐서 헤어진 것이 아니라 남자쪽이 버렸을 가능성도 높다. 어차피 남자쪽은 백작가인 만큼 여자를 내치려고 하면 얼마든지 내칠 수 있고 백작가에서도 시간이 흐르면서 입소문이 나게 되면 불리하므로 백작가의 당주가 아들을 타박하든 꼬시든 해서 여자를 내치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물론 전 아내가 내연남과 결혼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했다. 바로 쾨펜힐러가 의도적으로 은하제국으로 돌아오는걸 거부한다는 것을 알아내는 것. 하지만 은하제국으로부터 수천~1만 광년은 떨어진 에코니아에서 벌어진 일까지 다 알턱이 없고 에코니아에서 온 포로들을 통해 알아내려고 한다고 해도 쉬울지가 의문, 그리고 그걸 하면서까지 전 아내의 가치가 백작가에게서 대단할지는 의문이다. 게다가 사망한 셈 치고 결혼하기에도 뭣한게 아무리 그래도 쾨펜힐러는 엄연히 오등작의 반열에는 드는 인물이다. 때문에 백작가의 힘이 아무리 세도 같은 오등작 안에 드는 인물을 그렇게까지 매장시킬 수 있을지 의문. 또 원래 불륜을 하는 인간들은 배덕감에서 오는 스릴을 즐기는 거라, 이렇게 맺어진 커플은 원래 배우자를 쫓아내고 나면 곧 식어서 얼마 못 가 헤어진다고 하는데 이럴 가능성도 있다.[13] 외전 3권인 <율리안의 이제르론 일기>에서 포로교환 당시 포플랭이 제국군 포로들을 두고 "마누라가 도망가거나 집이 불타 없어졌거나 하는 놈들도 있을걸"이라고 했는데 이 사람이 정말 그 꼴이었던 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