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익 로드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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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식 초대 모델과 1996년식 로드마스터 컬렉터스 에디션 모델
'''Buick Roadmaster'''
미국의 제너럴 모터스가 뷰익 브랜드를 통해 1936년부터 1958년까지, 그리고 1991년부터 1996년까지 생산한 대형차이다.
로드마스터의 전신은 1931년부터 1933년까지 생산된 시리즈 80이라는 모델이다.
로드마스터라는 이름은 1936년부터 쓰이기 시작했는데, 1935년 대비 대폭 개선된 기술력을 과시하고자 모든 라인업에 새 이름을 붙여준 이름 중 하나였다. 뷰익에서는 "로드마스터"라는 이름에 대해 "It literally named itself the first time a test model leveled out on the open highway"라고 카탈로그를 통해 설명했다.
1936년에 출시된 초대 로드마스터는 GM의 총괄 수석디자이너인 할리 얼(Harley Earl)이 디자인을 맡았다. 캐딜락 시리즈 65/70/80 모델과 같은 GM C-바디 플랫폼을 기반으로 했고 직렬 8기통 5.2L 파이어볼 엔진이 적용되었다. 변속기는 슬라이드 시프트 방식의 3단 수동이 적용되었다. 차체 형식은 4도어 세단과 컨버터블이 있었다. 파어어볼 엔진은 예전에 쓰던 엔진을 대폭 손봐 최고출력 120마력을 기록했고, 유압 브레이크와 앞바퀴 코일 스프링 서스펜션, 금속제 썬루프를 도입했다. 완전신차였던 로드마스터인 만큼, 뷰익에서는 나머지 라인업에도 새 이름을 붙임과 함께 디자인도 같이 갈아엎었다.
로드마스터는 캐딜락 시리즈 60보다도 무거운 차량이었지만 가격이 상당히 저렴했다. 기술 및 디자인 면에서 대폭 갈아엎은 덕분에 상당한 히트작이 되었고, 한 해동안 16049대가 판매되어 뷰익의 전체 판매량이 지난 해의 약 4만 8천대에서 15만 8천대로 대폭 뛰어오르는 데 기여했다. 1937년에는 다른 GM차들과 같이 완전히 새 디자인을 갈아입혔고, 이번에는 차량 길이를 살짝 줄이면서 양쪽으로 나누어진 그릴과 각진 펜더, 유선형 헤드램프를 추가했다. 기술적으로는 새 카뷰레터와 개량된 캠축, 새 흡기 매니폴드를 엔진에 장착해 최고출력을 130마력으로 높였으며, 오일 펌프, 냉각 시스템도 새 것으로 바꾸고 엔진 밸브 설계도 훨씬 조용하게 돌아가도록 손보았다. 세단 버전은 앞뒤 좌석 사이에 닭다리식 유리 칸막이를 옵션으로 제공[1] 했으며, 가격을 대폭 올렸음에도 판매량은 더 많아졌다.
1938년에는 수직으로 세운 그릴과 길어진 보닛, 크기를 키운 범퍼 가드와 새 휠캡을 장착하는 선에서 머물렀는데, 대신 뒷바퀴에 장착했던 리프 스프링을 커다란 쇼크 업쇼버가 장착된 코일 스프링으로 바꿔 승차감을 대폭 개선했다. 차대 역시 X-멤버 프레임 대신 I-빔을 장착했으며, 나무 부품도 금속으로 바꾸었다. 기존의 5.2L 엔진은 연소실을 터뷰레터(turbulator)식으로 바꿔 출력을 141마력까지 올렸다. 또한 세단과 4도어 컨버터블 양쪽에 패스트백 스타일을 추가했으며, 개선 사항을 반영하면서 가격도 비싸졌지만 가격이 크게 오르진 않았는데, 뷰익의 점유율이 1938년 내내올라갔음에도 불구하고 로드마스터는 판매량이 더 줄어 뷰익 차량 전체의 7.3%에서 3.3%까지 점유율이 떨어졌다.
1939년에는 2피스 형태의 작아진 "폭포" 그릴이 적용되었고, 보닛과 앞문의 기둥(필러)를 좁히고 전보다 큰 휠캡을 장착했다. 창문 크기도 전보다 커졌고, 뒷창문도 2조각 구성 대신 1조각으로 바꾸었다. 실내에서는 모든 주요 계기판을 운전석 쪽에 배치한 뒤, 변속기 레버도 칼럼 쉬프트 형태로 배치했다. 4도어 컨버터블은 패스트백이나 예전의 분리형 트렁크 차체 중 하나를 고를 수 있었다.[2] 이전보다 가격을 할인해 실적이 개선되기는 했지만 1만대가 넘개 팔리던 지난 세대의 절반에도 못 미쳤고, 뷰익 라인업 전반에서의 점유율도 2.9%로 더 낮아졌다.
1940년에 시리즈 80이 리미티드(Limited)로 개명하자, 로드마스터의 이름도 새로 등장한 시리즈 70의 이름으로 쓰이게 되었다. 시리즈 50 슈퍼와 같이 출시된 이 차는 새 플랫폼인 GM C-플랫폼[3] 을 기반으로 만들어졌고, 캐달락 시리즈 60의 영향을 받은, "Torpedo"라는 별칭이 붙은 새 디자인을 도입했다. 발판이 없어지면서 어깨 및 엉덩이 공간에 이를 할애했고, 전보다 높이가 낮아진데다가 칼럼 쉬프트 덕분에 제대로 된 6인승 차량으로 만들어질 수 있었다. 이전 대비 휠베이스가 짧아지면서 무게도 가벼워진 것은 물론, 가격도 전보다 저렴해졌다. 세단이 패스트백 스타일을 잃은 대신, 이번에는 로드마스터 최초로 2도어 쿠페가 판매되어 적절한 실적을 기록했으며 판매량도 1세대 수준인 18345대를 기록했다. 여담으로 코치빌더인 Brunn에서는 뷰익 기반의 여러 차량을 만들면서, 로드마스터 기반의 "타운마스터(Townmaster)"를 한 대 제작하기도 했다.
1941년에는 외관상 변화가 상당히 적은 대신, 기술적인 변화의 폭이 훨씬 컸다. 엔진 압축비를 높인 뒤 피스톤을 다시 설계했으며, 예전보다 작인 스파크 플러그를 장착한 뒤 2배럴 카뷰레터를 2개 장착한 "컴파운드 카뷰레이션(Compound Carburetion)"[4] 을 도입했다. 따라서 경쟁사인 팩커드(Packard) 사의 고급 라인보다 5마력 높고 캐딜락보다도 15마력 높은 최고출력인 165마력을 기록해, 당대 가장 강력한 미국차 엔진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2도어 컨버터블이 라인업에 추가되었으며, Brunn이 제작한 컨버터블이 1대 만들어졌다. 1941년식은 총 15372대가 만들어졌다.
1942년에 등장한 4세대 로드마스터는 이전보다 긴 전장, 낮은 전고, 넓은 전폭, 넓은 실내를 갖추었으며, 휠베이스를 늘린 덕분에 전반적으로 차를 키울 수 있었다. 뒷펜더까지 죽 뻗는 앞펜더인 "Airfoil" 펜더와 세로줄 그릴이 새로 도입되었고, 이때 적용된 새 펜더 디자인은 후에 크롬장식이 추가되면서 뷰익의 새 트레이드마크인 "Sweepspear" 캐릭터라인의 기반이 되었다. 세로줄 그릴 역시 뷰익의 향후 패밀리룩으로 반영되었으며, 캐릭터라인과 그릴 디자인은 모두 GM의 첫 컨셉트카인 뷰익 Y-잡(Y-Job)의 것을 양산화한 것이었다. 라인업상으로는 4도어 컨버터블이 삭제되었으며, 1941년의 센츄리 및 스페셜에 이어 세더닛 패스트백 스타일이 쿠페의 기본 디자인으로 반영되었다. 한편 이때는 태평양 전쟁이 시작됨에 따라 크롬 장식이 대폭 줄어들기 시작했고, 1942년 2월에 단종되었다.
그러다가 태평양 전쟁 이후로 계속되던 제 2차 세계대전이 종전됨에 따라, 뷰익과 GM에서는 1946년식을 맞아 크롬장식을 대폭 추가하는 디자인 변경을 거쳤다. 마침 시대가 시대였기에 디자인적으로도 포탄 디자인의 영향을 받은 보닛 장식이 추가되었으며, 실내에는 컨버터블을 제외한 모든 라인업에 우드그레인이 들어간 투톤 계기판을 적용했다. 그 외에도 앞뒤 범퍼 가드에 칠보 엠블럼이 추가되었다. 기술적으로는 2배럴 카뷰레터를 2개 장착한 컴파운드 카뷰레이션이 삭제되었으며, 엔진 압축비도 낮워 출력을 165마력에서 144마력으로 낮추었다. 그럼에도 같은 시기 크라이슬러 차들보다도 출력이 좋은 편이었고, 마침 전쟁 이후로 인플레이션이 있었기에 판매량에도 변화가 있었다. 로드마스터는 1941년의 4%에서 1946년의 20%로 뷰익 라인업 내 점유율이 높아져 총 31400대가 팔렸다.
1947년식은 그릴 바가 분리된 새 그릴을 장착했으며, 빨간색 글씨가 세겨인 엠블럼이 앞뒤 범퍼가드 사이에 추가되었다. 또한 이번에는 에스테이트 왜건(Estate Wagon)을 라인업을 추가했고, 첫 해동안 300대를 판매한 이후로 왜건 시장에서 최고급 라인업의 자리를 차지했다.
1948년식은 앞펜더에 레터링을 추가했으며, 투톤 우드그레인 계기판을 투톤 회색으로 바꿈에 따라 흰색 스티어링 휠을 검은색으로 바꾸었다. 또한 빨간색 장식과 모조 가죽 도어트림이 포함된 가죽-직물 혼합 인테리어가 특별 옵션으로 추가되었으며, 컨버터블 사양에 파워 윈도우, 파워 시트, 파워 소프트탑을 기본으로 채용했다. 기술적으로도 승용차용 토크 컨버터 변속기인 다이나플로우(Dynaflow) 2단 자동변속기가 추가되었으며, 처음에는 선택 장비였지만 상당한 인기를 끌자 얼마 안 가 기본 장비가 되었다. 1947년과 1948년식 모두 8만 대가 안 되는, 그러면서도 전쟁 전의 실적을 4배 이상 뛰어넘는 수준의 실적을 보여주었다.
1949년에는 디자인을 대폭 바꾸고 휠베이스와 전장을 줄인 5세대가 등장했다. 덩치가 줄어든 대신 중량이 증가했고, 디자인적으로는 뷰익 고유의 흡기구 장식인 "Ventiports",[5] 2피스 형태의 앞창문이 도입되었다. Ventiports는 다른 뷰익 차에 세 쌍을 장착하는 것과 달리 총 네 쌍이 부착되었으며, 엔진 환기를 돕는 역할을 한다고 소개된 반면에 일부 차량은 그냥 장식으로만 쓰이는 경우도 있었다. 한편으로는 포탄 모양 장식과 같이 장착되면서, 전투기를 얼추 연상시키는 효과를 주기도 했다. 기술적으로는 다이나플로우 변속기를 기본 장착했으며, 엔진 압축비를 늘리면서 출력이 150마력으로 늘어났다. 1949년식 중순에는 하드탑 쿠페인 리비에라(Riviera)가 라인업에 합류했고, 파워 윈도우를 기본 장착하고 Sweepspear 크롬 장식을 여기에 옵션으로 제공했다. 컨버터블도 1949년식 후반이 도입되었으며, 로드마스터 사상 최대인 88130대를 판매해 뷰익 차 판매량 전체의 27%를 차지했다.
1950년식은 크롬 줄을 길고 빽빽하게 체운 새 그릴을 장착했으며, Sweepspear 크롬 장식도 인기가 좋아 왠만한 라인업에 기본으로 적용하다가 1950년식 중순에는 장축형 세단과 왜건에도 기본 제공되었다. 장축형 세단은 휠베이스를 102mm 가량 늘렸으며, 컨버터블과 리비에라, 장축형 세단은 파워 윈도우와 파워 시트가 기본 장착되었다. 이번에는 뷰익 스페셜이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 판매랑이 75034대로 떨어지면서 뷰익 차 내 점유율도 12% 가량 낮아졌다.
1951년식은 그릴을 바꾼 뒤 장축형 세단에도 리비에라라는 명칭을 붙였으며, 세더닛(Sedanet)과 일반 세단을 단종시켰다. 판매량은 약 66000대를 기록했다.
1952년식은 전에 비해 변화의 폭이 작았고, 파워스티어링을 옵션으로 추가하고 4배럴 카뷰레터를 장착해 출력이 170마력으로 늘어났다. 약 51000대가 이때 팔렸다.
1953년식을 맞아, 설계된 지 16년이 지난 로드마스터의 직렬 8기통 엔진이 쇼트 스트로크식[6] V8엔진으로 대체되었다. 마침 이때는 뷰익의 창사 50주년이기도 했고, 뷰익에서는 기존 엔진의 배기량인 320ci(5.2L)보다 살짝 늘어난 322ci(5.3L) V8 네일헤드(Nailhead) 엔진을 설계해 장착했다. 엔진 배기량에 큰 변화가 없는 대신 출력이 188마력으로 늘어났고, 엔진 압축비가 늘어나면서 토크도 높아진데다가 엔진 무게도 훨씬 갸벼워졌다. 엔진 크기가 작아진 덕분에 휠베이스를 줄일 수 있었는데, 대신 외양상으로는 V-8 엠블럼과 휠캡 디자인 정도만 바꾸었다. 변속기로는 빠르고 조용한 가속을 자랑하는 트윈터빈(Twin-Turbine)식 다이나플로우 변속기를 장착했다. 편의장비로는 파워 스티어링과 파워 브레이크, 12볼트 발전기를 장착했으며, 선택장비로 에어컨을 도입했다.
새 라인업으로는 스카이락(Skylark)이라는 이름의 컨버터블이 제공되었고, 캐딜락 시리즈 62 엘도라도와 올즈모빌 98 피에스타와 같이 특수 제작된 차량이었다. 일반 컨버터블의 반쯤 닫힌 뒷펜더 대신 완전히 개방된 뒷펜더가 장착되었으며, 벨트라인을 낮추고 앞창문의 높이를 낮추었다. Sweepspear 장식도 일반 로드마스터에 비하면 간결하게 바꾸었으며, Ventiports 흡기구 장식을 제하는 대신 켄슬리-헤이즈(Kelsey-Hayes)제 와이어휠이 장착되었다. 이 해는 로드마스터 에스테이트 왜건이 생산된 마지막 해였고, 당시 돈 5천 달러였던 스카이락 다음으로 비싼 4031달러의 가격표가 붙었다. 1953년식은 총 79137대가 판매되었으며, 왜건 버전은 미국의 대량생산차로서는 마지막으로 목제 차체를 장착한 차량이었다.
1954년식 로드마스터는 뷰익 슈퍼, 올즈모빌 98, 캐딜락 라인업 전반과 같이 C-바디 플랫폼을 공유했으며, 욕조 형상의 비교적 현대적인 차체 라인과 "Dagmar Bumper"라는, 촘촘한 세로줄이 들어간 새 범퍼 그릴이 적용되었다. 1953년식에 비해 덩치가 대폭 커졌고, 수직형 B필러와 파노라마식 앞창문, 총알 형상의 후미등, 자그마한 테일 핀이 적용되었다. 2도어 사양의 좌석에는 크롬 줄이 들어갔으며, 4도어 사양은 뒷좌석에 팔걸이를 추가했다. 5.3L 엔진의 출력을 200마력으로 높인 뒤 2단 다이나플로우 자동변속기를 조합했으며, 왜건 및 일반형 2도어 쿠페는 단종되었다. 1956년식은 이전 대비 판매량이 떨어진 50600대가 판매되었다.
1955년식은 뒷펜더 장식을 넓게 만들고 금색 레터링과 보닛 장식을 추가했으며, 로드마스터 전용으로 휠캡 장식과 그릴을 추가했다. 엔진 출력도 236마력으로 증가했고, 변속기도 가변식 피치(variable-pitch)를 적용해 고속도로에서의 가속력을 개선했다. 또한 후진등이 기본 장착되었다. 1956년식은 총 64500대가 판매되었다.
제이 레노가 1955년식 2도어 리비에라 하드탑 사양을 소유하고 있다.
1956년식 로드마스터는 캐릭터라인을 얇고 점잖게 손보았으며, 두 줄로 된 크롬 장식이 트렁크에 추가되었다. 모델명 레터링은 문 쪽으로 이동했고, 범퍼 그릴의 탄창 모양 장식은 총 조준장치 형상이 되었다. 자동변속기에 스타터 휠 2개를 추가해 변속기를 개선했으며, 대시보드도 속을 채운 것으로 교체했다. 무엇보다도 이번에는 4도어 하드탑 세단인 리비에라(Riviera)가 등장해, 일반 세단보다 두 배나 많이 팔리고 당대 최고 인기를 끌었던 로드마스터로 기록되었다. 총 53500대가 판매되었고, 그 중 24770대가 4도어 하드탑이었다.
1957년식 로드마스터는 옆부분이 대폭 꺾인 앞창문을 장착해 시야가 훨씬 넓어졌다. 뷰익 특유의 Sweepspear 라인에는 빨간색 액센트가 들어갔으며, 지난 세대의 "Dagmar Bumper" 그릴 범퍼를 계승했다. 연료 주입구를 뒷범퍼에 장착했으며 모델명 레터링이 그릴과 트렁크에 적용되었다. 단일 배기관이 기본이되 이중 배기관을 고를 수 있었다. 2도어 사양은 후측면에 곡선 모양의 크롬 장식이 들어갔으며, 4도어 사양은 로드마스터 레터링이 그 자리에 들어갔다. 세단은 트렁크에서 뒷창문까지 연결되는 크롬 장식이 들어가있었다. 실내는 속을 체운 대시보드가 들어갔다. 나일론 및 브로드클로스(broadcloth) 직물로 마감된 실내가 4도어에 들어갔고, 2도어에는 나일론, 컨버터블에는 가죽으로 마감된 인테리어가 제공되었다.
엔진으로는 6.0L 300마력 엔진이 2단 다이나플로우(Dynaflow) 자동변속기와 함께 적용되었으며, 볼 조인트식 서스펜션을 장착해 핸들링이 좋아졌다. 4도어 하드탑 사양은 당시로서 인기가 좋았고, 결국 일반형 세단이 단종될 정도였다. 1957년 3월에는 파워 시트와 파워 윈도우, 문 하단까지 연장된 카펫, 한 덩어리로 구성된 뒷창문, 고급 휠캡, "Series 75" 레터링이 들어간 모델 75(Model 75)를 추가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미국의 경제 불황으로 인해 1957년식은 약 3만 3천대로 판매량이 주저앉았다.
1958년식은 GM 창립 50주년을 기념해 스타일을 대폭 갈아엎었으며, 상급 사양의 스타일링이 적용된 사양을 모든 브랜드에 추가했다. 뷰익 역시 로드마스터 리비에라(Roadmaster Riviera)라는 라인이 추가되었다. 이제는 로드마스터 75 사양만 판매되었으며, 그릴을 훨씬 각진 것으로 갈아엎고 Ventiports 흡기구 모양 장식도 삭제한 뒤 캐릭터라인도 이전의 Sweepspear 라인과는 다른 모습이 되었다. 트렁크의 모델명 레터링은 뷰익 엠블럼 밑의 사각형 엠블럼 안에 새겨지는 식으로 변경되었다. 펜더 주변에 크롬 장식이 추가되어 훨씬 화려해졌고, 4점식 헤드램프도 이때 적용되었다. 브레이크도 금속 라이너와 알루미늄 드럼이 적용되는 것으로 바꾸어 당대 최고의 성능을 기록했지만, 판매량이 약 1만 4천대까지 떨어져 수습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결국 1959년식 뷰익의 라인업이 개편되면서 로드마스터란 이름은 삭제되었고, 뷰익의 기함급 라인의 이름으로는 엘렉트라가 1991년까지 계속 자리잡았다.
1991년에는 33년만에 로드마스터라는 이름이 부활했는데, 이전에 생산했던 로드마스터의 후속이 아닌, 뷰익 에스테이트라는 풀사이즈 스테이션 왜건의 후속모델로 등장했다. 따라서 왜건 모델이 먼저 판매되었다. 또한 플랫폼도 뷰익 에스테이트에서 쓰던 B-바디가 적용되었다. 엔진은 V8 5.0L L03, 5.7L L05[7] , 5.7L LT1[8] 3가지가 있었고 4단 4L60 자동변속기가 맞물렸다. 생산은 텍사스 주의 알링턴(Arlington) 공장에서 담당했다.
1992년에는 세단이 추가되었는데, 왜건 버전이 카프리스/커스텀 크루저의 단순한 뱃지 엔지니어링 버전이었던 것과 달리, 세단 버전은 외장 부품을 새로 디자인해 훨씬 각지고 보수적인 디자인으로 바뀌었다. 4세대 카프리스를 보고 자신감이 생긴 GM 측에서 캐딜락과 뷰익, 올즈모빌에도 같은 플랫폼으로 차를 만들려고 하자, 뷰익에서는 이를 가지고 캐딜락 출신의 수석디자이너인 웨인 캐디(Wayne Kady)의 지휘 하에 세단을 새로 디자인했다. (참고 링크)
1996년 12월 13일에 쉐보레 카프리스 4세대와 함께 후속 없이 단종되었고, 이후 아랫급이자 전륜구동 차량인 파크 애비뉴가 뷰익의 기함이 되었다. 로드마스터를 만들던 알링턴 공장은 픽업트럭과 SUV를 만들게 되었고 플랫폼으로 썼던 B-바디는 1926년 이후 70년만에 완전히 퇴역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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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식 초대 모델과 1996년식 로드마스터 컬렉터스 에디션 모델
'''Buick Roadmaster'''
1. 개요
미국의 제너럴 모터스가 뷰익 브랜드를 통해 1936년부터 1958년까지, 그리고 1991년부터 1996년까지 생산한 대형차이다.
2. 역사
로드마스터의 전신은 1931년부터 1933년까지 생산된 시리즈 80이라는 모델이다.
로드마스터라는 이름은 1936년부터 쓰이기 시작했는데, 1935년 대비 대폭 개선된 기술력을 과시하고자 모든 라인업에 새 이름을 붙여준 이름 중 하나였다. 뷰익에서는 "로드마스터"라는 이름에 대해 "It literally named itself the first time a test model leveled out on the open highway"라고 카탈로그를 통해 설명했다.
2.1. 1세대 (1936~1937)
1936년에 출시된 초대 로드마스터는 GM의 총괄 수석디자이너인 할리 얼(Harley Earl)이 디자인을 맡았다. 캐딜락 시리즈 65/70/80 모델과 같은 GM C-바디 플랫폼을 기반으로 했고 직렬 8기통 5.2L 파이어볼 엔진이 적용되었다. 변속기는 슬라이드 시프트 방식의 3단 수동이 적용되었다. 차체 형식은 4도어 세단과 컨버터블이 있었다. 파어어볼 엔진은 예전에 쓰던 엔진을 대폭 손봐 최고출력 120마력을 기록했고, 유압 브레이크와 앞바퀴 코일 스프링 서스펜션, 금속제 썬루프를 도입했다. 완전신차였던 로드마스터인 만큼, 뷰익에서는 나머지 라인업에도 새 이름을 붙임과 함께 디자인도 같이 갈아엎었다.
로드마스터는 캐딜락 시리즈 60보다도 무거운 차량이었지만 가격이 상당히 저렴했다. 기술 및 디자인 면에서 대폭 갈아엎은 덕분에 상당한 히트작이 되었고, 한 해동안 16049대가 판매되어 뷰익의 전체 판매량이 지난 해의 약 4만 8천대에서 15만 8천대로 대폭 뛰어오르는 데 기여했다. 1937년에는 다른 GM차들과 같이 완전히 새 디자인을 갈아입혔고, 이번에는 차량 길이를 살짝 줄이면서 양쪽으로 나누어진 그릴과 각진 펜더, 유선형 헤드램프를 추가했다. 기술적으로는 새 카뷰레터와 개량된 캠축, 새 흡기 매니폴드를 엔진에 장착해 최고출력을 130마력으로 높였으며, 오일 펌프, 냉각 시스템도 새 것으로 바꾸고 엔진 밸브 설계도 훨씬 조용하게 돌아가도록 손보았다. 세단 버전은 앞뒤 좌석 사이에 닭다리식 유리 칸막이를 옵션으로 제공[1] 했으며, 가격을 대폭 올렸음에도 판매량은 더 많아졌다.
2.2. 2세대 (1938~1939)
1938년에는 수직으로 세운 그릴과 길어진 보닛, 크기를 키운 범퍼 가드와 새 휠캡을 장착하는 선에서 머물렀는데, 대신 뒷바퀴에 장착했던 리프 스프링을 커다란 쇼크 업쇼버가 장착된 코일 스프링으로 바꿔 승차감을 대폭 개선했다. 차대 역시 X-멤버 프레임 대신 I-빔을 장착했으며, 나무 부품도 금속으로 바꾸었다. 기존의 5.2L 엔진은 연소실을 터뷰레터(turbulator)식으로 바꿔 출력을 141마력까지 올렸다. 또한 세단과 4도어 컨버터블 양쪽에 패스트백 스타일을 추가했으며, 개선 사항을 반영하면서 가격도 비싸졌지만 가격이 크게 오르진 않았는데, 뷰익의 점유율이 1938년 내내올라갔음에도 불구하고 로드마스터는 판매량이 더 줄어 뷰익 차량 전체의 7.3%에서 3.3%까지 점유율이 떨어졌다.
1939년에는 2피스 형태의 작아진 "폭포" 그릴이 적용되었고, 보닛과 앞문의 기둥(필러)를 좁히고 전보다 큰 휠캡을 장착했다. 창문 크기도 전보다 커졌고, 뒷창문도 2조각 구성 대신 1조각으로 바꾸었다. 실내에서는 모든 주요 계기판을 운전석 쪽에 배치한 뒤, 변속기 레버도 칼럼 쉬프트 형태로 배치했다. 4도어 컨버터블은 패스트백이나 예전의 분리형 트렁크 차체 중 하나를 고를 수 있었다.[2] 이전보다 가격을 할인해 실적이 개선되기는 했지만 1만대가 넘개 팔리던 지난 세대의 절반에도 못 미쳤고, 뷰익 라인업 전반에서의 점유율도 2.9%로 더 낮아졌다.
2.3. 3세대 (1940~1941)
1940년에 시리즈 80이 리미티드(Limited)로 개명하자, 로드마스터의 이름도 새로 등장한 시리즈 70의 이름으로 쓰이게 되었다. 시리즈 50 슈퍼와 같이 출시된 이 차는 새 플랫폼인 GM C-플랫폼[3] 을 기반으로 만들어졌고, 캐달락 시리즈 60의 영향을 받은, "Torpedo"라는 별칭이 붙은 새 디자인을 도입했다. 발판이 없어지면서 어깨 및 엉덩이 공간에 이를 할애했고, 전보다 높이가 낮아진데다가 칼럼 쉬프트 덕분에 제대로 된 6인승 차량으로 만들어질 수 있었다. 이전 대비 휠베이스가 짧아지면서 무게도 가벼워진 것은 물론, 가격도 전보다 저렴해졌다. 세단이 패스트백 스타일을 잃은 대신, 이번에는 로드마스터 최초로 2도어 쿠페가 판매되어 적절한 실적을 기록했으며 판매량도 1세대 수준인 18345대를 기록했다. 여담으로 코치빌더인 Brunn에서는 뷰익 기반의 여러 차량을 만들면서, 로드마스터 기반의 "타운마스터(Townmaster)"를 한 대 제작하기도 했다.
1941년에는 외관상 변화가 상당히 적은 대신, 기술적인 변화의 폭이 훨씬 컸다. 엔진 압축비를 높인 뒤 피스톤을 다시 설계했으며, 예전보다 작인 스파크 플러그를 장착한 뒤 2배럴 카뷰레터를 2개 장착한 "컴파운드 카뷰레이션(Compound Carburetion)"[4] 을 도입했다. 따라서 경쟁사인 팩커드(Packard) 사의 고급 라인보다 5마력 높고 캐딜락보다도 15마력 높은 최고출력인 165마력을 기록해, 당대 가장 강력한 미국차 엔진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2도어 컨버터블이 라인업에 추가되었으며, Brunn이 제작한 컨버터블이 1대 만들어졌다. 1941년식은 총 15372대가 만들어졌다.
2.4. 4세대 (1942~1948)
1942년에 등장한 4세대 로드마스터는 이전보다 긴 전장, 낮은 전고, 넓은 전폭, 넓은 실내를 갖추었으며, 휠베이스를 늘린 덕분에 전반적으로 차를 키울 수 있었다. 뒷펜더까지 죽 뻗는 앞펜더인 "Airfoil" 펜더와 세로줄 그릴이 새로 도입되었고, 이때 적용된 새 펜더 디자인은 후에 크롬장식이 추가되면서 뷰익의 새 트레이드마크인 "Sweepspear" 캐릭터라인의 기반이 되었다. 세로줄 그릴 역시 뷰익의 향후 패밀리룩으로 반영되었으며, 캐릭터라인과 그릴 디자인은 모두 GM의 첫 컨셉트카인 뷰익 Y-잡(Y-Job)의 것을 양산화한 것이었다. 라인업상으로는 4도어 컨버터블이 삭제되었으며, 1941년의 센츄리 및 스페셜에 이어 세더닛 패스트백 스타일이 쿠페의 기본 디자인으로 반영되었다. 한편 이때는 태평양 전쟁이 시작됨에 따라 크롬 장식이 대폭 줄어들기 시작했고, 1942년 2월에 단종되었다.
그러다가 태평양 전쟁 이후로 계속되던 제 2차 세계대전이 종전됨에 따라, 뷰익과 GM에서는 1946년식을 맞아 크롬장식을 대폭 추가하는 디자인 변경을 거쳤다. 마침 시대가 시대였기에 디자인적으로도 포탄 디자인의 영향을 받은 보닛 장식이 추가되었으며, 실내에는 컨버터블을 제외한 모든 라인업에 우드그레인이 들어간 투톤 계기판을 적용했다. 그 외에도 앞뒤 범퍼 가드에 칠보 엠블럼이 추가되었다. 기술적으로는 2배럴 카뷰레터를 2개 장착한 컴파운드 카뷰레이션이 삭제되었으며, 엔진 압축비도 낮워 출력을 165마력에서 144마력으로 낮추었다. 그럼에도 같은 시기 크라이슬러 차들보다도 출력이 좋은 편이었고, 마침 전쟁 이후로 인플레이션이 있었기에 판매량에도 변화가 있었다. 로드마스터는 1941년의 4%에서 1946년의 20%로 뷰익 라인업 내 점유율이 높아져 총 31400대가 팔렸다.
1947년식은 그릴 바가 분리된 새 그릴을 장착했으며, 빨간색 글씨가 세겨인 엠블럼이 앞뒤 범퍼가드 사이에 추가되었다. 또한 이번에는 에스테이트 왜건(Estate Wagon)을 라인업을 추가했고, 첫 해동안 300대를 판매한 이후로 왜건 시장에서 최고급 라인업의 자리를 차지했다.
1948년식은 앞펜더에 레터링을 추가했으며, 투톤 우드그레인 계기판을 투톤 회색으로 바꿈에 따라 흰색 스티어링 휠을 검은색으로 바꾸었다. 또한 빨간색 장식과 모조 가죽 도어트림이 포함된 가죽-직물 혼합 인테리어가 특별 옵션으로 추가되었으며, 컨버터블 사양에 파워 윈도우, 파워 시트, 파워 소프트탑을 기본으로 채용했다. 기술적으로도 승용차용 토크 컨버터 변속기인 다이나플로우(Dynaflow) 2단 자동변속기가 추가되었으며, 처음에는 선택 장비였지만 상당한 인기를 끌자 얼마 안 가 기본 장비가 되었다. 1947년과 1948년식 모두 8만 대가 안 되는, 그러면서도 전쟁 전의 실적을 4배 이상 뛰어넘는 수준의 실적을 보여주었다.
2.5. 5세대 (1949~1953)
1949년에는 디자인을 대폭 바꾸고 휠베이스와 전장을 줄인 5세대가 등장했다. 덩치가 줄어든 대신 중량이 증가했고, 디자인적으로는 뷰익 고유의 흡기구 장식인 "Ventiports",[5] 2피스 형태의 앞창문이 도입되었다. Ventiports는 다른 뷰익 차에 세 쌍을 장착하는 것과 달리 총 네 쌍이 부착되었으며, 엔진 환기를 돕는 역할을 한다고 소개된 반면에 일부 차량은 그냥 장식으로만 쓰이는 경우도 있었다. 한편으로는 포탄 모양 장식과 같이 장착되면서, 전투기를 얼추 연상시키는 효과를 주기도 했다. 기술적으로는 다이나플로우 변속기를 기본 장착했으며, 엔진 압축비를 늘리면서 출력이 150마력으로 늘어났다. 1949년식 중순에는 하드탑 쿠페인 리비에라(Riviera)가 라인업에 합류했고, 파워 윈도우를 기본 장착하고 Sweepspear 크롬 장식을 여기에 옵션으로 제공했다. 컨버터블도 1949년식 후반이 도입되었으며, 로드마스터 사상 최대인 88130대를 판매해 뷰익 차 판매량 전체의 27%를 차지했다.
1950년식은 크롬 줄을 길고 빽빽하게 체운 새 그릴을 장착했으며, Sweepspear 크롬 장식도 인기가 좋아 왠만한 라인업에 기본으로 적용하다가 1950년식 중순에는 장축형 세단과 왜건에도 기본 제공되었다. 장축형 세단은 휠베이스를 102mm 가량 늘렸으며, 컨버터블과 리비에라, 장축형 세단은 파워 윈도우와 파워 시트가 기본 장착되었다. 이번에는 뷰익 스페셜이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 판매랑이 75034대로 떨어지면서 뷰익 차 내 점유율도 12% 가량 낮아졌다.
1951년식은 그릴을 바꾼 뒤 장축형 세단에도 리비에라라는 명칭을 붙였으며, 세더닛(Sedanet)과 일반 세단을 단종시켰다. 판매량은 약 66000대를 기록했다.
1952년식은 전에 비해 변화의 폭이 작았고, 파워스티어링을 옵션으로 추가하고 4배럴 카뷰레터를 장착해 출력이 170마력으로 늘어났다. 약 51000대가 이때 팔렸다.
1953년식을 맞아, 설계된 지 16년이 지난 로드마스터의 직렬 8기통 엔진이 쇼트 스트로크식[6] V8엔진으로 대체되었다. 마침 이때는 뷰익의 창사 50주년이기도 했고, 뷰익에서는 기존 엔진의 배기량인 320ci(5.2L)보다 살짝 늘어난 322ci(5.3L) V8 네일헤드(Nailhead) 엔진을 설계해 장착했다. 엔진 배기량에 큰 변화가 없는 대신 출력이 188마력으로 늘어났고, 엔진 압축비가 늘어나면서 토크도 높아진데다가 엔진 무게도 훨씬 갸벼워졌다. 엔진 크기가 작아진 덕분에 휠베이스를 줄일 수 있었는데, 대신 외양상으로는 V-8 엠블럼과 휠캡 디자인 정도만 바꾸었다. 변속기로는 빠르고 조용한 가속을 자랑하는 트윈터빈(Twin-Turbine)식 다이나플로우 변속기를 장착했다. 편의장비로는 파워 스티어링과 파워 브레이크, 12볼트 발전기를 장착했으며, 선택장비로 에어컨을 도입했다.
새 라인업으로는 스카이락(Skylark)이라는 이름의 컨버터블이 제공되었고, 캐딜락 시리즈 62 엘도라도와 올즈모빌 98 피에스타와 같이 특수 제작된 차량이었다. 일반 컨버터블의 반쯤 닫힌 뒷펜더 대신 완전히 개방된 뒷펜더가 장착되었으며, 벨트라인을 낮추고 앞창문의 높이를 낮추었다. Sweepspear 장식도 일반 로드마스터에 비하면 간결하게 바꾸었으며, Ventiports 흡기구 장식을 제하는 대신 켄슬리-헤이즈(Kelsey-Hayes)제 와이어휠이 장착되었다. 이 해는 로드마스터 에스테이트 왜건이 생산된 마지막 해였고, 당시 돈 5천 달러였던 스카이락 다음으로 비싼 4031달러의 가격표가 붙었다. 1953년식은 총 79137대가 판매되었으며, 왜건 버전은 미국의 대량생산차로서는 마지막으로 목제 차체를 장착한 차량이었다.
2.6. 6세대 (1954~1956)
1954년식 로드마스터는 뷰익 슈퍼, 올즈모빌 98, 캐딜락 라인업 전반과 같이 C-바디 플랫폼을 공유했으며, 욕조 형상의 비교적 현대적인 차체 라인과 "Dagmar Bumper"라는, 촘촘한 세로줄이 들어간 새 범퍼 그릴이 적용되었다. 1953년식에 비해 덩치가 대폭 커졌고, 수직형 B필러와 파노라마식 앞창문, 총알 형상의 후미등, 자그마한 테일 핀이 적용되었다. 2도어 사양의 좌석에는 크롬 줄이 들어갔으며, 4도어 사양은 뒷좌석에 팔걸이를 추가했다. 5.3L 엔진의 출력을 200마력으로 높인 뒤 2단 다이나플로우 자동변속기를 조합했으며, 왜건 및 일반형 2도어 쿠페는 단종되었다. 1956년식은 이전 대비 판매량이 떨어진 50600대가 판매되었다.
1955년식은 뒷펜더 장식을 넓게 만들고 금색 레터링과 보닛 장식을 추가했으며, 로드마스터 전용으로 휠캡 장식과 그릴을 추가했다. 엔진 출력도 236마력으로 증가했고, 변속기도 가변식 피치(variable-pitch)를 적용해 고속도로에서의 가속력을 개선했다. 또한 후진등이 기본 장착되었다. 1956년식은 총 64500대가 판매되었다.
제이 레노가 1955년식 2도어 리비에라 하드탑 사양을 소유하고 있다.
1956년식 로드마스터는 캐릭터라인을 얇고 점잖게 손보았으며, 두 줄로 된 크롬 장식이 트렁크에 추가되었다. 모델명 레터링은 문 쪽으로 이동했고, 범퍼 그릴의 탄창 모양 장식은 총 조준장치 형상이 되었다. 자동변속기에 스타터 휠 2개를 추가해 변속기를 개선했으며, 대시보드도 속을 채운 것으로 교체했다. 무엇보다도 이번에는 4도어 하드탑 세단인 리비에라(Riviera)가 등장해, 일반 세단보다 두 배나 많이 팔리고 당대 최고 인기를 끌었던 로드마스터로 기록되었다. 총 53500대가 판매되었고, 그 중 24770대가 4도어 하드탑이었다.
2.7. 7세대 (1957~1958)
1957년식 로드마스터는 옆부분이 대폭 꺾인 앞창문을 장착해 시야가 훨씬 넓어졌다. 뷰익 특유의 Sweepspear 라인에는 빨간색 액센트가 들어갔으며, 지난 세대의 "Dagmar Bumper" 그릴 범퍼를 계승했다. 연료 주입구를 뒷범퍼에 장착했으며 모델명 레터링이 그릴과 트렁크에 적용되었다. 단일 배기관이 기본이되 이중 배기관을 고를 수 있었다. 2도어 사양은 후측면에 곡선 모양의 크롬 장식이 들어갔으며, 4도어 사양은 로드마스터 레터링이 그 자리에 들어갔다. 세단은 트렁크에서 뒷창문까지 연결되는 크롬 장식이 들어가있었다. 실내는 속을 체운 대시보드가 들어갔다. 나일론 및 브로드클로스(broadcloth) 직물로 마감된 실내가 4도어에 들어갔고, 2도어에는 나일론, 컨버터블에는 가죽으로 마감된 인테리어가 제공되었다.
엔진으로는 6.0L 300마력 엔진이 2단 다이나플로우(Dynaflow) 자동변속기와 함께 적용되었으며, 볼 조인트식 서스펜션을 장착해 핸들링이 좋아졌다. 4도어 하드탑 사양은 당시로서 인기가 좋았고, 결국 일반형 세단이 단종될 정도였다. 1957년 3월에는 파워 시트와 파워 윈도우, 문 하단까지 연장된 카펫, 한 덩어리로 구성된 뒷창문, 고급 휠캡, "Series 75" 레터링이 들어간 모델 75(Model 75)를 추가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미국의 경제 불황으로 인해 1957년식은 약 3만 3천대로 판매량이 주저앉았다.
1958년식은 GM 창립 50주년을 기념해 스타일을 대폭 갈아엎었으며, 상급 사양의 스타일링이 적용된 사양을 모든 브랜드에 추가했다. 뷰익 역시 로드마스터 리비에라(Roadmaster Riviera)라는 라인이 추가되었다. 이제는 로드마스터 75 사양만 판매되었으며, 그릴을 훨씬 각진 것으로 갈아엎고 Ventiports 흡기구 모양 장식도 삭제한 뒤 캐릭터라인도 이전의 Sweepspear 라인과는 다른 모습이 되었다. 트렁크의 모델명 레터링은 뷰익 엠블럼 밑의 사각형 엠블럼 안에 새겨지는 식으로 변경되었다. 펜더 주변에 크롬 장식이 추가되어 훨씬 화려해졌고, 4점식 헤드램프도 이때 적용되었다. 브레이크도 금속 라이너와 알루미늄 드럼이 적용되는 것으로 바꾸어 당대 최고의 성능을 기록했지만, 판매량이 약 1만 4천대까지 떨어져 수습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결국 1959년식 뷰익의 라인업이 개편되면서 로드마스터란 이름은 삭제되었고, 뷰익의 기함급 라인의 이름으로는 엘렉트라가 1991년까지 계속 자리잡았다.
2.8. 8세대 (1991~1996)
1991년에는 33년만에 로드마스터라는 이름이 부활했는데, 이전에 생산했던 로드마스터의 후속이 아닌, 뷰익 에스테이트라는 풀사이즈 스테이션 왜건의 후속모델로 등장했다. 따라서 왜건 모델이 먼저 판매되었다. 또한 플랫폼도 뷰익 에스테이트에서 쓰던 B-바디가 적용되었다. 엔진은 V8 5.0L L03, 5.7L L05[7] , 5.7L LT1[8] 3가지가 있었고 4단 4L60 자동변속기가 맞물렸다. 생산은 텍사스 주의 알링턴(Arlington) 공장에서 담당했다.
1992년에는 세단이 추가되었는데, 왜건 버전이 카프리스/커스텀 크루저의 단순한 뱃지 엔지니어링 버전이었던 것과 달리, 세단 버전은 외장 부품을 새로 디자인해 훨씬 각지고 보수적인 디자인으로 바뀌었다. 4세대 카프리스를 보고 자신감이 생긴 GM 측에서 캐딜락과 뷰익, 올즈모빌에도 같은 플랫폼으로 차를 만들려고 하자, 뷰익에서는 이를 가지고 캐딜락 출신의 수석디자이너인 웨인 캐디(Wayne Kady)의 지휘 하에 세단을 새로 디자인했다. (참고 링크)
1996년 12월 13일에 쉐보레 카프리스 4세대와 함께 후속 없이 단종되었고, 이후 아랫급이자 전륜구동 차량인 파크 애비뉴가 뷰익의 기함이 되었다. 로드마스터를 만들던 알링턴 공장은 픽업트럭과 SUV를 만들게 되었고 플랫폼으로 썼던 B-바디는 1926년 이후 70년만에 완전히 퇴역하게 되었다.
3. 미디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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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TA 산 안드레아스에 나오는 Elegant라는 차량이 1992년식 로드마스터를 모티브로 디자인되었다. 하지만 원판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으로, 오히려 1998년에 나온 포드 크라운 빅토리아를 더 닮은 듯하다. 게임 내의 Management Issues라는 미션에서 위 사진의 차량과 똑같은 검정색 엘레간트를 이용한다.
- 히트맨: 앱솔루션에서 중후반부에 호프 타운 외각에 위치한 교회에 세워져 있는 영구차로 6세대 모델이 나오는데 나중에 교회에서 스컬키 보안관을 제거한 47이 이차를 몰고 호프 타운에서 나와 시카고로 간다.
톰 크루즈 주연의 * 레인맨에서 5세대 컨버터블 모델이 톰 크루즈 다음으로 비중이 많은 주인공급의 분량으로 등장하는 차량이다.유년기의 톰이 아버지의 고성능 컨버터블 뷰익을 자랑하고 싶어 몰고나갔다가 아버지가 톰을 차량도둑으로 신고하는 바람에 아버지와의 불화를 불러온 동시에 스토리라인에서 뺄수없는 존재이기도...
4. 둘러보기
[1] 452대가 이 옵션을 달고 출고되었다.[2] 당시 4도어 컨버터블 고객 중 패스트백 차체는 3명이 구입해갔다.[3] 캐딜락 시리즈 60, 뷰익 슈퍼, 올즈모빌 시리즈 90, 폰티악 토페도와 공유하는 플랫폼이다.[4] 일반적으로는 카뷰레터 1개만 사용하다가 고속주행 시에는 2개가 모두 작동하는 식으로, 4배럴 카뷰레터의 시초이다.[5] 당시 뷰익의 수석디자이너인 네드 니클스(Ned Nickles)가 환기구에서 화염을 뿜는 전투기 느낌을 가미해, 자신의 1948년식 로드마스터에 호박색 등 네 쌍을 추가한 것이 시초가 되었다. 이를 본 당시 뷰익 사장도, 이 장식을 엔진 사이즈에 맞춰 모든 뷰익 라인에 추가하도록 하면서 양산화되었다.[6] 엔진 실린더의 보어(폭)보다 스트로크(길이)가 짧은 엔진 설계로, 피스톤의 속도에는 안전 한계가 있어 스트로크가 짧으면 고회전 엔진이 된다. 스포츠카 등에 널리 쓰인다.[7] 같은 엔진이 1995~1996년식 허머 H1에도 적용된 적이 있다.[8] 쉐보레 콜벳 C4에 적용된 엔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