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제1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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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Primeira República Brasileira. 근대 브라질의 첫 공화국 체제. 브라질에서는 '옛 공화국'(República Velha/헤푸블리카 벨랴)라는 이름으로도 부른다.
2. 역사
브라질은 페드루 1세의 주도로 포르투갈 왕국에서 독립해 브라질 제국이 되었으나 500일 전쟁, 내전 등으로 안정을 찾지 못하다가 1841년 어린 나이에 황제가 된 페드루 2세가 직접적 통치를 시작하면서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 초기 페드루 2세 황제는 커피 재배의 장려 및 보급과 유럽 국가들의 이민을 받아들이는 등의 강력한 경제발전 정책을 취했으나, 기득권 세력의 대립이 잦아졌다.
브라질은 아메리카에서 노예제가 유지되는 마지막 나라였는데, 예전부터 노예제를 좋아하지 않았던 페드루 2세는 1888년 전격적으로 노예제 폐지에 서명했다. 허나 이 과격한 개혁은 농장주들과 자본가들의 큰 불만을 불러일으켰고, 이들 중 상당 수를 공화주의자로 전향하게 만들었다. 또한 페드루 2세의 치세 기간 동안 나라가 안정되면서 식자층이 크게 늘었고 황제 자체를 구시대의 유물로 여겨 못마땅하게 여기는 공화주의자들이 매우 늘었다. 1889년 폰세카 장군 주도의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고, 1889년 11월 15일 브라질 의회는 제정의 폐지를 선포했고 페드루 2세와 그 가족들을 국외로 추방했다. 페드루 2세는 그 말을 듣고 즉각 수락하여 포르투갈로 떠나버렸다.
폰세카 장군은 공화국을 선포하고는 대통령이 되었고, 의회는 브라질을 공화국으로 개편하는 새 헌법을 제정하였다.
브라질 제1공화국은 미국을 본따 대통령제, 연방제, 삼권분립을 기조로 한 공화국이었지만 이전 브라질 제국과 마찬가지로 문맹자들에게 투표권이 없던지라[1] 실질적으로는 대지주들의 과두정 체제였다. 제1공화국 시기의 브라질에는 코로넬리즈무(coronelismo)라고 불리는 정치체제가 들어섰는데, 이는 코로넬리스(coroneles)라고 일컬어진 대지주들과 그들 영향력 하에 놓인 유권자들의 몰표에 기반한 일종의 후견주의 체제였다. 형식적으로는 무산자들도 투표권을 가졌지만 이들은 대지주들의 압력 하에 있어 사실상 대지주들이 지지하는 후보에 표를 줄 수밖에 없었다.
이 시기에는 상파울루와 미나스제라이스의 대지주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 상파울루 공화당과 미나스제라이스 공화당이 일종의 동맹을 맺고 번갈아가면서 정권을 잡았는데, 이를 흔히 두 주의 주 산업을 따서 카페 콩 레이치(café com leite), 즉 커피와 우유의 시대라고 일컫는다. 상파울루 공화당이 특히 커피 지주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면, 미나스제라이스는 그런 경향이 덜한 편이었다. 한편 남부 히우그란지두술의 경우 전통적으로 접경 지역이었기 때문에 군의 영향력이 강한 지역이었는데, 이 지역 지주들에 의해 결성된 히우그란지 공화당 역시 군부와 정치면에서 많은 시각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브라질에서도 서서히 산업화가 진행되어 도시 노동자 계층이 생겨났으며, 이들은 자신의 권리 신장을 위해 전통적인 대지주 중심의 코로넬리즈무를 깨뜨리려 했다. 더불어 대지주들 사이에서도 분열이 일어났는데, 상파울루와 미나스제라이스의 동맹은 1929년 상파울루 출신의 워싱턴 루이스 대통령이 후계자를 상파울루 주 출신으로 임명하면서 깨지게 되고, 이에 미나스제라이스는 다음해 치러진 1930년 대선에서 히우그란지두술과 동맹을 맺고 히우그란지두술의 주지사 제툴리우 바르가스를 대통령 후보로 내세운다.
세계 대공황의 여파로 브라질의 경제는 타격을 입게 된 상황이었는데, 이 때 조직력에서 앞선 상파울루의 줄리우 프레스치스가 승리를 거두었고, 바르가스의 러닝메이트였던 부통령 후보인 주앙 페소아가 선거 이후 피살당하기도 하였다. 이에 히우그란지두술과 미나스제라이스를 중심으로 반란이 일어났고, 이어진 군사 쿠데타로 제1공화국은 붕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