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뤼노 메그레

 


https://media.gettyimages.com/photos/politician-bruno-megret-poses-during-a-portrait-session-in-paris-on-picture-id925100700?k=6&m=925100700&s=612x612&w=0&h=F3XQhEXW--Fogpy9rb3tu7lhv-KbLaboaAdNTuoI2lY=
1. 개요
2. 생애
3. 정치 활동
4. 각주


1. 개요


Bruno Mégret, 1949.4.4 ~
프랑스의 정치인으로, 국민공화국운동의 전 당수를 지냈다.

2. 생애


파리에서 태어났으며, 에콜 폴리테크니크를 졸업했다. 미국에서 유학한 적이 있는데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를 나왔다.
여기까지는 뭐 그럭저럭 했지만...

3. 정치 활동


1975년 이반 블로를 만나면서 인생에 전환점을 맞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게 극우였는데, 애당초 메그레는 딱히 극우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고, 좌파도 우파도 아닌 그냥 아무렇지도 않은 정도였다. 그런데 블로를 만나면서 극우로 틀기 시작한 것.
다만 이 때까지는 극우보다는 우익에 가까웠으며, 1981년 총선 당시에는 공화국연합 소속으로 사회당미셸 로카르[1]와 맞붙은 적이 있었을 정도로 별로 극단적인 면모가 드러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로카르에게 패해 떨어지면서, 그간 공화국연합의 온건 노선에 회의를 느끼게 되었고, 결국 강경 노선으로 선회하는 과정에서 공화국연합을 떠났다.[2]
1984년 국민전선이 유럽의회 선거에서 행보를 보이며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 여기에 눈독을 들이다가, 당수 장마리 르 펜의 도움으로 이듬해 정식으로 입당했다. 1986년 이제르 주의 국회의원으로 도전을 시사했으며, 당 내 경선에서 장피에르 스티르부아를 꺾고 후보로 선출되어 당선되었다. 1988년 대선 때는 르 펜 캠프의 조직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이렇게 르 펜과 인연을 맺으면서 후계자로까지 언급되었으나, 르 펜의 극단적인 인종주의에 회의감 등을 느끼면서 서서히 갈라지기 시작했고, 무엇보다도 르 펜이 브뤼노 골니쉬나 자신의 딸인 마린 르 펜 등을 후계자로 검토하면서, 메그레는 당에서 왕따 신세가 되었다. 결국 분노한 메그레는 1998년 국민전선을 탈당했으며, 이듬해 국민공화국운동(MNR)을 창당했다.
2002년 대선에 출마했다. 부인과 같이 찍은 이색적 포스터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기호 1번'''을 차지했지만, 대한민국과는 달리 프랑스에서는 기호가 무작위이기 때문에 기호 1번은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한다. 그리고 대선 출마 또한 르 펜과의 경쟁 심리 때문에 나선 것이었고, 당연하겠지만 당선이 된다거나 하는 건 전혀 아니었다. 결국 2.33%밖에 얻지 못해 광탈. 그러나 중요한 건 이게 아니라, 경쟁자였던 르 펜이 득표율 16.86%로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결선에 진출하면서 전국이 충격에 빠졌다. 모든 후보가 반(反) 르 펜을 외치며 자크 시라크를 지지하는 와중에,[3] 메그레는 유일하게 르 펜을 지지했다. 당연하겠지만 르 펜은 결선에서 겨우 17.8%밖에 얻지 못해, 제대로 떡실신했다(...).
2007년 대선에도 출마를 시도했지만, 결국 르 펜을 지지하며 불출마했다. MNR이 사실상 메그레의 1인 정당이고, 무엇보다도 이 당 소속으로 지방선거에 도전까지 했던 막심 브뤼네리가 시라크 암살을 기도한 사건으로 당 자체가 평판이 급격하게 나빠지면서, 본인으로서도 가망이 없다고 판단했던 모양. 다만 이 것만 갖고 르 펜과 화해했다고 보기는 어려운데, 2008년 르 펜이 메그레의 뇌물수수 의혹을 제기하면서 여전히 앙숙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당연히 메그레는 아니라고 응수했지만, 정작 본인은 일전에 이라크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은 물론 심지어 대한민국의 문선명(!)한테도 뇌물을 받은 흑역사가 있다.
2008년 말 당대표직에서 사퇴했으며, 정계에서 완전히 은퇴했다. 당시 59세로 정치적으로는 아직 혈기왕성한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계속 기울어지는 세 속에서 본인으로서도 가망이 없다고 판단한 모양. 그렇다고 탈당한 것은 아니지만, 이 시기부터 당이 급격하게 몰락하기 시작하면서 사실상 탈당한 것과 다를 바 없다. 물론 당 자체는 지금도 활동은 하는데, 그냥 마크롱 비난이나 하는 것 외에는 특별한 활동은 하지 않고 있다.
현재는 가끔 강연만 하는 정도. 2017년 마크롱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강연을 했다가 물의를 빚었다.

4. 각주


[1] 후에 총리가 되었다.[2] 다만 그가 공화국연합을 떠난 것은 비단 이념적 차이 만은 아니었다. 미국에서 유학까지 했음에도, 프랑스에서 정치하기 위해서는 국립행정대학이나 파리정치대학을 나오는 것이 거의 기본처럼 여겨지는데, 메그레는 여기를 나오지 않은 것. 하마터면 니콜라 사르코지조차도 이 대학 졸업장은 없지만, 그래도 수학 자체는 했었다. 학벌 문제가 비단 대한민국만의 일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부분.[3] 그러나 노동자투쟁당아를레트 라귀에는 이런 와중에도 기권해 무진장 욕을 먹었다. 라귀에는 가장 극좌적인 사람으로 르 펜과는 정확히 대척점에 있었는데, 시라크나 르 펜이나 그 놈이 그 놈이라며 차라리 기권하겠다고 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 라귀에의 평판이 매우 나빠졌으며, 당의 이미지에도 악영향을 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