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
1. 개요
중국의 비파(琵琶)에서 유래된 일본의 전통 악기. 목이 줄감개 부근에서 90도에 가깝게 뒤로 꺾인 곡경(曲頸) 비파이다.
다양한 변화가 일어났으며 대개 4현이지만 지판의 프렛(fret) 수나 크기, 모양 등에서 차이가 있다. 과거에는 5현 비파도 있었지만 명맥이 끊겼고, 대신 근대에 치쿠젠비와(筑前琵琶)나 니시키비와(錦琵琶) 등 새로운 5현 비와가 나왔다.
한국이나 중국의 비파와는 다르게, 바닥에 붙은 껌 떼는 칼처럼 생긴 채(撥)로 현을 뜯어 연주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한국은 거문고와 유사하게 술대를 썼었고, 중국은 손가락에 끼우는 가조각으로 연주하는 것과는 비교되는 모습. 샤미센도 이와 모양이 비슷한 채로 연주한다. 다만 샤미센의 채가 보다 목이 길고 가늘게 생긴 편. 아래에 나오는 사츠마비와 등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2. 종류
2.1. 가쿠비와(楽琵琶)
일본의 궁중음악 가가쿠에 사용되는 비와. 가장 역사가 오래된만큼 모양도 가장 중국 비파와 흡사하다.
중국의 비파에 가장 흡사한 생김새를 하고 있지만,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작은 주걱 모양으로 생긴 채로 연주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연주 시 연주자의 몸짓도 주목할 만한데, '''반드시 느리고 우아하게 팔을 들어 느리고 우아하게 현을 아르페지오 주법으로 하나씩 뜯은 다음 느리고 우아하게 원래 위치로 팔을 복귀시킨다'''. 연주 시 채로 악기 표면을 세게 문지르게 되기 때문에 악기 보호와 소음 감소를 위해 연주하는 부위에는 가죽을 덧댄다.
크기 또한 일본의 샤미센, 기타 비와류 등 다른 류트형 현악기들과 비교해 봐도 독보적으로 크고(약 100cm)[1] 무겁다(약 7kg). 따라서 반드시 자리에 양반다리로 앉아 연주해야 하며, 서거나 의자에 앉아서 연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크기가 크고 무게가 많이 나감이 단점이라 이후 개발된 비와들은 전부 크기가 상대적으로 작다.
일본이 메이지 유신으로 근대화를 이룩한 이후, 가가쿠의 음계가 서양 음악의 음계에 맞춰 미세하게 변하였는데, 그 최대 피해자가 바로 가쿠비와이다. 음이 높아짐에 따라 현을 더 세게 감아야 해 현이 끊어지는 빈도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최근의 산성비 때문에 골골대는 누에들한테서 뽑은 실크로 현을 만드느라 현의 내구도가 많이 낮아졌는데 더 세게 감으니 허구한 날 현이 끊어져 나간다고 한다. 비와의 현은 실크에 손으로 염색해 손으로 꼰 줄을 쓰기 때문에, 한두 푼 하는 물건도 아닌데 자주 끊어지니 가쿠비와 연주자들의 고충이 클 듯.
일본 황실 궁내청 소속 황실 창고 쇼소인에 5현 가쿠비와가 소장되어 있는데, 장식이 굉장히 아름답지만 연주 흔적이 전혀 없어 연주용이 아닌 장식용이라고 추정되고 있었다. 하지만 2010년에 복원해 근현대 중국식으로 연주하는 사람이 나왔다. #
2.2. 헤이케비와(平家琵琶)
일본의 인기 있는 전통 서사시 헤이케모노가타리를 읊을 때 사용하는 전용 악기. 가쿠비와와 상당히 유사하게 생겼지만 크기는 훨씬 작아, 일반적인 기타만 하다. 현재는 좀더 후대에 개발된 밑의 비와들과 샤미센 등에 밀려서 존재감이 거의 없지만, 밑의 사츠마비와나 치쿠젠비와도 결국 헤이케비와에서 개량된 물건들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역사적으로 중요하다.
귀 없는 호이치의 일화에서 호이치가 연주하던 비파가 바로 이것이다. 호이치의 일화에서 보듯, 원래는 맹인 악사들이 연주하는 음악이었다. 현재는 진짜로 대를 이어 시각장애인 스승에게 교육받은 시각장애인 악사는 위 영상의 이마이 켄교 한 명뿐이다.
2.3. 사츠마비와(薩摩琵琶)
에도 시대 규슈 남부의 사쓰마 번(현재의 가고시마현)에서 개발된 비파. 헤이케비와를 바탕으로 해 목을 보다 길고 굵게 만들어 여러 노래에 대응할 수 있게 개량했음이 특징이다. 에도 시대의 다이묘들이 칼 들고 설치는 불한당과 큰 차이가 없던 휘하 사무라이들에게 교양이라는 것을 붙여주기 위해 고심한 한 가지 결과물이다. [4]
본디 사무라이들이 연주하던 악기이기 때문에 악기 자체에 다른 비파와는 사뭇 다르게 거친 특징이 두드러진다. 일단 프렛이 최대 높이 4.5 cm에 이를 정도로 높이 솟아 있어, 연주 시에는 지판을 짚는 것이 아니라 프렛 사이의 공간을 짚어 음의 높낮이를 조절한다. 프렛이 3개에서 5개밖에 되지 않아 연주할 수 있는 음의 개수가 한정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어차피 프렛이 저렇게 높이 솟아있으니 그냥 손가락을 더 세게 눌러 운지하면 된다. 이 과정이 상당히 비효율적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손가락이 굉장히 아픈데, 이 고통을 참는 과정 또한 사무라이로서 수련의 일부로 받아들이도록 지시되었다 한다.
또 하나 두드러지는 특징은 연주 시 사용하는 채이다. 영상에서도 보다시피 굉장히 크고 아름답다(...). 너비가 무려 27cm에 달할 정도로 지나치게 크고, 인체공학을 완전히 무시한 모양새 때문에 채를 쥐는 오른손 또한 현을 짚는 왼손 못지않게 큰 부담이 간다. 채가 왜 이렇게 거대한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지만, 사무라이들이 연주하던 악기이다 보니 유사시 무기로 사용할 수 있으라고 그렇게 만든 것이라는 말이 있다.
음색 또한 큰 특징인데, 둔탁하고 중후한 가쿠비와나, 맑게 울리는 헤이케비와와는 다르게, 굉장히 날카롭게 울리는 음색을 지니고 있다. 거기다 주법 중 그 거대한 채로 줄을 긁어 소리를 내는 법도 있기 때문에, 마치 공포 영화의 음향 효과로 적합할 법한 소리도 낼 수 있다. 이 특이한 음색은 악기의 구조에서 유래한 것으로, 사츠마비와의 높이 솟은 프렛에 현이 진동하며 미세하게 부딪히는데, 여기에서 특유의 소리가 나는 것이다.[5]
다른 비와들은 연주 시 채가 악기 본체에 닿아도 소리가 나지 않게 하기 위해 연주하는 부근에 부드러운 가죽을 덧대지만, 사츠마비와는 오히려 이 소리를 강조하기 위해 연주하는 부근에 더 단단한 뽕나무 등 나무를 덧댄다. 그렇기 때문에 거대한 채가 악기 본체에 부딪힐 때마다 마치 사무라이가 휘두르는 칼처럼 날카로운 소리가 난다.
본디 4현 비파이지만, 가장 높은 4번째 현의 울림을 강조하기 위해 똑같은 4번째 현 두 개를(공명현) 매어 쓰기도 한다. 물론, 연주법은 4현과 전혀 차이가 없고, 단지 4번째 현을 연주할 때는 이 두 개의 현을 동시에 연주하게 된다. 따라서 이쪽도 형태는 5현이지만 본질적으로는 4현 비파라고 봐야 한다.
2.4. 치쿠젠비와(筑前琵琶)
사츠마비와에서 파생되어 메이지 시대에 개발된 비와. 정확히는 사츠마비와와 모오소오비와(盲僧琵琶) 등을 섞어 만든 악기이다. 변하는 음악환경에 맞추어, 샤미센 음악 등에도 대응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졌다. 4현과 5현 두 가지가 있는데, 특이한 점은 4현 비와의 3현과 4현이 같은 소리를 낸다. 따라서 3현 악기인 샤미센과 완전히 동일한 곡의 연주가 가능하다. 샤미센과 동일한 곡을 연주하지만, 음색만은 비와 특유의 음색을 지닌 독특한 악기로서 틈새 시장이 있다. 5현 비와의 경우에는 사츠마비와와는 다르게, 4현과 5현이 서로 다른 소리를 내지만 어째서인지 이쪽은 1현과 3현이 동일한 소리를 내는 경우가 있다. 사실 이 외에도 다양한 조율법이 존재하는데, 현대 음악을 연주하는 데에도 사용되다 보니 곡마다, 연주자마다 조율이 조금씩 다르다.
3. 여담
일본에서 가장 큰 호수인 비와호는 이것과 모양이 비슷하다고 해서 '비와호'라고 이름이 붙었다. 가쿠비와를 눕혀놓은 모습과 유사하다는 듯.
[1] 기타 중에서도 길이가 1m 가까이 되는 물건들이 있긴 하지만, 기타는 특성상 악기의 길이 중 넥의 길이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기 때문에 크기가 상대적으로 덜 부각이 되는 편이다. 반면에 가쿠비와는 사진에서 보다시피 넥이 매우 짧고 대부분이 울림통이기 때문에 체감상으로 그 떡대가 더욱 부각이 된다.[2] 연주자는 현재 일본의 유일한 켄교(検校)인 이마이 츠토무(今井勉). '켄교'는 원래 일본에서 맹인에게 주던 최고 벼슬의 관직명이었지만, 현재는 맹인 전문악사를 부르는 존칭으로 사용된다.[3] 사츠마비와를 제작하는 장인이자 연주자인 이시이 하쿠가(石田克佳)의 연주이며, 영상 중간중간에 연주에 사용된 비와를 제작하는 과정이 소개된다.[4] 나머지는 다도와 노가쿠 등이다. [5] 샤미센도 이와 유사한 음색을 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