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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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삼성 라이온즈에서 활동한 외국인 선수.
2. 선수 생활
홀은 1991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 지명되어 입단했는데 더블A까지는 나름대로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트리플A 승격 후 부진하면서 결국 메이저리그 입성에는 실패했고 마이너리그에서만 활동했다. 그러던 중 KBO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 트라이아웃에 참가하게 되었다.
1999년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를 앞두고 삼성에서는 중견수를 지명하려 했다. 그러나 서정환 감독이 유격수를 원하면서 원래 뽑을 수 있던 선수 대신 유격수 경험이 있고 트라이아웃에서 빠른 발을 보여준 빌리 홀을 지명한다. 홀을 지명하면서 삼성이 놓친 선수가 바로 '''제이 데이비스'''다.[2]
주전 유격수를 맡아달라고 뽑은 홀이었지만,[3] 원래 홀은 마이너리그에서 주로 2루수로 활약했고 유격수는 그야말로 가끔 볼 정도였다. 게다가 수비도 주전으로 쓰기에는 영 안 좋아서 결국 홀을 중견수로 돌렸다. 홀은 마이너리그에서 중견수를 본 경험이 있기도 했는데 원래 자기 포지션이 아니다 보니 외야수비도 불안했다. [4] 결국 홀의 지명은 정규시즌 시작 전부터 실패였던 셈이었다. 시범경기 때 6할대의 타율을 기록하면서 희망의 불씨를 피우는 듯했지만 정규시즌 타율은 0.244로 타격도 그야말로 안습이었다. [5]
홀의 수비나 타격은 그야말로 흑역사로 손꼽히기에 손색 없었지만, 그래도 유일한 장점인 빠른 발을 앞세워 47개의 도루를 기록하면서 정수근에 이어 도루 2위를 차지했다. 비록 도루 1위를 하지는 못했지만 홀의 도루 기록은 2014년 김상수의 53도루, 2015년 박해민이 60도루를 달성하기 전까지 역대 삼성 선수 중 한 시즌 최다 도루 기록이었다.[6] 그의 활약?으로 1999년 삼성은 1991년 해태 타이거즈에 이어 두번째로 팀 140-140을 기록했다.
시즌 후 삼성은 빠른 발 빼고는 장점이 없는 홀과의 재계약을 포기했다. 미국으로 돌아가게 된 홀은 독립리그 팀에 입단해 다시 내야수로서 활동하면서, 미국으로 돌아간 직후인 2000년에는 무려 '''104개의 도루'''를 기록한 것을 시작으로 2002년을 제외하면 매년 40개 이상의 도루를 기록했다. 이러한 기록 때문인지 2003년부터 2년간 플로리다 말린스 산하 마이너리그 팀에서 활동하기도 했지만 메이저리그 입성에는 실패했다. 다시 독립리그로 돌아온 2005년에는 62개의 도루를 기록했고 그 해 은퇴했다.
3. 연도별 성적
4. 관련 문서
[1] 메이저리그 활동 기록이 없다. 여담이지만 이 선수가 마이너에서 승격을 다투던 2002년 밀워키 브루어스에 이름이 같은 유틸리티 야수 빌 홀이 데뷔했다. 체격도 비슷한 흑인 선수라 두 선수를 혼동한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이 빌 홀은 2006년 깜짝 35홈런을 터뜨리기도 했다.[2] 1999년에 삼성이 제이 데이비스를 지명했다면 프로야구 판도는 달라졌을것이다.[3] 당시 삼성의 주전 유격수는 김태균.[4] 그래서인지 그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팬들로부터 '블랙홀'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흑인이라서 자칫 인종차별적 인상을 줄 수 있었지만, 성적이 별로라서 대체로 수긍하는 분위기였다.[5] 시범경기의 기세를 이어가 시즌 초반엔 제법 활약을 해주었다. 하지만 곧 밑천이 드러나며 내리막을 타기 시작했고 때마침 스미스가 살아나면서 홀은 그야말로 묻히게 된다.[6] 김상수 이전의 삼성 소속 국내 선수가 기록했던 한 시즌 최다도루 기록은 1996년 김재걸의 40도루.[7] KBO에서의 성적만 기입[8] 2014년 김상수가 53도루를 기록하기 전까지 삼성 타자 중 한 시즌 최다 도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