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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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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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소속의 외야수. 신일고 - 한양대학교 스포츠산업학과(2008학번)를 졸업하고 2012년 신고선수로 입단했다. 별명은 바개민[21] , 해민 스님[22] , 개신교 신자인 사실이 밝혀진 후에는 해멘, 해렐루야 등등으로 불리고 있다. 도루와 발로 만든 득점이 많아진 2015년에는 람보르기니를 본뜬 '''"람보르미니"'''라는 별명이 생겼다.[23][24] 그리고 2020년에는 팀에 주장이 되어서 잘할 때마다 박캡틴, 또는 햄니+주장님='''햄장님'''이라고도 불린다. 2020년 홈런을 많이 쳐서 '''박거포'''라도 불린다. 본인의 등장곡 'HER'에 나오는 가사를 따서 인스타그램 소개란에 '모두 널 작품이라고 불러☆'라고 쓴 뒤 팬들에게 박작품, 작품님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2014년 스카우팅 리포트에서는 케이윌이라 소개되어 있다. 영타 변환으로 박해민 > qkrgoals > 박goals이 되기도 한다.
2. 아마추어 시절
서울 영중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야구를 시작했다. 1학년 때 부천에 살다가 서울로 이사를 왔다. 전학을 오면 집에서 가까운 학교로 배정을 해주는데 약간 멀지만, 야구부가 있는 곳에 배정을 받았다. 어머니가 일주일간 구청에 전화하셔서 항의했지만 똑같은 대답만 들을 뿐이었다. 만약 집에서 가까운 학교로 배정됐으면 축구부가 있었기 때문에 축구를 할 뻔했다.[25] 산만하고 가만히 못 앉아있었고 의자에 앉아서 공부하는 걸 되게 싫어했다. 인터뷰 영상
서울 영중초등학교 6학년 때는 달랑 9명[26] 뿐인 곧 해체될 야구부라 포수도 본 적이 있었으나, 주로 동창인 백용환이 포수 마스크를 썼다. 포수뿐만 아니라 투수, 유격수, 3루수까지 다 소화했다.[27] 6학년이던 2001년에는 팀의 주장을 맡아 '제1회 박찬호기 전국초등학교 야구대회' 개막 경기에서 시구자였던 박찬호의 공을 받았다.
양천중을 거쳐 한서고로 진학했다가 팀 해체 후 신일고로 전학했으며 신일고 재학 당시만 하더라도 내야수(주로 2루수)를 봤다. 스스로 밝히길 이맘때 이도 저도 아닌 선수였고 지명 될 거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2008학번으로 진학했다. 1학년 때, 필리핀으로 전지훈련을 하러 갔을 무렵에는 '''입스'''가 찾아와 공을 자신의 발등에다 던질 정도였다. 제대로 던져야겠다고 마음먹으면 오히려 말도 안 되는 곳에 던지기도 했다. 펑고 받는 시간을 너무 두려웠고 병살 플레이를 위해 송구하던 중 공을 발 옆에다 던져 공이 우익수 쪽으로 굴러간 적이 있다. 이 때문에 훈련장에 있는 큰 나무 뒤에 숨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자신의 실력 때문에 펑펑 울었다. 1학년을 마치며 쫓겨나듯이 외야수로 전향했다.
외야수로 전향한 뒤, 가까운 거리보다 먼 거리를 던졌을 때 실수하더라도 사람들이 이해해주는 편이라 심리적인 여유가 생겼고 입스를 극복할 수 있었다.
대학교 3학년 때부터 여유로운 개인 시간에 놀기보다는 개인 연습에 몰두하면서부터 타격이 살아나기 시작했다.[28] 한양대 4학년 때인 2011년에 타율 0.429를 기록, 대학리그 타자 우수상을 받았다.
2011년 8월 25일 신인드래프트 날, 이때는 당연히 프로 지명을 받을 거라 예상하며 자동차를 사주겠다는 아버지와 함께 차를 고르며 큰 기대를 하고 있었지만 2012년 신인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지 못했다. 스스로 생각했을 때 내야수에서 외야수로 전향한 지 2~3년밖에 되지 않아 수비도 아마 잘 안 됐을 것이고 입스를 극복한 후 자신감이 붙어 외야에서 자주 강하게 송구를 하다 3학년 때부터 어깨가 아팠지만 참고 던져 4학년 때까지 아픔이 이어졌고 스카우터 사이에 어깨가 좋지 않다는 소문이 돌면서 지명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 말한다.
드래프트 후 바로 삼성에서 천보성 당시 한양대 감독에게 육성선수 입단 제의를 하는 연락이 왔다. 또한, 당시 한양대학교 코치였던 김기덕이 과거 쌍방울 레이더스 선수여서 SK에 인맥이 있어 입단을 기회를 알선해주겠다고 했다. 두 팀 모두 입단 제의를 했으나 천보성 감독이 '신인드래프트를 끝낸 후에 삼성은 바로 오라고 했고 SK는 김기덕 코치의 부탁을 받아 오라고 한 거였기 때문에 삼성으로 가는 게 더 나을 것'이라 조언했고 결국 아버지의 뜻대로 본인의 연고지도 아닌 대구의 삼성 라이온즈에 신고선수 테스트를 받고 입단해 삼성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이 당시에 박해민은 지명을 받지 못한 것에 크게 상심하여 신인드래프트 날은 계속 울며 야구를 더 하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29] . 또한 삼성에 신고선수로 입단하기로 한 후, 마지막 야구 월드컵이었던 2011년 파나마 야구월드컵 국가대표로 뽑혀 도미니카전 때 9회초 2아웃 상황에서 동점 3점 홈런을 때렸다.
3. 프로 시절
3.1. 2012, 2013 시즌
3.2. 2014 시즌
3.3. 2015 시즌
3.4. 2016 시즌
3.5. 2017 시즌
3.6. 2018 시즌
'''타격 커리어하이.''' 여전한 수비와 꽤나 되는 교타 능력을 보여주며 데뷔 이래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다만 도루가 줄어버린 점은 아쉬운 부분.[30]
3.7. 2019 시즌
3.8. 2020 시즌
20시즌 팀의 새로운 주장으로 선임되었다. 또한 등번호가 13번으로 변경되었다.[31] 야구 포지션 중 가장 운동량이 많은 센터 포지션인 중견수를 맡아오던 만큼 직전 시즌에서 체력의 한계를 절실히 체감한 터라 본인의 체력 보강과 함께, 박해민에 대한 코칭스태프의 출장 횟수 조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3.9. 2021 시즌
4. 국가대표 경력
4.1.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8, 9번대 하위타순으로 쓰면 딱인 선수를, 그것도 소속 팀에서 리드오프랍시고 나와서 클린업 타석에 주자도 못 쌓는 선수를 국가대표 멤버로 차출한 선동열의 안목이 의심되는 상황이다. [32]
“대표팀 타자 13명의 성적표” 1위 이정후, 13위 오지환
대표팀은 물론 규정 타석을 채운 외야수 중 wRC+ 단독 꼴지를 기록하고 있음에도 기사, 댓글, 인식 등 모든 어그로가 오지환에 끌리며 조용히 묻혀가는 중이다.(...) 심지어는 “이대호·박병호에겐 없는 것” 3루타 1위 박해민 같은 기사같지도 않은 쉴드까지 나올 정도.
대만전에서 9회에 대주자로 나와 도루에 성공하며 추격의 불씨를 살렸지만, 후속 타자들이 모두 아웃당하며 박해민이 만든 기회를 어이없게 날려버렸다. 결과는 2:1 패배.
정작 아시안게임에서 보여준 모습을 바탕으로 주전 외야수들보다 낫다, 손아섭과 김현수가 1할대에서 허덕이고 있을때 [33] [34] 7타수 3안타라는, 단기전에서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비록 타구 질은 좋지 못했으나 두번이나 내야안타로 출루했고, 하나는 2타점 싹쓸이 2루타였다. 평소 지적받은 선구안도 2볼넷으로 개선된 모습을 보여주는 중, 도루도 2개 기록했다. 최소한 박해민은 본인의 임무를 모두 수행했다. 하지만, 여론은 여전히 야구 대표팀에 냉소적이고 특히 병역특례와 관련해서 오지환과 더불어 항상 거론이 되면서 본인에겐 잘하고도 욕먹는 안타까운 상황으로 보인다.
결국 일본을 꺾고 아시안 게임에서 우승해 병역면제를 받는 데에는 성공했다.
5. 플레이 스타일
수비는 외야 전 포지션을 커버할 수 있지만 리그 최고의 수비범위를 살리기 위해 보통 중견수로 들어가며, 간간이 1루 백업으로도 들어간다. 정형식의 이탈을 깔끔하게 메운 정상급 낙구 판단과 포구 능력에 빠른 발을 활용한 넓은 수비 범위를 자랑한다. 고교 때까지는 2루수를 봤으나, 내야 공백이 길고 어깨가 좋지 못해 내야에선 1루만 맡을 수 있다. 1루 수비는 적은 경험을 생각하면 처음부터도 나쁘지 않았지만, 이승엽, 채태인[36] 같은 기존 1루수에 비하면 팔이 짧아서 공을 놓치거나 하는 아쉬움을 보인 적도 있었다. 2015년에는 군 복무를 마치고 새롭게 1군에 합류한 구자욱이 1루수에 적응하면서 1루로는 잘 들어가지 않았고 구자욱이 부상으로 2군으로 내려갔을 때 1루를 맡았다. 하지만 2016년 구자욱이 부상으로 자리를 비워 1루수로 대신 들어갔을 때는 1루 수비 역시 더욱 발전을 해서 전문 1루수나 다름없는 모습을 보여줬다. 자신의 특기인 낙구 지점 판단과 빠른 발로 우익수도 잡기 힘든 파울 플라이를 1루수로서 처리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린 러프가 영입되면서 1루를 볼 일이 없어졌다.[37] 그러나 러프가 미국으로 돌아간 2020년에는 팀 사정상 가끔 1루수로도 출장하고 있다.이순철: 지난 대구 방송때 말씀드렸잖아요. 박해민 선수는 날아가는 새도 잡을거라고요.
정우영: 잡을 것 같네요.
이순철: '''거의 환상적인 수비입니다. 말로 표현이 안되는거에요. 이 정도면. 박해민 선수가 아니면 도저히 잡을 수 없는 타구에요.'''#[35]
2015년까지는 빠른 낙구 지점 판단에 빠른 발과 슬라이딩 같은 허슬 플레이로 타구를 잡아냈지만, 2016년에는 수비 능력이 더욱 일취월장하면서 남들이 슬라이딩으로 잡을 만한 것을 감각과 발로 다 해결하기 때문에 어려운 타구임에도 평범한 듯 잡아내는 사례가 많아졌다. 타구 음을 듣고 낙구 지점을 먼저 예상하고 바로 스타트를 한 다음 낙구 지점에 가서 공을 보며 잡아내는 방식으로 수비를 하면서 어려운 타구를 쉽게 처리하는 능력을 갖추게 것이다. 남들보다 빠른 위치 판단과 스타트, 그리고 엄청난 주력이 합쳐져서 외야 수비 범위는 리그 최정상급.
수비수로서의 유일한 약점은 부상경력이 있는 어깨인데, 팬들 사이에선 소녀어깨라는 악평과 그래도 중하 정도는 된다는 반론으로 의견이 갈린다. 옹호하는 측도 전술한 빠른 발을 살린 넓은 수비범위와 낙구판단, 수비진과의 연계[38] 를 강조하며 중견수의 덕목은 강견이 아니며 군대에서 몸관리 개판으로 한 배영섭[39] 등 보다는 강하다고 할 뿐 어깨가 강하다고 주장하진 않는다. KBO의 주전급 중견수 중에 이용규, 이대형 말고 박해민보다 어깨 약한 중견수는 없다. 어깨가 김강민 수준이었으면 수비수로선 완전체라는 얘기를 들었을 것 인데 아쉬운 부분이다. 물론 그런 어깨를 감안하고라도 리그 최고의 중견수 수비수임은 부정할 수 없다.
주루 툴은 매우 우수해서 2013년 시즌 후 상무 입단 테스트 때 100m를 11.3초에 돌파했을 정도이다. 5년 만에 등장한 60도루 달성자에 4년 연속 도루왕이라는 결과가 이를 말해준다. 일단 출루하면 무조건 뛰거나 뛰지 않더라도 배터리를 흔들기 때문에 상대 배터리도 박해민이 출루하면 상당히 부담스러워 하며 많은 견제구를 던진다. 하지만 상대팀도 데이터가 쌓이고, 15년 도루왕을 차지한 이후 바람이 들어가 과욕을 부리다 견제사나 주루사가 늘었다. 해가 갈수록 도루 성공률이 조금씩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는데[40] 2014년에 81.8% 2015년 85.2%로 높은 성공률을 보이다 2016년 77.6% 2017년 76.9% 2018년 78.3%를 기록했다. 보통 75%정도를 도루의 손익분기점으로 보는데 아슬아슬한 수준까지 떨어졌다.[41][42][43] 물론 도루 성공률이 떨어졌다고 해서 박해민의 주력이 줄었다던가, 상대팀이 편안하게 생각한다는 얘기는 절대 아니다.
문제는 '''그 놈의 타격'''. 수비와 주루 플레이는 S급이지만 '''리그 평균 이상 타자였던 적이 한번도 없다.''' 박해민의 핫&콜드존으로 요약되듯 그 넓은 야구장을 펄펄 날아다니지만, 정작 조그마한 배팅박스 안에서는 작아지는 선수.
전형적인 똑딱이 타자로 장타력은 기대할 수 없고,[44] 근력이 약해서 타구의 비거리 자체가 짧다. 약한 타구질 때문에 우타 전향을 팀에서 제의하기도 했다. 그리고 출루 능력에서는 아쉬움이 있는데, 선구안은 제법 있는 편인데도 배트 컨트롤이 떨어져 컨택이 되지 못해 스트라이크존 한 가운데가 콜드존이다. 어떻게 쳐낸다고 하더라도 상술한대로 비거리가 짧아서 내야를 넘기기가 쉽지 않다. 때문에 타석에서 기습번트를 많이 시도하고 있으며, 그러다보니 번트안타와 내야안타의 비율이 높은 편이다. 그런데 기습번트로 본인이 살 수 있는 플레이는 잘 하는 반면, 주자를 안전하게 진루시키는 희생번트는 자신의 도루 욕심 때문인지 잘 안 대려 한다. 물론 대려고 맘먹으면 잘 대긴하지만...
2014년 12.1%에 머물렀던 삼진률은 풀타임 2년차인 2015년 들어 20.7%로 급증했고, 리그 최다 삼진 6위/최고삼진율 10위 안에 모두 들어갈 정도로 삼진이 많아졌다. 2015시즌 리그 삼진 10위 내에 드는 타자 중 유일한 무홈런 타자다. 최다 삼진율 10위 안에서 박해민을 제외하면 모두 20홈런 이상을 친 타자들이고, 최다 삼진 10위 내에서 박해민을 제외하면 잠실을 홈으로 쓰는 오지환이 10홈런, 그 외 8명은 모두 20홈런 이상 친 장타자들인데 박해민은 똑딱이면서도 이런 타자들과 비슷한 삼진을 당했다. 2016시즌에는 약간의 벌크업, 타격폼 수정으로 삼진은 2015년 126개에서 86개로 대폭 줄었다. 비거리가 약간 늘어나며 순장타율 역시 상승하였고, 2015년에는 하나도 치지 못했던 홈런을 4개 쳐냈다. 그러나 이걸로 타격지표 상승 운운하기에는 더 떨어진 출루율이 뼈아프다. 17시즌에는 홈런은 7개로 3개 늘린 대가로 가뜩이나 낮은 출루율이 2푼이나 더 떨어졌고 wRC+는 4년째 제자리 걸음. 20시즌 홈런이 11개로 데뷔 첫 두자릿수 홈런을 기록했지만 출루율은 0.349으로 낮고 wRC+는 97.8로 100을 달성하지 못했다.
4년 간 2할 후반에서 3할 사이 타율을 유지하곤 있지만 현대 야구에서 거의 의미를 잃은 클래식 스탯 타율 외에 딱히 내세울 타격지표가 없다. 오히려 출루율은 눈에 띄게 감소중이다. 당장 세부지표를 보면 .245의 타율로 커리어로우를 기록했던 2012년의 배영섭 조차도 넘지 못한다. 2017년 들어서는 이게 더욱 더 심해져서 타율과 출루율의 차이가 5푼도 채 나지 않는다. 본인도 이걸로 고민이 많은 듯 하다. 그리고 wRC+는 늘 85~86 언저리, 커리어하이인 2018시즌도 99로 단 한번도 100을 넘긴적이 없다. 리그 평균 이상 타자였던 시즌이 없다는 뜻.
그러나 2020시즌에는 팀이 100경기를 넘긴 시점에서도[45] wRC+ 105.5를 찍으며 리그 평균 이상의 타격을 보여주고 있다. 볼넷 비율 및 BB/K가 데뷔 후 최저 수준이고 삼진 비율은 예년과 비슷한데, 외야로 향하는 타구와 우측으로 향하는 타구의 비중이 데뷔 후 최고 수치를 기록하는 것으로 보아 예년에 비해 좀 더 적극적인 타격 + 당겨쳐서 강한 타구를 생산하는 방향으로 조정이 이루어지면서 타격 성적도 개선된 듯 하다. 하지만 체력이 떨어졌는지 10월에 폭망하며 wRC+ 97.8로 결국 평균 이하로 시즌을 끝내고 말았다.
전체적으로 타자로써만 보자면, 선구안은 평범하지만 컨택이 안 돼서 삼진이 많고 출루율이 타율 대비 처참하며, 장타력은 완전한 똑딱이라고 보기에는 매년 홈런을 5개씩 치는 등 아주 나쁘지는 않다. 즉, 3할타율임에도 불구하고 컨택으로 인해 너무 많은 것을 깎아먹는 타자.
여담으로 상당한 금강불괴이기도 하다. 6시즌 연속 전 경기 출장에서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체력소모가 상당한 중견수 포지션으로 이 기록을 세운것이다. 매 경기마다 수비로 양 코너 백업을 위해 뛰어다니고 간간히 나오는 다이빙 캐치, 주자로 나가면 도루 시도도 많고... 그 6시즌동안 숱한 위험한 순간이 있었음에도 큰 부상을 당해본적이 없는것을 보면 안다치는데도 뭔가 요령이 있는가 싶을 정도이기도 하다. 다만 삼성팬들의 여론은 좋지 않은데 타격생산성도 낮은 주제에[46] 부상은 또 잘 안당해서 매일매일 1번 타순에 올라온 그의 이름을 보며 절망하고 있다. 그의 금강불괴 속성은 크나큰 장점이자 크나큰 단점이기도 하다.[47]
6. 기타
- 2014 시즌 전 상무 피닉스 야구단 입대를 계획 중이었으나 탈락했다. 하지만 붙박이 중견수 후보였던 정형식의 끝 모를 부진, 그리고 음주사고로 인한 임의탈퇴로 기회를 잡아 김헌곤과 함께 외야진의 한 자리를 이끌고 왔으니 참으로 아이러니. 2015 시즌 후 군 입대가 예상되었지만 배영섭이 군 복무 중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은 것으로 인해 군 2년차에는 지명타자로만 나오다시피 하면서 중견수 수비 가능 여부가 불분명했고, 당시 연속 우승을 노리던 삼성의 사정상 2015 시즌을 마치고도 군 입대를 신청하지 않았다. 김헌곤이 전역하면 군에 갈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한 시즌 더 미루게 되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함으로서 군 문제를 덜었다. 그러나 김경문 감독의 눈 밖에 났다.
- 오른손잡이지만 좌타자다. 그래서 류중일 감독은 타구에 힘이 덜 실리고 우타석 스윙시 궤도가 괜찮다며 2014 시즌이 끝난 후 캠프에서 우타자 전향 테스트를 해 볼 계획이라고 한다. # 류중일 감독의 우타자 리드오프 선호와 파워 툴 중시 성향으로 미루어 볼 때 그냥 해보는 말은 아닌듯하나, 성공적으로 우타자 전향에 성공할 경우 재기발랄한 번트 플레이는 보여주기 힘들듯하다. 2015년 전지훈련에서 우타 전향을 시도했지만 좌타자로 보낸 기간이 더 길었던 탓인지 잘 적응하지 못해 열흘 만에 포기했다.
- 빠른생일이다.
- 서울 출생에 가족들도 대구와는 연고가 없음에도, 2014년 말에 가족 모두가 아들 뒷바라지를 위해 대구로 이사했다.
- 여동생(박해영)이 하나 있는데 놀랍게도 20살이나 어리다. 평소 플레이에 독기가 철철 흐르는 데는 이런 가정 사정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여담으로 신인 시절에는 동료들이 이 여동생을 박해민이 사고쳐서 낳은 딸인 줄 알고 아버지로서의 책임 때문에 그렇게 죽어라 노력하는 줄 알았다고. 게다가 박해민이 나이 먹고 점점 구수해지면서 둘이 같이 찍은 사진을 보면 부녀 관계 같다. 박해민과 여동생의 시상식 사진 동생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그런지 동생에 대한 책임감과 애정이 대단하다. 몇 안되는 인스타그램 게시물 중 처음 올린 사진도 동생과 찍은 사진이며 여러 인터뷰에서 동생에 대한 책임감을 표현했다. 삼성 라이온즈 공식 인스타그램에 박해민이 처음 홈런 인형을 받은 뒤 올라온 게시물 내용을 보면, 처음 홈런 인형이 나왔을 때 박해민이 동생에게 인형을 선물하고 싶어 눈을 반짝였으나 홈런을 쳐야 받을 수 있다는 말에 본인은 못 받는다며 고개를 떨궜었다고 한다. 이날 박해민이 받은 홈런 인형은 무사히 동생에게 전달해 박해민이 직접 본인 인스타그램에 인증샷까지 올렸다.
- 2021년 1월 7일 결혼 3년 한달 만에 득남했다.
- 영중초 시절, 제1회 박찬호기전국초등학교야구대회 개막경기에 선발포수로 출전하면서 시구행사에서 시포를 맡았다. 시구는 당연히 박찬호. 박찬호-박해민 배터리
- 마구마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삼성 선수들이 워낙 잘해서 자신 캐릭터는 대주자로만 쓴다고.
- 2014년까진 이승엽급은 아니지만 싸인을 매우 안 해주기로 유명했다. 그러나 여자친구에게 "니가 뭔데 싸인 안 해주는데?", 싸인 몇 번 한다고 손가락 부러지냐는 말까지 들었다고 한다. 그 후 초기엔 팬 서비스가 좋았었다. 하지만 2017년에는 다시 안 좋아져서 이젠 구자욱과 이승엽보다도 팬 서비스가 형편없어졌다. 삼갤에서는 선물을 받아달라고 부탁해야 가져가고 인사도 안 한다고 한다. 또 타격율이 낮은데 과대평가되었다고 평가가 극도로 박해진 상황. 네이버에서도 삼성 선수들 팬 서비스 좀 어떻게 해보라는 말이 나온 걸 보면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2017년 8월 26일 박해민 데이 경기 종료 후에 단상 인터뷰에서 이에 대해 언급했다. 구자욱이랑 강한울도 같이 언급하면서 먼저 피드백을 했다고 한다. 현재는 팬서비스가 다시 좋아졌다. 팬 요청에 사진도 찍어주고 사인도 정성껏 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2021년 초반에 부인과 함께 사용하는 인스타 계정으로 질문 답하기 스토리를 올리는 등 팬들과 어느정도 소통도 하는 것으로 확인된다.
- 2017년 11월 27일 남몰래 포항 지진 성금 1,000만원 기부한 사연이 알려졌다. 박해민은 주변에 알리지 않고 조용히 구호 성금을 내려 했으나 성금을 전달받은 협회를 통해 이 사실이 알려졌다. 기사
- 2017 시즌 종료 후 자신의 여자친구와 결혼했는데, 같은 팀에서 뛰는 황선도의 누나이다. 즉, 황선도가 처남이다. 처음 만나게 된 것도 황선도가 주선해서 인연이 닿게 되었다고 한다.
- KBO 역사상 5번째로 4년 연속 150안타 이상을 달성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 2020 미디어데이에서 대구에서 야구를 다시 시작할 수 있었던 건 의료진 덕분이었다며 4위 공약으로 의료진의 1박 2일 캠프를 걸었다.
- 피자에 굉장히 진심인 듯하다. 데뷔 첫 홈런만 나오면 피자를 외쳐댄다. 라이온즈tv에서 김윤수가 피자를 시킬때 치즈크러스트를 시키자, "윤수가 제대로 시켰네!"라며 좋아했다
- 구단 유튜브 '라이온즈TV'에 관심이 많다. "제가 주장하고 있을 땐 걱정말고 다 찍으세요”라면서 제작진을 북돋는 한편, 자신이 포함된 제작진 단톡방 개설을 구단에 건의해 아이디어를 내고 있다고 한다.기사
7. 논란
2018 아시안게임 야구 국가대표에 승선하며 큰 논란이 되었다. 박해민도 오지환과 더불어 입대를 미룬 후 국대에 승선해 병역해결을 노렸기 때문에 당시 민심도 둘을 국대에 뽑지 말자는 민심이었고 엔트리 발표 직후 둘의 이름이 실시간에 도배가 되었다.
박해민의 플레이스타일을 보면 커리어하이가 3할 근처에, 그렇다고 한방이 있는 스타일도 아니고, 출루가 좋은 편도 아니다. 당시 타격부분에서는 리그 중하위권 수준에 불과했던 박해민은 빠른 발과 뛰어난 수비력을 가졌지만 리그에도 타격능력이 더 좋은 외야수는 차고 넘쳤기 때문에[48] 굳이 좋은 외야 자원이 많았던 당시 리그 상황에서 박해민을 뽑아야 했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49]
역대 국가대표 선수중 수비 백업용으로 뽑힌 선수들 중에서는 박기혁 다음으로 타격 성적이 안 좋았다. 그래도 박기혁은 수비가 매우 뛰어난 '''내야 유틸리티'''였기 때문에 타격이 형편없어도 수비력만으로 뽑혔다고 할 수 있었다는 의견이 다수. 박해민의 중견수 수비가 탑클래스급의 수비를 보여주지만 좌익수나 우익수의 경험이 적고 결정적으로 외야 백업이 필요한지에서부터 논쟁이 일어났다.
이 일로 인해 결국 박해민은 김경문 감독의 눈 밖에 났다.
8. 연도별 주요 성적
- 붉은 글씨는 리그 1위 기록. 진한 표시는 리그 5위 내 기록.
[1] 초등학생 때 서울로 이사를 왔다.[2] 원래는 한서고를 다녔으나 1학년을 마치고 팀이 해체되면서 신일고로 전학했다.[3] 생활체육학과(2008학번) 이쪽은 체육교육과가 아니기 때문에 교사자격증은 나오지 않았다.[4] 메인 포지션. 외야 전 범위를 커버할 수 있지만 빠른 발과 넓은 수비범위를 살리기 위해 중견수로 많이 출전한다.[5] 서브 포지션. 2014년 6월 8일 한화전에서 선발 1루수 채태인의 부상에 따라 1회 말부터 '''1루수'''로 경기를 뛰었다. 이후로도 대타나 대주자 투입으로 수비 포지션이 꼬이면 백업 1루수로 들어간다. 초기에 1루 수비는 그냥 '''할 줄 아는 수준'''이었으나 점차 전문 1루수 수준의 수비를 보여줬다. 그 후 1루수로는 수비를 한 적이 없었으나 2020년 7월 26일 기아전에서 6회 말 중견수에서 1루수로 포지션 교체를 해서 8회 말 호수비를 보이며 아직도 전문 1루수 수준의 수비를 보였다. 발이 빨라 1루에서도 수비 범위가 넓다. 이 때문에 우익수가 수비해야 할 범위까지 커버해버려서 '''1익수'''라고 불리기도 했다.[6] 현재 신고선수신화로 불리고 있다. [7] 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 야구 부문 '''금메달''' 획득.[8] 현재 복무중, 타 아시안게임 멤버들과 동일하게 2021년 10월에 복무가 만료되면 예비역으로 편입된다.[9] 무려 20살 차이다.[10] 처남 황선도의 소개로 만났다고 스톡킹에서 박해민이 언급했다.[11] 태명은 '따봉이'다.[가사1] 안타쳐볼까 (안타안타) 도루를 해볼까 (다다다다다다다다) 라이온즈 수비의 심장(두근두근두근두근) 최!강!삼!성!박!해!민[12] 김상헌 단장이 남녀 구분 응원가를 만든듯하다. 곡 분위기가 아즈망가 대왕 엔딩 소녀의 로망과 약간 비슷하다.[13] 양의지 응원가[14] 개막전(잠실 두산전)에서 "저기 반대편에 잘하는거 있잖아요"[13] 라고 말하기도 했다. [15] 2018-2019년까진 타격시 부르는 메인 응원가였으나 2020년 부터는 도루나 호수비를 했을때 사용한다.[가사2] 삼성의 박해민 워어어어어! 안타를 날려라 워어어어! x4[16] 본인이 전 응원가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교체를 했다.[17] 이름 때문에 해민스님이라는 별명이 있는데, 정작 본인은 크리스찬이다.-[18] 팀 동료 이원석, 장필준 등이 소속되어있다.[19] 햄니 + 주장님[20] 거포+박해민[21] 허구연 특유의 발음이다.[22] 이름이 혜민 스님과 비슷해서 붙은 별명이지만, 박해민은 개신교 신자다. # 가끔 인터뷰에서도 종교가 개신교임을 알 수 있다.[23] 자신도 이 별명을 좋아해 인스타그램의 아이디까지 바꿨다.[24] 2017 시즌부터는 타격시 차고 나오는 팔꿈치 보호대에도 lambormini라고 새겨져 있는 걸 보면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나보다. #[25] 축구를 했으면 주급을 3억 받았을 텐데 연봉을 3억 받아서 억울하다며[26] 전문적으로 했던 선수는 다섯 명, 나머지 네 명은 체육 선생님이 반을 돌아다니면서 "야구 할 사람?"하고 물어봐 데려온 일반 학생들이었다.[27] 이들이 졸업한 후 해당 야구부는 해산했고 그 마지막 야구부원 9명 중 2명이나 프로선수가 되었다.[28] 그 당시 감독은 천보성[29] 아마 이때 둘 다 선택하지 않았다면 군대로 갔을 것이라 회상한다[30] 하지만 이 해 리그 전체의 도루 개수가 줄었다. 36도루를 기록했지만 그럼에도 리그 도루왕을 차지하며 리그 최고의 준족임에는 이견이 없게 되었다.[31] 당시 이 등번호를 이성규가 달고 있었는데 NC 다이노스의 손시헌 선수가 롤모델 이었다고.. 한 달간 꾸준히 설득해서 결국 얻었다 한다.[32] 기록상 이정후보다 박해민이 더 높게 나오는 수치가 딱 두 개 있는데 도루 개수와 삼진이다. 부상으로 잠깐 자리를 비웠던 이정후보다 나을 것이 단 한구석도 없다는 뜻. 이정후가 8월 13일 국대 대체 선수로 발탁됐지만 박해민과 오지환은 끝까지 하차를 안 해서 LG나 삼성의 팬들을 제외하면 은메달로 둘을 입대시키자고 입을 모은다.[33] 손아섭은 슈퍼라운드 중국전 이전까지 무려 13타수 무안타였다![34] 허리부상으로 인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의견이 소수 있었으나, 그렇게 따지면 장염으로 인해 출전하지 못한 오지환에 대해서도 같은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 오지환에게는 부상과 컨디션 관리도 자기관리라면서 비난하는 여론이 압도적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저 내로남불에 불과한 실정[35] 이순철도 현역 시절 중견수였다. 이병규의 상징 중 하나인 라면수비의 원조가 이순철이다.[36] 사실 이들은 수비로도 KBO 최고 수준이었다.[37] 2019년 삼성의 1루 수비 우선순위는 다린 러프-이원석-박한이-이성곤 정도로 운영될 가능성이 높다.[38] 구자욱과의 토스플레이의 활용을 늘리기 시작했다.[39] 군 제대 후 살이 쪄서 수비와 주루능력이 하락했지만 장타력이 입대 전보다 올라왔으므로(2017년 홈런 커리어하이 갱신 외에도 장타율 꾸준히 상승) 몸관리를 개판으로 했다고 보기엔 어려울 수도 있다. 오히려 일부 교타자들이 중장거리 타자로 변화를 시도했다가 실패한 케이스 중 하나일 가능성이 높다.[40] 매년 벌크업을 조금씩 하면서 주루는 조금씩 안좋아진다는 썰도 있다.[41] 이에 대해서는 갈 수록 떨어지는 팀 장타때문에 발로 해결하려하는 팀의 성향과 겹쳐서 무리하게 뛰는 일이 자주 벌어져서 그럴 것이라는 평도 있고, 그냥 박해민이 도루가 많다 보니 도루 견제가 갈수록 심해져서 그렇다는 평도 있다. 팀의 장타력이 증강될 것으로 예상되는 2019년에 지켜보면 알 수 있을 부분...[42] 2016년에는 스파이크를 잘못 선택한 해프닝으로 6~7연속 도루 실패가 있었다. 그것을 제외하면 2015년 정도 수준이다.[43] 2017년과 2018년에는 장타력이 떨어진 팀 사정에 따라 더블스틸 실패 등이 좀 많았었다. 이 역시 이를 제외하면 예년 수준일 수도 있다.[44] 물론 이건 저연차 시절 이야기고 현재는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하는 등 장타력이 아예 없지는 않다.[45] 9월 9일 기준 팀 102경기 중 91경기 출장[46] 하지만 왕조 시절 이후의 삼성은 박해민을 타격생산성 때문에 뺄 이유가 없을 정도로 전반적으로 타격이 썩 좋지가 않다.[47] 여담으로 7월 2일 박해민과 김성현이 도루도중 충돌해 박해민이 목을 다치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다행히 금강불괴라 그날만 통증을 느꼈고 다음날 경기에 선발해서 4타수 2안타를 치며 좋은 활약을 했다.[48] 대표팀 발표일인 6월 11일까지를 기준으로 타율이 모든 것을 설명해주는 지표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단순히 타율만 놓고 봤을 때는 이형종(.384), 김현수(.370) 최형우(.354) 손아섭(.348), 유한준(.348) 등등 박해민보다 높은 한국인선수가 무려 16명이 포진해 있고 홈런으로 치면 박해민은 꼴지수준이며 출루율을 비교해도 외야수 평균 수준이지 눈에띄는 성적은 아니다 결과적으로 박해민의 타격 성적은 리그 외야수 평균보다 조금 좋은수준. 다만 도루 부문에서는 그래도 외국인인 버나디나, 호잉을 제외하면 이용규, 임병욱에게 3개 앞서 있으면서 타율이 그나마 높은편이긴 했다.[49] 옹호론자들의 주장 또한 대주자, 대수비로서의 백업요원으로는 뽑힐만했다는 논점으로 이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