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납석사리호

 


[image] '''대한민국 국보 제233-2호'''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납석사리호'''
山淸 石南巖寺址 石造毘盧遮那佛坐像 蠟石舍利壺


'''소재지'''
부산광역시 남구 유엔평화로 63, 부산시립박물관 (대연동, 부산광역시시립박물관)
'''분류'''
유물 / 불교공예 / 사리장치 / 사리장치
'''수량/면적'''
1점
'''지정연도'''
1986년 10월 15일
'''제작시기'''
통일신라시대 8세기[1]
[image]
1. 개요
2. 내용
3. 바깥고리
4. 국보 제233-2호


1. 개요


山淸 石南巖寺址 石造毘盧遮那佛坐像 蠟石舍利壺. 경상남도 지리산에 위치한 석남암(石南巖) 터에서 발견된, 766년(신라 혜공왕 2)에 제작된 항아리. 현재 부산시립박물관에서 소장 중이며, 대한민국 국보 제233-2호로 지정되어 있다.
원래는 1986년 10월 15일에 대한민국 국보 제233호 "전() 산청 석남암사지 납석사리호"란 명칭으로 지정되었는데,[2] 이후 이 항아리와 세트(?)였던 대한민국 보물 제1021호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이 국보급으로 재감정되어 2016년 국보로 승격되면서, 2016년 7월 1일 대한민국 국보 제233-2호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납석사리호로 지정명칭 및 번호가 변경되었다.

2. 내용


[image]
높이 14.5㎝, 병 높이 12㎝, 아가리 지름 9㎝, 밑 지름 8㎝.
경상남도 산청군 삼장면 내원리 석남사 절터의 석불대좌 중대석에서 발견된 곱돌(蠟石) 항아리로 제작된 시기는 통일신라 시대인 766년이다. 석불 대좌 속에서 발견된 이후, 여러 경로를 거쳐 1981년 부산광역시립박물관에서 입수하였다.
이 그릇의 몸통에는 한줄에 8~11자씩 15줄 136자의 비로자나불상조상기(毘盧遮那佛像造像記)가 새겨져 있는데, 이 명문은 죽은 사람의 혼령을 위로하고 불상을 조성하는 공양승과 불법에 귀의하는 중생들의 업이 소멸되기를 비는 일종의 기원문이다. 또한 항아리의 바닥에도 4행 23자의 이두문이 남아 있는데 서체는 행서체가 대부분이고 초서 및 반초서가 섞여 있다. 명문에는 ‘영태 2년 신라 혜공왕 2년’이라는 기년이 있어 이것이 766년에 만들어 봉안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명문에서는 당시 신라의 승려 법승(法勝)과 법연(法緣)이 죽은 두온애랑(豆溫哀郞)을 위해 비로자나불상을 조성하였고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을 함께 봉안하였다고 적혀 있는데, 실제로 처음 이 항아리를 발견하였을 때에는 속에 청동으로 만든 장방형의 작은 상자가 있었고, 그 안에 종이 뭉치가 있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그 종이 뭉치는 맨손으로 잡아 들어올린 직후 부서져 없어졌다고 하는데, 이것이 기록상의 무구정광대다라니경으로 추정된다. 만약 출토 과정에서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국보급의 무구정광대다라니경 1책을 더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모습으로 불상대좌중대석에 법사리를 봉안한 것은 우리나라에서 처음 보는 사례로서 이후 다양하게 발견되는 한국의 복장(腹臟) 유물의 초기양식으로 보인다. 또한 영태 2년(766년)이라는 명확한 제작 연대를 가지고 있어, 절대 연대가 확인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유물이다. 이러한 항아리의 형태나 몸통 표면에 명문을 새기는 방식도 그 뒤 동화사(桐華寺) 석탑에서 나온 석합 등으로 양식적 계통이 이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이 곱돌 항아리로 인해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비로자나불임이 밝혀져 신라시대 비로자나불상의 조성 연대를 8세기까지 끌어올리게 됨으로써, 불교사와 미술사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대좌 위에 봉안되어 있던 석조불상은 1947년 석남리에 사는 한 주민이 무단 반출하여 보관하였다가, 1959년 경에 내원사(산청군 삼장면 내원리)에 양도하였고, 1990년 3월 2일 대한민국 보물 제1021호로 지정되었다가 2016년 1월 7일 대한민국 국보 제233-1호로 승격되었다.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항목을 참조.

3. 바깥고리



4. 국보 제233-2호


경상남도 지리산 암벽 아래에 있는 암자터에서 불상이 없는 대좌의 가운데 받침돌 안에서 발견된 통일신라 때의 거무스름한 곱돌(납석)로 만들어진 항아리로 총 높이 14.5㎝, 병 높이 12㎝, 아가리 지름 9㎝, 밑 지름 8㎝이다.

몸통에 비해 도톰한 턱이 주둥이에 둘러져 있고, 밑 부분은 평편하고 넓어 안정감을 준다. 항아리의 아가리 아랫부분과 몸체의 중간, 그리고 조금 아래쪽에 각각 2줄의 가로선을 새겼다. 뚜껑 윗부분에도 2줄로 원을 그리고 안쪽 가운데에는 연꽃을 새겼다.

이 항아리 표면에는 15행으로 돌아가며 비로자나불의 조성 기록과 함께 영태 2년<신라 혜공왕 2년(766)>이라는 기록이 남아있어, 신라 비로자나불 좌상의 제작 연대를 8세기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 새겨진 글자는 크기가 일정하지 않고 불규칙하게 나열되어 있어 판독이 애매한 곳도 있으나, 죽은자의 혼령을 위로하고 중생을 구제하길 바라는 글로 되어 있다.

전체적인 제작 기법이나 뚜껑 처리 방식, 글자의 새김 등 미술사적 측면과 비로자나불의 제작연대, 석불의 법사리 봉안과 조성 등 불교사적 측면에서 귀중한 자료가 된다.



[1] 문화재청 홈페이지에서는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납석사리호의 제작시기를 밝히지 않았다.[2] 국보 지정 당시에는 출토지가 불명확한 상태여서 문화재 이름에 전(傳)이라는 딱지가 붙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