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두

 





1. 소개
2. 예시


1. 소개


'''吏讀'''
과거 한국어를 표기하기 위한 문자 체계로, 삼국시대 때부터 사용되어 왔으며 최종 형태는 통일신라에 이르러 굳어졌다고 알려져 있다. 고대 일본에서 만엽집에 나오는 만요가나와 유사하게 한자의 음훈을 활용하여 한국어를 표기한다.
흔히 설총이 만든 표기체계라고 알려져 있으며, 이런 기록은 제왕운기대명률직해(大明律直解) 등의 여러 고서적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최만리의 상소에서 드러나듯 조선왕조실록에서도 이두는 설총이 만들었다는 것이 조선시대에 이미 상식처럼 굳어져 있었다. 그러나 이런 방대한 차자 표기 체계를 한 개인이 만들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리고 최근 고고학적 목간의 발견으로 이두의 완성이 최소 6세기 중엽으로 앞당겨 졌다. 설총은 이두의 창시자라기보다는 그동안 쓰이던 차자 표기법을 집대성한 사람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창제와 집대성의 차이는 한글로 치면 세종대왕주시경 선생의 업적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그에 따르면 이두를 가장 먼저 창제한 사람은 기록으로 남아있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문자가 그렇듯 서서히 자연발생했을 것이다. 한글처럼 누군가가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새로운 문자를 만든 게 오히려 세계사적으로는 특이한 경우.
현존하는 이두에 대한 금석문 자료가 있는 기록은 5세기 초반(412년)에 만들어진 고구려 광개토왕비문이 최초다. 해당 기록에는 한문의 어순과 다른 일종의 변체한문(變體漢文)이 쓰여져 한국어의 요소를 다분히 지니고 있음이 확인된다. 구체적으로 '지(之)'나 '상(上)' 같은 이두식 표현이 발견된다.
이두는 하급 관리들인 이서(吏胥)들이 행정 문서를 작성할 때 쓰였으며, 민간에서도 쓰였다. 공식적인 문서 행정에는 중국식 한문을 썼지만 6세기 중엽에 이미 신라인들은 (충분한 교육을 받은 경우) 자신들의 고대 한국어를 완벽한 이두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훈민정음이 창제된 이후에는 이두의 사용 빈도가 비교적 줄었으나 하류 관료층(아전, 향리)들 사이에선 계속 사용되었으며, 고위층은 그냥 한문을 쓰고, 비격식적인 문서에서나 상민 이하는 한글을 썼다. 공식적으로는 1894년 갑오개혁 때 폐지되었지만, 비공식적으로 20세기 초반까지 사용되었다. 때문에 조선시대 관청, 가전문서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은 반드시 이두를 알아야 한다.
넓은 의미의 이두는 구결, 향찰 등을 포함한 한국어의 한자 차자 표기법 전반을 이르지만, 좁은 의미의 이두는 한문을 '''우리말 어순'''대로 재조정한 후 조사나 어미와 같은 '''형식 형태소'''를 중간중간 삽입하는 방식의 한자 표기를 이른다.

2. 예시


명나라의 법률인 《대명률(大明律)》을 이두로 풀이해 둔 《대명률직해(大明律直解)》에서 그 예시를 살펴보자.[1]

《대명률》 원문: 背本國(배본국)

《대명률직해》 이두문: 本國乙 背叛爲遣(본국을 배반ᄒᆞ고)

대명률직해(1936년 교정본) 2. 십악(十惡) 3. 모반(謀叛), 24쪽(pdf 오른쪽)

《대명률》 원문은 당연히 당대 중국 문어인 한문 어순, 즉 '주어-서술어-목적어' 순으로 되어 있다. 이 경우엔 주어 생략에 서술어 배반할 배(背), 목적어 본국(本國).
반면에 《대명률직해》에서는 우선 한국어 어순인 '주어-목적어-서술어'에 따라 목적어 '본국(本國)'이 앞에 나오고 서술어 어근 '배반(背叛)'이 뒤에 나왔다.[2] 거기에 목적격 조사 '을(乙)'이 '본국' 뒤에 붙어 있고,[3] 연결 어미 '-고'를 이용하여 접미사 '-ᄒᆞ다'를 활용한 형태인 '-ᄒᆞ고(爲遣)'가 '배반' 뒤에 붙어 있다.[4]
즉 이두는 실질 형태소는 음독하되 그 어순을 조정하였고, 여기에 음차 혹은 훈자로 된 형식 형태소를 삽입한 표기 방식이다. 또한 형식 형태소에 쓴 한자는 간략화하지 않고 가급적 원형대로 썼다. 기미독립선언서의 문체에서 한글로 쓰인 부분을 전부 한자로 고친 문체를 생각하면 쉽다.
이두의 실제 사용례는 한국학자료포털의 이두용례사전을 참고하자.
[1] 대명률직해는 이처럼 한문과 이두가 나란히 배열되어 있어 이두를 처음 접할 때 용이하다. 20세기에 인쇄된 것은 이두 부분에 한자어 부분과 달리 윗줄이 쳐져 있어서 학습에 더욱 편리하다.[2] 원문에서는 '배(背)'라고만 되어 있지만 이두문에는'배반(背叛)'으로 되어 있다. 이두문에서는 때때로 어휘 자체도 당시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형태로 조정되었다.[3] '乙(새 을)'의 음인 '을'을 빌렸으되, 실제 의미인 '새'와 상관없으므로 음가자.[4] 첫 번째 글자는 '爲(ᄒᆞ다(하다) 위)'의 뜻인 'ᄒᆞ다'에서 어간 'ᄒᆞ-'를 빌렸고 실제 의미도 'ᄒᆞ다(하다)'와 관련이 있기에 훈독자, 두 번째 글자는 '遣(보내다 견)'의 음인 '(당시엔 '고'로도 읽었음)'를 빌렸고 실제 의미인 '보내다'와는 관련이 없기에 음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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