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나라자동차 새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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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세
2.1. 1세대(1962~1963)
2.1.1. 단종
3. 파생 차종
3.1. 신진 신성호
3.2. 하동환 HDH 픽업트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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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62년부터 1963년까지 닛산 블루버드 차량을 들여와 배지 엔지니어링 방식을 통해 생산했던 소형차이자 '''국산차계의 문화대혁명을 일으켰던 차종'''이였다.

2. 상세



2.1. 1세대(1962~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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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사양
새나라자동차 출범 당시, 일본의 자동차 제조사인 닛산에서 판매하던 1세대 블루버드 모델을 초기에는 400대[1]를 수입을 해 오다가 이후 같은 해 9월부터는 조립공장의 완성으로 반제품 형태로 들여온 후 조립 생산하는 방식을 통해 '새나라호'라는 이름으로 판매하여 많은 인기를 끌었으며, 파워트레인은 1.2L 가솔린 I4 엔진이 적용되었으며, 55마력을 냈고, 3단 수동변속기가 적용되었다.
특히 일본에서 완성차를 들여온 것이기 때문에 미국지프차를 기반으로 드럼통으로 차체를 만든 영운기 형태의 시-ㅂㅏㄹ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였고, '새나라 양장 미인'이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로 차이가 컸기 때문에 점점 기술력을 길러가던 국제차량제작소를 망하게 한 원인으로 손꼽혔다. 그러나 후술할 4대 의혹 사건이 일어난 결과,새나라자동차 역시 법정관리 상황이 이어지게 되었고, 국제차량제작소가 사라진 같은 해에 사라지면서 대한민국의 국산차 시장이 거의 아작난 수준까지 되어버렸으며, 1990년대~2000년대부터 독자적인 디자인의 차량들이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일본의 자동차 제조사들의 기술을 전수받거나 배지 엔지니어링을 통해 판매해야 했을 정도로 국산차 시장의 퇴보가 이루어진 주요 원인이 되기도 했다.

2.1.1. 단종


그러나 설립과정에서 블루버드의 수입 판매에 관련하여 당시 정부의 특혜시비 의혹, 탈세 등과 같은 사실이 드러나 각종 의혹에 휘말리게 되었고, 1963년 7월에 한일은행의 법정관리 처분을 받게 되었다.
또한 '자동차 보호법'에 의해 내국세, 수입관세 등을 전부 면제받으면서도 규정 가격보다 차량을 비싸게 팔아 폭리를 취했다는 혐의를 받게 되면서 이후 신진공업에 인수되었다.

3. 파생 차종



3.1. 신진 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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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생산된 최초의 자동차인 시발(자동차)에 이어, 두번째로 생산된 독자개발 자동차. 1963년 11월, 신진공업[2]에서 생산하였다.
독자개발이기는 하지만, 새나라의 디자인이 적용되었고, 미군 지프의 엔진, 변속기, 섀시 등을 이용해서 만들어졌다. 다만 이전 모델인 새나라에 비해 품질과 성능이 좋지 않았던 데다 값도 더 비싸서 인기가 적었고 64년 216대, 65년 106대 등 322대가 생산되고 단종됐다. 파워트레인으로는 1.3L 가솔린 I4 엔진이 탑재되었으며, 55마력의 최대 출력을 냈다. 1.3L 엔진과 함께 수동변속기가 적용되었다.

3.2. 하동환 HDH 픽업트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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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나라의 앞부분과 적재함을 붙여 만든 차량으로 쌍용자동차의 전신인 하동환자동차에서 생산했던 픽업트럭이다. 자세한 것은 하동환 HDH 픽업트럭 문서 참고.

4. 둘러보기




[1] 하지만, 실제로는 더 많은 차량들이 수입되어 들어온 것으로 추측된다.[2] 1955년 부산에서 설립된 회사로 이 회사가 새나라자동차를 인수하여 신진자동차가 되었고, 이후 GMK와 새한자동차를 거쳐 대우자동차가 되었으나, IMF 외환위기로 인해 경영난에 빠지고, 결과적으로 GM에 인수되어 GM대우를 거치고 현재의 한국GM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