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돈각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사학인.
1920년 대구광역시 출생, 경북중학교를 졸업하였다. 일본 교토제국대학 법학부를 수료하고, 1946년 7월 경성대학 법문학부 법과 졸업, 1950년 5월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56년 미국 서던 메소디스트 대학교에서 법학석사, 1965년 경희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51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로 임용되었고 서울대학교 학생처장, 사법대학원 원장, 법과대학 학장 등을 지냈다. 1972년 동국대학교 총장으로 옮겨와 74년까지 재임하였다. 1974~1979년까지 국민대학교 교수로 재임하였으며, 1979년 경북대학교 총장으로 부임하여 1981년까지 재임하였다. 이후 국민대학교, 경희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2004년 8월 24일 별세하였다.
2. 연구 활동
전공분야는 상법, 법철학이다. 한국에서 최초로 개설서를 집필하였고 이와 관련한 논문을 많이 발표하였다. 특히 미국상법연구의 선구자로 평가받으며, 미국상법원리를 한국의 상법에 도입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상법제도심의위원과 개정심의위원을 지냈다. 이 시기 한국의 상법체계가 제대로 정비되지 않았던 시점이었는데, 한국 상법의 제정과 개정 등 입법활동에 참여하였고 이와 관련련한 교과서, 주역서를 집필하여 한국상법학을 선도하고 정립한 연구자이다.
상법학 분야 뿐만 아니라 미국법에 대한 교과서를 번역하였고, 독일의 법철학교과서도 번역하였다. 법철학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국제법 및 사회철학회 세계학회의 집행위원을 역임하였으며, 법철학과 법학분야의 국제적 교류와 발전에 기여하였다.
1953년 처음으로 『상법(총론, 사회법)』(세문사, 1953)을 출판하였고, 그밖에 『유가증권법』(상, 하), 『신고상법』(법문사, 1960), 『상법연구』제1권(법문사, 1962), 『신상법』(법문사, 1962), 『상법강의』상,하(법문사, 1963),『주식신상법통람』(법통사, 1963),『축조회사 정리해설법』(법문사, 1964), 『신주식회사법의 기본문제』(법문사, 1965), 『상법대의』(법문사, 1966), 『상법예해』(상, 하)(국민서관, 1966), 『제2전정 상법강의』상,하(법문사, 1975), 『전정 상법대의』(법문사, 1978), 『상법연구』제2권(법문사, 1980), 『주식어음법, 수표법』(육법사, 1981), 『역주 개정 사법토론』(1994), 『제4전정 상법가의 회하권』(1996) 등을 남겼다.
이 밖에도 한국보험학회 회장, 국제법률가협회 회장,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 한국법학교수회 회장, 한국상사법학회 회장, 한국해법학회 회장, 법 및 사회철학 한국학회 회장, 한국중재학회 회장 등의 학회 활동을 활발히 하였다.
이와 같은 연구업적을 인정받아 1981년 학자로서는 최고의 영예라 할 수 잇는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아울러 국민훈장 동백장(1970) · 보험문화상(1970) · 국민훈장 모란장(1972), 법률문화상(1979), 국민훈장 무궁화장(1991) 등을 받았다.
3. 총장 재임기 행적
제6, 7대 총장을 역임한 김영희 박사가 사임하면서 1979년 2월 경북대학교 총장으로 임명되었다. 재임 기간은 재임 기간은 1979년 2월 21일부터 1981년 3월 6일까지로, 약 2년 정도 된다.
재임 시기 정부에 의해서 실험대학, 정원확대정책, 전문학교의 대학 승격, 학도호국단 설치 등이 추진되었다. 서돈각 총장은 이에 대해서 “법학과 등 전문직업 교육학과까지 실험대학에 포함시켜 교육이 불충싱해지고 있고, 도서관 시설 지도교수 등이 모자라는 실정에서 제도만 앞서 학점이 줄어들어 학력저하가 우려된다. 그러나 새로운 대학교육의 방향으로서 좋은제도이다”라는 당시 교육정책에 대해서 논평했다.
1980년 8월 28일 경북대학교 교직원, 학생들과 함께 경북대 정화추진 결의대회를 개최하였다. 28일 오전 11시 교내 실내체육관에서 교직원 1,231명, 학생 837명 등이 참석하였다. 서돈각 경북대 총장은 "정화운동은 과거의 비리와 병폐를 응징하는데만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고 새 시대, 새 역사를 위한 창조적 역할을 중시하는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1981년 1월 중화민국 교육부장(한국으로 치면 교육부 장관) 초청으로 중화민국의 교육계를 시찰하였다.
1981년 2월 27일 서돈각 총장은 문교부에 돌연 사표를 제출하였다. 사표를 제출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고, 같은 날 학생처장과 만난 자리에서 사표제출을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4. 총장 퇴임 이후
1981년 국민대학교로 다시 돌아가 1986년까지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1986년 경희대학교 명예교수로 위촉되었다.
2004년 8월 24일, 숙환으로 별세하였다.
5. 신앙
- 상당히 독실한 불자로, '호'는 ‘무애’(無碍)이다. 1960년대 탄허 스님, 성철 스님, 청담 스님을 비롯한 여러 고승들과 깊은 인연을 맺고 참선수행에 매진했다고 한다. 불단(佛壇)을 설치하고 예불을 하며 수행하였으며, 대한불교진흥원 이사장, 불교방송재단 이사 등으로 활동하면서 불교 포교와 중흥에 힘을 쏟았다. 1989년, 대한불교진흥원 창립 때 이사로 참여한 후 1992년부터 2004년까지 이사장으로 재임하기도 했다. 또한 서울대학교 총불교학생회를 결성한 사람 중 한 명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