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허

 

呑虛
1913년 2월 20일 ~ 1983년 6월 5일
1. 개요
2. 상세
3. 예언
4. 기타


1. 개요


대한민국승려. 본관은 경주(慶州), 탄허는 법호이며 법명은 택성(宅成). 속명은 김금탁(金金鐸).
한국 현대불교의 가장 유명한 고승 중 한 사람이며, 유학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불경에 대한 지식 등 인문학적 소양이 남다른 승려였다.

2. 상세


탄허는 1913년 음력 1월 15일, 전라북도 만경군 군내면(현 김제시 만경읍) 대동리의 유학자 집안에서 독립운동가인 율재(栗齋) 김홍규 선생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김홍규는 보천교 고위 간부로서 김구 선생의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는 등 독립운동에 종사했다. 그는 6세에서 21세까지 사서(四書) 삼경(三經) 및 노장(老莊) 등 제자(諸子)의 전 과정을 마쳤다.
1934년 출가 전까지 여러 곳을 전전하며 한학, 기호학파 유학 등을 섭렵하였다고 한다. 이후 22살 되던 해에 오대산 상원사로 출가하였고, 이후 월정사에 적을 두다 1964년부터 7년간 동국대학교 대학선원 원장을 맡았다. 그는 불교의 교리는 물론 다양한 한학 방면에도 조예가 깊었고, 이를 바탕으로 당시 완역하지 못한 팔만대장경의 현대역 작업에 몰두한 끝에 한글대장경을 간행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의 학문을 본받기 위해 양주동 박사[1]가 직접 절로 찾아가 그에게 장자 강의를 들으러 갔던 적이 있다.
이러한 학문 도량과 더불어 탄허가 유명한 것은 그의 놀라운 예지력이다.

3. 예언


탄허는 자신이 체득한 주역 원리를 바탕으로 세상을 풀어내고는 하였는데, 한국전쟁을 예측함은 물론 5.16 군사정변, 월남전효고현 남부 지진, 박근혜 대통령 당선까지 예언했다고 한다. 자신 또한 임종 10시간 전에 죽음을 예언하고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그러나 허무맹랑한 예언도 많아 무조건 믿기에는 한계가 따른다. 가령 재해나 전쟁으로 인구 절반이 죽지만 한국만은 어떠한 힘에 의해 이를 극복하여 세계 제일의 국가로 우뚝 선다는(...) 이야기를 예언하기도 했다.

4. 기타


  • 대한불교조계종 36대 총무원장을 지낸 승려 원행이 쓴 논픽션 <탄허 대선사 시봉 이야기>나 <10.27 법난>에 따르면 정승화 참모총장이 불교 신자였던 당시 오대산 월정사에서 머무르고 있던 탄허를 종종 찾아뵙고는 했는데, 탄허는 평소 정 총장이 자신을 찾아올 때면 "당신은 너무 우유부단하니 본분에만 충실하면 된다. 나와 그렇게 약속할 수 있느냐?"라고 말했다고 한다. 1979년 10.26 사건이 벌어진 다음날 탄허는 제자인 원행을 시켜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에게 전화 좀 걸어 보라고 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자 원행을 직접 서울로 보내 정 참모총장을 만나서 "오대산에 한 번 다녀가던지 전화를 한 통만 해 달라"고 전하고 오게 했고, 원행은 참모총장 공관 앞에서 군인들에게 막혀 만나지 못하고 돌아와야 했으므로 끝내 정 총장은 탄허를 만날 수 없었다. 두 달 뒤에 12.12 사태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 전두환에 의해 국군보안사령부 서빙고분실로 강제 연행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승화는 자신의 측근이었던 군법사 한 명을 월정사로 보내 "감옥에서 공부하고 싶으니 탄허가 강의한 화엄경을 보내 달라"고 탄허에게 부탁했지만, 탄허는 "그 사람은 내 책을 읽을 자격이 없다. 가서 그 사람더러 '왜 나와 한 약속을 지키지 못했느냐'고 내가 묻더라고 전하라. 그는 이미 실기(失機)[2]했다."고 거절하며 돌려보냈다고 한다. 이듬해인 1980년 10.27 법난이 벌어졌고, 정승화 전 총장은 불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

[1] 당시 마찬가지로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였다.[2] 기회를 놓쳤다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