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약지지파
1. 개요
피를 마시는 새의 용어.
아라짓 제국의 공후귀족들은 황제에게 충성을 서약하고 황제는 그 서약을 받아들임으로써 황제와 귀족간의 군신 관계가 성립된다는 이론을 지지하는 자들을 일컫는 용어다. 규리하 변경백 아이저 규리하가 이 서약지지파의 필두로 등장한다.
문제는 치천제가 충성서약을 받지 않으려 한다는 점. 치천제는 충성서약이 필요없는 무조건적 충성을 요구했고, 그 본보기로 아이저 규리하를 패망시켜 서약지지파를 뭉개놓았다. 작품 속 언급으로 볼 때 이 충성서약은 치천제보다 앞선 원시제나 혹은 대호왕 때부터[1] 내려온 전통으로서, 치천제의 서약 거부는 파격으로 보인다.
2. 상세
작 초반부를 접하는 독자들 입장에서는 '''황제에게 충성을 맹세하겠다고 황제에게 대드는 서약지지파'''와 '''충성을 맹세하겠다는 것을 거부하고 거기를 향해 칼을 빼드는 황제''', 이렇게 양측이 대립해 전쟁으로까지 이어진 상황이란게 쉽사리 이해가 되지 않는데 이는 작중에서 제국의 정치, 사회에 무지하거나 관심을 두지 않았던 몇몇 인물들도 느끼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정우와 뭄토.
우선적으로 밝혀지는 충성서약을 지지하는 표면적인 논리는 "황제와 귀족간의 군신 관계는 서약을 매개로 이루어져야 한다. 충성서약을 무시한다는 건 무조건적 복종을 강요하는 것이다. (시카트 규리하의 표현에 따르면) 서약 무시는 곧 귀족들을 사람이 아닌 개돼지로 보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반면 서약 지지를 반대하는 치천제 측의 논리는 "6억 명이나 되는 모든 제국 신민들로부터 충성서약을 받을 수는 없으며, 서약을 하는 귀족과 하지 못하는 평민으로 나뉠 경우 제국 신민이 구분된다. 하지만 황제는 이를 원하지 않으므로 똑같은 대우를 하기 위해 서약 자체를 받지 않겠다."이다.
이렇게 보면 둘 다 추상적이고 형식적인 이유로 싸우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 이면에 숨겨진 보다 현실적인 이유를 보면 다음과 같다.
1. 현실적으로 모든 사람이 서약을 할 수는 없으므로 귀족(봉건영주)이 다스리는 영지의 신민들은 귀족에게 충성하고, 귀족은 신민들 몫까지 포함해서 황제에게 서약한다.
2. 그런데 제국에는 귀족령 외에도 제국 행정관들이 다스리는 제국령이 있다. 제국령의 신민들은 행정관에게 충성하는 것이 아니므로 서약을 할 수 없다.
3. 그럼 어떡하나? 제국령을 줄이고 신민들을 귀족령에 포함시켜야 한다.(점진적인 제국령 축소, 귀족령 확대)
이 3번 결론을 놓고 귀족과 황제의 대립이 벌어지는 것이다. 즉 귀족과 황제 사이의 권력 분쟁이라고 보는 것이 가깝다. 위의 내용은 틸러 달비가 설명한 것으로 서약지지는 여기에 더해서 황제와 공후귀족의 관계를 '계약'으로 맺어지는 대등한 관계로 둘 것이냐, 아니면 절대충성과 복종을 바치는 주종관계로 둘 것이냐 하는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입장 차이까지 섞여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2]
요컨대 서약지지파는 황제에게 직접 충성을 서약할 수 있는(또한 자기 영지의 신민들에게 충성을 서약받을 수 있는) 봉건적 신분 특권을 지키고자 한 것이다. 골케 남작의 악행을 제국법에 따라 처벌해야 하느냐는 정우 규리하의 질문에 대해 엘시 에더리는 영지 내에서 일어난 일이므로 제국법을 참고할 수는 있겠으나 영주의 임의대로 처벌해야 할 사안이라고 대답했고, 이에 대한 처벌 수위 역시 엘시답게 올바르기는 하지만 주변의 반응은 지나치지 않으냐는 것이 대다수였던 점으로 볼 때, 작중의 봉건 영주들은 황제에 대한 반역을 저지르지 않는 한 자신의 영토를 독립적으로 지배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발케네의 락토 빌파가 신부 절도는 발케네의 전통이라는 명목으로 정우 규리하를 납치하여 납치혼을 자행하려 하는 상황에서도 (규리하측에는 이 신부 절도 풍습에 응할 마음이 전혀 없었고, 납치 대상이 힘없는 서민도 아닌 규리하 변경백이며 실제로 이 결혼이 이루어진다면 아라짓 제국의 정치역학 관계 전반에 대격변이 몰아닥칠 것이 확실한데도)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막기 부담스러워하는 모습을 본다면 아라짓 제국은 아직 봉건적 관습의 영향이 상당히 짙게 남아있음을 알 수 있다.[3]
치천제는 황제의 힘을 약화시키고 궁극적으로 제국을 분열시킬 수 있는 서약지지파와 분리주의를 용납하지 못했다. 그래서 쥐딤에서 레콘들을 쟁룡해에 쳐넣음으로써 분리주의를 격파하고, 엘시 에더리로 하여금 규리하를 정복케 함으로써 서약지지파를 분쇄했다. 자신의 영토에서 쫓겨난 아이저 규리하는 치천제를 향한 복수의 칼날을 갈면서 호시탐탐 서약지지파를 다시 결집시킬 기회를 엿보았다.
그리고 황제에 의해 새 변경백에 오른 정우 규리하는 서약지지를 하지 않았다. 정우 규리하는 몇몇 인간의 예절이나 관습을 "시시하다"라고 평가했는데, 이것은 야리키가 "목적과 수단을 혼동한다"라고 말한 것과 비슷하다. 이에서 유추할때, 정우는 "결국 제국을 어떻게 다스리느냐(목적)인데 거기에 쓸데없이 도덕과 권력다툼을 갖고온다(수단)"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
틸러 달비는 스스로를 '''서약 무용론자'''라고 말한다. 틸러가 정우와 아이저의 대화[4] 를 듣고 생각한 바에 따르면 충성서약은 '''선택되었기 때문에 타인을 지배할 수 있는 지배자가 남을 지배할 능력이 있기 때문에 선택된다'''는 착각을 만든다. 즉 누군가를 황제로 선택한다는 것 자체에 그에게 충성한다는 의미가 들어가있기에 충성서약은 무의미하다고.
그리고 작품 내에서 서술되는 몇몇 관점은, 이영도씨의 전작 폴라리스 랩소디에서 주제로 다루었던 자유와 복수의 관점에도 어느정도 적합한 모습을 보인다. 소유 하지 않음으로써 진정한 자유의 주인이 되어 사람의 신이 되고자 하는 치천제와 충성에 대한 복수로서 신하가 되고자 하는 서약지지파의 모습은, 마치 키 드레이번과 오스발의 대립과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
또한 이는 치천제의 사상과도 관련이 있는데, 누군가에게 충성을 맹세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배신하는 것에 제약을 건다'는 의미로 할 수 있는 일에 '''한계'''를 짓는다. 모든 사람들에게 도덕, 규칙 등의 제약을 벗기고 자신만이 유일한 한계이자 제약이 되려고 했던 치천제인 만큼 없애야 할 또 다른 제약이 생기는 것을 두고 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1] 하인샤 대사원에서 대호왕을 옹립할 때 귀족들은 지지서약을 한 셈이다.[2] 요컨대 피마새판 예송논쟁과도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보기에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국가의 근본 사상을 뒤흔들 수도 있다는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3] 락토 빌파 등은 제국이 설립되긴 했지만 여전히 각 지방의 특징이 더 살아있다는 이유만으로 제국은 허상에 불과하며 제국은 그저 각 지방의 연합에 불과하다는 견해를 내놓긴 하지만 작중 살펴보면 레콘을 봐도 그렇고 제국군에서도 발케네 인물들이 종사하는 점 등을 살펴보면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4] "네 목숨은 네 것이고 다른 사람이 그것을 좌지우지할 수는 없다. 비셀스. 하지만 규리하가 원하면 너는 그것을 내놓아야 한다." "아버지가 원한 것이 아니었나요?" "규리하가 원한 것이다." "죄송하지만 저는 규리하가 제게 그런 이야기 하는 것 듣지 못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