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시 에더리
이영도의 판타지 소설 《피를 마시는 새》의 등장인물. 군상극이라 할 수 있는 피를 마시는 새 내에서도 주인공으로 종종 생각될 정도로 그 비중이 극히 높은 인물이다. 인간 남성 군인.
1. 개요
'''전쟁의 진선미는 힘, 승리, 빠른 종전이다.'''[1]
아라짓 제국 군사의 전권을 통솔하는 대장군이자 칼리도 지방의 영주이며 작위는 백작. 정우(18세)와 띠동갑이라는 언급이 있으므로 작 시작 시점에서 나이는 30세로, 채 30년도 되기 전에 제국 최고의 공훈과 명예를 쌓아올리고 치천제로부터 황태자로밖에 보이지 않는 권한을 얻은 천재다. 참고로 엘시가 태어난 해는 원시제가 아라짓 제국을 창건한 해와 같다.'''"그것은 바르지 않습니다."'''[2]
1.1. 죄가 없는 자
작품 내에서 가장 비인간적 태도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작중에서는 '죄가 없다'고 표현하고 있다. 엘시의 행적은 대장군으로서의 직무에 지극히 충실하다. 개인적인 욕망에 휘둘리는 일이 없고, 해소하는 방법도 기껏해야 마당에서 목검을 휘두르는 게 전부인 등 절제된 모습을 보인다. 개인적으로 바라는 일이더라도 부도덕하다고 판단되면 하지 않아서, 자신의 권한을 조금만 이용하면 충분히 출옥시킬 수 있는 부냐를 감옥에 내버려두고 죗값을 치르게 하기도 한다.
1.2. 무적의 장수
작중 배경으로부터 6년 전 스카리 빌파가 군단장으로 있던 군단의 교위였을 때 군단장 및 그 밑의 수뇌부가 술에 취해 있었던 상황에서 쥐딤에서 발생한 타이모 사건을 한방에 해결해 버렸다. 이후 지도력과 능력을 인정받아 제국군의 계급 복무연한에 대한 불문율을 모두 깨트리며 수직 진급하여 순식간에 제국의 대장군이 된다. 작품 내에서는 엘시 에더리가 타이모의 난을 '취검'으로 잠재웠다고 표현된다. 그 취검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몇 가지 단서는 있다.
6년 전 군단 하나의 명령 체계가 완전히 붕괴된 상황에서 무명 교위가 휘두른 취검은 군단 셋의 와해를 막았다. 엘시는 진중에서 취해있었던 일을 씻을 수 없는 불명예로 생각하며 당대에 이미 전설이 되어버린 그 이야기가 거론될 때마다 안색을 바꾸지만, 탈해는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 해도 군단장이 강권하는 술을 엘시가 거절하기는 어려울 거라 생각했다. 직접 목격한 것은 아니지만 탈해는 그 장면을 어렵잖게 상상할 수 있었다. 스카리 빌파와 엘시 에더리를 모두 알기 때문이다. 그 날 이후로 스카리 빌파와 엘시 에더리의 운명은 완전히 바뀌었고 스카리가 마흔 살이 되기 전에 가지리라 공언했던 대장군의 자리마저 엘시에게 돌아갔다.
물론 취검을 통해 쥐딤에 모여든 레콘 떼거리에게 광역 혼란을 걸었다는 황당한 전개(...)는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 엘시는 작중 시점에서 지멘을 추적하기로 결심하면서 쥐딤 때와 마찬가지로 '물'이 자신의 큰 아군이 되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언급을 하는데, 이를 감안하면 엘시의 탁월한 지휘력과 물의 적절한 전술적 사용으로 인해[4] 레콘들이 서로를 공격하는 난관에 빠졌으리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 외 야리키가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할 테지만 '취검하던 교위'라고 말하면 알 것이라는 발언도 남겼는데, 상식적으로 해석하면 진중에서 부득이하게 취해 있던 엘시가 아실의 계략으로 혼란에 빠진 제국군을 수습하는 데 있어 취검이 어떤 강렬한 인상을 남길 만한 키포인트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대체 어떻게 하면 취검으로 혼란에 빠진 군대를 수습할 수 있는지는 미스테리지만.''' 애시당초 쥐딤 사건 자체가 작중에서는 자세히 다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자세한 자초지종은 영원한 수수께끼. 쥐딤의 경험으로 아실이 엘시 에더리를 천재지변급으로 두려워하게 되었다는 점을 볼 때 엘시가 해당 사건에서 상식을 뛰어넘는 능력을 보여준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5]아실은 무서웠다. 섬뜩한 기시감에 아실은 몸을 떨었다. 그녀는 이전에 그런 모습을 보았다. 다시 경험해야 한다면 차라리 튼튼한 밧줄을 요구하게 될 시간, 그 여름 쥐딤에서 혼란에 빠진 레콘들은 서로를 공격했다.[3]
소설의 도입부에서 무향 규리하를 한달만에 점령한 것을 봐도 그의 뛰어난 무용과 지휘력을 볼 수 있다. 당시 데라시는 규리하의 원군을 끊기 위해 이런저런 정치적 거래를 했는데 엘시가 상상 이상으로 빨리 규리하를 함락시키자 이럴 줄 알았으면 그런 거래를 할 필요가 없었다고 발언했을 정도. 엘시의 규리하 성 공략에 참전한 병력은 겨우 2개 군단, 4만 명으로 전체 제국군의 규모에 비하면 새 발의 피 수준인데, 아이저 규리하의 말에 의하면 치천제는 아이저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때에 규리하를 공격했다고 한다. 치천제는 엘시의 능력을 믿고 대군을 규합하는 대신 적은 병력으로 불시에 침공한 것으로 보이며, 엘시는 그 기대에 완벽하게 부응한 것. 게다가 검술에도 조예가 깊은지 대단한 검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심지어 작 최후반부에 수적으로 열세인 상태에서 소드락을 먹고 덤비는 나가 병사들을 상대로 17분을 버티는 장면에서 소수 단위의 병력을 운용하는 능력에 있어서도 극한에 가까운 수준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엘시 엘더리가 이끄는 제국군에서 패한 무향 규리하의 장수들이 엘시 에더리에게 패하는 것은 별로 창피한 일이 아니라고 여길 정도. 심지어는 차기 황제감으로 유력하다고 이야기한다. 자기네에게 굴욕의 패배를 안겨준 인물을 말이다! 이걸 감지한 이이타는 그 때부터 아실이 엘시를 두려워하는 것만큼 엘시를 경계하게 된다.
전투경력이 하도 화려하다보니 이런 풍문까지 돌 정도다.
뿐만 아니라 회고록을 쓰면 그것이 곧 기적의 전쟁사 모음집이나 전술 교본이 된다거나, 자서전을 군사학자의 필독서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는 식의 화려한 수식이 작가에 의해 덧붙여지기도 했다. '기적의 전쟁사'와 '전술 교본'은 정반대 요소라는 점에 유의하자. 전술교본이 된다는 것은 전략적으로 이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거나 찾아내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뜻이며 기적의 전쟁사가 된다는 것은 불리하거나 승산이 없어보이는 상황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뜻이다. 즉, 위와 같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유, 불리에 관계없이 참전한 모든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야 한다. 단, 작가의 수식과는 별개로 쥐딤 사건-규리하 전쟁 사이의 6년 동안 엘시가 어떤 전쟁을 치르고 공을 세웠길래 이런 평가를 받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시련과의 전쟁까지는 아니더라도 규리하, 발케네 급의 대영주 반란을 진압한 정도는 되어야 이런 평가가 납득이 될 텐데, 작중에서는 작은 힌트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위에서 전쟁의 진선미를 논하는 것처럼 판타지 소설에 있어서 가장 상식적이면서 엽기적인 전략, 전술을 구사한다. 기존의 판타지 소설의 명장들은 대부분 적은 수의 군대로 기발한 전술을 사용해서 적의 대군을 물리치는 반면에, 엘시 에더리는 철저하게 인해전술에 더 상대 보다 우위에 서게해주는 강력한 전력을 확보하고 싸운다(각지의 제국군을 규합해서 대군 형성, 직속 레콘 친우들을 이용한 상대 명령체계 파괴, 레콘 여단을 이용한 교신 체계 수립 등). 손자병법 등에서 누누히 이야기하는 이길 판을 미리 짜고 싸우는 장군이라 할 수 있다. 엽기적인 것은 그렇다고 100만 대군을 모아서 이를 유지시키는 기행과 전쟁을 끝내기 위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군이자 자기 부하들인) 남부군의 전력을 통째로 섬멸시키고자 하는 독한 짓도 필요하다면 바로 해버리기 때문.
여담이지만, 군사적으로는 위와 같은 먼치킨의 표본 같은 양반인 반면 외모나 평소 언행은 위대한 장수는 커녕 무관으로도 안 보이는 모양이다. 작중 묘사에 의하면, 차분하고 품위있는 모습을 보이기는 하지만 장수다운 용맹함이나 투쟁심, 야망, 당당함 등은 안 보인다는 모양. 애시당초 부냐 헨로가 엘시에게 반한 이유 또한 이것이었으며,[6] 엘시 에더리를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엘시의 너무나도 '장수답지 못한 모습'에 당황한다.[7] 애초에 엘시는 군인을 그만두고 부냐를 데리고 칼리도로 귀향하여 어머니 앞에서 결혼하고 평범하게 살고 싶어한다. 레이헬 라보 태위가 사직서를 내고 제국 곳곳을 방랑한다는 소식에 자기도 그러고 싶다는 강한 욕망을 느끼며, 고향인 칼리도, 쟁룡해의 풍경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1.3. 최강의 바둑기사
이러한 사기적인 군사적 역량은 그가 제국 최강의 바둑 기사라는 점과도 연결되는 듯하다. 전술전략을 생각할 때 바둑판을 지도 개념으로 쓴다든가, 종종 바둑판으로 예전에 둔 바둑을 복기하기도 했다. 그를 유일하게 이긴 인물은 다름아닌 그의 모친. 단, 이 때는 엘시가 국수급의 기사로 성장하였을 때가 아닌 모친에게 바둑을 배우던 어렸을 때이다.
마음만 먹으면 3단급의 고수도(그것도 포석 단계가 아닌 중반 단계 이후부터) 관광보낸다. 작중 서술된 것에 의하면 단수 차이 때문에 3단인 발리츠 굴도하가 '''6개를 깔고''' 시작했다.[8] 엘시는 중반까지 맞바둑을 하듯이 대충 둬 절대 6점 접바둑에는 이기지 못할 수를 내려놓고 있다가 갑자기 외통수가 반복되는 수를 두기 시작, 중반까지 6점의 이득이 살아있는 상태로 앞서고 있던 발리츠는 '''19집 차이로''' 대패했다.[9] 사실 바둑은 명분이고 엘시와 대화하고 설득하려는 게 목적이었던 발리츠 굴도하도 정작 발리츠의 말을 듣고 생각에 빠진 엘시가 바빠서 복기는 생략하겠다고 말하자 자기도 모르게 달려들어 멱살잡이라도 하고 싶은 충동에 빠지고 집에 돌아가 아내 아이넬 굴도하가 지적할 때까지 그 사실에 골몰할 정도.
1.4. 대인 관계
보훈국장으로 일했던 경력으로 인해 여러 레콘과도 친분을 나누고 있으며, 즈믄누리의 무사장인 탈해 머리돌과도 막역한 사이이다. '''인간 친구가 없다'''[10] 는 상황은 초반부엔 그의 안습한 교우관계를 나타내는 것처럼 보였으나 후반부에 가서 중요한 상징을 가지게 된다. 쥐딤 사건으로 무수한 레콘 친구와 레콘 원수를 만든 듯하며, 이후 보훈국장으로 일하면서 레콘 전역병들과 친해질 기회가 많았던 듯하다.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무적장군이 보훈국장이라는 경로는 이상하지만, 황태자의 교육과정이라고 보면 알맞지 않은가? 라고까지 생각했다.
'''필멸자 중에서 가장 많은 레콘 친구를 가진 사람'''으로 묘사된다. 물론 발케네에 1만 명의 레콘 군대를 기르고 있던 암살공이나 팔리탐도 있지만, 암살공은 팔리탐과 힌치오를 통해 레콘들과 계약 관계를 맺었을 뿐이고 팔리탐 역시 힌치오를 접점으로 레콘 부대와 교감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에 비해 엘시는 '''개인적인 친분관계'''를 아주 폭넓게 보유하고 있다. 쵸지의 검사로서의 자질이나 심리적 방황, 준람의 가정사 등을 줄줄이 꿰고 있는 것을 보면 보훈국장이 아니라 무슨 레콘 초등학교 선생님이라도 했던 것이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11] 보훈국장 업무가 엘시의 자질을 잘 살릴 수 있는 것인만큼 담당하는 레콘들과 친분관계를 맺기 쉬웠던 것으로 보인다.[12]
쥐딤 시절 부하로 있던(쥐딤 사건 당시 엘시는 수교위가 아닌 교위였으며 니어엘은 그 휘하의 부위였다)[13] 니어엘 헨로의 여동생 부냐 헨로와 약혼 관계에 있었으나, 규리하 반란때 부냐 헨로가 적의 서신을 반출하는 데 협조한 혐의를 받고 하늘누리의 시체 염장 시설인 백화각에서 근무하는 죄수가 되어 버린다. 그러자 그녀를 제국만병장의 힘으로 꺼내는 대신 공을 세워 황제에게 특별사면령을 내리게 하려는 어찌보면 뒤틀린 인물.[14]
치천제의 측근인 비스그라쥬백 데라시는 그를 이렇게 표현했다.
그리고 엘시는 "맞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황제의 첩이라는 비공식적인 지위에서 아라짓 제국을 쥐락펴락하는 정략가였던 데라시가 자신이 입밖으로 말을 냈는지 아니면 엘시가 사실은 인간처럼 생긴 나가여서 니름을 들었는지 기겁을 했지만, 엘시는 뒤이어 "당신이 시간을 낭비할 사람은 아닌데 내가 듣지 못한 것을 보아 니름을 한 것 같은데 듣지는 못했지만 당신은 영리한 사람이니까 당신의 의견에 동의한다." 라고 설명했다.'당신은 무향(武鄕) 규리하를 거꾸러뜨렸습니다. 폐하를 기쁘게 해서 대사면령을 유도하기 위해. 당신은 반역자의 딸을 규리하의 지배자로 만들고 싶어합니다. 그렇게 될 경우 실수로 반역자를 도운 다른 여자 또한 용서받는 것이 공평하니까. 고달픈 사람. 당신은 떡이 먹고 싶어지면 농업을 번창시킬 사람입니다. 농민들은 즐거워하겠지요. 하지만 당신은 떡을 먹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치천제에게 느끼는 감정은 매우 복잡하다. 황제의 위엄에 대한 존경이나 자신에게 호의를 베푸는 사람의 은혜에 대한 감사 외에도, 라세 개인에 대한 엘시의 감정 역시 각별하다.[15] 제국이 실종되었을 때 엘시는 최전선에서 제국을 되찾으려 애쓰면서도 제국이 아닌 '황제의 실종'을 슬퍼하는 사람은 자신 밖에 없다는 사실에 서글퍼했다. 다른 사람들이 황제에 대해 가진 생각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무한한 권능의 절대자'에서 벗어나지 않는 데에 비해, 엘시는 제국을 위해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고독한 여인의 모습을 보았다고 묘사된다. 약혼녀의 사면 요청처럼 개인적인 부탁을 황제에게 하는 것은 바르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이유 역시 이러한 감정 때문이다.[16]
1.5. 제국 유일의 만병장
탈해 머리돌의 말에서 인용. 만 명의 사병을 황제의 승낙 없이 임의로 부릴 수 있으며, 동원된 인원이 만 명 이하라면 법의 제한을 받지도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나아가 '그럴 필요도 없었다, 부냐를 그의 사병으로 지명하면 되는 일이었다.'라는 대목도 있었다. 즉 그의 사병이 되는 동시에 부냐 헨로의 죄가 사라진다는 의미인데 여기서 풀이하면 단순히 '황제의 동의가 필요 없는 제국민 만 명 소집권'수준이 아니라 더 큰 의미를 지니는 권리인 것으로 보인다. 대충 봉건제에서 땅 대신 사람을 받은 셈으로, 제국법이 아니라 오직 엘시의 법에만 따르는 엘시만의 신민(臣民) 1만 명을 둘 수 있는 권한이다. 그리고 이 권한은 적어도 자작 영애, 즉 귀족에게도 행사될 수 있고, 본의는 아니었다지만 반역죄로 노역 중인 사람까지 해방시켜 줄 수 있다."각하. 각하께선 만병장입니다. 순전히 원칙대로 말한다면, 만약 각하께서 백화각을 습격해서 부냐 헨로를 구출한다 해도 동원된 인력이 만 명을 넘지 않는다면 그건 위법이 아닙니다. 그렇잖습니까? 그렇다면 바꿔 말해서 각하께서는 병사 만 명이 필요한 일 이내의 일이라면 폐하께 무엇을 요청하든 상관없습니다. 절대로 주제넘은 일이 아닙니다."
작중에서는 엘시 에더리가 선한 사람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지만, 이갓은 신하에게 부여하기에는 지나치게 막강한 권한이다. 만병장이 제국 관료들을 전부 사병으로 지명해버리면? 군부의 고위 장교들이나 권세 있는 귀족들을 모조리 사병으로 지명해 무력화시키면? 물론 황제는 법 위에 있는 존재이므로 만병장을 직권으로 처벌하는 것은 가능하며 황제가 통제력을 유지하고 있는 한 만병장이 사병으로 지명한다고 저런 고위 인사들이 무조건 만병장의 편을 들어줄 거라는 보장은 없지만, 저런 권한을 인정해주는 것 자체가 분란의 소지를 하늘치 등에 한가득 실어놓고 다니는 꼴이 된다.
1권에서 '아라짓 제국에는 적지 않은 수의 십병장(十兵將)이 있다. 그리고 백병장(百兵將) 또한 귀족감이나 공신록을 뒤져 보면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천병장(千兵將)이라는 무시무시한 권리를 가진 사람은 넓은 제국에 아무도 없다. 상식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지위이기 때문이다.'라고 엘시가 받은 이 직위는 매우 이례적, 아니 초월적인 권리이다. 극단적인 예시를 들자면 만명 이하로 이루어진 부대라면 그 부대로 반란을 일으키고 황제를 시해하려 들어도 엘시와 1만 사병은 제국법으로 심판받지 않는다.
이는 다음 대화에서도 나타난다.
단, 황제는 제국법 위에 있는 존재이므로 황제에게 처벌[17] 당할 수는 있지만, 만약 제국법 위에 있는 존재를 없애버리는 데 성공한다면 제국의 그 누구도 만병장과 그 휘하의 병력을 법으로는 심판할 수 없다."폐하를 죽이겠습니다."
"반역인가?"
"아닙니다. 저는 만병장입니다. '''만명 이하의 단위에서 제가 하는 모든 일은 위법성이 조각#s-3됩니다. 이들 모두 반역자가 아닙니다.'''"
이 때문에 제국 상층부에서는 엘시 에더리가 만병장의 권한을 수여받은 것을 실질적으로는 치천제의 뒤를 잇는 계승자로 지명된 것으로 여겼다. 황제가 신하에게 자유반역권을 선물하는 것은 결국 그에게 자신의 자리를 넘겨주겠다는 의도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엘시는 이런 막강한 권리를 사적으로 사용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지라 만병장의 권리를 행사한 적은 손에 꼽는다. 어떻게 보면 이 만병장 권한이야말로 엘시의 딜레마 그 자체인데, '바르지 않은' 것, 즉 윤리와 율법에 어긋난 행위를 싫어하는 엘시 자신이 합법적으로 모든 비윤리적인 일들을 인정받는 지위에 있다는 점이 매우 아이러니하다. 사실상 엘시의 모든 행위를 긍정하게 하는 엘시의 만병장 권한은, 무엇이 바르고 바르지 못한 일인지에 대한 판단을 엘시에 한해서 의미없게 만드는 것이며, 따라서 엘시는 이 딜레마에 괴로워한다. 스카리가 쳐들어와 '''"만병장인 네가 당장 백화각에 쳐들어가 부냐를 끌고 오면 정당한 일이냐 아니냐?"'''고 따지자, 하고 싶지도 않고 스스로도 듣고 싶지 않은 대답임에도 '''"정당합니다"'''라고 쥐어짜듯 대답한 데서 그 딜레마를 엿볼 수 있다. '도덕과 율법에 따르며 살고자 하는' 엘시의 개성이 '도덕과 율법에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고 허가받은' 엘시의 권한과 충돌하면서 자아내는 모순.
한편으론 엘시가 정말 각오를 하고 만병장 권리를 행사하려 하면 그 상대 쪽에서 이를 거부하여 무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엄밀히 말해서 억지로 상대를 사병으로 만들어도 전혀 제국법에 문제되기지 않지만 상대의 의사를 중시하여 권리 행사를 포기하는 것. 부냐 헨로를 백화각에서 탈출시키려 했을 때 처음 이 권한을 쓰려 했으나 거대한 권력의 위협을 느낀 부냐 쪽에서 스스로 백화각으로 돌아갔다. 또 한 번은 발케네 전쟁 때, 치천제의 명령을 받은 시허릭 마지오의 군사들에게 대학살을 겪은 코네도 성에서 살아남은 노약자들을 자신의 사병으로 지명하여 보호하고자 했으나 역시 그들이 이를 거부했다. 마지막은 최종결전에서 치천제 공격에 참여한 사람들을 반역자가 아니라고 선언하기 위해 만병장 권리를 주장한 일. 다만 이 역시 상기했듯 '제국법 위의 존재'인 황제를 상대로 한 선언이므로 살짝 미묘하다.[18]
헌데 위의 장면에서, 황제와 만병장, 치천제와 엘시 사이에 얽혀 있는 무수한 모순들을 발견할 수 있다. '제국법을 초월한' 황제[19] 와 '제국법에서 벗어난' 만병장은 '''제국법에 의해서 제국법을 무시한 권력 행사를 인정받는''' 존재들이다. 그 양자의 의사가 충돌할 때 어느 쪽이 우선시되는지에 대한 조항이 소설 내에 언급된 바 없고, 어차피 양자 모두 제국법을 위반해도 면책되는 존재들인데 제국법에 무슨 조항을 써놓든 의미도 없다. 이 시점에서 사실상 치천제와 엘시 사이의 상하관계나 윤리는 무의미해진다. 둘은 자신의 권력 행사 범위의 차이가 있을 뿐 그 각자에 한정해서는 제국에서 가장 자유로운 자들이며, 모순적인 정체성과 모순적인 지위를 소유한 이들이다. 즉 용 황제 치천제와 인간 만병장 엘시 에더리는 대등한 모순의 표상이 된다.
식물이면서 식물을 불태우는 용이며 제국법에 의해서 제국법을 초월해 존재하는 황제, 사람이 아니지만 사람을 지배하는 치천제 이라세오날과 살아있으면서도 삶 그 자체인 죄를 짓지 않고, 역시 제국법에 의해서 제국법에 벗어난 만병장이며, 뭐든지 할 권리가 있으면서도 스스로에게는 무의미한 윤리와 율법으로 스스로를 제약하는 엘시 에더리는 양자 모두 살아있는 모순의 덩어리다. 그리고 마새 시리즈에서 용은 모순을 상징하므로, 사라말 아이솔이 엘시 에더리를 일컬어 '용'이라 한 바가 이와 같이 이루어진 셈이다. 그러나 치천제와 달리 엘시는 죄를 짓는 삶을 선택함으로써 모순을 해결하고 스스로의 인간성을 되찾게 된다.
요약하여, '만병장'이라는 지위와 권한은 엘시가 지닌 엄청난 권력과 실력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엘시라는 개성이 품은 모순을 드러내며 그를 인간이자 용으로 만드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20]
2. 행적
2.1. 규리하 정벌부터 지멘 추적까지
황제에게 반기를 든 무향 규리하를 거꾸러뜨리는 장면부터 본편에서의 그의 활약이 시작된다. 한번도 점령당한 적이 없다던 규리하를 순식간에 거꾸러 뜨린 후 반역을 일으킨 전대 규리하공 아이저 규리하의 장녀인 정우 규리하를 규리하의 새 지배자로 추천한다. 하지만 그녀의 그 자리를 고사하고 결국 그녀가 혼인을 하면 그 남편을 규리하의 지배자로 삼기로 하고 그녀의 혼사를 책임지는 입장이 된다.
사실 황제는 규리하의 지배권을 가지게 된 정우 규리하와 엘시 에더리를 결혼시켜 그에게 규리하를 주고자 하는 계획이 있었다(물론 후반부에야 '어찌됐건 상관없어' 식이 되지만). 그래서 규리하 점령으로도 부냐의 사면이 안되었고 그에게 정우의 혼사를 책임지게 한 것도 장래 두사람을 결혼시키려는 황제의 포석이었던 것.
그런 상황에서 엘시가 만병장의 권한으로 부냐를 백화각에서 꺼내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지만, 정작 그 권한의 행사를 바라고 있던 부냐가 마지막 순간에 탈출을 거부하고 백화각에 남는다. 엘시는 '''황제에게 무엇을 요구하지 않고 공로를 통해 간접적으로 그녀를 구해내려는 자신의 의도가 이해받았다'''고 생각해 내심 크나큰 기쁨을 느낀다. 그러나 부냐는 정작 엘시가 찾아오기 전에 익명(아마도 데라시)의 살해 협박을 받고 감히 엘시를 따라갈 수 없었던 것(...). 어쨌든 부냐가 자신을 이해해 줬다고 생각해 의욕이 폭발한[21] 엘시는 '''황제사냥꾼 지멘을 잡아들여 부냐의 사면을 노려 보기로 한다.''' 이를 위해 과거 안면이 있던 사이인 강대한 레콘들을 불러모아[22] 지멘을 추적하는 여행에 나선다.
추격 중 시모그라쥬공의 계략에 의해 마른 우물에 갇히자 베로시 토프탈에게 똥을 던지는 기행을 보여준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그의 전설적인 몸종 이레는 대장군이 일부러 그러한 소문이 퍼지게 만들어 자신이 갇힌 위치를 드러내려는 것이라 여기고 기뻐했다. 다만 그 직후에 이어지는 위체 파림과의 대화[23] 와 그 상황의 묘사를 보자면 아무 의미 없는 행동이었던 듯. 또한 우물 안에 자신의 땀과 침과 분변으로 무수한 '''사람'''의 벽화를 그렸는데, 이러한 행동의 의미도 불명.[24]
엘시가 갇히게 된 것은 시모그라쥬와 발케네의 협약으로 인한 것이었고, 엘시 에더리를 가둔 후 황제에게 반란을 일으키려는 발케네공의 시도였다. 그러나 이는 귀환을 위한 황제의 일시 리타이어 시도와도 일치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황제는 이를 알면서도 엘시를 지멘 체포조로 보낸것.
2.2. 제국의 붕괴와 흑사자군 규합
결국 레콘들에 의해, 그리고 사모 페이를 만나 엘시의 역할에 대해 들은 지멘에 의해 구출된 엘시는 파림 부녀, 추격대 레콘 넷과 지멘, 이레 달비와 함께 시모그라쥬에서부터 발케네까지의 여정을 떠난다. 발케네에 도착한 엘시는 하늘누리와 발케네의 전쟁과 그로 인한 참상, 그리고 하늘누리의 추락으로 사라져버린 황제와 제국이라는 현실에 아연해한다. 하늘누리의 실종과 락토 빌파의 사망 때문에 제국과 발케네는 임시로 휴전을 맺고 엘시는 탈해 머리돌이 있는 규리하로 제국군의 철군을 명한다. 스카리 빌파는 하늘누리의 실종이 길어지자 거병하였고 사라티본 부대를 앞세워 제국령을 포함한 지러쿼터 산맥의 동쪽을 포위하며 규리하 침공을 계획한다. 제국 각지의 유력자들 또한 황제가 처음부터 없던 것처럼 다시 세력 다툼에 돌입하고, 엘시는 그 누구도 치천제를 애도하지 않는 상황에 슬퍼하면서도 하늘누리가 사라진 아라짓 제국의 권력 공백을 메꾸고 반란 시도를 막기 위해, 그리고 발케네로부터 위협 받고 있던 규리하를 구하기 위해 전 제국을 돌며 병사를 규합하기 시작한다. 엘시의 최종 목표는 스카리 빌파나 베로시 토프탈 등 군사를 이끌고 발호한 세력들을 평정하고 제국의 귀족들을 모두 모은 귀족원 회의를 개최하여 '''귀족들의 합의를 통해서 새로운 황제를 선출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이 때 그의 사기적인 능력이 보인다. 분명히 약 5만 명의 병력으로 출발했는데, 얼마 후에는 35개의 군단, 200개 가량의 독립중대, 1개 레콘 여단을 모은 96만 대군을, 그것도 규합하는 도중에는 '사라졌다'는 표현까지 나올 정도로 비밀리에 집결시킨 것. 그것도 북진하려던 시모그라쥬군으로부터 고작 800km 떨어진 지점에. 남부의 제국군이 이미 사병화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현재 북부에서 규합 가능한 전력은 모두 모아왔다'''. 그것도 행정을 담당해 줄 하늘누리가 통째로 실종되고, 뱀단지같은 초월적인 통신수단도 없이 오로지 휘하 병력만으로 이루어낸 업적이다. 게다가 전투도 벌이지 않고 레콘들이나 소규모 부대의 이동으로 군단 한두 개의 지휘체계를 완전히 박살내 와해시키는 모습도 보여준다. [25] 보급 문제는 전 대륙에 흩어져있는 하늘누리 비밀보급소를 이용하긴 했지만, 합류를 거부하는 자들을 (큰 피해는 없었지만)무력으로 합류시키는 등 자잘한 마찰이 많았던 것을 보면 보급만 해결한다고 가능한 일 역시 아니었다. 모두가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지 않는 일을 해내고야 마는 입지전적인 인물. [26]
그러나 흑사자군의 규합이라는 희대의 업적은 엘시에게 지독한 모순을 안겨주게 된다. 원래 엘시의 의도는 무력으로 찍어눌러서라도 평화를 되찾은 제국에서 각지의 귀족들을 모아 합의를 통해 새로운 황제를 탄생시킨 다음 흑사자군을 바친 뒤 퇴역하는 것이었는데, 엘시의 세력과 엘시가 이루어낸 업적이 너무나 독보적이었기 때문에 제국의 어떤 귀족이라 하더라도 비견될 수 없는 거물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이 상태에서 황제 선출 회의가 열린다 한들 제후들이 엘시 이외의 인물을 옹립할 수도 없고, 설령 그런다 한들 엘시 한 명을 보고 모인 백만 대군이 어떻게 움직일지 장담할 수 없다.
베로시 토프탈의 한 참모는 이렇게 표현했다. "지금 대장군의 말은 이런 겁니다. '황제가 사라졌다고 서로 싸우지 말고 손잡고 모여 앉아서 새 황제를 뽑아 봅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우리에게 힘으로 그것을 강요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문제는, 그가 정말로 그럴 능력이 있다는 겁니다. '''오직 엘시 에더리만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엘시 에더리가 사라지면 그의 계획은 불가능해지고, 지금까지 이룬 것들도 없던 일이 될 겁니다. 그의 부하들은 그가 해놓은 것을 유지하는 것조차 못할 테니까요." 제국 재건 범신민 연대의 코세 칸디드 백작은 엘시의 태도를 두고 "자, 이제 누구나 황제가 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황제가 될 생각이 없다"고 말하는 꼴이며 그것은 그 휘하의 흑사자들이 서로 물어뜯는 또 한 차례의 혼란을 초래할 뿐이라고 지적한다.
결국 엘시는 자신의 의지가 어쨌건 제국의 공중분해를 막기 위해서는 황제가 되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엘시 에더리라는 한 걸출한 개성에 의해 재건될 신제국은 엘시 에더리가 정점에서 물러나는 순간 와해될 수밖에 없다.''' 엘시가 없어도 유지될 수 있는 제국의 체계를 재건(또는 새로 구축)하려면 완성될 때까지 엘시가 붙어 있어야 할 텐데, '''그러면 황제 노릇하는 것과 뭐가 다를까?''' 머리가 둘이 되어버린 상황에서는 혼란이 일어나지 않는 게 이상하다. 이러한 현실을 엘시는 충분히 알고 있었으나, 그럼에도 자신은 황제의 대장군이며 자신이 합의 없이 제위에 오르는 것은 반역이라며 끊임없이 주변의 요청을 거절한다.
그런 고민의 와중에도 베로시 토프탈이 이끄는 시모그라쥬군과의 결전은 목전으로 다가왔으며, 엘시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결국 이 싸움에서 승리한 측이 제국의 절대 강자가 되어 제위에 오르는 것을 누구도(그 승자 자신도) 막지 못하게 되리라는 것은 명백했다. 결국 엘시는 흑사자군으로 남쪽의 제국군 55만을 끌어모아온 대호왕의 군대와 맞붙어 파격적인 전략들을 거듭 동원하며[27] 베로시를 농락, 승기를 잡지만, 대전투가 벌어지는 와중에 황제의 제2의 하늘치 말리가 귀환하여 황제가 숨겨온 아라짓 전사들을 쏟아내면서 전투는 흐지부지 끝나버린다."제국의 몸값은 얼마인가?
잃어버린 제국을 되찾으려면 얼마나 지불해야 하는가? 한 사람에게 6억 명의 적을 주지 않으려면 얼마나 내놓아야 하는가? 우리의 긍지를 사려면 얼마나 지불해야 하는가?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기 위한 대가는 얼마인가?
보아라. 제국이 사라진 순간 우리의 이웃이었던 자들은 우리의 울타리를 짓밟고 우리의 재산을 빼앗아 갈 자들로 바뀌었다. 상대가 가진 힘과 자신이 가진 힘을 비교할 뿐 긍지 따위는 생각할 수도 없게 되었다. 그들에게 창칼로 보답받을까 무서워 똑같은 창칼을 준비하며 그들에게 주어야 할 사랑은 감추어야 했다. 우리는 긍지 잃은 비참한 짐승이 되었다. 제국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짐승에서 벗어나려면 우리는 그것을 되찾아야 한다. 하지만 그대들도 알고 나도 알듯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주어지는 것은 없다. 그 무엇에건 우리는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제국을 되찾으려면 그에 합당한 몸값을 내놓아야 한다. 제국의 몸값은 얼마인가?
우리가 알고 있던 제국은 원시제 폐하께서 목숨을 내놓으며 건설한 제국이었다. 제국의 몸값은 그것을 원하는 자의 목숨이다. 이보다 더 간단할 수는 없다. 우리의 피 한 방울로 우리의 아들딸이 뛰놀 언덕 하나를 살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피 한 방울로 우리의 형제자매들이 일할 일터 하나를 살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흘린 피 한 방울, 한 방울로 우리는 제국을 살 수 있다. 그 멀고 험한 길을 힘겹게 걸어 이곳에 모인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슴속에 제국은 이미 존재한다. 그 제국은 우리를 위해 울고 있다. 내게는 그 울음소리가 들린다. 우리가 되사고자 하는 제국. 그것은 우리의 피눈물에 갈급한 폭군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 울고 있다. 그런 천박한 것이 우리 제국이라면 우리는 되사지도 않는다. 우리는 우리의 제국이 우리를 위해 눈물 짓고 우리의 가족과 이웃을 보살필 제국임을 알기에 그것을 되사려 한다. 제신께서 빚어 동물과 다르게 하신 우리들을 야수로부터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제국임을 알기에 그것을 되사려 한다. 우리가 치를 수 있는 가장 큰 값을 치르고서.
'''아라짓 제국은 우리가 산다!'''"
- 시모그라쥬군과의 결전 직전, 흑사자군을 향한 출진 선언.
2.3. 치천제의 귀환과 마지막 싸움
치천제가 귀환하자 팔디곤 토프탈은 저항 의지를 완전히 포기하고 항복한다. 엘시는 치천제로부터 항복한 남부군의 재편을 명령 받고 사모 페이를 만나 원시제의 계획을 듣는다. 또한 도시연합의 대수호자인 아르키스 대리인인 매너링 이젤사와 회담을 하고 이때부턴 남부 재편성 작업에 들어간다.
후반부 니어엘과의 대화에서 자신을 이렇게 표현한다.
'''나는 아무 것과도 결합할 수 없어. 물에 뜬 기름이지. 어느 것과도 결부될 생각이 없어. 그래서 언제나 거꾸로지.'''
죄를 지니지 않고 있기 때문에 어떤 죄도 물을 수 없는, 가장 '''부도덕한''' 존재. 작중에서는 죄를 가져야만 사람다운 사람이라고 묘사된다.[28] 그는 죄를 가지고 있지 않기에 꿈의 영향을 받지도 않는다. 정우와 함께 있던 꿈이 죄를 가지지 않고 태어난 그를 사산아에 비유하기도 했고, 엘시가 언뜻 보이는 비인간적인 부분(위의 서술)은 죄가 없기 때문으로, 본인 역시 자신이 죄를 지니고 있지 않은것을 한탄하며 죄를 가져 사람이 되기를 원했다(위 대사인 니어엘에게 하는 넋두리, 엘시의 죄를 빼앗아간 히베리를 노려보는 등의 장면에서 알 수 있다.).'''사랑하니까 약혼한 것이 아니라 약혼했으니까 사랑하지. 존경하니까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복종하니까 존경하지. 내 나라니까 되찾으려 하는 것이 아니라 되찾으려 하니까 내 나라야.'''
치천제는 1만 6천년간의 장대한 계획에서 엘시를 황조의 개조로 만들어[29] 일종의 몸종으로 쓰려 했던 것. 어쨌든 후계자긴 후계자다. 실제로도 치천제가 엘시를 양자로 삼았기도 하고.
돌아온 치천제의 명에 따라 규리하를 공격하려 하는데,[30][31] 이때 사라말 아이솔이 아트밀을 구하기 위해 환상근육을 사용하여 치천제에게 닥돌하다가 용의 화염에 불타버리는 한편 제이어 솔한이 치천제의 정체를 까발려버리는 사건, 그리고 치천제의 용밍아웃이 겹치면서 치천제의 정체가 밝혀진다. 이에 죄를 돌려받아야겠다는 정우와 정우의 행동을 '사악한 용의 지배에서 인간을 해방시켜 황제가 된 영웅'의 것으로 포장하려는 발리츠 굴도하, 그리고 엘시를 황제로 만들려는 시허릭 마지오 외 여러 레콘들과 제국군과 함께 소리에 탑승하여 말리를 뒤쫓아가게 된다. 이때까지는 상황이 그렇게 흘러갔기 때문에 따른 것이고,[32] 명확하게 치천제를 시해하려는 생각까지는 없었던 듯하나...
가족이나 다름없었던 몸종 이레 달비가 자신을 납치하려 했다가 제이어 솔한의 지적에 의해 본심을 깨닫고 소리의 나라미에서 몸을 던진 사건을 겪고는, 정신억압의 무서움을 뼈저리게 알게 되어 치천제를 공격하는 일을 진두지휘하게 된다. 치천제를 공격하는 것 외의 다른 어떤 선택지도 정신 억압의 가능성 때문에 고려할 수 없다고.
마침내 말리에 돌입하여 치천제를 죽이려 할 때 죄를 가지게 된다. 치천제가 자신의 양자가 죄에 오염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사람을 저주하다가 자살하려고 하자 그것을 막으려고 하다가 쓰러진다.[33] 치천제는 기절한 그를 안아 말리 밖으로 던지고, 그렇게 떨어지다가 마중온 정우와 재회하는 것이 피마새의 대단원.[34]
이후의 행적은 알 길이 없지만 최후반부에 전지적 서술로 에더리 '''황조'''가 언급되는 것을 보면 마침내 제위에 오른 듯하다.[35] 다만 제이어 솔한이 본 미래에는 제국의 분열과 '''"새로운 영웅왕의 도래"''',[36][37] 헨로라는 성의 왕의 모습도 있었으니 결국 엘시 에더리가 통치하는 아라짓 제국은 멸망과 분열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영원한 정지가 아닌 끝없는 변화'''를 추구하는 피마새의 주제를 생각하면 당연한 일. 이 대단원조차 이야기의 완성점이 아니라 역사의 한 흐름이며, 앞으로도 사람은 분열과 통합, 반목과 사랑을 거듭하며 변화하게 되리라는 암시라고 볼 수 있을 듯하다.
3. 커플링 논란
부냐와는 이어지기 힘들어졌지만, 후반부를 보면 정우 규리하와 이어질 가능성이 가장 높다. '''《피를 마시는 새》의 마지막 장면은 공중에서 엘시가 정우를 끌어안으며 끝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 장면은 원래 미소짓기를 어려워하는 엘시가 나름대로 노력해 쑥스러운 미소를 지은 채 정우를 향해 팔을 벌리고 정우는 그걸 함박 웃음을 지으며 맞이하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이 시점의 제이어 솔한은 하늘치를 통해서 미래를 직접 보고 있는 상황이지만 이것은 눈마새에서 륜 페이가 과거를 볼 때와 마찬가지로 왜곡되어 완벽히 해석되기 어려운 미래이다. 자세한 것은 제이어 솔한 항목 참조.
그 외에도 마지막에 둘이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납득이 안 간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는데 실제로 엘시 본인이 정우를 특별히 의식하는 장면은 없고, 오히려 초중반부에 정우가 대장군님은 좋은 사람이지만 좋은 아빠가 될 것 같지는 않다고 틸러에게 이야기했다.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초중반부까지의 이야기고, 후반으로 갈수록 정우가 엘시를 의식하는 묘사가 많아진다.[38] 자기가 결혼을 서두르지 않는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엘시가 자기에게 청혼하고 자기가 거절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부끄러워하거나[39] 굴도하 남작 부부의 중매 이야기에 자기는 대장군님이 골라준 사람과 결혼할거라고 거부하기도 했고, 눈이 내리는 것을 보며 대장군님은 잘지내고 있을까를 생각하는 장면도 있다.
4. 기타
- 가족은 모친밖에 언급되지 않는데[40] , 이 모친이 대단한 호걸이다. 엘시가 어렸을 때 바둑을 가르쳐줬는데 다른 스승은 거론되지 않는 것으로 봐서 발리츠 굴도하가 멱살을 잡고 싶어할 만큼 초월적인 바둑 실력은 모친에게서 배웠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엘시 부재중의 칼리도 백령을 무난하게 통치하고 있으며,[41] 베로시 토프탈이 대호왕의 이름을 내세워 북진할 때 칼리도가 아닌 비나간 쪽으로 진로를 잡은 것은 칼리도를 공격하게 되면 상당히 골치아픈 상태에 직면하게 되기 때문이라는 서술로 보아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지만 대단한 수완가인 듯.[42] 엘시에게 도움받은 레콘들은 엘시의 모친도 좋아하여 기꺼이 도와주려고 나설 수 있다는데 가족관계에 따른 은원[43] 에 무관한 레콘이 그렇게까지 행동할 수 있게 된 데에는 모친의 인품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또한 엘시는 자신의 여성관이 자신의 모친, 니어엘, 치천제라고 생각했다.
- 포지션 등에서 묘하게 그리스도교의 예수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 신(치천제)의 아들(양자)이며, 신의 의지를 지상에 실현하는 의무를 받은 자이자 인간 중 유일하게 죄없는 자라는 것 등. 특히 피마새 이야기는 엘시가 30세인 시점에서 시작해서 33세가 되는 시점에서 막이 내리는데 이는 예수의 공생애 연령 및 기간과 일치한다. 차이라면 예수는 죄가 없기에 완전한 존재지만 엘시의 '죄없음'은 인간으로서의 결함으로 묘사되는 점, 그리고 예수가 지상의 죄를 대속하고 신의 곁으로 돌아가는 반면 엘시는 신의 옆자리를 포기하고 지상으로 떨어져내려 인간으로서의 삶을 선택한다는 대비점이 있다.
- 기레기, 사법불신 등 "붓으로 이루어지는 범죄"에 대한 인식이 강해지면서 작중 엘시가 남긴 대사가 SNS 등지에서 새삼 회자되고 있다. 작품의 연재 시기가 2004년이고 현재는 2019-2020년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고전의 재발견(...)이라 부를 만하다.
널리 돌아다니는 구절은 여기까지지만 저 대사에는 후반부가 더 있다.
>"등기부 위조는 붓으로 이루어지는 반역이라고 할 수 있으며, 따라서 나는 창검으로 이루어지는 반역에 비해 더 큰 벌을 내리지는 못할 망정 최소한 같은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붓에 보내는 칼의 경의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즉 엘시가 비판하고자 한 것은 엄밀히 말하면 행정가고 법조인이나 기자는 아니지만, 붓으로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직종이란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작중에서는 엘시의 뜻대로 조속히 사형을 언도하지는 않았고, 그런 의견을 탐탁찮아한 정우 규리하가 직접 판결을 내리게 되었다. 그리고 정우는 범인인 골케 남작의 성채를 통째로 생매장해 버리는 기행을 통해 제국구급 네임드로 떠오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