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곡초등학교
1. 개요
서울중곡초등학교는 1967년에 개교한 공립초등학교다. 현재는 행정구역상 중랑구 면목동이지만 개교 당시만 해도 행정구역상 성동구 중곡동이었기 때문에 교명이 중곡국민학교로 명명되었다. 이후 면목동이 동대문구로 편입될 때 중곡동 북부의 일부를 가져가면서 중곡초도 동대문구 면목동 관할로 들어갔고(면목 4동-1970년) 현재는 동부교육청 소속이 되었다. 광진구 중곡동과 경계를 이루는 답십리로는 중곡초 교문에서 겨우 2블럭이다.
2. 학교 연혁
3. 교훈 및 상징
3.1. 교표
3.2. 교화
장미
3.3. 교목
소나무
3.4. 교훈
'''슬기롭고 튼튼하며 자랑스런 어린이'''
3.5. 교가
해가 솟는 용마산밑[2]
넓은 터전에송이송이 알알같이 뭉친 우리들
송죽같이 푸른기상 마음에 심고
길을 닦는 일꾼되자 중곡어린이
높은이상 바라보고 올바로 가자
희망의길 찾아가자 손을 잡고서
아름다운 꽃동산에 향기가 피듯
우리나라 빛을 내자 중곡어린이
3.6. 칭찬송
교가 이외에도 칭찬송이라는 노래가 있다. 월요아침방송을 시작하기 전에 이 노래를 틀어주고 월요아침방송이 끝날 때에는 교가를 틀어주는 방식.칭찬은 고래도 춤추게해요
우리 모두 칭찬합시다
섬김과 배려의 칭찬365
칭찬하고 칭찬합시다
자랑스런 중곡어린이
슬기롭고 착하잖아요
우리 모두 칭찬하고
칭찬받는 어린이돼요~
4. 학교 특징
5. 학교 시설
1967년 지어졌던 기존의 낡은 시설[3] 은 2004년 학교 현대화 사업 당시 아예 부숴버렸고 현재의 학교 건물은 더 크고 아름답게 바뀌었는데 하늘에서 보면 인천국제공항이 떠오르게 생겼다. 새로 지은 건물이 워낙 커서 학교 서편에는 동부교육지원청이 들어서 있다. 원래는 동부교육지원청 자리에 용마중학교가 입주할 예정이었으나 학부모의 반발로 무산되었다는 설이 있다. 결국 용마중학교는 근처에 새로 건물을 지어야했다.[4]
교실 시설은 책상은 다른 학교와 다를게 없고 칠판은 층수마다 조금 차이가있다. 4~5층의 몇개의 반은 걸레로 닦는 물칠판이지만 나머지는 대부분 일반 칠판이다. 사물함은 14년까지 가로 25cm 세로 15cm정도의 작은 신발함과 같은 것을 사용하여 매우, 매우, 매우 비좁았다.[5] 거기다가 오래 사용했다보니 못이 삐죽삐죽 튀어나오기도하고 가끔은 아예 문짝이 떨어져있기도했다. 그래서 15년 부터는 모든 사물함을 가로세로 45cm정도의 넉넉한 정사각형 사물함으로 바꿨는데 여전히 신발함은 바꾸지 않고있다.[6] 또한 평범한 티비를 사용중인데 사이즈는 보통 사이즈라 특정한 위치에서는 잘 안보이는 경우가 있다.[7] 또한 냉/난방또한 매우 잘된다. 겨울에는 35~37도까지 올릴수있어 선생님들과 애들은 더워서 끌 지경이다. 여름에도 마찬가지로 13도까지 내려가서 추워서 끈다. 심지어 복도도 후끈후끈하다. 아무래도 학생수가 많아서 지원금을 많이 받는듯하다.
급식실은 매우 넓고 쾌적하고 깨끗하다. 비해 통로도 적당해서 부딪칠일도 없다. 다시 한번 강조할정도로 급식실이 매우 매우 매우 넓다. 흘리면 바로 치워주시고 자리를 떠날시 바로바로 닦아준다. 다만 한가지 단점으론 출입문 바로앞이라 대기줄에 사람이 꽉차있어 밖에서부터 대기중인 반은 여름엔 매우 덥고 겨울엔 무척 춥다. 하지만 안은 냉/난방이 매우 잘된다.
당장 들어가면 운동장 크기부터 남다르다. 잔디이고 옆에는 우레탄 트랙이 있는데 발암물질이 나와 뜯고 새로 다시 깔았다. 이런 탓에 중곡초에서 용마중학교로 진학하면 오히려 시설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많이 받고 실망한다. 중곡초 뿐만 아니라 중화초등학교도 상봉중학교에 오면 느낌이 똑같다.
이 학교 바로 앞이 북부운수차고지라서 활동을 나가거나 집 먼 사람들은 어디든지 버스로 갈 수 있다. 아예 종점명이 중곡초등학교.
6. 출신 인물
[1] 처음에는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을 사용하여 Chunggok으로 썼다. 학교 홈페이지 주소가 http://cg.es.kr/인 데서 알 수 있다.[2] 용마봉 정상에서 정면에 학교가 위치해 있다. 개교 당시부터 70년대 중반까지는 용마산에 역청사업소가 들어와 있어서, 산을 발파해서 건축자재 등으로 썼기 때문에 학교에서 보이는 용마봉 아래 부분은 돌과 흙만이 흉하게 드러나 있었다. 이후 발파는 중지되고 공원화되며 30년 이상 풀과 나무가 자라 마치 자연 절벽처럼 보이지만, 아니다. 용마 인공폭포가 그 흔적이다.[3] 1970년대 초중반 베이비붐 세대가 다닐 시기에는 한 학년당''' 21개 반'''까지 있고 반 정원이 '''80-90명,''' 저학년은 2부제 수업을 했을 만큼 인원이 많았다. 전교생이 무려 만여 명(!)이었다.[4] 현재도 지도에 중곡초 서편 건물에 용마중으로 표기한 지도들이 많다.[5] 어느정도였냐면 학교에서 받은 교과서도 다 못넣을정도였다.[6] 여담으로 옆 중학교인 용마중학교는 사물함이 다른학교에 비해 비교적 큰편이다.[7] 특히 운동장 창가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