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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徐仲錫
1948년 8월 25일 ~
한국의 역사학자, 대학교수.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교수[1] 로 현재 역사비평(대중학술지) 편집주간 겸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생존한 한국근현대사 연구자들 가운데 강만길과 더불어 가장 권위높은 역사학자다. 역사스페셜 같은 역사 관련(주로 현대사)에서 자주 나오는 편이며 인터뷰도 자주 하는 편으로 검색하면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충청남도 논산군 출신으로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67학번으로 입학해 일계 김철준(1923~1989) 교수 등에게서 강의를 받았고,[2] 다음해에 휴학하던 중 1969년 삼선개헌 반대 시위에 참여, 그 해 철학·미학·종교학과 통폐합에 반대하다 제적당하고, 결국 군대에 끌려갔다 1972년에 군 제대했다. 제대 무렵 유신체제였고, 복학 허락이 떨어졌다. 서울대학교 재학 중 1973년 유신체제 반대 시위 운동에 가담했는데, 1974년 민청학련 사건때 연루되어 사전검속을 당했다. 고향으로 도피했다가 집에서 붙잡혔다고(...) 그때 중앙정보부에서 심하게 고문당하고 옥고를 치뤘다. 당시 중정에서 이철, 유인태 등이 안 잡히니까 그들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려고 고문했다고 한다.[3] 서중석 교수 회고에 따르면, 물고문이 가장 고통스러웠다고 한다. 지금도 고문 후유증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고 한다.[4] 민청학련 사건으로 군사법정에서 긴급조치 4호 위반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2심에서 20년으로 감형됐다. 실제 투옥기간은 10개월 반 정도였다고 한다.#
석방 후 다시 학교에서 두번째로 제적당했다고 한다. 그리고 1980년, 5·18때 또 붙잡혀 들어갔다고 한다. 운동권 후배들을 만났다는 게 이유였다는데, 그때도 보안사로부터 심하게 맞았다고 한다. 그때 또 세번째로 대학교 제적당했다고 한다.
1979년 동아일보 기자[5] 로 신동아에서 1988년까지 활동하기도 했다.
기자생활 중에도 자료를 모으고 공부하면서 지내다 1984년 봄에 사면복권됐고, 또 복학했다고 한다. 84년 9월에 연세대학교 사학과로 가 3년간 석사과정 밟아가며 87년 연세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고, 1988년 3월 서울대 대학원 박사과정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 해 9월에 동아일보 기자생활 그만두고 학문에만 전념해 1990년에 서울대 국사학과 대학원에서 '한국 현대사' 분야 박사학위를 받았는데(지도교수는 한영우 교수) 이는 '역사학계'에서 '한국현대사 박사학위 1호'로 기록한 것이다[6] . 이후 한국 현대사의 최고 권위자로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학위를 받고 얼마 후 성균관대 교수에 임용되어 성균관대에서 근현대사 부분의 제자들을 길러냈으며[7] 2013년 8월에 정년 퇴임했다. 후임자는 일본인 후지이 다케시氏(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선임연구원)라고 알려졌으나 2015년 2학기부터 오제연 교수가 후임자로 부임했다. 학부생, 대학원생들에게 모두 인기가 대단하다.
이후 4.3진상규명을 비롯한 현대사의 여러 굴곡의 진상규명 노력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밖에 대중강연도 활발하게 하는 편.
2013년 6월 서울고법에서 '1974년 긴급조치 1·4호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돼 징역 20년을 선고받은 서중석 교수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당시 서 교수와 함께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되어 유죄 판결을 받은 황인성, 나병식 등에게도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서 교수 등이 벌인 학생 데모의 목적은 유신헌법을 폐지하고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한 것이었다"며 "(공소사실처럼) 대한민국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할 목적은 없었다"고 판결 내렸다.
사관은 대체적으로 민중사관 쪽의 좌파적 민족주의의 성향이 두드러진다. 좌우통합과 6.15남북공동성명과 같은 햇볕정책에도 호의적이다. 한국사에서 이승만 과 김구[8] , 박헌영과 같은 극우`극좌파에 비판적이고, 온건 중도 통일론을 지향하던 김규식이나 안재홍, 여운형, 민족주의 성향에 현실론적 노선을 중시하던 공산주의계의 이재유를 높게 평가한다. 다만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 현대사> 개정증보 2~3판 머릿말에 따르면 발간 시점에서 벌어진 최근의 역사는 좀 더 시간을 두고 쓰는 유보적인 모습도 보인다.
포스트모더니즘계열 사상이나 역사는 별로 좋아하지 않으시는 듯.[9]
뉴라이트 세력에서는 몹시 싫어한다.(...) 서중석 교수 역시 뉴라이트를 싫어하고 비판한다.
더불어 학부에서는 그리 엄하지 않지만, 대학원에서는 공부를 압박하시는 무서운 교수님으로 꼽힌다고 한다. 물론 학부생 중에도 무섭다고 말하는 사람은 있다. 현재는 교양수업에 들어가지 않지만, 한국사 교양과목 수업이 열리면 가장 먼저 자리가 차서 광클을 해야 했을 정도로 인기가 많은 교수였다.
대표저서로 '한국현대민족운동연구'가 있는데, 박사논문을 출판한 이 책은 한국현대사 연구 서적 단행본으로 연구가치가 상당히 높은 책으로 평가받는다. 이 책에 대해 좋든 싫든 간에 현대사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들로서는 반드시 한두번쯤 보거나 참고하게 돼있다. 초보자가 보기는 어려운 편으로 근현대사 관련 지식이 필요하다.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 현대사'는 대중용으로 쓴 책으로, 읽기 쉽게 구성된 한국 현대 통사이다. 그밖에도 대중용 강연을 모으거나, 대중용으로 쉽게 글을 써서 여러 책을 출간하였다. '한국현대사 60년'도 대중용 책으로, 이 책은 외국 여러 국가에도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프레시안에서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를 연재하였고, 후에 오월의 봄 출판사를 통해 책으로 나오고 있다.
《80년대 민중의 삶과 투쟁 》, 역사비평사, 1988
《한국현대민족운동연구》,역사비평사[10]
《한국현대민족운동연구 2 : 1948~1950 민주주의 · 민족주의 그리고 반공주의》,역사비평사[11]
《지배자의 국가 민중의 나라》,돌배게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 현대사》,웅진지식하우스
《대한민국 선거이야기》,역사비평사
《한국 현대사 60년》,역사비평사
《이승만과 제1공화국 : 해방에서 4월 혁명까지》,역사비평사[12]
《시민을 위한 한국역사》,창비
《이승만의 정치이데올로기》,역사비평사
《조봉암과 1950년대 상,하》,역사비평사
《전장과 사람들》,선인
《전쟁 속의 또 다른 전쟁 : 미국 문서로 본 한국 전쟁과 학살》,선인
《민족주의와 역사교육》,선인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묻다 : 5인5색 한국 현대사 특강》,철수와영희
《배반당한 한국민족주의》,성균관대학교출판부(SKKUP)
《비극의 현대지도자》,성균관대학교출판부(SKKUP)
《신흥무관학교와 망명자들》,역사비평사
《거꾸로 희망이다》,참언론 시사인북
《6월 항쟁(1987년 민중운동의 장엄한 파노라마)》,돌베개, 2011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1~20권(완) ,오월의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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徐仲錫
1948년 8월 25일 ~
1. 개요
한국의 역사학자, 대학교수.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교수[1] 로 현재 역사비평(대중학술지) 편집주간 겸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생존한 한국근현대사 연구자들 가운데 강만길과 더불어 가장 권위높은 역사학자다. 역사스페셜 같은 역사 관련(주로 현대사)에서 자주 나오는 편이며 인터뷰도 자주 하는 편으로 검색하면 쉽게 찾아볼 수 있다.
2. 생애
충청남도 논산군 출신으로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67학번으로 입학해 일계 김철준(1923~1989) 교수 등에게서 강의를 받았고,[2] 다음해에 휴학하던 중 1969년 삼선개헌 반대 시위에 참여, 그 해 철학·미학·종교학과 통폐합에 반대하다 제적당하고, 결국 군대에 끌려갔다 1972년에 군 제대했다. 제대 무렵 유신체제였고, 복학 허락이 떨어졌다. 서울대학교 재학 중 1973년 유신체제 반대 시위 운동에 가담했는데, 1974년 민청학련 사건때 연루되어 사전검속을 당했다. 고향으로 도피했다가 집에서 붙잡혔다고(...) 그때 중앙정보부에서 심하게 고문당하고 옥고를 치뤘다. 당시 중정에서 이철, 유인태 등이 안 잡히니까 그들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려고 고문했다고 한다.[3] 서중석 교수 회고에 따르면, 물고문이 가장 고통스러웠다고 한다. 지금도 고문 후유증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고 한다.[4] 민청학련 사건으로 군사법정에서 긴급조치 4호 위반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2심에서 20년으로 감형됐다. 실제 투옥기간은 10개월 반 정도였다고 한다.#
석방 후 다시 학교에서 두번째로 제적당했다고 한다. 그리고 1980년, 5·18때 또 붙잡혀 들어갔다고 한다. 운동권 후배들을 만났다는 게 이유였다는데, 그때도 보안사로부터 심하게 맞았다고 한다. 그때 또 세번째로 대학교 제적당했다고 한다.
1979년 동아일보 기자[5] 로 신동아에서 1988년까지 활동하기도 했다.
기자생활 중에도 자료를 모으고 공부하면서 지내다 1984년 봄에 사면복권됐고, 또 복학했다고 한다. 84년 9월에 연세대학교 사학과로 가 3년간 석사과정 밟아가며 87년 연세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고, 1988년 3월 서울대 대학원 박사과정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 해 9월에 동아일보 기자생활 그만두고 학문에만 전념해 1990년에 서울대 국사학과 대학원에서 '한국 현대사' 분야 박사학위를 받았는데(지도교수는 한영우 교수) 이는 '역사학계'에서 '한국현대사 박사학위 1호'로 기록한 것이다[6] . 이후 한국 현대사의 최고 권위자로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학위를 받고 얼마 후 성균관대 교수에 임용되어 성균관대에서 근현대사 부분의 제자들을 길러냈으며[7] 2013년 8월에 정년 퇴임했다. 후임자는 일본인 후지이 다케시氏(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선임연구원)라고 알려졌으나 2015년 2학기부터 오제연 교수가 후임자로 부임했다. 학부생, 대학원생들에게 모두 인기가 대단하다.
이후 4.3진상규명을 비롯한 현대사의 여러 굴곡의 진상규명 노력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밖에 대중강연도 활발하게 하는 편.
2013년 6월 서울고법에서 '1974년 긴급조치 1·4호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돼 징역 20년을 선고받은 서중석 교수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당시 서 교수와 함께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되어 유죄 판결을 받은 황인성, 나병식 등에게도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서 교수 등이 벌인 학생 데모의 목적은 유신헌법을 폐지하고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한 것이었다"며 "(공소사실처럼) 대한민국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할 목적은 없었다"고 판결 내렸다.
3. 성향
사관은 대체적으로 민중사관 쪽의 좌파적 민족주의의 성향이 두드러진다. 좌우통합과 6.15남북공동성명과 같은 햇볕정책에도 호의적이다. 한국사에서 이승만 과 김구[8] , 박헌영과 같은 극우`극좌파에 비판적이고, 온건 중도 통일론을 지향하던 김규식이나 안재홍, 여운형, 민족주의 성향에 현실론적 노선을 중시하던 공산주의계의 이재유를 높게 평가한다. 다만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 현대사> 개정증보 2~3판 머릿말에 따르면 발간 시점에서 벌어진 최근의 역사는 좀 더 시간을 두고 쓰는 유보적인 모습도 보인다.
포스트모더니즘계열 사상이나 역사는 별로 좋아하지 않으시는 듯.[9]
뉴라이트 세력에서는 몹시 싫어한다.(...) 서중석 교수 역시 뉴라이트를 싫어하고 비판한다.
더불어 학부에서는 그리 엄하지 않지만, 대학원에서는 공부를 압박하시는 무서운 교수님으로 꼽힌다고 한다. 물론 학부생 중에도 무섭다고 말하는 사람은 있다. 현재는 교양수업에 들어가지 않지만, 한국사 교양과목 수업이 열리면 가장 먼저 자리가 차서 광클을 해야 했을 정도로 인기가 많은 교수였다.
4. 저서
대표저서로 '한국현대민족운동연구'가 있는데, 박사논문을 출판한 이 책은 한국현대사 연구 서적 단행본으로 연구가치가 상당히 높은 책으로 평가받는다. 이 책에 대해 좋든 싫든 간에 현대사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들로서는 반드시 한두번쯤 보거나 참고하게 돼있다. 초보자가 보기는 어려운 편으로 근현대사 관련 지식이 필요하다.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 현대사'는 대중용으로 쓴 책으로, 읽기 쉽게 구성된 한국 현대 통사이다. 그밖에도 대중용 강연을 모으거나, 대중용으로 쉽게 글을 써서 여러 책을 출간하였다. '한국현대사 60년'도 대중용 책으로, 이 책은 외국 여러 국가에도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프레시안에서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를 연재하였고, 후에 오월의 봄 출판사를 통해 책으로 나오고 있다.
4.1. 저서일람
《80년대 민중의 삶과 투쟁 》, 역사비평사, 1988
《한국현대민족운동연구》,역사비평사[10]
《한국현대민족운동연구 2 : 1948~1950 민주주의 · 민족주의 그리고 반공주의》,역사비평사[11]
《지배자의 국가 민중의 나라》,돌배게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 현대사》,웅진지식하우스
《대한민국 선거이야기》,역사비평사
《한국 현대사 60년》,역사비평사
《이승만과 제1공화국 : 해방에서 4월 혁명까지》,역사비평사[12]
《시민을 위한 한국역사》,창비
《이승만의 정치이데올로기》,역사비평사
《조봉암과 1950년대 상,하》,역사비평사
《전장과 사람들》,선인
《전쟁 속의 또 다른 전쟁 : 미국 문서로 본 한국 전쟁과 학살》,선인
《민족주의와 역사교육》,선인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묻다 : 5인5색 한국 현대사 특강》,철수와영희
《배반당한 한국민족주의》,성균관대학교출판부(SKKUP)
《비극의 현대지도자》,성균관대학교출판부(SKKUP)
《신흥무관학교와 망명자들》,역사비평사
《거꾸로 희망이다》,참언론 시사인북
《6월 항쟁(1987년 민중운동의 장엄한 파노라마)》,돌베개, 2011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1~20권(완) ,오월의봄
5. 여담
- 방송인 정재환이 그의 지도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 딸도 정치학 교수이다.
[1] 2013년 8월 정년퇴임.[2]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 현대사> 초판 머릿말에서 김철준 교수가 언급됐다.[3] 당시 중정은 폭력으로 도시 중심부를 마비시키고 새 정권을 세우려 했다는 식으로 몰았다고 한다.[4] 고문당한 이후론 잠을 제대로 못 잔다고 한다. 2009년~2010년즈음부터는 수면제를 상시 복용하고 있다고 한다.[5] 이 무렵 10·26 사건 나고 다시 복학 조처가 내려져 학생 신분이기도 했다고 한다.[6] 사회과학계에서는 이미 앞서서 한국현대사와 관련한 학위논문과, 논저들이 쏟아져나왔다. 1979년 처음 출간되어서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해방전후사의 인식' 집필진들도 대부분 사회과학 전공자들이다.[7] 코미디언 출신 방송인 정재환이 그의 지도 아래 박사학위를 받았다.[8] 김구는 현대사 연구자들 사이에서 대체로 정치가로서는 부정적 평가를 받는 편이다. 이는 김구가 불굴의 의지를 가진 독립투사이긴 했지만 정치력에 있어서는 이승만의 상대가 되지 못했고, 우파 강경론과 임정집권, 신탁반대의 입장을 고수하면서 결국 중도노선과의 연합도 실패하고, 우파 내에서는 미군정 반대 쿠데타를 꾀하다 발각되 미군정과 갈라서고, 김성수나 장택상 등의 친일 국내 세력이나 이승만과도 갈라지며 고립된 점, 그 과정에서 통일논의가 물거품이 된 점 등이 꼽힌다[9] 재미있게도 동 학교 학부교수가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의 포스트콜로니얼리즘 전문가 김택현 교수...[10] 출세작, 역비한국학연구총서 1[11] 위의 지속 내용[12] 20세기 한국사 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