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외모

 


1. 개요
2. 불경에서의 언급
3. 불교 미술에서의 묘사


1. 개요


석가모니의 외모에 관해 서술하는 문서. 본 문서는 석가모니불의 외모 묘사에 관해 이야기하므로, 다른 불상의 외형 묘사와는 혼동되지 않도록 서술한다.[1]

2. 불경에서의 언급


세존께서는 바라문 쑨다리까 바라드와자의 발자국 소리 때문에 머리의 두건을 벗었다.

그러자 바라문 쑨다리까 바라드와자는 생각했다.

[쑨다리까] ‘이 존자는 머리를 빡빡 깎았네, 이 존자는 머리를 빡빡 깎았네.’

숫타니파타 3장의 4. 쑨다리까 바라드와자의 경(sundarika bharadvaja sutta)

가장 오래된 원시경전인 숫타니파타에서 석가모니에 대한 묘사는 대머리라는 것이다. 원래부터 곱슬머리로 묘사한 것은 아니었다.

[쎌라] “당신은 몸이 완전하고 탁월하게 빛나며, 훌륭하게 태어나, 보기에도 아름답고, 용모는 금빛으로 빛나며, 치아는 아주 흽니다.

스승이시여, 당신은 정진력을 갖춘 분입니다.

참으로 위대한 사람의 특징으로서 태생이 좋은 사람이 갖추는 모든 상호들이 당신의 몸에 있습니다.

맑은 눈, 잘 생긴 얼굴 훤칠하고 단정하고 위엄있어 수행자들 속에서도 마치 태양처럼 빛납니다.

보기에도 선한 수행승이 황금빛 같은 피부와 이렇듯 빼어난 용모를 지니셨는데 수행자의 삶에 만족하십니까?

전륜왕이 되시어 전차 위의 정복자, 사방에 승리하는 세계의 지배자가 되셔야 합니다.

숫타니파타 3장의 7. 쎌라의 경(sela sutta)

또한 다른 부분에서는 맑은 눈과 잘 생긴 얼굴, 키크고 단정하며 위엄을 지닌 귀티가 나는 상으로 묘사하고 있다.

・ 발바닥이 편평하다.

・ 발바닥에 수레바퀴 자국이 있다.

・ 손가락이 가늘고 길다.

・ 손발이 매우 부드럽다.

・ 손가락 발가락 사이에 얇은 비단 같은 막이 있다.

・ 발꿈치가 원만하다.

・ 발등이 높고 원만하다.

・ 장딴지가 사슴 다리 같다.

・ 팔을 늘어뜨리면 손이 무릎 아래까지 내려온다.

・ 남근이 오므라져 몸 안에 숨어 있는 것이 말의 것과 같다.

・ 키가 두 팔을 편 것과 같다.

・ 모공에 새까만 털이 나 있다.

・ 몸의 털이 위로 쏠려 있다.

・ 온몸이 황금빛이다.

・ 항상 몸에서 솟는 광명이 한 길이나 된다.

・ 살이 부드럽고 매끄럽다.

・ 발바닥과 손바닥, 정수리가 모두 판판하고 둥글며 두껍다.

・ 두 겨드랑이가 편편하다.

・ 몸매가 사자와 같다.

・ 몸이 크고 단정하다.

・ 양 어깨가 둥글고 두툼하다.

・ 치아가 40개이다.

・ 이가 희고 가지런하며 빽빽하다.

・ 송곳니가 희고 크다.

・ 뺨이 사자와 같다.

・ 목구멍에서 향기로운 진액이 나온다.

・ 혀가 길고 넓다.

・ 목소리가 맑고 멀리 들린다.

・ 눈동자가 검푸르다.

・ 속눈썹이 소의 것과 같다.

・ 두 눈썹 사이에 흰 털이 나 있다.

・ 정수리에 살이 있다.

바바린의 부탁을 받은 아지따는 석가모니에게서 바바린이 언급한 32상을 확인하고 가르침을 청한다.
여기에서 부처의 32상은 재가에 태어나면 전륜성왕이 되고, 출가한 사람이면 수많은 사람을 구원하는 성인된다는 관상이다.

3. 불교 미술에서의 묘사


전해지는 불상의 이미지나 불화(佛畵)의 이미지는 대체로 또아리처럼 말은 머리카락과 큰 귀(특히 동아시아권에서는 후덕한 턱과 가는 눈, 미간의 점)를 지닌 것으로 표현되나, 모두 후대에 창작된 것으로, 석가모니가 진짜로 어떻게 생겼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은 간다라 미술의 등장 이전까지, 석가모니는 사람의 형상을 본뜬 조각상이 아닌, 주로 보리수 나무의 형상이나 윤회와 불교의 가르침을 떠오르게 하는 법륜[2]으로 표현됐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인도 원정 이후, 그리스 미술의 영향을 받은 인도인들은 석가모니를 본격적으로 구체적인 전신 조각상 또는 부조(浮彫)로 표현하기 시작했는데, 이 시기의 불상을 간다라 불상이라 부른다.
[image]초기 그리스 미술의 영향을 받은 간다라 불상의 모습
석가모니불을 묘사한 불상이다. 위에서 보이듯 오늘날 동아시아권에서 묘사하는 석가모니의 외모와는 차이가 있다.
기독교의 예수의 이미지가 창작자, 창작 시기에 따라 이탈리아인처럼 묘사되기도, 아나톨리아인처럼 묘사되기도, 심지어 아랍인처럼 묘사되기도 하였듯이, 석가모니의 이미지는 묘사하는 국가와 시기에 따라 그 이미지가 크게 달랐다.
파키스탄에는 석가모니가 고행을 하던 시절의, 매우 마른 모습을 조각한 간다라 불상이 있어 특기할만하다. 이를 석가모니 고행상이라고 한다.
후한(後漢)시기에 불교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전래되고, 불교가 크게 융성한 위진남북조시대에는 왕즉불(왕이 곧 부처)사상에 따라 석가모니 불상조차 군주의 모습을 참고해 만들기도 하였다. 중국에 불교가 전래된 이후, 석가모니 상은 점차 황인처럼 묘사되기 시작했다.
[image]한국남북국시대 통일 신라에서 제작된 석굴암의 석가모니 상의 모습[3]
당시 신라인들이 생각하는 자비롭고 후덕한 성자의 이미지로 묘사되었다. 얼굴도 동양인처럼 묘사되었다.
일본의 석가모니상의 외형은 일본에 불교를 전래한 백제의 불상의 영향을 받았으며, 백제 멸망 이후 계속해서 변화,발전하였다.
상좌부 불교가 크게 융성한 동남아시아권에서는, 동남아시아권 특유의 미(美)를 가미한 석가모니상이 많이 제작되었으며, 힌두교 미술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image]힌두교 미술과 유사한 느낌으로 석가모니를 묘사한 그림
색감과 얼굴의 인상이 도리어 브라흐마, 시바와 같은 힌두교 신들의 그림과 비슷하다. 곱상한 외모를 강조하는 듯한 붉은 입술도 눈여겨볼만 하다. 유의할 점은 힌두교가 본격적으로 융성하기 이전에도 인도에서는 인도 특유의 개성을 더한 불상, 불화(佛畵)들이 많이 제작되었다.따라서 불교의 석가모니 묘사가 힌두교 미술의 영향을 일방적으로 받았다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한국의 고려시대에는 민간에서도 석가모니 불상이 많이 제작되면서, 조형미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좋게 말해 개성이 뛰어난(...) 석가모니 상도 많이 제작되었다. 물론 왕실이나 귀족층이 주도해 제작한 석가모니상은 여전히 화려하고 정교한 경우가 많았다.
오늘날 서양식 미(美)의 기준에 익숙해진 많은 현대인들은, 흔히 사찰에 가면 볼 수 있는 석가모니 불상의 외모를 결코 '미남형(美男形)'이라 여기진 않을 것이다.
[1] 대체로 동아시아권에서 부처의 얼굴 묘사는 거의 비슷하나, 부처가 들고 있는 것이나 손의 수인(手印, 항마촉지인 등)을 통해 어떤 부처인지 구분한다.[2] 바퀴(Wheel). 팔정도를 나타내는 8개 축이 달린 '다르마 차크라'나 12연기의 양면을 나타내는 24개의 축이 달린 '아소카 차크라' 등[3] 아미타불이라는 설도 존재한다. 그러나 대중적인 인식도 그렇도, 주변의 제자상들 때문에 석가모니불로 파악하는 것이 학계에서도 일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