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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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프로-유라시아 대륙의 인도차이나 반도, 말레이 반도와 필리핀 군도 및 말레이 제도 전역을 일컫는 지역명이다.
북쪽에 위치한 대한민국, 북한, 중국, 일본은 기본적으로는 동아시아로 분류하지만 중국은 땅이 커서 홍콩, 마카오는 간혹 동남아시아로도 분류한다. 그리고 일본의 경우도 오키나와현은 기후 등이 동남아시아에 더 가깝다.[1] 아예 여행상품 등에 홍콩/마카오는 동남아시아로 분류되어 태국 등과 연계되는 게 많다.
북쪽으로 중국, 서쪽으로 인도와 인도양, 남쪽과 동쪽으로 호주와 태평양을 접하고 있다.
홍강유역과 자바섬을 빼고 면적에 비해 전근대 시기까지는 인구 밀도가 낮은 지역 중 하나였으나 산업화 이후로 폭발적인 인구성장을 보이고 있다. 그래도 2000년대 들어서는 태국과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미얀마, 베트남의 인구성장은 점차 주춤해져가는 추세로 접어들었으며 특히 태국과 미얀마, 싱가포르는 인구감소를 걱정해야 할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라오스와 필리핀, 캄보디아는 여전히 괄목할 정도의 인구 성장을 보이는 형편인데 문제는 이들 나라들이 대단히 낙후했고 발전 기미가 안 보인다는 게 문제다.
경제적으로는 비록 OECD 회원국은 아니지만 선진국에 다다른 싱가포르를 뺀 모든 나라가 개발도상국이다.[2] 그렇기에 우리가 흔히 인식하는 '동남아시아'는 싱가포르 하나를 빼면 '후진 지역'이라는 고정관념이 있고 실제로도 후진국들이긴 하다. 오히려 싱가포르는 호주, 뉴질랜드와 같이 영어권으로 묶이거나 상당한 화교 비율때문에 한자 문화권으로 묶이기도 한다.
- 태국은 1인당 국민소득이 아직 명목 7,600달러, PPP 2만 달러 정도[3] 인 선진 개발도상국으로 어느 정도 현대화가 이루어져 있고 수도 방콕은 글로벌한 도시이지만 생활 인프라가 방콕 수도권에 지나칠 정도로 집중되어 있고, 부정부패, 빈부격차, 저출산 문제 역시 심각하여 최근 성장세가 꺾인 관계로 선진국 진입 전망이 어둡다.
- 캄보디아, 미얀마 등은 빈곤국으로 인력 송출, 관광업, 농업, 자원 수출 등으로 먹고 사는 신세이고 공업화나 시설 현대화는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 필리핀, 베트남 등은 최근 앞의 두 국가와 산업이 비슷하나 이들보다는 경제가 괜찮은 편이고, 2010년대에 높은 성장률을 보이고 있으며, 산업화도 꽤 빠르게 진행되고 있기는 하지만, 동남아시아 선도 국가인 태국과 말레이시아와의 격차가 이미 상당히 벌어진 상황이다. 발전 방식도 말레이시아와 태국이 예전에 해왔던 경제발전 노하우를 벤치마킹한 형식인지라 독자적인 경제개발 노선을 개발하지 않는 이상 중진국 이상이 될 수 없다. 게다가 필리핀은 불안한 치안, 심각한 부정부패와 빈부격차, 제조업의 부재가 발목을 잡는다.
- 라오스의 경우 1인당 GDP 수준은 필리핀, 베트남과 유사하고 최근 농업, 수력 산업, 관광 등에 집중하여 높은 성장률을 보이고 있기는 하나, 중국과 태국 등 인근 국가에 과도하게 의존적인 경제 구조를 가지고 있고 공공부채가 급증하고 있으므로 위태롭다.
- 인도네시아는 경제규모가 세계 15위 정도로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큰 경제대국이나, 1인당 국민소득이 명목 4,100달러, PPP 14,000달러 정도[4] 에 불과한 낮은 수준의 개발도상국이다. 1996년~1997년 아시아 경제위기로 -10% 대의 경제하락을 겪으며 크게 흔들린 이후, 21세기 초부터 꾸준히 안정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지만 중국이나 인도 수준의 고성장세는 아니다. 비효율성이 만연한 제도와 고질적인 부정부패, 기술 및 고등교육 부문의 상대적 투자 저조, 심각한 빈부격차 등 산적한 문제로 고소득 개발도상국 혹은 선진국으로의 도약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 산유국인 군소국가 브루나이는 꽤 잘 살지만 석유에만 모든 산업을 의존하며 그외의 별다른 산업이 없다. 게다가 2010년대 이후론 1인당 국민소득이 반토막나는 등 현재 경제구조가 매우 위태롭다.
- 말레이시아는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 초반대, PPP 3만 달러 정도[5] 로 싱가포르 다음으로 잘 사는 나라이고 국제적으로도 상위권 개발도상국(Top-middle) 정도의 경제적 지위를 갖고 있지만, 다소 미성숙한 민주주의로 인한 권위주의적 정치의식과 자원에 편향적인 경제구조, 말레이계와 중국/인도계 간의 빈부격차 갈등문제 등 아직 후진국적인 면모가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어 아직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많다.
사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빈부에 대해서는 어떤 나라가 잘 산다 못 산다 하기보다는, '''중국계 화교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라고 요약하는 편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2. 명칭
이원복 교수 교양만화 <가로세로 세계사> 2권에 따르면 해당 명칭은 서구권 관점에서 만들어진 신조어이며, 2차 대전 종전 뒤부터 고착화되었다고 한다. 일부 지역을 '''코친차이나(Cochinchina)''', 혹은 '''인도차이나'''라고 부르기도 한다. 단 이러한 명칭은 동남아시아 전체를 가리키기보다는 인도차이나 반도 지역에만 해당한다.
코친차이나의 '코친'은 중국어 지명인 교지(交趾)에서 유래한다. 중국이 베트남 북부를 지배하면서 그 중심지에 둔 행정구역의 이름이 교지(交趾)군인데 현대 만다린 발음, 그리고 교지(交趾)를 공식적으로 부르는 발음은 구개음화로 인해 '자오즈(Jiāozhǐ)', 베트남어론 자오치(giao chỉ)이다. 이 '교지'가 다시 마인어에서 코치(Kochi)가 되었고, 이를 듣고 동남아시아에 진출해 있던 포르투갈인들에 의하여 코친(Cochin)으로 변형된 것이 코친차이나의 어원이다. 이후 인도의 도시 코친과 구별하고자 코친차이나라고 부르게 되었다. 더 정확하게 하자면 사이공을 중심으로 하는 남베트남을 이렇게 불렀다. 즉, 인도의 코친 시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그 간접적 영향을 받은 이름인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 않았으면 코친차이나가 아니라 그냥 코친이라 불렸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또 다른 명칭인 '인도차이나'는 거대한 대륙국가인 인도와 중국 세력 사이에 끼어있어 양쪽의 문화를 모두 수용한 지정학적 입장 때문에 그렇게 불린다.
이 땅의 주민들은 역사적으로 주변 강국인 인도와 중국에 가로막혀 대륙 방면으로 진출하지 못하고 자기들끼리 엎치락 뒤치락 반복하기 일쑤였다. 미얀마의 아라칸 왕국처럼 방글라데시 방면으로 진출했던 왕국도 있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무굴 제국에게 털려서 영토를 상실했다. 이렇듯 전통적으로 복잡한 민족, 문화, 역사를 갖고 있어 다른 아시아 지역과 달리 이 지역에 '''지배적으로 나타나는 문화적 동질성이 없다.''' 각국의 언어, 종교, 민족이 매우 달라 유럽의 기독교 문화, 서아시아의 이슬람 문화, 동아시아의 유교 및 한자 문화와 같은, 지역을 전반적으로 지배하는 보편적인 문화적 특성을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태국-미얀마-캄보디아-베트남-라오스 5국은 근현대 이후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이 다섯 나라의 공통점이 인도차이나 반도에 위치한 대륙계 동남아 국가들이란 점이다. 이 중 어느 하나라도 정변이나 군사적 움직임이 발생하면 각국은 초긴장 상태에 돌입한다. 그래서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군부의 입김이 세다.
흔히 동남아라고 줄여 부르기도 한다. 동남아로도 이 문서로 들어올 수 있다. 물론 정식명칭은 동남아시아로 영어의 Southeast Asia에 대응한다.
3. ASEAN과 동남아시아의 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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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 지역 국가들은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ASEAN''')이라는 지역 국가 연합을 결성했으며, 현재 여기 가맹된 국가들은 다음과 같다.
여기에 대만 남부와 홍콩, 마카오, 다이토 제도, 사키시마 제도도 자연지리적으로 동남아시아에 걸쳐 있어서 넣기도 하고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다가 독립한 동티모르까지를 동남아시아로 규정한다. 동티모르가 있는 티모르섬을 포함하여 인도네시아 동부까지는 자연지리상으로는 오세아니아에 포함되기도 한다. 방글라데시도 동남아시아와 가까이 접해서인지 동남아시아로 볼 때도 있거나 같이 묶여서 언급될 때도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대만을 동남아시아로 분류하고 있다.
문화적, 경제적, 역사적으로 볼 때 한족 위주로 중화권의 일부인 대만은 분명 동아시아 지역에 속하는 곳이므로 문화적으로는 적절한 분류는 아니고 항공사 및 여행업계의 편의상 관행적으로 이렇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는데 나무위키 특유의 원론적 서술일 뿐, 자연지리적으로 기후나 풍토 등을 따져보면 이 곳을 동북아시아로 보기는 힘들 수 있다. 대만이 실효 지배중인 스프래틀리 군도는 지리적으로 동남아시아다.
마찬가지로 홍콩과 마카오도 문화적으로는 동아시아 한족 문화권이지만 자연지리적으로는 동남아시아에 더 가깝다. 애초 셋 다 야자수가 우거지고 눈은 구경도 못 하는 곳들을 동북아시아로 보긴 힘들다.[6] 심지어 홍콩 국제공항과 마카오 국제공항의 ICAO 코드는 동남아시아로 분류되어 있는데 지리 상 사실 베이징시, 상하이시보다 마닐라나 싱가포르가 더 가까워서이다. 기후도 아열대기후로 동아시아가 아닌 동남아시아 기후다.[7]
반대로 지리적으로는 동남아시아에 들어가지만 문화적으로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베트남이나 중국계 중심의 영어권 선진국인 싱가포르를 동아시아에 넣기도 하는데, 중화인민공화국에서 내몽골, 위구르, 티베트 등 소수민족 거주지를 빼면 한자문화권이 된다. 물론 동아시아는 어디까지나 지리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분류는 아니다. 그리고 중국 역시 땅이 넓어 전술한 것처럼 지리적으로 여러 곳으로 분류가 갈린다. 사실 몽골과 티베트, 위구르 등 투르크나 몽골인 같은 유목민족 거주지를 정주민족인 한족 거주지와 같은 곳으로 넣긴 힘들다.
즉 지리적인 관점에서 보면 ASEAN 회원국들 말고도 동아시아에 속하는 나라들의 일부도 걸쳐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동남아시아를 속해 있는 땅을 기준으로 하면 크게 두 묶음으로 나눈다.
일부 자료에 따라 인도차이나 반도 지역을 '대륙부 동남아시아', 말레이 제도 지역을 '도서부 동남아시아'라고 칭하기도 한다. 대륙부 동남아는 주로 불교 문화권[8] 이고, 도서부 동남아는 주로 아브라함계 종교 문화권이다.[9] 그리고 말레이시아 영토가 인도차이나 반도 남쪽으로 이어져 있는 말레이 반도와 보르네오섬 등 주변의 제도에 걸쳐 있다. 말레이반도 지역은 인구 밀도가 높고 수도와 주요 도시가 있는 지역으로 태국 남부와 접해있어 두 지역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한다.
4. 동남아시아의 경제
4.1. 경제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총 명목 GDP는 2조 8천~9천억 달러 정도이며 동남아시아 전체 지역의 1인당 GDP는 대략 4천 달러 정도이다.[10] 2016년 기준 세계 평균 1인당 GDP가 10,300달러, 아시아 평균이 5,635달러임을 생각하면[11] 낮은 수치다. 다만 평균 $2,000에 미달하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나 남아시아 등의 지역보다는 높은 편이다. 또한 국가별 편차가 크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20세기 중반부터 아시아 금융위기 국면[12] 을 제외하면 큰 경제둔화 없이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보여 온 지역이기도 하다. 한국, 대만, 중국, 일본 등 동북아시아 국가들이 이 시기 굉장한 수준의 고도성장을 이루어내어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 갔을 뿐, 동남아시아 지역 역시 세계적으로 보면 상당히 고도성장을 이룬 지역에 속한다.
보통 동남아시아와 비교되는 개발도상지역인 라틴아메리카 지역과 1인당 GDP의 역사적 추세를 비교해 보자[13] .
이상을 보면, 20세기 중반 그래도 개발도상지역 가운데에서는 최선진 지역이었던 라틴아메리카 주요 지역과 동남아시아 주요 지역 간 격차가 최근 50년 간 현저히 줄어들었음을 알 수 있다. 1967년[14] 과 2017년 1인당 GDP를 단순 비교할 경우 필리핀, 베트남을 제외한 4개 동남아시아 주요국 1인당 GDP는 모두 적어도 30배 이상으로 늘어났고 베트남의 경우 1990년-2017년간만 비교해봐도 20배 이상 늘어났으며, 심지어 인도네시아는 70배, 싱가포르는 90배 이상으로 늘어났지만, 라틴아메리카 주요국 중 20배 이상으로 늘어난 경우는 브라질과 콜롬비아만이 유이하며 유일한 선진지역인 칠레가 이에 근접하고 있다. 그렇지만 동남아시아는 평균적으로 라틴아메리카보다 빈곤국이 더 많은 게 사실이고 동남아시아의 많은 유년층도 그에 따르는 경제발전이 없다면 좋은 요소가 아닌 되려 실업난과 위생 문제를 부추기는 나쁜 요소다.
향후 경제성장전망도 일단은 밝은 편으로,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이 외자유치 확대, 제조업 다분화, 지속적 규제개혁 등의 체질 개선으로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으며, 이들 국가의 인구 성장도 안정권에 접어들어 있어(합계출산율 1.9~2.5) 저출산 문제는 당분간은 대두되지 않을 전망이다. 말레이시아는 성장세는 들쑥날쑥하지만 이미 어느 정도 경제 고도화가 이루어져 연구개발 투자를 대폭 늘리고 장기계획으로 산업구조 다변화를 진행 중인 등 내실을 다지는 단계에 들어섰다. 오랜 기간 여러 문제로 경제성장이 느렸던 필리핀도 장기성장국면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2010년대 후반에는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15] 태국만이 2010년대 중반 고령화와 중진국 함정, 정치 불안정 등으로 성장이 주춤하였으나 정치적으로 다시 안정되자 어느 정도의 성장세는 다시 보여주고 있는 편이다[16] . 삼성전자, 애플, 소니, 혼다, 토요타 등 세계의 많은 대기업, 다국적기업들이 동남아시아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동남아시아는 동북아시아에서 자본재를 수입해 유럽과 미국에 수출하는 경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로 인해 보통 유럽과 미국에서는 흑자를, 동아시아 국가에는 적자를 내는 경향을 보인다. 또, 세계 안보 및 경제에서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미국, 러시아, 중국, 역사문제로 외교입지가 날로 약해지고 있는 일본이 러브콜을 보내는데 이어 인도도 인도-미얀마-태국 3개국 고속도로를 연결하고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 간 육상 교통로로 활용한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인도의 영향력도 커지고 있다.# 그리고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의 동남아시아 순방 이후에 한국도 아세안과 함께 협력을 추진하고 신남방정책을 추진하고있다. 일본측은 관세를 낮추는 데에 집중하고 있다.#
다만 2000년대 이후 동남아 중견국인 ASEAN-5 국가들이 아시아 IMF 금융위기 이후 경제성장률이 떨어진 상태로 20년 넘게 지속되면서 결국 중국에 1인당 GDP가 따라잡히며 중진국 함정에 빠졌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어떤 업종에서도 글로벌 시장을 점유한 기업이 나타나지 못했으며, 주력 산업 구조도 OEM같은 하청 가공생산 수출이나 농업, 관광업, 자원 산업, 저임금 인력 수출 등 수십년전 산업에 계속 머물러 있고, 지역격차와 빈부격차 문제 역시 해결되지 않았다. 현재는 베트남이 ASEAN-5에 막차로 이름을 올려 중진국으로의 진입에 성공하였고, 캄보디아, 미얀마, 라오스 등 다른 후발 국가들은 양적인 투입을 바탕으로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여주고 있어 발전 가능성이 기대되지만, 모두가 기존 ASEAN-5 국가들이 과거에 걸었던 노선을 뒤늦게서야 따라가고 있는 방식인지라 다른 독자적인 방법을 고안하여 경제개발을 해나가지 않는 한 중진국 구조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영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아세안 전체를 합쳐도 독일의 세계 4위 GDP에 미달하는 수치로 되어 있다. 아세안, GDP 순위 참고로 유럽연합은 전체 다 합쳐 따지자면 미국과 호각을 다투거나 아직은 중국을 넘어서고 있기는 하다.
동남아시아는 분명 잠재력이 크지만 이미 선진국이 되어 별도로 노는 싱가포르나 선진국에 근접한 태국, 말레이시아 그리고 성장률 높은 베트남, 인도네시아 정도가 미래가 밝고 나머지 국가들은 지리멸렬한 게 현실이다. 필리핀만 해도 불안한 치안과 더러운 위생이 발목을 잡는다. 더구나 코로나19의 판데믹으로 2010년대에 세계적으로 쌓아놓은 것들이 무너지고 10년 전으로 되돌아가면서 고성장이 기대되던 나라들도 죄다 롤백되었다.
4.1.1. 역내 분류
4.2. 동남아시아 국가의 역내 경제규모 순위
4.3. 지역/국가별 경제
5. 동남아시아의 군사
- 동남아시아/군사 문서 참고.
6. 역사와 문화
나라별 역사는 분류:동남아시아사 또는 각 국가 문서의 역사 문단 참고. 특히 근현대사의 경우 한국 근현대사와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6.1. 개요
역사적으로 인도, 중국, 아라비아 및 페르시아 이슬람 세력이 교차되면서 지금과 같은 복잡한 문화를 형성하게 되었다. 여기에다가 16세기 대항해시대 이후에는 스페인, 포르투갈,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 유럽의 여러 열강들 그리고 태평양 전쟁 시기에는 일본의 영향까지 받게 되었다. 이와 같이 외래 문화의 영향이 강하지만, 이 지역 주민들은 여러 문화를 독창적으로 잘 융합하였다.
종교도 매우 복잡하여 인도, 중국, 이슬람에 유럽의 영향까지 받아 대승 불교, 상좌부 불교, 이슬람, 기독교, 힌두교를 믿는 지역이 구분되고 있다. 그야말로 '''세계 종교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일단 도서부 지역에 주로 거주하는 인구는 필리핀을 제외하면 이슬람이 주류다. 이는 동남아시아가 오랜 기간 중동지역의 이슬람 세력과 무역을 통해 번성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브루나이가 대표적으로 이들 국가는 이슬람을 주로 믿는다.[19]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도 말레이계 인구는 이슬람을 대부분 신봉하지만, 중국계나 인도계 인구도 상당해서 종교/문화 구성이 더 복잡하다. 중국계 인구는 불교나 기독교를, 인도계 인구는 힌두교를 신봉한다. 필리핀은 도서부 국가들 중 예외로 이슬람교가 세력을 온전히 확보하기 전에 스페인의 지배를 겪어서 가톨릭을 믿게 되었다.[20] 동티모르 역시 포르투갈의 식민지배를 겪으면서 가톨릭을 믿고 있다.[21] 반면 대륙부 지역은 상좌부 불교를 주로 믿는데, 미얀마, 태국[22] , 라오스, 캄보디아가 여기에 해당한다. 예외적으로 베트남은 중국의 영향으로 대승 불교 문화권이다.[23]
전반적으로 대승 불교와 유교의 영향을 받은 베트남, 중세 이후 기독교를 받아들인 필리핀 및 동티모르, 영미권에 영향받은 특성 상 기독교인이 많은 싱가포르를 제외하면 상좌부 불교와 이슬람이 유독 발달해 있다. 상좌부 불교의 경우 태국, 미얀마, 캄보디아 등의 대륙 혹은 반도의 국가에서 주로 믿으며 [24] 이슬람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의 도서 국가에서 믿는다. 상좌부 불교를 믿는 나라에서는 초창기 인도 불교에 가장 가까운 형태로 본토인 인도보다 더욱 원형에 가깝게 유지되고 있으며, 말레이 인도네시아 등도 본래는 같은 불교-힌두교 문화권이었지만 중세부터 새로이 이슬람을 받아들이면서 불교-힌두교와 이슬람이 혼재된 기묘한 문화 양식이 정착했다. 반면 필리핀과 동티모르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지배를 거치면서 아시아에서는 특이하게도 기독교[25] 가 지배적인 종교가 되었다.
지배적인 종교가 있는 각국에서도 소수 종교가 뚜렷하게 세력을 보이는 곳이 존재하여 분쟁의 씨앗을 안고 있는데, 불교가 우세한 태국이나 기독교가 우세한 필리핀에서는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상당한 수의 무슬림이 있는가 하면, 전국적으로는 이슬람이 지배적인 인도네시아에는 개신교나 힌두교가 우세한 지역이 있다. 중국계 도시국가 싱가포르는 그 특성 상 기독교 교세가 매우 강해 20%에 상당하며 10%인 도교보다 비중이 크다.[26] 미얀마는 산간 소수민족 지역에서 개신교가 강세이다.
6.2. 화교
동남아는 중국과 가까운 지역이기에 중국/중국인의 입김이 강하다. 실제로 중국계 화교 혹은 중국계의 혈통이 있는 사람들이 곧 상류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사실 역사적으로도 중국은 베트남, 필리핀, 태국과 인연이 깊다. 예를 들어, 태국 지역을 처음 통합한 왕이 중국계였으며 필리핀 독립 당시 중국계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활약했다. 또한 필리핀 대통령 두테르테가 화교 후손이다. 사실 국가 원수로 따지면 동남아시아 각국에 화교 출신은 매우 많았다. 중국과 인접한 베트남은 한자를 병기하며 전한 제국 ~ 5대10국 시기[27] 와 명나라 제국 시기엔 중국의 속령으로 전락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베트남은 유교의 영향력이 강하며 지리적으로는 동남아지만 문화적으로는 동아시아 한자 문화권이다.
동남아에선 나름대로 무력 최강을 자랑했던 미얀마 또한 쿠빌라이 칸 당시 원나라와 건륭제 당시 청나라에게 털린 쓰린 역사가 있었다. 몽골 침입 때문에 지금도 미얀마인은 중국인을 싫어하는 편이다.[28] 파간 왕조가 망하면서 나라가 쑥대밭이 되었기 때문이다. 필리핀도 의외로 꽤 일찍부터 무역중개지였던 탓에 많은 화교가 일찍 정착했다. 이 지역 나라들은 중국에 조공무역을 행했던 대표적인 국가들이기도 하다.
지금도 화교가 굉장히 많이 분포해 있는 지역이며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경제권의 상당 부분을 본인들에 비해 소수인 화교가 쥐고 있어서 이들에 대한 열등감 등으로 인해 화교에 대한 인식이 경계적이다. 아예 법적으로 화교를 차별대우하기도 한다. 법적으로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같은 나라는 화교에겐 더 엄격하게 불이익을 가한다. 하지만 부미푸트라 정책으로 대놓고 말레이계만 우대하는 말레이시아 같은 경우는 인도계에게도 똑같이 군다. 그리고 때론 폭동이 일어나 중국인들에게 테러를 가하는 일도 벌어진다. 말레이시아의 경우에는 아예 중국인이 많았던 지역이 도시국가로 강제로 독립'''당한''' 케이스도 있으니 바로 싱가포르다. 참고로 싱가포르의 국부인 리콴유가 화교 객가인이다. 그리고 지금도 싱가포르는 중국계가 70% 이상이다.
인도네시아 화교 학살도 있었다
한편 태국의 화교도 인구에서 상당수를 차지하는데, 화교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는 사람은 최소 10% 이상이고, 화교라는 정체성은 미미하지만 중국계 혈통이 있는 사람까지 친다면 절반 가까이 된다는 주장도 있다. 정체성이 분명한 화교는 기존에 자리잡고 있던 사람들과 근대 이후 건너온 사람들로 나뉜다. 전자는 태국식 이름을 사용하고 동시에 중국 이름을 가진 경우도 꽤 있으나, 대개 중국 기업들과 교류할 때 써먹는 정도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들은 태국 문화에 더욱 익숙하다. 후자는 태국 정부가 펼쳤던 견제 정책으로 인해 부당한 대우를 꽤 받았었다. 이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태국 역시도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극우적 성향의 군사정권이 들어섰기 때문인데 더욱 극단적인 건 그들의 롤모델이 하필이면 일본 제국이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더더욱 극단적인 것은 바로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에게 협조하다가 축출당한 세력들이라는 점이다. 하여튼 범태국주의라 부를 수 있는 태국 문화의 동질성 구축 작업이 시작되면서 화교들은 생존을 위해 창씨개명(?) 등을 통해 중국적인 면모를 버리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그들의 결백함을 증명하기 위해 오히려 비교적 근래에 중국 대륙에서 건너온 중국인들을 배척하고 무시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사실 저런 화교 견제 정책을 펼쳤던 태국 총리 중에는 화교 출신도 있었다. 이런 견제 정책 때문인지 방콕의 차이나타운만 해도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크고 넓찍한 대로가 아니라 구시가지 한쪽에 틀어박힌 방콕의 한 골목이다. 물론 이 골목의 경우 주인은 당연히 중국계 태국인이므로 경제력은 꽤 되는 곳이니 빈민가로 오해하면 안된다.
잉락 친나왓 및 탁신 친나왓 남매가 객가 출신 중국계 태국인이며 태국의 현 왕실인 차크리 왕조, 즉 방콕 왕조의 기원도 중국계 진씨 형제였다. 아유타야 왕조 역시 중국인 우통이 시조다. 이런 이유로 태국 정부의 화교 견제책과 별개로 중국계 태국인들의 경우는 돈을 많이 번 것은 물론 사회 지도층의 위치까지도 올라가게 되었다. 대신에 중국식 성명이나 한자 등은 모두 버리고 태국인으로 살아야 했다.
6.3. 몽골의 침략 실패
의외로 몽골 제국이 침공에 실패한 드문 지역이기도 한데 내몽골 및 만주 북동부 초원에서 말 타고 놀던 몽골인 기병들이 동남아시아의 지형과 기후를 극복하지 못했을 거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몽골 제국이라고 해서 북쪽인 중앙아시아 초원에 대제국을 이룬 그 몽골 제국을 생각하기 쉬운데 이 땐 이미 몽골족이 중원을 평정해 나라 이름을 원이라고 정해 눌러앉고 중앙아시아 쪽의 4한국과는 분할 상속으로 갈린 지 오래였으며 지리상 몽골 제국 계통의 중원 통일왕조인 '''원나라'''를 말하는 것이다. 원은 남중국까지 싹 쓸어버린 후 광동성 방면으로 베트남 북부, 윈난성 방면으로 미얀마 북부를 쳐들어오기 시작했으며 동남아시아 원정대는 이 쪽 지리를 잘 아는 한족으로 구성되어 몽골족은 찾아보기도 힘들고 군인들끼리도 한어로 소통하고 한문으로 교지를 주고받았다.
원나라의 침입에 맞서 싸워 격퇴한 나라들에는 여러 나라들이 있는데, 먼저 쩐흥다오의 베트남이 있다. 이것은 베트남인이 중국 혹은 중국을 정복한 유목민 왕조를 격퇴한 여러 사례 중 하나다. 한나라부터 당나라까지 1000년간의 지배로 중국에 착취당한 경험이 있는 베트남은 중국을 매우 싫어하며 이후 송나라, 원나라, 청나라가 모두 쳐들어왔으나 전부 격퇴했다.[29] 물론 국력에서 열세였던터라 베트남도 중국 혹은 유목민 정복왕조들과의 전쟁에서 막심한 피해를 입었다. 당장 저 몽골 침입 이후의 후유증도 심했고 명나라 영락제 땐 일시적으로 나라를 먹히기도 했다.
또한 캄보디아는 사도(唆都, Sogetu) 원수가 점성(占城)에 행성을 설치한 이후 일찍이(1282년) 호부백호(虎符百戶) 하나와 금패천호(金牌千戶) 하나를 보내 이 나라에 도착했으나 붙잡혀 돌아오지 못했다는 기록이 주달관의 진랍풍토기에 적혀있는데, 최병욱 교수는 이를 원의 침입을 나타내는 기록이라 주장한다. 그리고 인도네시아의 경우는 정확히는 자바섬으로 원나라가 원정갔으나 실패한 경우다.[30]
도서부 동남아시아의 경우에는 바다라는 지리적 이점을 십분 활용하였다. 인도네시아의 경우엔 복잡한 정치적 배경이 존재한다. 이 당시 인도네시아 자바섬 동부는 므당 왕국이 멸망하고 싱하사리 왕조(Singhasari Dynasty)가 패권을 장악하고 있었는데, 왕이었던 크르타나가라(Kertanagara)가 원에서 조공을 바치라는 사신이 오자 사신들의 코를 자르는 대형 어그로를 끌었다. 그러자 분노한 원세조 쿠빌라이가 크르타나가라를 응징하기 위해 군사를 보냈던 것이다. 그런데 하필 토벌대상이었던 크르타나가라가 크디리(Kediri)에서 일어난 반란으로 인해 살해당하고 말았다. 뜻밖의 변수로 인해 우왕좌왕하던 몽골군은 싱하사리의 왕족인 비자야(Vijaya)와 손을 잡고 크디리의 반란을 진압했다. 하지만 비자야가 원군의 뒤를 쳤고, 이로 인해 원나라 군은 자바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강대국인 중국마저 여진족 금나라와 한족 남송, 윈난성의 묘족들이 세운 대리국에 탕구트인들의 서하, 거란 잔당이 만든 대요수국 등까지 죄다 몽골족에게 개발살나고 몽골족이 중원을 평정한 것을 생각하면 지리적 이점이 있었다고는 해도, 좀 놀랄 만하긴 하다. 물론 미얀마는 나라가 멸망했고, 베트남도 멸망 직전까지 가기는 했지만, 어쨌든 중원을 평정한 몽골족의 원나라를 물리친 것으로 중국의 침략을 격퇴한 사례에도 들어간다. 참고로 이 때쯤 몽골 제국은 분할되었다. 원나라와 4칸국이 존재했으며 동남아시아는 윈난성과 광동성, 광시좡족자치구의 양광지방을 기점으로 원나라가 찝쩍거렸다. 이때 원은 중국 통일왕조 최초로 대만에 가기도 했으나 경영은 못 했다. 하이난 섬을 완전 장악한 것도 원대 일이다. 참고로 4칸국 중에선 일 칸국이 맘루크 왕조의 이집트와 맞붙었고 소수의 군사로 껄쩍거리다가 다마스쿠스 인근에서 맘루크 왕조에게 제대로 박살났고 이후 아프리카 쪽으로는 일 칸국은 진출도 못했다. 되려 일 칸국과 원수지간인 킵차크 칸국이 북쪽에서 쳐들어와 빈집털이까지 했다. 그리고 일 칸국과 킵차크, 차가타이 칸국 등 중앙아시아 족 4칸국은 그 지역에 오랫동안 살아오고 같은 알타이계 기마민족인 튀르크에 완전히 동화되어 왕족 혈통만 보르지긴이지 이슬람교 믿고 터키어 계열 언어나 페르시아어를 쓰는 몽골-튀르크 이슬람 국가들로 변모했다.
한편 베트남은 당나라 멸망 후 혼란을 틈타 장수인 오권(吳權)에 의해 독립했는데, 당시 국호는 대월. 그리고 이후 중국의 여러 차례에 걸친 침략을 100% 격퇴했다. 송나라, 명나라 등 한족 왕조들은 물론이고 원나라 및 청나라 등 이민족 왕조들까지 거하게 썰려나갔다. 그러나 명나라나 청나라 같은 경우는 완전히 이겼다고 보기는 어렵다. 명나라에 점령되어 영락제 때에 일시적으로 명의 속국으로 전락했다 정글과 늪지대에서의 게릴라전으로 간신히 다시 독립하였으며 청조 역시 팔기군의 침입을 물리치긴 했으나 곧 만주족의 중원 평정 통일왕조 청과 싸우는 게 버거워서 조공국을 자처해 청의 조공국이 되었다. 애초에 청불전쟁부터가 청일전쟁과 비슷한 해당 지역에 대한 영향력 다툼이다. 아무튼 이런 역사 때문에 베트남인은 중국에 대한 자존심이 강한 편이며 베트남인의 중국을 보는 관점은 일본을 보는 한국인의 관점과 비슷하다. 중월전쟁 참조. 다만 양국 관계는 2017년 이후 급속히 긴밀해지는 중이다.
그리고 미얀마는 원나라 침입 때문에 나라가 황폐화되어 지금도 미얀마인들이 중국을 싫어한다. 중국 하면 접촉도 별로 없던 한족보다는 몽골족의 원나라나 만주족의 청나라부터 떠올리며 중국인을 탐욕스럽고 끈질기다고 생각한다. 물론 군부 정권이 다스리던 아웅산 수지 이전에는 완전 친중국가라고 불렸다는 반론이 있었는데 친중을 하더라도 정치적으로만 그렇고 일반 국민들까지 중국을 무조건 좋아하지 않는다. 군부 정권조차 무조건적인 친중은 아니며 탄 수웨가 자신을 지지해주는 중국을 향한 립서비스에 가까웠다. 구 군부 정권 하 미얀마와 중국 간 관계는 다음 한겨레 기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한겨레 MBC 반면 이웃의 태국 즉 시암은 알아서 '''원나라의 조공국'''을 자처, 수코타이 대왕이 원 사신을 접대하고 알아서 입조할 것을 자처해서 원나라 군의 말발굽에 밟히지 않고 중국 남부지역과 평화롭게 무역만 했다. 현재도 태국은 중국과의 사이가 좋은 편이다. 참고로 미얀마의 버마인, 태국의 타이인은 역사적으로 중국 대륙 남부에서 내려온 민족들이다. 그래서 동북아인보다 피부색이 좀 더 갈색이거나 키는 작지만 생긴게 비슷한 사람들도 꽤 많다. 물론 비슷하게 생긴 사람도 있는 것에는 비교적 최근에 유입된 중국계 화교의 영향도 무시할 수는 없다.
6.4. 식민지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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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와 더불어 자원이 풍부하고 향신료의 주요 산지인지라 열강의 식민지 쟁탈전에 가장 크게 수탈당했던 역사도 있다. 대표적 열강국가인 영국, 스페인, 프랑스, 네덜란드, 포르투갈, 심지어 일본과 미국까지 당시에 힘 좀 쓴다는 나라들은 모두 식민지 경쟁에 뛰어들어 아수라장을 만들었던 것이 바로 이 지역. 가장 먼저 믈라카 및 그 주변 지역이 일찌감치 식민지 경영에 나섰던 포르투갈에 점령당한 뒤 나중에 차례로 네덜란드와 영국에 먹혔고, 인도네시아 군도는 16세기부터 포르투갈이 들어왔으며 이후 포르투갈, 네덜란드, 스페인, 영국이 모두 각축을 벌이다 최종적으로 네덜란드령 동인도가 되었다. 19세기가 되면 인도를 정리한 영국과 베트남으로부터 뻗어나간 프랑스가 태국을 사이에 두고 충돌했다. 이 사이에서 완충지대 역할을 하던 태국은 영토와 이권을 상당 부분 잃기는 했으나, 식민지가 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일본 제국이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면서 동남아시아 지역 대부분이 일본 제국의 괴뢰국이 되거나 식민지가 되는 와중에, 태국은 국토의 사용 권리를 일본에 내줌으로써 명목상으로는 독립을 유지했다고도 보지만, 사실상 일본령과 다를 바 없었다고 보는 시각도 많다.
이 때문에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는 모두 오스트로네시아계 무슬림 주민이 다수를 점하는 국가지만, 각각 영국과 네덜란드가 나눠 점유하는 과정에서 역사가 나뉘어 다소 이질적인 나라가 되었고 서로 사용하는 언어도 조금 차이가 있다. 인도네시아는 각 지역마다 별도의 언어들이 사용되지만 국가 전체를 아우르는 표준어로는 말레이어의 일종인 인도네시아어가 사용된다. 단, 말레이시아의 말레이어와 인도네시아의 인도네시아어에는 방언적 차이와 표기법의 차이가 상당히 존재한다.
1919년 제1차 세계대전 후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이 민족자결주의를 발표하면서 동남아 사람들은 민족주의에 눈을 떠 독립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으나, 이들은 승전국들에게 지배당한 터라 식민당국은 쉽게 독립시켜주지 않은 채 가혹하게 탄압하기만 했다. 독립운동의 선구자들이던 지식인들은 현실에 순응하고 온건적으로 변한 반면, 같은 시기 러시아에서 불어 온 사회주의 혁명에 영향을 받은 노동자와 농민 중심의 좌익 독립운동 세력들은 식민당국의 탄압을 피해 지하로 숨으며 무기를 들고 끈질기게 투쟁을 했다.
또한 태평양 전쟁 당시엔 일본 제국이 남방 작전을 실행에 옮기고 전 동남아시아가 속수무책으로 점령당하기도 했다. 일제가 이렇게 쉽게 동남아 국가들을 먹었던 이유는 이미 서구의 식민지 상태였던 이들 국가의 주민들이 원래 통치자들에게 반감을 느끼고 일제를 해방자로 맞아들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제가 2차대전 중 동남아 식민지에서 행했던 수탈 강도는 그전 열강의 수탈은 장난처럼 보일정도로 엄청나게 높았으며, 특히 싱가포르나 미얀마 같은 곳은 학살이 벌어졌다. 결국 이들 국가에서도 일제에 대한 반감이 커지다 못해 식민제국에 대한 조직적인 독립전쟁이 일제쪽에도 돌려서 시작되었고 특히 베트남의 위인 호찌민은 이때부터 일제에 맞선 공격을 시작, 태평양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며 미군, 영국군, 중국군이 동남아로 진격하다 특히 베트남도 일본군을 몰아내는 데 일조했다. 패전 이후에도 가해자인 일본측에서 "일본의 식민지 경험을 받은 게 전화위복일 수도 있다."라는 논리를 펼쳐 비판을 받았다.
6.5. 독립 이후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으로 동남아시아 각지에서 독립의 움직임이 다시 불타올랐으나, 옛 점령국들이 돌아오면서 2차 대전 승전국 지위를 걸고 계속 지배하겠다고 똥고집만 부리다가 1954년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이나 1960년 베트남 전쟁 같은 비극이 터지기도 했다. 같은 시기에는 서구 식민지배자의 영향으로 서구식 민주주의라는 낯선 개념이 도입되자, 독립 후에는 이를 바탕으로 의회를 꾸리는 등 국가 시스템을 구축하여 적응기를 열었다. 다만 좌우대립 시대가 도래하면서 동남아시아에도 좌우 양측 간 대립이 벌어져 내란까지 번져 정치/사회적으로 혼란에 빠졌고, 경제 역시 악화되면서 국민들은 불안에 빠졌다.
이를 배경으로 1957년 태국을 시초로 1962년 미얀마, 1965년 인도네시아, 1970년 캄보디아 등지에 각각 군사쿠데타가 터져 군부가 집권했고, 서구식 민주주의를 버리고 독자적 체제를 만들어 일단 안정을 찾는 듯했으나, 1980~90년대까지 오랜 군부독재가 이어지면서 모든 자유가 억압되고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공포분위기가 형성됐다. 이에 따라 빈곤과 질병, 부정부패가 만연하여 공산주의가 마수를 뻗칠 환경을 제공케 만들었다.
1975년 베트남전 종전 후 인도차이나 반도가 공산화됐으나 태국과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5개국이 반공전선을 구축해 자본주의 체제를 지켜냈고,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싱가포르는 개발독재 체제 하에 광속 경제성장을 해내기도 했다. 1989년 동구권 붕괴를 계기로 변화의 태풍이 몰아닥치자 1990년대 들어 폐쇄적이던 상당수 국가들이 점차 국제무대로 나섰으며, 공산주의를 고집하던 베트남과 라오스도 중국처럼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한 채 시장경제체제를 받아들여 개방정책을 펴고 있다. 21세기 와서도 민주주의가 정착된 나라는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말레이시아, 동티모르 정도고[31] 미얀마는 최근에 불완전하게나마 민주화되었으나 나머지 국가들은 대놓고 일당독재국가[32] 이거나 기형적인 선거제도로 일당독재를 유지하고 있거나[33] 아니면 수시로 군부쿠데타가 벌어진다거나 한다.
식민지였던 잔재로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베트남, 필리핀, 동티모르는 자국어 표기에 라틴 문자를 상용하고 있다. 동티모르를 제외하면 이들 나라도 전통 시대에 고유 문자를 사용했던 적이 있다. 베트남은 한자 및 이에 기반한 쯔놈을 사용했고,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필리핀은 인도계 문자를 바탕으로 독자 문자를 개발하거나 아랍 문자를 개량해서 썼는데, 식민 지배를 거치며 로마자로 대체되어버리고 말았다. 태국이나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등 베트남을 제외한 대륙부 동남아시아에서는 고유 문자가 지금까지도 잘 사용되고 있다.
7. 인구와 성향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중국과 인도의 14억명이 넘는 엽기적일 정도로 많은 인구수 덕분에 간과하기 쉬운 사실인데, 동남아시아의 인구는 '''정말 많다.''' 인구 1억을 넘거나 그에 육박하는 나라들도 드물지 않다.
- 인도네시아 - 동남아 중 인구가 가장 많다. 무려 2억 7,300만 명. 미국 다음가는 인구 수로 세계 4위. 그리고 섬나라들 중에서는 단연 1위이다. 게다가 그 엄청난 인구의 약 5/9가 중앙부의 자바섬 하나에 몰려있다. 다시 말해 자바섬 하나에 사는 사람들이 전 러시아 인구와 맞먹는다.
- 필리핀 - 1억 900만명. 사실 원래는 필리핀이 다른 나라들보다 특별히 인구가 많았던 국가는 아니었다. 스페인이 한창 필리핀을 식민지화했을 때에는 인구가 250만 명 정도로 추정될 정도였다.(이때 조선 인구가 1000만명 안팎으로 추정됨). 그렇지만 21세기 들어 인도네시아나 베트남 등 동남아 다른 인구 대국들은 출산율이 1명대 중반에서 2명대 초반 정도로 떨어진 데 반해 필리핀은 캄보디아나 라오스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2명대 후반이라는 높은 출산율을 보이고 있어 아직까지 인구증가율이 꽤 높은 편.
- 베트남 - 9,700만 명. 독일+오스트리아보다 많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면서 베트남은 고령화가 가속화되고 있어서 2030년에는 노인 인구가 17%를 차지할 것이라고 예상되고 있다. #
하지만 19세기 이전까지는 동남아시아는 인구가 그리 많은 곳이 아니었다. 특히 18세기까지 동남아에서 벌어지던 거의 모든 전쟁은 상대국가에서 사람 뺏어오기로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인구가 적었다. 1800년경 동남아시아 전체 인구는 3,000 ~ 4,000만 정도였으며, 인도네시아에서 인구가 많은 자바 섬만 해도 1800년 경에 300만 명(700~1,000만이었다는 설도 있다)밖에 없었고 태국은 500만, 미얀마는 300만 정도에 불과했다. 현재는 인구 3000만을 넘는 말레이시아도 무역항으로 나름대로 명성이 있었음에도 인구가 겨우 100만명에도 못미쳤다. 단 여기서 베트남은 예외로 약 18세기 추정인구로 총 1,000만 정도의 인구를 보유하고 있어서 그 인구수를 바탕으로 태국, 미얀마와 함께 동남아 3대 강국 중 하나로 군림할 수 있었다. 하지만 18세기 이전에는 베트남도 인구가 1,000만 이하로[34] 다른 동남아 국가들처럼 적었다.
2004년 말에 남아시아 대지진에 따른 쓰나미로 엄청난 피해를 보기도 했는데, 이때 무려 30만명씩이나 죽거나 실종된 것도 엄청난 인구와 관련이 있다. 이들 중 24만 명이 인도네시아에서 죽었다.
아직은 BRICS 국가들에 비해 낙후된 경제와 막장인 정치 탓에 세계적 주목을 못 받고 있지만, 많은 인구와 석유를 비롯한 막대한 자원을 바탕으로 미래에는 세계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경제적 빈부격차 및 여러 갈등이 여전한 게 문제이지만(...)
동남아시아 대부분의 지역은 열대기후에 속하며, 더 자세하게는 사바나기후 또는 열대우림기후에 속한다. 이 온난한 기후 덕분에 먹을 것이 풍족하여 옛날부터 식량 걱정이 없다. 지금도 세계 최대의 쌀 생산지역이며, 농작을 하지 않아도 늪지대에 2m 넘게 자란 벼를 배 타면서 베어와 먹을 수 있다고 한다.
동남아시아 사람이 느긋하고 너그럽다는 스테레오타입은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말레이시아처럼 중국계와 섞여서 사는 곳에 가면 운전 습관 등 여러모로 차이가 있다. 또한 동남아시아 사람들은 '''자존심이 굉장히 높다.''' 무엇보다 태국이나 필리핀, 미얀마, 인도네시아 같은 경우엔 총기가 자유롭게 널려있기에 그 '''자존심 까다간 총 맞는다.''' 실제로 태국 대사관에서 근무하던 이가 쓴 책을 보면(출처 필요) 한국인들이 태국에서 현지인들을 우습게 여기다 총에 맞아 죽거나 다치는 경우가 강도를 만나는 경우보다 많다고 쓴 바 있다. 특히 외국인이 현지인 웨이터에게 술취한 채로 욕하다가 앙심을 품은 웨이터한테 총맞은 경우도 있다고 한다. 사실 다른 나라에서 온 외국인이 자기 나라를 모욕하면서 깔짝거린다면 누구든 기분이 나쁠 것이다. 물론 동남아는 좀 더 심한 편이라지만... 사실 동남아의 이민법은 서구권에 비해서는 다소 빡세다. 게다가 동남아도 민족주의가 상당히 강하며 내부의 인종차별이 심각한데다 외국인한테 배타적인 국가와 지역이 많다.
PC 인프라는 경제력이 그리 좋지 않기 때문에 인터넷 속도가 느리며 컴퓨터 보급율이 낮아 한국보다 안 좋지만 인구 때문에 한국 온라인 게임이 수출되어서 꽤나 짭짤한 수입을 올리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한국 드라마[35] 나 영화, 가요, 만화 등[36] 꽤나 광범위한 인기를 얻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 대해 아는 사람이 많다. 다만 한국의 게임이나 드라마, 가요, 만화, 영화 등이 인기를 얻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37]
반도와 섬이 많은 지형상 유럽처럼 저가 항공사가 발달한 편이다. 대표적으로 에어아시아, 세부퍼시픽, 젯스타항공, 녹에어, 타이거항공 등이 있다.
철도는 필리핀과 인도네시아가 케이프 궤간(1067mm)을, 나머지는 미터 궤간을 사용한다. 동남아시아 전체적으로 보면 그리 발달하지 않은 편이지만 인도차이나 반도와 말레이반도로 연결된 태국↔말레이시아↔싱가포르 간에는 태국 국철과 말레이 철도의 장거리열차가 활발하게 다니는 편이다. 대표적인 역으로는 태국의 방콕 후알람퐁 역과 핫야이 역, 말레이시아의 KL 센트럴 역, 쿠알라룸푸르 역, 버터워스 역, 싱가포르의 우드랜즈 역 등이 있다. 2014년 현재 미얀마와 캄보디아로도 철도를 연결할 계획이 있다.
당연하지만 동남아시아의 여러 국가들도 이웃나라끼리 역사적, 정치적으로 나쁘며 앙숙 관계다. 태국은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등 육지 국경을 접한 주변국 여러 나라들과는 사이가 극악이고, 베트남은 캄보디아랑, 태국, 말레이시아는 싱가포르, 인도네시아랑 관계가 나쁘고 인도네시아는 말레이시아와 동티모르, 더 나아가서 필리핀과 베트남, 말레이시아, 브루나이는 남중국해의 스프래틀리 군도를 비롯한 여러 군도들의 영유권, 영해 범위를 놓고 영토 분쟁으로 대립하고 있다.[38] 그러나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태국과 싱가포르, 필리핀과 캄보디아, 캄보디아와 말레이시아, 말레이시아와 동티모르처럼 육상, 해상으로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먼 나라들끼리는 사이가 나쁘지 않거나 그런 대로 악감정이 덜한 편이다.
세계적으로 자살률이 의외로 극히 낮은 지역이다. 미얀마와 태국이 살짝 높긴 하지만 세계 평균에 비하면 여전히 낮은 편.
아직까지 생활 속에 엄격하게 자리잡아 엄격한 규칙을 만들어낸 미신이 많아 외국인들이 문화 차이를 극복하기 어려워한다. 예를 들어 베트남에서는 젓가락을 정중앙보다 아래로 들면 곧 가족이 죽는다는 오랜 미신이 있어 정중앙 또는 정중앙보다 위로 들어야 하는 문화가 자리잡았다. 앞서 언급한 예는 빙산의 일각이며 동남아시아에서 원만하게 지내려면 불길한 미신을 불러오는 행위와 긍정적인 미신을 불러오는 행위가 어떤 것인지 미리 숙지해야만 한다.
7.1. 동남아시아인
8. 한국에서의 인식
전체적으로 여전히 동남아에 대한 인식은 좋다고 할 수 없다.
1960년대 후반까지는 한국도 동남아시아와 경제적으로 크게 다를 바 없는 처지였고[39] , 한국과 비슷한 시기에 선진국으로 도약한 중국계 국가인 싱가포르를 빼면 동남아시아를 비하하는 민족 및 인종차별적 분위기가 옛날부터 만연했다. 이는 유교적 세계관, 민족주의, 인종주의적 관점이 섞여서 일어난 현상이었다. 여기에 베트남 전쟁에서의 안좋은 기억까지 합쳐져서 그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동남아시아의 전체 이미지 중 하나가 되기도 했다. 1980년대 들어서는 한국과 동남아시아 대부분 국가들과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격차가 매우 크게 벌어지면서, 동남아시아에 대한 비하적 인식은 더욱 커지게 된다.
다만 이런 동남아시아인에 대한 인식은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단순히 한국에 국한된 문제만은 절대로 아니다. 동남아시아인에 대한 멸시적 감각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동아시아 국가들, 즉 중국, 일본, 대만, 몽골, 북한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나며, 중국계 싱가포르인들이 다수이고, 선진국에 진입한 싱가포르조차 여타 동남아 국가를 매우 업신여긴다. (현대 이전에도 한중일이 바라보는 동남아시아 지역에 대한 시선은 별다른 문화가 없는 야만인이 사는 곳이었다.)
또한 이는 앵글로아메리카, 라틴아메리카, 호주, 뉴질랜드 등 서양 국가에 이주한 이민자들 사이에서도 이러한 성향이 나타난다. 백인 등 타 인종들도 동남아시아인을 두고 차별적 인식을 가지고는 한다. 동남아인이 많은 호주에서는 이게 제일 심하다.[40] 따라서 한국인의 동남아인 인식의 문제는 한국인의 인식 문제라고만 볼게 아니라 동아시아인 전체의 인식 문제, 더 나아가서 세계인 전체의 일반적인 인식문제와도 얽혀있는 복잡한 문제다.
태국의 주민족인 타이족과 베트남의 주 민족인 킨족, 라오스의 주 민족인 라오족, 미얀마의 주 민족인 버마족은 본래 중국 대륙 최남부 지역에 살던 민족들로 한족에 밀려 동남아로 이주한 민족이다. 그렇게 이주하는 과정에서 동남아 토착 인종인 오스트랄로이드, 말레이인 등과 섞여 오늘날의 모습이 된 것이다.
그래서 동아시아인과 동남아시아인은 인종적 차이가 뚜렷한데, 동남아시아의 주요 인종인 오스트로네시아족, 오스트로아시아족 등은 동아시아인과는 아예 다른 종족이라서 아무래도 거리가 있는 편이다. 오스트로네시아족은 유전적으로 마오리족과 더 가깝다.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과 동남아시아 국가들간의 교류가 활발해지고 있고 신남방정책에 따라서 교류도 많아지고 있다. 그리고 한국 기업들의 동남아 진출도 활발한 편이고 동남아 쪽에서 쓰이는 언어들인 베트남어, 마인어, 태국어, 미얀마어 등을 배우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또한, 한류가 동남아쪽에선 인기가 매우 높은 편이다. 닛케이는 동남아에서 한국 컨텐츠가 인기가 많아졌다고 보도했다.#
그럼에도 동남아인들에 대한 한국인들의 편견은 여전히 남아있다. 예컨대 한국인들 사이에서 "동남아 사람처럼 생겼다"라는 표현은 비하 내지는 멸시, 웃음거리로 간주된다. 외모지상주의와 더불어 인종주의가 결합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다. 한국의 예능 프로그램에선 동남아같이 생겼다는 걸 농담거리로 삼곤 한다. SNL 코리아의 "코리안 뷰티"라는 2014년 방송된 에피소드 초반에는 과장된 표정을 짓는 한국 남성들을 가리키며 "저기 태국 사람들?"이라는 대사를 하고 관객들의 웃음소리를 깔아 거센 비판을 받기도 했다. 게다가 몇몇 연예인들의 외모를 깎아내리기 위해 "동남아 닮았다"는 얘기를 하는 경우도 있다. 데뷔 이래 매번 "동남아스럽다"며 맹목적인 까들의 인신공격을 받고 있는 수영이 대표적인 피해자이다.
다만 2020년대에 접어든 현재는 정치적 올바름이 유행하며 이런 인식을 공식적인 자리에서 대놓고 표현하는 것은 확실히 줄어든 편이다. 더구나 1990년대 이래로 농어촌지역을 중심으로 동남아시아 출신 결혼이민자들이 늘어나고 동남아시아계 혼혈 어린이 및 청소년들이 그 영향으로 늘어나면서, 정부와 언론, 정치권에서 동남아시아인에 대한 인식개선을 시도하고 있다.
9. 스포츠
스포츠에 있어서는 예전부터 마이너 취급을 받았으며, 지금도 거의 변한 게 없다. 근대 이후 유럽과 북미가 독점했던 각종 스포츠 분야를 20세기 중후반부터 한중일 등의 동북아시아인들과 아프리카 및 카리브 해 출신 흑인들이 여러 스포츠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이면서 지역 격차가 엄청나게 줄어들었지만, 동남아시아는 아직 그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스포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포츠에 유입되는 실질 인구와 인프라이다. 인프라는 국가 경제력에 큰 영향을 받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낙후된 동남아시아의 스포츠 인프라는 좋기 어렵다. 그 외에 동남아시아가 축구 등 구기종목을 포함하여 스포츠 전반에서 열세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동남아시아 특유의 작은 체격에서 오는 문제라고 보는 의견도 있다.
동남아시아에서는 축구가 가장 인기가 많은 스포츠 종목이지만 세계적으로 약체에 속하는 지역이다. 동남아시아에서 FIFA 랭킹이 가장 높은 국가는 93위 베트남이다.(2020년 12월 10일 기준) 베트남을 제외하고는 전부 100위 밑이다. 또한 동남아시아 국가 중에서 FIFA 월드컵 본선에 진출해본 국가는 네덜란드령 동인도(현재의 인도네시아)가 유일하다. 그나마 예선을 치른 게 아니고 상대국이었던 일본의 기권으로 자동 진출한 것이다. 월드컵 본선에서도 1경기만 치렀으며, 0-6으로 패배했다. 16강 토너먼트에는 진출해본 경험이 없다. 오세아니아도 FIFA 랭킹이 대체적으로 낮은 지역이지만, 그래도 2010년 월드컵 당시 뉴질랜드가 본선에서 이탈리아와 비기는 저력을 보여준 반면 동남아시아 축구는 그런 모습을 아직 보여준 적이 없다.
아시안 게임 축구에서도 한중일+중앙아시아[41] 는 물론이고 서아시아 국가들, 특히 이란과 넘쳐나는 돈을 바탕으로 투자를 팍팍하는 아랍에미리트, 카타르에 한창 밀리고 있으며, 올림픽 축구는 예선을 통과하는 것도 버겁다. 동남아시아 축구는 크리켓의 나라로 소문난 남아시아 국가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동남아시아 국가 중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 브루나이, 동티모르 등은 역대 올림픽에서 한 번도 메달을 획득한 적이 없다. 2016년 하계 올림픽에서의 메달 획득 개수로는 태국이 6개(금 2, 은 2, 동 2)로 동남아시아 국가 중에서 가장 많았다. 전체 순위도 태국이 35위로 동남아시아 국가 중에서 가장 높았다. 동계 올림픽에서는 모든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메달을 획득한 적이 없다. 다만 동남아시아는 동계 스포츠를 즐기기에는 기후가 부적합하다.
동남아시아에서 강세를 보이는 종목으로는 세팍타크로가 있다. 동남아시아에서 유래한 전통 종목인만큼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강세를 보인다. 특히 태국과 말레이시아가 세팍타크로 강국이다. 여담으로 세팍타크로는 발로 네트를 넘긴다는 점이 족구와 비슷해서인지 한국이 예상외로 강세를 보인다. 심지어 아시안 게임에서 메달도 많이 따갈 정도이다.(2018년 기준 금메달 1개, 은메달 6개, 동메달 7개)
단체종목이 아닌 개인종목, 특히 격투기에서는 나름대로의 성과를 거두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태국은 무에타이, 복싱 / 미얀마는 무에타이 비슷한 렛웨이 / 필리핀은 복싱 종목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태국인 복서 중엔 사에삭 무앙수린, 필리핀 출신 복서인 매니 파퀴아오가 대표적이다.
동남아시아에서는 닭이 서로 싸우는 것을 구경하는 투계가 매우 인기 있다. 사실 투계는 예로부터 닭이 존재하는 곳이라면 지역을 가리지 않고 흔했던 오락거리였지만, 현대 동남아시아는 투계를 위한 공식 토너먼트 대회가 열릴 정도이고, 그걸 TV로 중계까지 한다. 사실상 축구나 무에타이처럼 도박이 얽힌 스포츠로 취급한다.
10. 동남아시아국가 한국인 사망자 수 통계
- 출처: 외교부 재외국민보호과
- 2000년 ~ 2018년
- 주의: 타살 및 자살만 집계됨. 사고(교통사고, 익사, 실족사 등)는 별도로 집계되지 않음. 또한 실종자[42] 도 집계되지 않았음을 알림.
11. 관련 문서
12. 출처
- 먼나라 이웃나라 시즌2(지역/주제편): 동남아시아, 천년 문명의 신비에서 21세기 변화와 개혁의 주역으로 - 이원복 글/그림. 김영사. 2018. p14~30.
[1] 실제로도 일본의 경우 오가사와라 제도가 오세아니아로 분류되어 오세아니아에도 땅이 걸쳐 있다.[2] 싱가포르는 중국계가 다수인 국가이고, 선진 지역이라 동남아시아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호주와 뉴질랜드만 빼고 오세아니아가 존재감도 없는 것과 똑같다.[3] 2019년 추정치[4] 역시 2019년 추정치[5] 2019년 기준[6] 자연지리적으로는 남중국 일부는 동남아시아와 가까운 위치에 있다. 실제로 현재 동남아시아에 사는 사람들은 남중국에 있던 사람들이 유입되어 토착 원주민들과 동화된 것으로 추측되며, 어떤 언어학적인 연구에서는 중국 남부 일대에서 기원전에는 오스트로아시아어족, 오스트로네시아어족, 타이카다이어족 계통의 언어가 널리 쓰였으며, 이들 언어는 중국어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다고 추측하기도 한다.[7] 중국이 땅이 넓어 중국에서도 동아시아가 아닌 다른 지역으로 분류되는 곳이 꽤 많다. 간쑤성과 신장 위구르 자치구, 티베트 자치구, 내몽골 자치구는 중앙아시아, 광둥성, 광시 좡족 자치구, 구이저우성, 윈난성, 하이난성 등은 동남아로 분류하기도 한다.[8] 주로 상좌부 불교. 베트남은 대승불교.[9]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브루나이는 이슬람, 필리핀·동티모르는 가톨릭.[10] 2016년 기준, IMF 집계[11] IMF 집계[12]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13] 세계은행 집계 기준[14] 인도네시아 자료가 세계은행 통계에 잡히기 시작하는 시점이다.[15] 물론 불안한 치안, 부족한 일자리 등이 개선되지 않는 한 이 나라는 한계가 있다.[16] 2018년 기준 ADB 추정 4.2%로 예상 #.[17] 브루나이는 산유국이라 돈이 많은 거지 대중교통이 발달한 것도 삶의 질이 쾌적한 것도 아니며 오일 머니는 전혀 분배되지 않고 있다. 개도국 중에서는 선진 개도국에 들어가는 편이긴 하다만 석유 떨어지면 문제다. 이웃 싱가포르는 삶의 질이 높아 국영주택인 HBD나 영국식 NHS 등이 있다.[18] 2018년 추산 기준 캄보디아 $1,559, 2017년 추산 기준 미얀마 $1,299.[19] 브루나이는 아예 술탄국이다.[20] 다만 남부에는 이슬람 세력이 존재한다. 민다나오 섬 참조.[21] 이 지역 역시 이슬람세력이 당도하기 전에 식민화되어 가톨릭이 이식된 케이스다. 위치를 보면 이슬람 세력의 유입지점인 말라카 해협에서 멀리 떨어져있음을 알 수 있다.[22] 말레이시아와 접경지역인 남부는 이슬람 세력이 존재한다.[23] 다만 공산주의정권이었던 시기가 있어 무종교인도 상당수이다.[24] 특히 미얀마가 인도의 영향이 더 크다. 애초 미얀마는 인도와 붙어 있으며 인도 북동부 나갈랜드 등은 미얀마인과 동족이다.[25] 주로 가톨릭이고 필리핀은 미국 지배 후 개신교가 들어왔다.[26]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의 도서부 동남아시아는 기독교 중 개신교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정교회 비율은 매우 극소수이지만, 최근 캄보디아에 러시아 정교회의 사원이 생길 예정이다. 그리고 필리핀은 원래부터 그리스도교 지역으로 가톨릭을 믿어 왔고 미국 지배로 10% 이상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개신교인들도 있어 개신교 교세가 크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는 기독교 인구가 중국계를 중심으로 늘고 있다.[27] 거의 1천년에 가까운 세월이다![28] 취소선 드립이 있었는데 몽골족이 중원을 통일한 원나라 때의 침략으로 역시 여진족이 중원을 평정하며 벌인 조선에서의 병자호란과 같은 상황이라 대륙을 지배하는 몽골족은 물론 중국과 중국인 자체를 경계하고 꺼리게 된 것이라고 봐야 한다. 미얀마인들은 한족, 몽골족, 만주족을 잘 구분하지도 못했다.[29] 이전 서술과 달리 한나라는 실제로 베트남 북부에 교지군, 일남군을 두고 다스렸다. 물론 직할령은 아니고 사섭 같은 제후들에 위임했지만 그 사섭 등도 모두 중국계였고 중국식 문화를 이식했다. 그리고 송의 경우는 약체라고 베트남도 우습게 보기는 했다.[30] 동남아시아는 아니지만 원의 침입을 격퇴한 예로 고려와 원이 연합해서 침공했으나 원정군이 큐슈에서 태풍에 쓸려가 살아남은 일본이 있다. 여원연합군의 원정은 화포 등 신무기와 몽골족, 여진족이 자랑하는 기병, 고려군이 자랑하는 해군이 시너지를 일으켜 일본이라는 나라 자체를 망하게 할 뻔하였다. 문제는 지휘관인 몽골족들이나 금나라인들은 태풍의 존재를 몰랐고, 남송인이나 고려인들은 태풍을 알았으나 바다 폭이 좁은 칸몬해협을 건너는 일이라 괜찮을거라 생각했으며 거기에 바다 항해에 부적합한 장강에 떠 다니는 강가용 배들을 징발한 탓에 태풍에 완전히 쓸려나갔다는 게 문제였다. 일본은 역시 신이 지켜주는 나라라며 당시 태풍을 카미카제(神風)라며 찬양하기도 했다. 다만 두 번째 침입 때는 일본이 미리 대비를 잘해서 꽤 잘 싸웠다. 다시 태풍이 불어 연합군의 배가 모두 쓸려나갔기 때문에 묻힌 감이 있지만, 태풍이 불기 전까지 연합군의 공세를 잘 막아냈다.[31] 그나마 이들 나라도 20세기 중후반에 독재 정치를 겪었다.[32] 베트남, 라오스. 관점에 따라서는 전제군주국 브루나이도 포함.[33] 싱가포르, 캄보디아.[34] 베트남의 인구는 10세기엔 200만에 불과했고 18세기 이전까지 700만~800만에 불과했으며 이를 넘어서질 못했다.[35] 특히 미얀마의 경우에는 주요TV 방송사에서 틀어주는 드라마의 대다수가 한국 드라마이며 나머지 국가들은 인도 드라마나 중국 드라마 등도 수입하거나 자체제작 드라마를 틀어주는 경우가 많지만 그래도 한국 드라마가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다.[36] 흑백 코믹스 만화는 수출되는 경우가 적고, 컬러로 된 학습만화나 웹툰이 수출된다. [37] 물론 여타 동남아시아 국가라고 해서 특별히 다른 건 아니고 동남아에서 가장 잘 산다는 싱가포르와 브루나이도 일반 외노자에 대한 대우가 한국보다도 좋지 않지만 그래도 한국에 근무했을 때 3D 업종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횡포나 열악한 노동환경에 노출되는 경우가 잦다.[38] 흔히 남중국해 하면 국제 언론이나 뉴스의 영향으로 중국이 원래 동남아 영해였던 곳을 중국 땅이라고 우기며 동남아 국가들의 해양 영유권을 강탈하는 중국의 일방적인 깡패짓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들이 많은데 실상 남중국해를 두고 중국과 대립하고 있는 베트남이나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같은 다른 동남아 나라들조차도 서로 이 일대를 두고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며 영토 분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남중국해 전토를 자국 영해라고 주장하는 중국의 행패가 워낙 규모가 커서 그런지 정작 동남아 국가들의 남중국해 영토 분쟁 상황은 잘 모르거나 '필리핀과 베트남 얘네들도 서로 남중국해 바다 가지고 영토분쟁 하고 있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도 있다.[39] 1970년대부터 한국이 동남아 국가들을 압도하기 시작한다. 1980년 당시 한국의 1인당 GDP는 1,700달러 선으로 700달러 안팎의 태국을 2배 이상 차이로 능가한지 오래였다. 국가 전체의 명목 GDP도 2배 정도 차이였으며 이후 1980년대 중후반 3저호황 고도성장을 거치면서 엄청난 격차로 벌어졌다. 한국이 동남아시아 국가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좀 더 낙후되어 있었던 시기는 국토가 초토화된 6.25 전쟁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며 이미 1970년대에 들어서는 양과 질면에서 모두 동남아시아를 추월하기 시작했다. 당시 GDP 증거 링크[40] 정글 아시안(Jungle Asian) 같은 표현이 있다. 밀림에서 짐승처럼 사는 인간들이라는 뜻이다[41]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으로 카자흐스탄은 UEFA에 가입해 유럽으로 갔다.[42] 태국, 필리핀 등 동남아에서는 한국인 실종자가 상당히 많다. 지난해 해외여행 중 실종 한국인 '48명'…"대부분 중국·동남아" 라오스 한인 관광객 실종 사건 [43] 한국인 최대 사망 동남아시아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