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풍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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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를 연료로 한 휴대용 조리기구. 1980년대 이전의 대한민국 가정의 필수 요소이자 30대 이상의 서민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대부분 그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장작과 연탄 아궁이에서 어머니를 해방시켜준 은인.
석유, 그 가운데 백등유를 연료로 하는 조리 목적의 가열 기구. 일본에서 유래하였기에 일본어 표현인 '곤로(焜炉, こんろ/コンロ)'[1] 라는 말로 더 자주 불린다. 곤로라는 말은 조리용 스토브를 전반적으로 가리키는 단어이기에 나무를 때는 아궁이, 가스레인지, 전기레인지도 곤로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그러기에 굳이 곤로라는 단어를 쓰고자 한다면 석유곤로라고 쓰는 것이 옳다.그렇다. 썬연료를 쓰는 휴대용 가스레인지도 곤로다.[2]
영어로는 '스토브(Stove)' 또는 '포터블 스토브(Portable Stove)'라고 표현하지만, 난방 목적이 아닌 조리 목적으로만 쓰이며, 옮길 수는 있어도 들고 다니며 쓰기에는 너무 크기에 오해는 금물. 석유 버너와 혼동하기 쉬운데, 석유를 연료로 한 조리 기구라는 점은 같고 굳이 적자면 석유 버너도 석유풍로의 범주로 넣을 수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석유곤로와 석유 버너는 그 작동 방식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석유 버너의 작동 방식과 장단점은 해당 문서를 참고할 것.
대한민국에서는 연탄 화덕을 대신하여 1970~1980년대에 널리 쓰였으며, 1990년대 이후 가스레인지로 대체가 이뤄져 이제는 거의 쓰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레트로 취향을 갖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중고로 조금씩 거래가 되고 있는 편.
현재는 여가 활동(레저)을 목적으로 많이 쓰이고 있으며, 풍로가 아궁이와 같다고 볼 수 있다. 기름을 넣고 취사를 하는 것으로 보이면 가스식 풍로가 가스레인지의 조상격에 해당된다.
조리 목적에 맞춰 만든 휴대용 석유 스토브는 이미 19세기부터 나와 있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일제시대 이전까지 장작 또는 숯을 주로 취사용 연료로 써왔다. 장작을 때는 아궁이와 부뚜막은 집의 일부였기에 이동은 불가능했고, 무엇보다 불을 때고 끄는 것을 비롯한 화력 조절이 매우 어려웠다.
일제강점기부터 화력이 좋고 그나마 화력 조절이 조금은 쉬운 석탄이 조금씩 취사용 연료로 조금씩 쓰이기 시작했고, 1950년대에 이르면 연탄이 취사용 연료의 주류 자리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석탄과 그것을 가공한 연탄 모두 여전히 화력 조절이 어려울 뿐더러 짧은 시간에 강한 화력으로 요리를 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문제[3] , 연탄의 부피 문제, 연탄가스 중독 등 위험이 도사렸기에 취사용 연료로서 불편이 많았다.
또한 급격한 도시화와 인구의 집중으로 가정에 제대로 된 부엌 설비를 갖출 수 없는 서민 가구가 늘어나 부피가 큰 장작이나 연탄은 취사 연료로 더욱 부적합하게 되었다. 크기도 작고 2배 더 가는 특수 연탄이라는게 나오긴 했으나 이미 때는 1980년대. 그냥 소개만 되고 묻혔다. 화력이 높고 먼저 이러한 문제를 겪은 일본에서는 등유를 연료로 한 휴대용 취사 기구인 석유곤로가 널리 쓰이기 시작했고, 이것을 국내에서도 수입하여 1960년대부터 조금씩 보급이 이뤄지기 시작하여 도시가스와 LPG의 보급으로 가스레인지가 보편화된 1990년대까지 서민 가정의 대표적인 취사 도구로 꼽혔다.
석유를 담을 수 있는 연료통 위에 모세관 현상을 이용하여 등유를 적신 심지를 올리고 그 위에 냄비를 올릴 수 있는 삼발이를 놓은 일체형 구조의 휴대용 취사 설비다. 점화는 다이얼을 점화 위치로 돌려 심지를 빼낸 뒤 성냥 또는 라이터를 써 불을 붙이고, 불을 끌 때는 심지를 소화 위치에 두어 심지의 공기를 차단하는 방식을 쓴다. 화력 조절은 역시 화력조절 다이얼을 시계방향이나 반대방향으로 돌려 심지를 빼내는 정도로 정한다.
석유 버너와 달리 별도의 예열이나 펌프질 없이 모세관 현상으로 연료가 빨려 올라가는 만큼 구조가 간단하고, 여성이 옮길 수 있을 정도로 크기가 작고 가벼워 간이 부엌만 갖춘 가정에서도 쉽게 쓸 수 있다. 별도의 복잡한 설치 과정이 없어 이사가 잦은 가정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심지는 유리섬유 등 불에 잘 타지 않는 재질을 쓰나, 수명이 다하면 불꽃이 약해지고 그을음이 생기는 등 문제가 있어 정기적으로 심지를 갈아야 한다. 석유풍로가 대세였을 때는 동네마다 심지 교환만 전문으로 하는 업자가 다녔을 정도.
연료는 백등유를 쓰며, 주유소나 난방용 유류 취급점이 많지 않았을 때는 구멍가게나 쌀집 등 다양한 곳에서 백등유를 취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등유를 좁은 석유풍로 입구에 바로 부으면 새는 양이 더 많아 병 또는 통으로 사온 등유을 사이펀(속칭 자바라)을 써 석유풍로에 넣었다. 그래서 석유풍로를 쓰는 가정에서 사이펀은 필수요소. 사이펀이 없는 경우 등유 통을 풍로보다 높게 위치시키고 투명한 플라스틱 파이프를 등유 통에 넣고 반대쪽 끝을 입으로 빨아 등유가 입에 닿기 전에 빼서 풍로의 연료 입구에 넣어 주유를 하는 방법도 있다. 70년대나 그 이전 출생한 세대들에겐 비교적 익숙한 광경.
아무리 정유사에서 등유가 냄새와 그을음이 없다고 주장을 한들 냄새와 그을음은 피할 수 없는 석유풍로의 약점이다. 음식에서 등유의 냄새가 배는 것은 흔하고, 공기가 탁하거나 심지의 상태가 좋지 못하면 그을음이 생겨 냄비를 더럽힌다. 그을음은 잘 닦이지도 않으니 그야말로 안습.
또한 등유는 가스에 비해 불완전 연소 가능성이 높기에 공기 순환이 잘 되지 않는 곳에서 쓰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안전장치도 딱히 없어 조리 과정에서 석유풍로가 넘어지면 화재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질식이나 화재 뿐만 아니라 폭발사고 역시 흔한 편이었다. 간단한 구조라 떨어지는 기술력으로도 만들 수 있어 조악품이 유통되어 폭발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조악품이 아니더라도 구조적으로도 폭발할 가능성은 항상 있었다. 심지 아래쪽이 경사져 있어 손잡이를 좌우로 움직이면 심지가 위아래로 움직이는 단순한 구조이기 때문에 불이 꺼진 상태에서도 외부와 완전히 차단되지 않고 심지 윗부분이 조금씩 보이는 게 정상이다.[4] 그 때문에 등유가 기화하여 유증기가 석유풍로 내부 혹은 방안에 가득 차있다가 사용하려 성냥에 불을 붙이는 순간... 특히 여름철에 폭발 사고가 많았는데 그 중에서도 농촌지역 아이들이 변을 당하는 사례가 상당히 많았다. 여름 농번기 + 방학이라 집에 있던 아이들이 점심을 준비하려 석유풍로에 불을 붙이다가 폭발사고를 당했던 것. 그 때문에 차라리 아궁이를 쓰게 하고 석유풍로에는 손도 못대게 하는 경우도 많았다.[5]
그래서 1980년대 말부터 LPG나 도시가스를 쓴 가스레인지가 보급이 이뤄지면서 석유풍로는 빠르게 사라졌고, 1990년대 초만 되어도 찾아 보는 것이 쉽지 않은 물건이 되고 말았다. 취사용 연료가 가스로 바뀌면서 연탄이 주류이던 난방용 연료의 자리에 등유(보일러 등유 포함)가 오면서 세대 교체는 끝났다. 지금은 도시가스가 들어오는 곳에서는 대부분 LNG 가스레인지를, 도시가스가 안 들어오는 곳에서도 웬만하면 LPG 가스레인지를 쓰며, 21세기 들어 석유풍로보다 훨씬 가볍고 설치도 쉬우며 안전한 전기레인지까지 원룸 등에 설치되고 있다.
석유 풍로는 조리용으로만 쓰였는데, 기본적으로 같은 구조인 석유 난로는 윗부분에 발열판이 달려 있고, 나중에는 전기 모터로 공기와 연료를 공급하여 강한 화력을 내는 것까지 나왔다. 맨 위 열판에는 주전자를 올려 놓아 난방을 건조해진실내에 가습을 하고 뜨거운 물도 마실수 있게 했고, 라면을 끓이거나 밥을 지을 수도 있었다. 미용실 목욕탕 만화가게 등에는 필수품이었다가 가스 난방 중앙 난방이 보급되고는 거의 사라졌고, 석유풍로/난로는 이제 주로 캠핑용(난방/취사 겸용)으로 쓰이고 있다. 파세코 등의 제조사가 캠퍼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사랑의 불시착에서도 석유풍로를 소개할 정도로 재조명한 이력도 있다.
1992년까지만 해도 육군훈련소 화생방 가스실에서 CS캡슐을 연소하는데 썼다는 증언도 있다.
록맨 & 포르테: 미래에서의 도전자의 콘로맨이 이것을 모티브로 했다.
1. 개요
석유를 연료로 한 휴대용 조리기구. 1980년대 이전의 대한민국 가정의 필수 요소이자 30대 이상의 서민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대부분 그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장작과 연탄 아궁이에서 어머니를 해방시켜준 은인.
석유, 그 가운데 백등유를 연료로 하는 조리 목적의 가열 기구. 일본에서 유래하였기에 일본어 표현인 '곤로(焜炉, こんろ/コンロ)'[1] 라는 말로 더 자주 불린다. 곤로라는 말은 조리용 스토브를 전반적으로 가리키는 단어이기에 나무를 때는 아궁이, 가스레인지, 전기레인지도 곤로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그러기에 굳이 곤로라는 단어를 쓰고자 한다면 석유곤로라고 쓰는 것이 옳다.그렇다. 썬연료를 쓰는 휴대용 가스레인지도 곤로다.[2]
영어로는 '스토브(Stove)' 또는 '포터블 스토브(Portable Stove)'라고 표현하지만, 난방 목적이 아닌 조리 목적으로만 쓰이며, 옮길 수는 있어도 들고 다니며 쓰기에는 너무 크기에 오해는 금물. 석유 버너와 혼동하기 쉬운데, 석유를 연료로 한 조리 기구라는 점은 같고 굳이 적자면 석유 버너도 석유풍로의 범주로 넣을 수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석유곤로와 석유 버너는 그 작동 방식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석유 버너의 작동 방식과 장단점은 해당 문서를 참고할 것.
대한민국에서는 연탄 화덕을 대신하여 1970~1980년대에 널리 쓰였으며, 1990년대 이후 가스레인지로 대체가 이뤄져 이제는 거의 쓰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레트로 취향을 갖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중고로 조금씩 거래가 되고 있는 편.
현재는 여가 활동(레저)을 목적으로 많이 쓰이고 있으며, 풍로가 아궁이와 같다고 볼 수 있다. 기름을 넣고 취사를 하는 것으로 보이면 가스식 풍로가 가스레인지의 조상격에 해당된다.
2. 역사
조리 목적에 맞춰 만든 휴대용 석유 스토브는 이미 19세기부터 나와 있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일제시대 이전까지 장작 또는 숯을 주로 취사용 연료로 써왔다. 장작을 때는 아궁이와 부뚜막은 집의 일부였기에 이동은 불가능했고, 무엇보다 불을 때고 끄는 것을 비롯한 화력 조절이 매우 어려웠다.
일제강점기부터 화력이 좋고 그나마 화력 조절이 조금은 쉬운 석탄이 조금씩 취사용 연료로 조금씩 쓰이기 시작했고, 1950년대에 이르면 연탄이 취사용 연료의 주류 자리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석탄과 그것을 가공한 연탄 모두 여전히 화력 조절이 어려울 뿐더러 짧은 시간에 강한 화력으로 요리를 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문제[3] , 연탄의 부피 문제, 연탄가스 중독 등 위험이 도사렸기에 취사용 연료로서 불편이 많았다.
또한 급격한 도시화와 인구의 집중으로 가정에 제대로 된 부엌 설비를 갖출 수 없는 서민 가구가 늘어나 부피가 큰 장작이나 연탄은 취사 연료로 더욱 부적합하게 되었다. 크기도 작고 2배 더 가는 특수 연탄이라는게 나오긴 했으나 이미 때는 1980년대. 그냥 소개만 되고 묻혔다. 화력이 높고 먼저 이러한 문제를 겪은 일본에서는 등유를 연료로 한 휴대용 취사 기구인 석유곤로가 널리 쓰이기 시작했고, 이것을 국내에서도 수입하여 1960년대부터 조금씩 보급이 이뤄지기 시작하여 도시가스와 LPG의 보급으로 가스레인지가 보편화된 1990년대까지 서민 가정의 대표적인 취사 도구로 꼽혔다.
3. 특징
석유를 담을 수 있는 연료통 위에 모세관 현상을 이용하여 등유를 적신 심지를 올리고 그 위에 냄비를 올릴 수 있는 삼발이를 놓은 일체형 구조의 휴대용 취사 설비다. 점화는 다이얼을 점화 위치로 돌려 심지를 빼낸 뒤 성냥 또는 라이터를 써 불을 붙이고, 불을 끌 때는 심지를 소화 위치에 두어 심지의 공기를 차단하는 방식을 쓴다. 화력 조절은 역시 화력조절 다이얼을 시계방향이나 반대방향으로 돌려 심지를 빼내는 정도로 정한다.
석유 버너와 달리 별도의 예열이나 펌프질 없이 모세관 현상으로 연료가 빨려 올라가는 만큼 구조가 간단하고, 여성이 옮길 수 있을 정도로 크기가 작고 가벼워 간이 부엌만 갖춘 가정에서도 쉽게 쓸 수 있다. 별도의 복잡한 설치 과정이 없어 이사가 잦은 가정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심지는 유리섬유 등 불에 잘 타지 않는 재질을 쓰나, 수명이 다하면 불꽃이 약해지고 그을음이 생기는 등 문제가 있어 정기적으로 심지를 갈아야 한다. 석유풍로가 대세였을 때는 동네마다 심지 교환만 전문으로 하는 업자가 다녔을 정도.
연료는 백등유를 쓰며, 주유소나 난방용 유류 취급점이 많지 않았을 때는 구멍가게나 쌀집 등 다양한 곳에서 백등유를 취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등유를 좁은 석유풍로 입구에 바로 부으면 새는 양이 더 많아 병 또는 통으로 사온 등유을 사이펀(속칭 자바라)을 써 석유풍로에 넣었다. 그래서 석유풍로를 쓰는 가정에서 사이펀은 필수요소. 사이펀이 없는 경우 등유 통을 풍로보다 높게 위치시키고 투명한 플라스틱 파이프를 등유 통에 넣고 반대쪽 끝을 입으로 빨아 등유가 입에 닿기 전에 빼서 풍로의 연료 입구에 넣어 주유를 하는 방법도 있다. 70년대나 그 이전 출생한 세대들에겐 비교적 익숙한 광경.
4. 단점
아무리 정유사에서 등유가 냄새와 그을음이 없다고 주장을 한들 냄새와 그을음은 피할 수 없는 석유풍로의 약점이다. 음식에서 등유의 냄새가 배는 것은 흔하고, 공기가 탁하거나 심지의 상태가 좋지 못하면 그을음이 생겨 냄비를 더럽힌다. 그을음은 잘 닦이지도 않으니 그야말로 안습.
또한 등유는 가스에 비해 불완전 연소 가능성이 높기에 공기 순환이 잘 되지 않는 곳에서 쓰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안전장치도 딱히 없어 조리 과정에서 석유풍로가 넘어지면 화재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질식이나 화재 뿐만 아니라 폭발사고 역시 흔한 편이었다. 간단한 구조라 떨어지는 기술력으로도 만들 수 있어 조악품이 유통되어 폭발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조악품이 아니더라도 구조적으로도 폭발할 가능성은 항상 있었다. 심지 아래쪽이 경사져 있어 손잡이를 좌우로 움직이면 심지가 위아래로 움직이는 단순한 구조이기 때문에 불이 꺼진 상태에서도 외부와 완전히 차단되지 않고 심지 윗부분이 조금씩 보이는 게 정상이다.[4] 그 때문에 등유가 기화하여 유증기가 석유풍로 내부 혹은 방안에 가득 차있다가 사용하려 성냥에 불을 붙이는 순간... 특히 여름철에 폭발 사고가 많았는데 그 중에서도 농촌지역 아이들이 변을 당하는 사례가 상당히 많았다. 여름 농번기 + 방학이라 집에 있던 아이들이 점심을 준비하려 석유풍로에 불을 붙이다가 폭발사고를 당했던 것. 그 때문에 차라리 아궁이를 쓰게 하고 석유풍로에는 손도 못대게 하는 경우도 많았다.[5]
그래서 1980년대 말부터 LPG나 도시가스를 쓴 가스레인지가 보급이 이뤄지면서 석유풍로는 빠르게 사라졌고, 1990년대 초만 되어도 찾아 보는 것이 쉽지 않은 물건이 되고 말았다. 취사용 연료가 가스로 바뀌면서 연탄이 주류이던 난방용 연료의 자리에 등유(보일러 등유 포함)가 오면서 세대 교체는 끝났다. 지금은 도시가스가 들어오는 곳에서는 대부분 LNG 가스레인지를, 도시가스가 안 들어오는 곳에서도 웬만하면 LPG 가스레인지를 쓰며, 21세기 들어 석유풍로보다 훨씬 가볍고 설치도 쉬우며 안전한 전기레인지까지 원룸 등에 설치되고 있다.
석유 풍로는 조리용으로만 쓰였는데, 기본적으로 같은 구조인 석유 난로는 윗부분에 발열판이 달려 있고, 나중에는 전기 모터로 공기와 연료를 공급하여 강한 화력을 내는 것까지 나왔다. 맨 위 열판에는 주전자를 올려 놓아 난방을 건조해진실내에 가습을 하고 뜨거운 물도 마실수 있게 했고, 라면을 끓이거나 밥을 지을 수도 있었다. 미용실 목욕탕 만화가게 등에는 필수품이었다가 가스 난방 중앙 난방이 보급되고는 거의 사라졌고, 석유풍로/난로는 이제 주로 캠핑용(난방/취사 겸용)으로 쓰이고 있다. 파세코 등의 제조사가 캠퍼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5. 이야깃거리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사랑의 불시착에서도 석유풍로를 소개할 정도로 재조명한 이력도 있다.
1992년까지만 해도 육군훈련소 화생방 가스실에서 CS캡슐을 연소하는데 썼다는 증언도 있다.
록맨 & 포르테: 미래에서의 도전자의 콘로맨이 이것을 모티브로 했다.
[1] 가타카나로 표기하는 일이 많다. 焜爐의 한국한자음도 곤로(또는 혼로)라서 일본한자음과 똑같다. 자음동화 현상 때문에 /골로/처럼 소리난다.[2] 이런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일본에서는 카트리지가스곤로, 약칭 카세트곤로(カセットコンロ)라 부른다. 일본권에서 음식, 여행, 캠핑을 다루는 작품에서 카세트곤로라는 말은 꽤 자주 언급된다.[3] 가정에서 일반적으로 쓰이는 연탄은 무연탄인데, 무연탄은 연기가 적게 나고 오래 가지만 화력은 상대적으로 그리 강하지 않다. 그래서 화력이 중요한 중국 요리에서는 석탄을 가공하여 화력을 높인 코크스를 사용하였다.[4] 오히려 심지가 완전히 가려져 보이지 않으면 심지를 교환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심지가 짧아지면 불완전연소가 일어나 그을음이 심해진다.[5] 석유풍로 뿐만 아니라 당시 팔리던 많은 석유난로도 석유풍로와 비슷하게 심지를 쓰는 구조인 경우가 많았다. 난로는 겨울철에 주로 사용하기 때문인지 의외로 폭발사고가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