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죽화
'''雪竹花'''
1001년 ~ 1019년
1. 개요
북한 평안북도 일대에 설화로 전해져 내려오는 여성 장수. 인터넷 상에서는 고려사등에 남아 있다고 언급되나 실제로는 정사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는, 아기장수 우투리와 같은 구전설화속 인물로 실존 여부는 불분명하다.
참고로 아버지 성씨인 이(李)씨를 붙여 이설죽화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는데 이 전설의 배경이 되는 고려 현종 시기는 고위 귀족들 사이에서도 성씨가 일반적이지 않았다. 즉 이관의 이는 성씨가 아니다. 게다가 설죽화도 본명이 아니기 때문에 완벽히 잘못 된 표기다.
2. 생애
그녀는 고려의 병사였던 이관(李寬)이라는 자의 딸인데, 이관은 평민이지만 몰락한 무관 가문의 후손이기도 했다. 거란의 2차 침입 당시 양규 휘하에서 종군했다. 거란의 성종이 직접 친정한 20만 대군과 싸우던 중 이관은 귀성(龜城)전투에서 전사 했는데, 죽은 후 그의 품 안에서 시 한수가 발견 된다.
그의 품에서 발견된 시는 굴암산으로 피난 가 있던 이관의 부인인 홍씨와 10살배기 딸에게 전달 된다. 이 시를 받은 부인 홍씨는 자신의 딸에게 남자로 태어났다면 아버지의 유언을 받들수 있었을 텐데라는 한탄을 하게 되고 그 말을 들은 딸은 무예를 익히기로 결심한다. 홍씨의 딸은 어머니에게 무예를 가르쳐 달라고 졸랐고, 부인 홍씨는 친정아버지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딸에게 무예를 알려주기 시작한다.이 땅에 침략하는 무리들이
천만 번 쳐들어와도
고려의 자식들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네.
후손들도 나처럼 죽음을 무릅쓰고 싸우리라 믿고
나는 긴 칼을 치켜세운 채
이 한 몸을 바쳐 내달릴 뿐이로다.
시간은 흘러 거란의 3번째 침입이 시작되었고, 그 소식을 들은 이관의 딸은 남장을 한 후 귀주성 인근에 진을 치고 있던 상원수 강감찬의 부대로 찾아간다. 그곳에서 강감찬과 마주치게 되는데 군에 입대하게 해달라고 간청하는 그녀에게 강감찬은 어려보이는데다 몸도 여려 "너의 뜻은 장하나, 나이가 차면 그 때 다시오라."며 거절한다. 이때 이관의 딸은 "나라를 위하는데 어찌 나이를 헤아리며 몸이 크고 작음을 가리겠나이까."라며 자신의 뜻을 강하게 전달한다. 결국 강감찬은 그녀를 받아주며 자신이 타고 다니던 백마 1필과, 창 한자루를 건네준다.[1]
이후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설죽화, 눈 속에 핀 푸른 대나무 꽃이라고 지었으며 강감찬을 따라서 거란군과 맞서 싸우게 된다. 그녀는 항상 고려군의 선봉에 서서 거란의 병사들을 물리쳤으며 이런 적극성 때문에 온 몸에 상처가 마를 날이 없었다고 한다. 그녀는 귀주 대첩때도 고려군의 선봉에 서서 적들의 목을 베었는데 적의 가슴에 창을 꽂아 넣는 순간 등 뒤에서 날라온 화살에 맞아 전사한다.
귀주 벌판에서의 대혈전이 끝난 후, 설죽화의 시체가 발견 되었는데 그때 그녀의 품에서 이관이 남긴 시가 나왔으며 이를 본 강감찬은 설죽화가 남자가 아니라 여자였음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