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제(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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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진나라(晉)의 제6대 황제이자, 동진(東晉)의 제2대 황제. 묘호는 숙조고, 시호는 명황제. 휘는 소(紹). 자는 도기(道畿). 사마의의 고손자로 그의 증조 할아버지는 사마의의 6남 사마주, 그의 할아버지는 사마근, 그의 아버지는 진원제 사마예였다. 동명인 진 문제 사마소는 사마의의 차남이자 사마주의 이복 형으로 이 문서의 진 명제 사마소의 증조 할아버지뻘에 해당한다.
2. 생애
원강 9년(299년)에 진원제와 순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일설에 따르면 그는 수염이 노란색이었다고 하는데, 어머니 순씨가 선비족 출신이었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있다. 사마소는 어려서부터 총명하였고 박식했다. 사마소가 어릴 때 장안에서 황제의 칙사가 오자 원제가 물었다.
진 원제는 기특하게 여기고 다음날 주연을 베풀어 문무백관을 불러 놓고 다시 사마소에게 물어봤다.진 원제: "네가 보기에는 태양이 멀리 있겠느냐, 아니면 장안이 더 멀리 있겠느냐?"
진 명제: "장안이 더 가깝습니다. 왜냐면은 태양이 있는 곳에서 사람이 왔다고 들어 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이에 문무백관들은 감탄했는데 특히 진 원제는 그를 기특하게 여겼다.[1]진 명제: "태양이 가깝습니다."
진 원제: "아까는 장안이 가깝다고 하지 않았느냐?"
진 명제: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눈을 뜨면 태양을 볼 수 있지만 장안을 볼 수 없습니다."
그는 철이 들면서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지간에는 화목했으며 어진 사람과 유학자를 존경하고 장졸과 백성을 사랑했다.
또 문장, 서예, 학문, 병법 모두 뛰어나 신하들도 감탄했고 인심을 얻었다. 건흥 초기에 동중랑장이 되어 광릉을 지켰다.
건무 원년(317년), 세자가 되었고, 이듬해 3월에는 태자가 되었다. 대장군 왕돈은 자기가 찬탈하는데 진 명제가 방해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그가 효성이 없고 무능하다는 이유로 모함하여 여러 번 폐위하려 했다. 그러나 신하들의 반대로 이루지 못하였다.
영창 원년(322년) 11월, 사마소는 황제에 즉위했다.
태녕 원년(323년) 4월, 왕돈은 군사를 고숙으로 이동시켰고 이듬해 정월에는 충신 주숭 등을 죽이고 회계를 습격했다.
왕돈은 이때 친정하러 온 진 명제의 진채를 형 왕함으로 하여금 기습하게 했는데 오히려 개발렸다. 이에 왕돈은 절망하여 "실로 형님은 계집애와 같은 늙은 영감이었다. 아아, 우리 집안이 드디어 망하는구나!"라며 앓아누웠다. 거기에 진 명제가 이 틈을 타 기습해서 또 다시 대패하자 그대로 넘어가서 죽었다. 진 명제는 왕돈을 부관참시하고 전봉, 심충 등을 주살하며 반란을 평정했다. 그러나 왕씨 일족들을 죽이지 않았으며 왕돈의 가솔이 그를 안장하는 것을 허락해 주었다. 담당 관원이 왕도, 왕빈 등을 처벌해야 한다고 했으나, 왕씨 일가라고 무조건 처벌하지 않았다. 오히려 진 명제는 왕도가 왕돈의 사촌 동생임에도 불구하고 반란 토벌에 공을 세웠다면서 상을 내리고 더욱 중용했다.
진 명제는 능력이 좋고, 사람도 좋아 명군의 자질이 컸지만 불행하게도 건강이 좋지 않았다. 아마도 왕돈의 난을 진압하느라 모든 공력을 다 소비해버린 것으로 보인다.
태녕 3년(325년) 윤8월, 진 명제는 결국 재위 2년 만에 '''27세'''의 나이로 건강 동당에서 사망하고 무평릉에 안장되었다. 전체적으로 안습인 동진에서 그나마 유일하게 황제다운 군주였다 하겠다.
3. 여담
위나라 당시에 조상이자 진나라의 기초를 마련한 사마의가 수많은 이들을 주살한 고평릉 사변이나, 사마소가 황제인 조모를 살해한 과거의 일을 부끄럽게 여겼다는 언급이 있다. 황제이자 사마의의 후손인 진명제조차 이런 감정을 가졌을 마당에 다른 이들이 두 명을 어떻게 생각했을지 알려주는 자료.진선제 사마의는 공손연을 평정하자 대거 살륙을 행했다. 조상을 주살할 때는 그의 일파들 모두 삼족을 멸하여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고 고모 등 출가한 여자들까지 모두 죽였으며, 그 뒤 위나라의 정(鼎)을 옮기기에 이르렀다.
명제 때 왕도(王導)가 모시고 배석했다. 명제가 전대에 천하를 얻을 수 있었던 연고를 묻자 왕도가 선제가 창업을 시작한 일을 진술하고 더불어 사마소 말년의 고귀향공 조모에 관한 일(사마소가 조모를 죽인 일)을 진술했다. 이에 명제가 말했다.
“만약 공의 말대로라면 진(晉)의 제업이 어찌 길고 멀겠는가!”
하고 책에 얼굴을 파묻으며 몹시 부끄러워 했다고 한다.
실제로 건강으로 천도한 이래 이 때까지 단 1개월도 막장이 아니었던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 이후 멸망하는 그 순간까지 역시 단 1개월도 막장이 아니었던 적이 없게 된다. 특히 그 절정은 사마덕종이 즉위하면서부터였다. 황제가 지적 장애인인지라 개나 소나 권력을 잡으려고 아주 발악질을 해대던 시기가 사마덕종 치세 기간이다.
그나마 진명제가 이런 개념행보(?)를 보여서인지 진명제의 예상과는 달리 동진은 100년 넘게 갔는데 우리 입장에서 보면 "뭐 이리 단명한 왕조냐?" 라고 보이겠지만 위진남북조를 통틀어 100년 넘은 왕조는 고작 동진과 북위뿐이다. 물론 진짜 진명제가 개념인이기 때문만으로 100년이나 갔을 리는 없다. 실제로는 아무래도 북쪽에 이민족 왕조가 있고 서진 시대보다는 개념이 박혀서 그런 것으로 보인다. 원래 동진 자체가 3개 군벌의 연합체(경구, 건강, 형주)고, 무력한 황제를 허수아비로 내세워 서로의 균형을 유지했기 때문에 굳이 별 의미 없는 황제를 폐할 필요가 없었으나, 이 균형이 깨지면서 한 명의 군벌이 다 차지하자 멸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