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네이 덴노
1. 개요
일본의 제22대 천황. 고사기에는 시라카노다케히로쿠니오시와카야마토네코노스메라미코토(白髪武広国押稚日本根子天皇), 시라카노오야마토네코노미코토(白髪大倭根子命)라는 시호로 나온다.
2. 생애
유랴쿠 덴노의 3남으로 어머니는 가쓰라기노카라히메(葛城韓媛)였다. 태어날 때부터 머리가 하얀색이었는데, 오키미(대왕)는 이를 상서롭다 여겨 '시라카(白髮)' 황자라 불렀다고 한다. 유랴쿠는 시라카 황자를 황태자로 책봉하였다.
497년 유랴쿠 덴노가 병이 나자 실권을 황태자에게 넘겼다.
부왕이 재위 23년만에 서거했을 때, 기비 씨를 외가로 두고 있던 이복 형제 호시카와노 와카미야노 미코(星川稚宮皇子)가 오쿠라(大蔵)를 점거하고 권세를 떨치자, 오토모노 무로야(大伴室屋)와 야마토노 아야노 아타이쓰가(東漢直掬) 등이 그를 불태워 죽였고, 이듬해 정월에 시라카노 미코가 오키미로 즉위했다.
480년 1월, 세이네이 덴노는 이와레노미카쿠리노 미야 궁에서 천황으로 즉위하였으며 무로야가 오미, 무라지 등을 이끌고 세이네이 덴노에게 삼종신기를 바쳤다.
즉위 후 유랴쿠 덴노 시대와 마찬가지로 오오토모노 무라지 무로야를 대련에, 헤구리노 오미 마토리를 대신(大臣)에 임명하였다.
궁은 이와레노 미카쿠리노 미야(磐余甕栗宮)라 불리는데, 지금의 나라현(奈良県) 가시하라 시(橿原市) 히가시이케지리초(東池尻町)의 미마야코 신사(御厨子神社)로 전해지고 있다. 세이네이는 아내가 없어 슬하에 자식이 없었다.
481년 11월에 이치노헤노오시하노 미코(市辺押磐皇子)의 아들로 17대 리추 덴노의 손자였던 오케노미코(億計王, 24대 닌켄 덴노)·호케노미코(弘計王, 23대 켄조 덴노) 형제가 하리마(播磨)에서 발견되자, 칙사를 시켜 그들을 궁중에 불러들이고, 오케노미코를 동궁(東宮), 호케노미코를 황자로 삼았다.
재위 5년 정월에 승하하였다. 《미즈카가미(水鏡)》에는 41세, 《신황정통기(神皇正統記)》에는 39세로 되어 있다.
그의 무덤은 가와치노사카토노하라 능(河内坂門原陵)이라 불리며 지금의 오사카부(大阪府) 하비키노 시(羽曳野市) 니시우라(西浦) 6정목(丁目)의 니시우라 시라카 산 고분(西浦白髪山古墳, 전방후원분, 전체 길이 112m)으로 비정된다.
3. 기타
시호는 '시라카노 오야마토네코노 미코토(白髪大倭根子命)'라고 나오는데, '''야마토네코'''는 7세기 이후 덴노들의 시호에 등장하는 명칭이기 때문에 야마토네코나 타라시가 나오지 않는 다른 덴노들과 달리 가공의 인물로 추정되고 있다. 무엇보다 日本을 야마토로 읽는 독음은 38대 덴지 덴노 때나 가서 생겨나는 거라...
그가 결혼을 하지 않았고, 자식이 없었다는 것도 실제로는 실존 인물들 사이를 메꾸는 가공의 인물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설정했다는 추측이 있다. 다만, 24대 닌켄 덴노를 태자로 책봉한 것과 그의 누나인 이토요아오(飯豊青)가 잠시 동안 섭정을 했다는 점 때문에 그녀와 부부관계가 아니었는가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