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 빈
Alexander "Sawney" Bean(e).
보통은 Sawney Bean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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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출처
Sawney Bean
(? ~ 1459년? )
15세기 혹은 16세기에 살았던 스코틀랜드 최악의 식인마. 소니 빈과 가족은 무려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잡아먹은''' 인간으로 알려져 있다.
많은 역사학자들은 소니 빈의 실존여부를 부정적으로 여기지만, 소니 빈의 이야기는 에든버러의 필수 관광코스로 재조명될 정도로 유명하다. 다만 확실하지는 않은 정보인데도 몇몇 유튜버들이 마치 확실한 사실인 양 어그로를 끌어 방송하거나 영상을 만든다. 어디까지나 썰이니 완전히 믿지는 말자.
이런 식으로 소니 빈의 동굴을 찾아가는 관광객들도 있다.
소니 빈의 생몰년도는 전해지지 않으나 15-16세기쯤에 태어났다고 한다. 소니 빈의 아버지는 하수구 청소를 하는 사람이었으나, 소니 빈은 그런 삶을 살지 않기로 결정하고 같은 생각을 가진 여자 하나를 데리고 갤러웨이 해변에 정착했다.
소니 빈이 집으로 선택한 곳은 해변가 동굴이었다. 이 동굴은 너무 깊고 길어서 내부가 넓은 데다가 조수의 흐름에 따라 이틀에 한 번 꼴로 입구가 물에 잠기기 때문에 숨어 살기에는 더없이 적합했다. 이 동굴에서 살림을 차리고 강도질을 생업으로 삼은 소니 빈은 자신이 잡은 희생자는 반드시 죽였고 많은 양의 재물을 모았다. 하지만 주인이 누군지 티가 날 만한 비싸고 값진 물건은 내다팔기가 어려웠고, 티가 안 나는 옷가지나 잔돈 따위로는 먹고 살기에 부족했다.
결국 소니 빈은 동굴 구석에 방치해뒀던 '''희생자의 시체를 식량으로 삼는 방법'''을 택했다. 소니 빈 부부는 동물을 잡아 도축하듯 사람을 잡으면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내고 먹었다. 팔다리는 소금에 절여서 동굴 벽에 걸어두기도 했다. 먹고 남은 뼈는 동굴 구석에 던져놓았다.
소니 빈 부부는 동굴 속에서 14명의 자식들(8남6녀)를 낳았는데, 그 자식들이 서로 근친상간하여 더 많은 아이를 낳았으며, 여러 번의 근친상간을 거듭한 결과 소니 빈 일가는 27명의 남자아이와 21명의 여자아이로 이루어진 대가족을 이루게 된다. 이들 역시 자신의 부모를 따라 강도살인과 식인을 서슴치 않았으며, 군대처럼 조직적으로 움직이면서 희생자 무리를 앞뒤로 포위한 후 죽여서 잡아먹고 재물을 약탈하곤 했다. 같은 가족들끼리는 결코 잡아먹지 않았다.
그 후 20년간 그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실종되자 지역사회에 큰 불안을 안겨주었고, 당국에서도 조사에 나섰지만 증거가 거의 없는 탓에 소니 빈 일가의 범행임을 알아낼 수 없었다. 그들의 은신처도 찾아보려고 했으나 동굴 같은 곳에 사람이 살 수는 없다고 여겼기 때문에 발각되지 않았다. 간혹 동굴에 접근한 사람들도 있었으나, 그들은 모두 자신들이 알아낸 사실을 바깥 세상에 전하지도 못하고 잡아먹혔기에 결국 소니 빈을 찾으려는 시도는 번번이 실패로 돌아가게 된다.
당국은 계속 이어지는 실종사건을 수사해 의심가는 사람들을 조사했지만 그저 피해자와 마지막으로 만났다고 알려진 것 뿐인 엉뚱한 사람만 잡을 뿐이었다. 피해자가 정말로 마지막으로 만난 자는 소니 빈 일당이지만,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이렇게 계속 생활하나 싶었으나 어느 부부를 습격한 날에 큰 실수를 하게 되어 정체가 드러나고 만다. 시장에서 먹을 것을 사고 돌아가던 한 부부를 습격해 부인은 죽이고 남편까지 죽이려던 차에 무장 용병들을 호위로 동행한 상단이 나타난 것. 스무 명이 넘는 용병들과 맞닥트린 소니 빈 일당은 맞서 싸웠으나 결국엔 패배했고, 동굴로 운반하기 위해 옷을 벗기고 배를 갈라 내장을 들어내어 "손질"을 마친 부인의 시체를 남겨둔 채 달아나고 만다.
살아남은 남편은 글래스고로 가서 소니 빈 일당의 존재를 증언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관리들은 끔찍하게 훼손된 아내의 시체를 보고 경악해 영주에게 보고했으며, 영주 역시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채 곧바로 창과 검, 방패로 무장한 4백여 명이 넘는 군인들과 훈련된 군견 여러 마리를 보내어 범인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지역 주민들 또한 가세했다고 한다.
소니 빈의 거처는 워낙 은밀했기 때문에 처음 한동안은 수색에 허탕만 쳤다. 하지만 어느 날 군인들이 소니 빈 일가가 숨어 지내던 동굴 근처를 지나던 중, 군견들이 시체 냄새를 맡아 결국 찾아내고 만다.
이때 군인들은 그곳에서 25년 간 산더미처럼 쌓인 사람의 시체와 백골, 약탈물, 그리고 벽에 걸린 인육들을 보았고, 그 자리에서 경악하며 소니 빈 일당 48명을 모조리 붙잡았다.
체포된 소니 빈과 그의 일당들은 에든버러로 끌려왔다. 소니 빈 일당의 행각이 너무나 잔혹하고 악랄했기 때문에, 관리들은 별도의 법제를 적용하여 모두 사형에 처했다.
전설과 가장 비슷하다고 평가되는, 1696년에 출판된 너새니얼 크라우치(Nathaniel Crouch)의 책에 따르면 그들은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 2세[1] 가 죽기 1년 전인 1459년에 붙잡혀 남자들은 능지처참[2] 을 당했고, 여자들은 남자들이 죽는 것을 지켜본 이후 화형에 처해졌다고 한다. 유일한 1살 난 여자아이를 제외한 어린아이들도 모두 동일한 형벌에 처해졌다. 그리고 이 1살 난 여자아이조차도 나중에 나이가 들자 죄를 자백하게 하고 처형했다고 한다.
소니 빈 일가는 1살 난 여자아이만 제외하고 모두 자신들의 악행을 후회하지 않았다고 한다. 정황상 살인 행각을 시작한 후 자식들을 낳았다면, 부모인 소니 빈 부부가 자기 자식들에게 자신들이 한 살인이 나쁜 짓이라는 등 제대로 된 교육을 했을 리가 없으니, 부부를 제외한 자식들은 어찌 보면 막장 부모의 피해자일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이들이 너무나 큰 피해를 입혔고, 그 시대에 아동 학대 같은 개념이 있을 리 없으니 전원 사형은 어쩔 수 없는 결과였다. 어린 아이들은 살려줄 수도 있었겠지만, 이미 일반인과 전혀 다른 과정을 거쳐 자라난 이상 이들은 사회에 적응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설령 현대였어도 이런 사건이 터지면 최소한 평생 격리 내지는 감시 조치를 받거나 그러지 않아도 평생 다른 이들에게 두려움과 혐오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전설에 따르면 빈의 거처와 가까운 지역에 기번이란 마을이 있었는데, 소니 빈의 장녀가 가족을 떠나 그 마을에 정착해 Hairy tree란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나중에 식인 가족이 체포되자 장녀의 정체도 발각되었는데, 화난 군중들이 장녀를 붙잡아 Hairy tree의 가지에 교수했다고 한다. 이후 그 나무 아래 서있으면 시체가 흔들리는 소리가 난다고 한다. 다만 이 부분은 전설이므로 Hairy tree의 존재여부와 위치는 불명이다. 그런데 현지 사람들이 (관광객 유치를 위해) 이 나무를 찾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진격의 거인에서 트로스트 구 탈환 작전에서 포획한 거인 2마리에게 한지 조에가 각각 소니와 빈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마법소녀 육성계획 시리즈에 등장한 소니아 빈은 소니 빈이 모티브로, 일반적인 마법소녀가 아니라 소니 빈처럼 범죄를 저지른 범죄 마법소녀다.
21세기 영웅전에선 소니 빈 일당이 저승이 혼란스러워진 틈에 지옥에서 도망친 이승에서 설치다가 송환된다.
보통은 Sawney Bean으로 불린다.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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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출처
Sawney Bean
(? ~ 1459년? )
15세기 혹은 16세기에 살았던 스코틀랜드 최악의 식인마. 소니 빈과 가족은 무려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잡아먹은''' 인간으로 알려져 있다.
많은 역사학자들은 소니 빈의 실존여부를 부정적으로 여기지만, 소니 빈의 이야기는 에든버러의 필수 관광코스로 재조명될 정도로 유명하다. 다만 확실하지는 않은 정보인데도 몇몇 유튜버들이 마치 확실한 사실인 양 어그로를 끌어 방송하거나 영상을 만든다. 어디까지나 썰이니 완전히 믿지는 말자.
이런 식으로 소니 빈의 동굴을 찾아가는 관광객들도 있다.
2. 전설의 식인귀
2.1. 악마들이 태어나다
소니 빈의 생몰년도는 전해지지 않으나 15-16세기쯤에 태어났다고 한다. 소니 빈의 아버지는 하수구 청소를 하는 사람이었으나, 소니 빈은 그런 삶을 살지 않기로 결정하고 같은 생각을 가진 여자 하나를 데리고 갤러웨이 해변에 정착했다.
소니 빈이 집으로 선택한 곳은 해변가 동굴이었다. 이 동굴은 너무 깊고 길어서 내부가 넓은 데다가 조수의 흐름에 따라 이틀에 한 번 꼴로 입구가 물에 잠기기 때문에 숨어 살기에는 더없이 적합했다. 이 동굴에서 살림을 차리고 강도질을 생업으로 삼은 소니 빈은 자신이 잡은 희생자는 반드시 죽였고 많은 양의 재물을 모았다. 하지만 주인이 누군지 티가 날 만한 비싸고 값진 물건은 내다팔기가 어려웠고, 티가 안 나는 옷가지나 잔돈 따위로는 먹고 살기에 부족했다.
결국 소니 빈은 동굴 구석에 방치해뒀던 '''희생자의 시체를 식량으로 삼는 방법'''을 택했다. 소니 빈 부부는 동물을 잡아 도축하듯 사람을 잡으면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내고 먹었다. 팔다리는 소금에 절여서 동굴 벽에 걸어두기도 했다. 먹고 남은 뼈는 동굴 구석에 던져놓았다.
소니 빈 부부는 동굴 속에서 14명의 자식들(8남6녀)를 낳았는데, 그 자식들이 서로 근친상간하여 더 많은 아이를 낳았으며, 여러 번의 근친상간을 거듭한 결과 소니 빈 일가는 27명의 남자아이와 21명의 여자아이로 이루어진 대가족을 이루게 된다. 이들 역시 자신의 부모를 따라 강도살인과 식인을 서슴치 않았으며, 군대처럼 조직적으로 움직이면서 희생자 무리를 앞뒤로 포위한 후 죽여서 잡아먹고 재물을 약탈하곤 했다. 같은 가족들끼리는 결코 잡아먹지 않았다.
그 후 20년간 그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실종되자 지역사회에 큰 불안을 안겨주었고, 당국에서도 조사에 나섰지만 증거가 거의 없는 탓에 소니 빈 일가의 범행임을 알아낼 수 없었다. 그들의 은신처도 찾아보려고 했으나 동굴 같은 곳에 사람이 살 수는 없다고 여겼기 때문에 발각되지 않았다. 간혹 동굴에 접근한 사람들도 있었으나, 그들은 모두 자신들이 알아낸 사실을 바깥 세상에 전하지도 못하고 잡아먹혔기에 결국 소니 빈을 찾으려는 시도는 번번이 실패로 돌아가게 된다.
당국은 계속 이어지는 실종사건을 수사해 의심가는 사람들을 조사했지만 그저 피해자와 마지막으로 만났다고 알려진 것 뿐인 엉뚱한 사람만 잡을 뿐이었다. 피해자가 정말로 마지막으로 만난 자는 소니 빈 일당이지만,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2.2. 체포
이렇게 계속 생활하나 싶었으나 어느 부부를 습격한 날에 큰 실수를 하게 되어 정체가 드러나고 만다. 시장에서 먹을 것을 사고 돌아가던 한 부부를 습격해 부인은 죽이고 남편까지 죽이려던 차에 무장 용병들을 호위로 동행한 상단이 나타난 것. 스무 명이 넘는 용병들과 맞닥트린 소니 빈 일당은 맞서 싸웠으나 결국엔 패배했고, 동굴로 운반하기 위해 옷을 벗기고 배를 갈라 내장을 들어내어 "손질"을 마친 부인의 시체를 남겨둔 채 달아나고 만다.
살아남은 남편은 글래스고로 가서 소니 빈 일당의 존재를 증언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관리들은 끔찍하게 훼손된 아내의 시체를 보고 경악해 영주에게 보고했으며, 영주 역시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채 곧바로 창과 검, 방패로 무장한 4백여 명이 넘는 군인들과 훈련된 군견 여러 마리를 보내어 범인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지역 주민들 또한 가세했다고 한다.
소니 빈의 거처는 워낙 은밀했기 때문에 처음 한동안은 수색에 허탕만 쳤다. 하지만 어느 날 군인들이 소니 빈 일가가 숨어 지내던 동굴 근처를 지나던 중, 군견들이 시체 냄새를 맡아 결국 찾아내고 만다.
이때 군인들은 그곳에서 25년 간 산더미처럼 쌓인 사람의 시체와 백골, 약탈물, 그리고 벽에 걸린 인육들을 보았고, 그 자리에서 경악하며 소니 빈 일당 48명을 모조리 붙잡았다.
2.3. 최후
체포된 소니 빈과 그의 일당들은 에든버러로 끌려왔다. 소니 빈 일당의 행각이 너무나 잔혹하고 악랄했기 때문에, 관리들은 별도의 법제를 적용하여 모두 사형에 처했다.
전설과 가장 비슷하다고 평가되는, 1696년에 출판된 너새니얼 크라우치(Nathaniel Crouch)의 책에 따르면 그들은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 2세[1] 가 죽기 1년 전인 1459년에 붙잡혀 남자들은 능지처참[2] 을 당했고, 여자들은 남자들이 죽는 것을 지켜본 이후 화형에 처해졌다고 한다. 유일한 1살 난 여자아이를 제외한 어린아이들도 모두 동일한 형벌에 처해졌다. 그리고 이 1살 난 여자아이조차도 나중에 나이가 들자 죄를 자백하게 하고 처형했다고 한다.
소니 빈 일가는 1살 난 여자아이만 제외하고 모두 자신들의 악행을 후회하지 않았다고 한다. 정황상 살인 행각을 시작한 후 자식들을 낳았다면, 부모인 소니 빈 부부가 자기 자식들에게 자신들이 한 살인이 나쁜 짓이라는 등 제대로 된 교육을 했을 리가 없으니, 부부를 제외한 자식들은 어찌 보면 막장 부모의 피해자일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이들이 너무나 큰 피해를 입혔고, 그 시대에 아동 학대 같은 개념이 있을 리 없으니 전원 사형은 어쩔 수 없는 결과였다. 어린 아이들은 살려줄 수도 있었겠지만, 이미 일반인과 전혀 다른 과정을 거쳐 자라난 이상 이들은 사회에 적응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설령 현대였어도 이런 사건이 터지면 최소한 평생 격리 내지는 감시 조치를 받거나 그러지 않아도 평생 다른 이들에게 두려움과 혐오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3. 전설과 창작물
전설에 따르면 빈의 거처와 가까운 지역에 기번이란 마을이 있었는데, 소니 빈의 장녀가 가족을 떠나 그 마을에 정착해 Hairy tree란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나중에 식인 가족이 체포되자 장녀의 정체도 발각되었는데, 화난 군중들이 장녀를 붙잡아 Hairy tree의 가지에 교수했다고 한다. 이후 그 나무 아래 서있으면 시체가 흔들리는 소리가 난다고 한다. 다만 이 부분은 전설이므로 Hairy tree의 존재여부와 위치는 불명이다. 그런데 현지 사람들이 (관광객 유치를 위해) 이 나무를 찾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진격의 거인에서 트로스트 구 탈환 작전에서 포획한 거인 2마리에게 한지 조에가 각각 소니와 빈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마법소녀 육성계획 시리즈에 등장한 소니아 빈은 소니 빈이 모티브로, 일반적인 마법소녀가 아니라 소니 빈처럼 범죄를 저지른 범죄 마법소녀다.
21세기 영웅전에선 소니 빈 일당이 저승이 혼란스러워진 틈에 지옥에서 도망친 이승에서 설치다가 송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