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벌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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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신라 건국기의 인물. 소씨와 최씨의 조상이다.[5]
삼국유사에서는 소벌도리, 삼국사기에서는 소벌공(蘇伐公)으로 나온다.
2. 상세
신라가 공식적으로 건국되기 전 경주시 지역의 6촌 중 돌산 고허촌(高墟村)의 촌장이었다. 훗날 신라 6부 중 사량부의 시조가 됐다. 이름의 '소벌'은 신라의 옛 이름인 서라벌과 같이 '''쇠벌'''을 뜻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유사에서는 6촌 촌장이 될 사람들이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하는데, 삼국사기에서는 6촌의 구성원이 고조선의 유민이라고 쓰고 있다. 학계에서는 앞서 멸망한 고조선 유민 세력들이 한반도 남부로 남하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준왕을 따르는 세력이 한반도 서남쪽으로 내려갔듯 동남쪽에도 유민 유입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사로6촌의 촌장들중 가장 나이가 많았던것으로 전해져온다.
박혁거세 탄생 설화에서는 소벌도리가 나정에서 혁거세의 알을 처음 발견하고, 10살까지 집에서 키우며 나중에 왕으로 추대할 때도 주도적 역할을 한다. 설화적 윤색을 감안하고 보더라도 혁거세 집단이 즉위하고 신라의 원형이 만들어지는 데서도 6촌 중 가장 큰 공을 세운 후원세력의 우두머리로 볼 수 있다.
그의 아들 최대벌리(崔大伐利) 혈통으로 25세손 최치원이 경주 최씨의 시조가 되고, 다른 아들 소해리(蘇解理)의 24대손 소경(알천)이 진주 소씨의 시조가 됐다고 한다. 다만 알천은 태종 무열왕의 형이라는 이야기도 있어서 다소 불확실하다.어느 날 고허촌장 소벌공(혹은 소벌도리)이 양산 기슭을 바라보니 나정 곁의 숲 사이에 말 한 마리가 무릎을 꿇고 울고 있었다. 그래서 가 보니 갑자기 말은 보이지 않고 큰 알이 한개 있어 깨뜨려보니 한 아이가 나왔다. 소벌공은 그 아이를 데리고 와서 잘 길렀는데, 10여세가 되자 유달리 숙성하였다. 6부 사람들은 그 아이의 출생이 신기했으므로 모두 우러러 받들어 왕으로 모셨다. 진한 사람들은 표주박을 박(朴)이라고 하였는데, 혁거세가 난 커다란 알의 모양이 표주박 같이 생겨서 성을 박으로 하였다.
《삼국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