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원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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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춘추시대 송나라의 제 27대 군주. 송평공의 아들. 조(曹)나라를 멸망시킨 송경공의 아버지. 송나라 내에서 강력한 세력을 떨쳤던 화씨 네들을 눌러 공실의 권위를 강화해 그 아들인 송경공이 조나라를 멸망시키는 원동력을 제공한다.
2. 생애
송 원공은 원래 사인 유를 미워했다. 그래서 그를 죽일 마음을 품었는데, 송 평공이 죽자 사인 유는 송원공이 머무는 지방에 숯불로 송 원공을 살해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송 원공 원년(기원전 531년) 2월, 송 원공은 송 평공을 안장한 뒤 사인 유를 용서하여 썼다. 4월, 초나라는 채나라를 쳤다. 송 원공은 화해(華亥)를 보내 노나라, 진(晉)나라, 제나라, 위(衛)나라, 정나라의 사자로서 궐흔에서 회맹해 채나라를 구하고자 했다.
송 원공 2년(기원전 530년) 여름, 송 원공은 화정을 보내 노나라와 수교했다.
송 원공 3년(기원전 529년) 가을, 송 원공은 노나라, 위나라, 진(晉)나라, 정나라와 평구 땅에서 회맹했다. 이때 초나라에서는 초평왕이 즉위했다.
송 원공 8년(기원전 524년) 6월, 주(邾)나라의 군대가 우(鄅)나라를 쳐서 그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 회군했다. 우나라 군주의 부인이 송나라의 대신 상술의 딸이었다.
송 원공 9년(기원전 523년) 정월, 상녕이 송 원공에게 우나라를 구원하자고 요청했다. 2월, 송원공은 병사를 보내 주(邾)나라를 쳤다. 그리하여 충(蟲) 땅을 포위했다. 3월 충 땅을 점령해 주나라에 잡힌 우나라 포로들을 모두 석방했다. 5월, 주, 예(郳)나라, 서나라 3개국 사신이 송 원공에게 입조했다. 5월 12일, 송 원공은 충땅에서 회맹을 개최했다.
송 원공은 사람됨이 의심이 많고 사심이 가득했다. 그는 송나라의 화씨와 상씨 일족을 미워했다.[1]
송 원공 10년(기원전 522년), 화정, 화해, 상녕이 반란을 도모했다. 그러면서 말했다.
"도망가서 죽느니 차라리 선수를 치는게 좋지 않겠나?"
화해는 병들었다고 거짓말을 하고 송나라 공자들을 유인했다. 공자 들이 병문안에 참여했다. 6월 9일, 화해는 공자 인, 어융, 주, 고, 공손 원, 공손 정을 유폐시켰다. 상승, 상행은 곡창리에 가두었다. 송 원공이 그리로 가서 그들을 풀어달라고 했으나 화해가 씹었다. 그리고 거꾸로 송 원공을 압박하려 했다. 6월 16일 화해는 태자 관과 그 친동생 공자 신, 공자 지를 인질로 잡았다. 송 원공은 화해의 아들 화무척, 상녕의 아들 상과 화정의 아들 화계를 인질로 잡아 맹세했다. 그러다가 힘을 기른 송 원공이 화씨 일가를 제거할 준비를 해 10월 화씨와 상씨 일가의 인질을 쳐서 죽였다. 10월 13일 화씨와 상씨 일족의 생존자들은 진(陳)나라 화동은 오(吳)나라로 달아났다.
송 원공 11년(기원전 521년), 화비수에게 아들이 3명이 있었는데, 화추, 화다료, 화동이었다. 그런데 화추와 화다료의 사이가 매우 나빠 화다료가 화추를 참소했다. 그래서 송 원공이 그 아버지 화비수에게 알리니 화추를 추방하려 했다. 화추가 달아나려 할 때 화추의 부하 장개가 화다료를 죽였다. 그리고 사람을 시켜 상수화 화해를 불러 송 원공을 몰아내려 했다. 이 일로 초나라의 태자 건은 정나라로 망명했다. 초나라가 화씨를 도우러 나섰다.
송 원공 12년(기원전 520년), 결국 송 원공은 화씨 일가를 쳐부수고 화씨 일가를 용서했지만 화씨 일가는 더 송나라에 살 수가 없어서 초나라에 가서 결국 내란은 가라 앉게 되었다.
송 원공 15년(기원전 517년), 송 원공은 노소공이 계씨를 피한 것을 알고 노나라로 돌려 보내려다가 죽었다. 그 뒤를 태자 란이 이으니 그가 바로 조나라를 멸망시킨 송 경공이다.
[1] 다만 이것은 걸러서 봐야하는게, 화씨와 상씨네들을 내쫓고 군주권을 강화시켜 이들을 권한을 제약하려 했기 때문에 악평을 들은 점은 감안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