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테피 그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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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슈테파니 마리아 "슈테피" 그라프(Stefanie Maria "Steffi" Graf)'''
'''생년월일'''
1969년 6월 14일
'''국적'''
'''독일'''
'''신장'''
'''175cm'''
'''체중'''
'''64kg'''
'''프로데뷔'''
'''1982년'''
'''은퇴'''
'''1999년'''
'''사용 손'''
'''오른손잡이, 한손 백핸드'''
1. 소개
2. 생애
3. 선수 시절 기록들
4. 기타


1. 소개


독일의 前 테니스 선수이다.
2017년 기준 역대 남녀 테니스 선수들을 통틀어 유일한 캘린더 골든 슬래머이자,[1]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 - 크리스 에버트를 넘어, 테니스 역사상 최고의 여자 선수라는 평가를 받는 전설이다. 세레나 윌리엄스가 마지막으로 넘어야할 벽이다. 그렇지만 프로테니스에서 올림픽금메달의 가치는 그리 크지 않은게 사실이다. 즉 위대한 플레이어를 판단하는 기준으로는 단연 4대 그랜드슬램대회 우승 여부이지 올림픽금메달이 있냐 없냐로 판단하는 경우는 전혀 없다고 봐도 된다.
같은 시기에 남자 선수로서 테니스계의 최강자로 활약했던 앤드리 애거시와 결혼해 금슬 좋은 부부사이를 유지중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2. 생애


그라프는 어린 시절 자동차 보험 판매원이며 테니스 코치였던 그녀의 아버지인 페터 그라프로부터 처음 테니스를 배우기 시작했다. 조기교육으로 인해 겨우 세 살 때부터 나무 라켓으로 스윙하는 법을 거실에서 배우고 네 살 때부터 코트에 나가 연습을 하기 시작한 그라프는 다섯 살 때에 첫 대회에 참가할 정도로 실력이 부쩍 늘었다.[2] 오래지 않아 주니어 대회에서 우승을 거두던 그녀는 82년에 유럽 챔피언십 12세부와 18세부에서 우승한 뒤, 만 13세가 된 1982년 10월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생애 첫 프로 대회에 출전했지만 US오픈 2회 우승자이자 전 세계 랭킹 1위인 트레이시 오스틴에게 0-2로 패했다.
그라프의 세계 랭킹은 1983년 124위에서 98위, 1984년 22위, 1985년에는 6위까지 상승했고 1984년 8월에는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테니스 시범 종목에 서독 국가대표로 출전해 금메달을 따기도 했다. 아버지인 페터 그라프는 그녀에게 오는 대회 외의 행사나 모임 요청을 거절하고 오로지 그녀가 테니스 훈련에만 매진하도록 하는 혹독한 스케줄 관리를 했다. 아버지와 코치의 사생활 통제 덕에 그녀는 선수 생활 초기에 투어에서 거의 친구를 사귀지 못했으며, 당연히 어린 그라프에게 개인생활은 없었다. 투어에 처음 나선 그녀의 대회 출전 회수를 연 10회 정도로 제한해 그녀의 체력이 과도하게 소진되지 않도록 한 것 정도가 그라프의 장래에 그나마 긍정적인 일일 정도.
3년간 WTA 대회 우승은 없었지만 꾸준히 성장하며 랭킹 10위 안에 들게 된 그라프는 1985년 당시 여자 테니스계를 양분하고 있던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크리스 에버트에게 도전하게 되지만, 나브라틸로바에게 3번. 에버트에게 6번이나 한 세트도 따내지 못하고 패배하는 등 처음에는 고전했다. 그러나 이후 1986년 4월 패밀리 서클 컵 결승에서 처음으로 크리스 에버트를 꺾고 생애 첫 WTA 대회 우승컵을 안았으며 또한 독일 오픈 결승에서는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를 6–2, 6–3으로 꺾으며 우승했다. 이 이후를 기점으로 크리스 에버트에게는 3년간 7연승을 거두는 등 우위를 챙기고, 나브라틸로바와의 경기에서도 이겨 가며 테니스 여제 자리에 자신의 이름을 공고히 한다.
슈테피 그라프의 최전성기는 1988-1989년이다. 1988년 72승3패 승률 96% 12회결승진출 11회우승 그랜드슬램 싹쓸이 및 올림픽 금메달, 1989년 86승2패 승률 98% 16회결승진출 14회우승 그랜드슬램 3개우승. 특히 슈테피 그라프는 1988년에 테니스의 4대 그랜드 슬램 대회(호주 오픈, 프랑스 오픈, 윔블던, US 오픈)를 모두 우승하였을 뿐만 아니라 서울 올림픽에서 첫 정식 종목이 된 올림픽 테니스 여자 단식 금메달까지 획득하여 테니스 역사상 전무후무한 '''캘린더 골든 슬램'''을 달성했다. 1989년에도 그녀의 전성기는 계속되어 프랑스 오픈을 제외한 호주 오픈, 윔블던, US오픈을 모두 우승하기에 이른다.
프로로 활동하는 기간 동안 총 377주 동안 세계 랭킹 1위를 기록하여 남녀 선수를 통틀어 가장 오랫동안 세계 1위를 지킨 그라프는, 은퇴하던 해인 1999년에도 6번째 프랑스 오픈 우승을 거머쥐며 은퇴하는 순간까지 세계 랭킹 3위를 기록하는 등 전성기 이후 항상 정상권을 놓지 않았으며, 은퇴 이후엔 2001년에 앤드리 애거시와 결혼하여 두 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3. 선수 시절 기록들


4대 그랜드 슬램 대회 우승 : '''총 22회 & 올림픽 금메달'''[3]
호주 오픈 우승
4회('''1988''', 1989, 1990, 1994)
프랑스 오픈 우승
6회(1987, '''1988''', 1993, 1995, 1996, 1999)
윔블던 우승
7회('''1988''', 1989, 1991, 1992, 1993, 1995, 1996)
US 오픈 우승
5회('''1988''', 1989, 1993, 1995, 1996)
보다시피 테니스 역사상 여자 선수로서 정상급을 자랑하는 성적을 올렸다. 특히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중반은 가히 그녀의 독무대나 다름 없었다.
1988년은 한해동안 4대 메이저대회 & 올림픽 금메달까지 싹쓸이 하며 '캘린더 그랜드슬램'을 넘어 '캘린더 골든 슬램'을 달성했다. 코트에 상관 없이 모든 대회에서 골고루 강했기 때문에 무려 '''쿼드러플''' 그랜드 슬래머이다. 1988년은 4개 모두 독식, 1989, 1995, 1996 3번이나 그랜드슬램 대회 3회 우승을 차지했다. 첫 우승을 차지한 1987년부터 1996년까지 10년 동안 열린 그랜드슬램 대회의 절반 이상은 그라프의 차지였던 것.
그 외 기록
WTA 챔피언십 우승
5회(1987, 1989, 1993, 1995, 1996)
올림픽 우승
1회('''1988''')[4]
세계 랭킹 1위
377주[5]
통산 상금
US$ 21,895,277[6]
통산 단식 전적
900승 115패(승률 88.7%)
통산 단식 타이틀
107회[7]
복식 통산 전적
173승 72패
통산 복식 타이틀
11회

4. 기타


그라프가 출전한 생애 첫 프로 대회에서 0-2의 패배를 안겨준 트레이시 오스틴은 당시 13세인 그라프에 대해 '미국에는 그녀와 같은 여자 선수가 수백 명은 있다'라는 식으로 평가절하했다. 세월이 흘러 12년후 인디언 웰즈 마스터스에서 두 사람이 다시 만났을 때 그라프는 오스틴을 2-0(6–0, 6–0)으로 꺾었다.
애거시의 자서전에 따르면 애거시와 그라프는 연애를 시작하면서 정말 쉽게 가까워졌는데 그 이유는 두 사람 모두 극성 아버지의 아동학대식 조기교육에 의해 테니스를 시작했고[8] 그로 인한 내면의 상처가 있는 공통점 때문이었다. 두 사람의 아버지들은 만난 직후부터 열을 내며 서로 자기자식이 더 테니스 선수로서 뛰어나다고 불같은 논쟁을 벌이다 주먹다짐까지 벌였는데 주먹다짐을 벌인 후엔 웃기게도 서로 주먹다짐을 벌인 상대를 인정하는 바람에 애거시와 그라프의 결혼 이야기는 그냥 무사통과되었다는 후문이다.
[1] 참고로 통산 골든 슬래머로는 앤드리 애거시, 라파엘 나달, 세레나 윌리엄스가 있다. 역대 테니스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불리는 로저 페더러도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은메달 획득에 그쳐서 이걸 달성 못하고 있을 만큼 엄청난 대기록.[2] 말이 조기교육이지 사실 이런 가르침은 거의 아동학대 수준이다. 그런데 이런 경험 때문에 나중에 비슷한 경험을 한 배우자인 앤드리 애거시와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었으니 알다가도 모를 일.[3] 남녀 선수를 통틀어 마거릿 코트(24회)와 세레나 윌리엄스(23회)에 이은 세 번째로 많은 그랜드 슬램 우승 수.[4] 테니스가 처음으로 올림픽 정식정목이 된 서울 올림픽에서 여자 단식 금메달을 획득했다.[5] 남녀 통틀어 역대 1위 기록[6] 역대 4위 기록[7] 역대 3위 기록이다. 1위는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167회), 2위는 크리스 에버트(154회)[8] 두 사람의 아버지 때문인지 애거시와 그라프의 자택엔 테니스장이 아예 없다고 한다. 애거시와 그라프는 자식들에겐 절대 테니스를 시킬 생각이 없다고 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