윔블던
1. 영국 런던의 지명
남서부 런던에 있는 지명으로 아래의 대회로 유명하다. 원래는 런던 근교의 위성도시였으나 1965년 런던 대확장으로 그레이터 런던에 편입되었다.
1.1. 해당 지역을 관할하는 선거구
Wimbledon
1885년부터 존재해온 유서깊은 지역구로 다른 런던의 교외 지역과 마찬가지로 보수당의 세가 강하다. 그러나 지난 총선 때에는 자유민주당이 꽤 선전해 628표차로 보수당 현역 의원 스테펀 해먼드가 겨우 이겼다.
2. 테니스 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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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명칭은 윔블던 챔피언십(The Championships, Wimbledon). 영국 런던 윔블던에서 열리는 세계 4대 그랜드 슬램 테니스 대회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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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열리는 장소는 영국 런던 머튼 구의 윔블던에 위치한 '''올 잉글랜드 테니스 클럽'''(The All England Tennis Club).[1]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테니스 대회이며, 흔히 테니스 대회 중 최고의 권위를 가진 대회로 꼽힌다. 그랜드 슬램 대회 중 유일하게 잔디 코트를 사용.[2]
첫 대회는 1877년에 열렸으며, 매년 6월 4주차 ~ 7월 1주차 경에 열린다. 대회 1주차 일요일에 잔디 보호를 위해 경기를 쉬는 것이 특징이다. 5개의 메인 경기 부문과 4개의 주니어 경기 부문, 4개의 초청 경기 부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2.1. 역사
윔블던이 열리는 '올 잉글랜드 클럽'의 역사는 1868년에 설립된 사설 테니스&크로켓 클럽인 '''The All England Lawn Tennis and Croquet Club'''에서 시작되었다.[3] 이후 1870년대 즈음, 월터 클롭턴 윙필드(Walter Clopton Wingfield) 장군에 의해 현대 테니스와 거의 유사한 규칙과 장비 등을 적용하여 테니스 대회를 개최한 것이 지금의 윔블던 대회로 이어지고 있다.
1877년의 첫 대회에서는 남자 단식 경기만이 개최되었다. 이 대회에서는 영국 상류층이 다니는 명문 사립기숙학교인 Harrow School 출신의 스펜서 고어(Spencer Gore)가 우승했으며, 결승전에서는 약 200명의 유료 관람객들이 경기를 관전했다.
전체 경기장에서 메인 코트는 다른 코트들의 중앙에 위치하게 배치되었는데, 이 때문에 메인 코트에는 ‘센터 코트’(Centre Court)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이후 1922년 경기장이 현재의 처치로드(Church Road)로 옮겨오면서 메인 코트의 위치는 중앙이 아닌 다른 위치로 배치되었지만 기존의 명칭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그러나 1980년에 4개의 코트가 경기장 북측에 새로 만들어지면서, 센터 코트의 위치는 다시금 실제로 전체 경기장의 중앙에 위치하게 되었다.
1882년에 이르러서는 클럽의 활동이 거의 론 테니스로 한정되었으며, 이에 따라 클럽 명칭에서 ‘크로케’가 빠지게 되었다. 그러나 정서적인 이유에서 이 단어는 1889년 다시 복원되어, 이 때부터 클럽의 명칭은 올 잉글랜드 테니스 앤드 크로케 클럽이 되었다.
1884년에는 대회에 여자 단식과 남자 복식이 추가되었으며, 1913년에는 여자 복식과 혼합 복식이 추가되었다. 1922년 이전까지 대회의 우승자는 자동으로 이듬해 대회 결승에 진출하고 새로운 결승 진출자가 이에 도전하는 방식으로 대회가 진행되었다. 다른 그랜드 슬램 대회들과 마찬가지로, 옛 윔블던에는 톱 랭킹 아마추어 선수들이 대거 참가하였으며, 이는 1968년 오픈 시대가 시작될 때까지 지속되었다.
남자 단식에서는 1936년 프레드 페리 이후, 그리고 여자 단식에서는 1977년 버지니아 웨이드 이후로 오랫동안 영국 출신 우승자가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 영국에서 개최하는 세계적 명성의 대회에서 자국 선수가 장기간 우승하지 못하는 것이 마치 금융시장의 과도한 자유개방으로 인하여 자국 금융시장이 외국 자본에 잠식되는 상황과 비슷하여 윔블던 효과라는 경제 용어가 생겼다. 그러다가 36년만인 2013년에 앤디 머리가 남자 단식 우승을 차지하였고 여자 주니어 단식 에서는 1984년 애너벨 크로프트와 2008년 로라 롭슨이 영국인 출신으로 우승하였다.
1937년에는 대회 개최 이래 최초로 경기가 TV로 중계되었다.
130년이 넘는 유구한 개최역사에서 대회가 열리지 못한 경우가 딱 9회 있는데 이 중 8회는 세계대전의 영향 때문. 1915~1918년까지는 제1차 세계대전 때문에, 1940~1945년까지는 제2차 세계대전 때문에 대회 개최가 중단되었다. 또한 2020년 4월 1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해 2020년 대회가 취소되었다. 1945년 2차 세계대전 이후 75년만이다. 영국 내 확진자 추세가 매우 심각한데다 잔디 코트 특성상 관리가 매우 힘들고, 여름철이 지나면 경기용으로 쓰는 것이 부적합해 사실상 연기라는 선택지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
2.2. 90년대 이후
윔블던은 가장 오랜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최고 권위의 테니스 대회로서의 위상을 21세기에도 이어 나간다는 목표 아래 관람자와 참가선수, 대회진행요원들 및 지역 주민들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도록 대회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장기 계획을 1993년에 발표하였다.
이 계획의 1단계는 1997년 아오란지 파크(Aorangi Park)에 새로운 1번 코트와 방송 센터, 두 면의 추가 잔디 코트 및 언덕 지역 아래에 처치로드와 서머싯로드(Somerset Road)를 잇는 터널을 완공하면서 완성되었다.
2단계 계획은 옛 1번 코트 경기장을 철거하여 여기에 선수 및 기자, 진행요원, 회원들을 위한 편의시설을 갖춘 새로운 밀레니엄 빌딩을 건축하는 것과, 센터 코트의 서쪽 스탠드에 728석의 좌석을 추가 설치하는 것으로 완성되었다.
3단계 계획은 입구 빌딩과 직원 숙소, 박물관, 은행 그리고 티켓 오피스를 설치하는 것으로 완료되었다.
2009년에는 센터 코트에 개폐식 지붕을 설치하여 우천에 관계없이 지속적인 경기 진행이 가능한 환경을 갖추었다. 올 잉글랜드 클럽은 2009년 5월 17일에 개폐식 지붕 설치를 기념하는 축하행사인 A Centre Court Celebration을 개최하였으며, 이 행사에서는 안드레 애거시+슈테피 그라프 vs 킴 클레이스터르스+팀 헨만의 혼성 복식 초청 경기가 함께 열렸다. [4] 정식 대회에서 새로운 지붕을 최초로 사용한 것은 이 해 윔블던 여자 단식 4회전 디나라 사피나와 아멜리 모레스모의 경기 도중에 시작된 비로 인해 지붕을 닫고 경기를 속행한 것이었다. 전체 경기가 지붕을 닫고 진행된 최초의 경기는 2009년 6월 29일 열린 윔블던 남자 단식 앤디 머리와 스타니슬라스 바브린카의 경기였다. 한편 윔블던에서 하루 중 가장 늦게 종료된 경기는 2010년 대회 남자 단식 1회전 노박 조코비치와 올리비에 로쿠스의 경기로, 이 경기는 오후 10시 58분에 조코비치의 승리로 끝났다.
2009년에는 2번 코트를 위한 4000석의 새로운 좌석이 옛 13번 코트 자리에 설치되었다. 2010년 9월 현재 3번 코트를 위한 2000석의 새로운 좌석의 설치가 옛 2번 코트와 3번 코트 자리에서 진행 중이다.
2.3. 오픈 시대 이후 단식 주요 기록
2019년 대회 종료 기준
2.3.1. 남자
- 최다 우승 - 로저 페더러: 우승 8회(5연패 (2003년 ~ 2007년))[5]
- 최다 결승 진출 - 로저 페더러: 결승 진출 12회[6]
- 최다 4강 진출 - 로저 페더러: 4강 진출 13회
- 최다 본선 승리 - 로저 페더러: 본선 101승[7]
2.3.2. 여자
- 최다 우승 -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 우승 9회(1982년 ~ 1987년 동안 6연패)[8]
- 최다 결승 진출 -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 결승 진출 12회(1982년 ~ 1990년 동안 9연속 진출)[9]
- 최다 4강 진출 -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 크리스 에버트: 4강 진출 17회
- 최다 본선 승리 -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 본선 120승[10]
2.4. 트로피 및 상금 규모
남자 단식 우승자는 높이 18.5인치(약 47cm)에 지름 7.5인치(약 19cm)의 은도금 된 우승컵을 수여 받는다. 이 우승컵은 1887년부터 사용되었으며 표면에는 “All England Lawn Tennis Club Single Handed Championship of the World”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여자 단식 우승자는 비너스 로즈워터 디시 혹은 로즈워터 디시라 불리는 순은쟁반을 수여 받는다. 이 쟁반의 지름은 18.75인치(약 48cm)이며 신화와 관련된 무늬들로 장식되어 있다. 남자 복식 및 여자 복식, 혼합 복식 우승자들은 은제 우승컵을 수여 받으며, 각 경기의 준우승자들은 모두 무늬가 새겨진 은쟁반을 수여 받는다. 모든 트로피들은 대부분 올 잉글랜드 클럽의 회장에 의해 수여된다.
대회 참가선수들에게 상금이 지급되기 시작한 것은 프로 선수들에게 문호가 개방되었던 1968년부터이다.
2007년 이전까지 윔블던을 포함한 다른 대부분의 대회들은 남자 선수들에게 여자 선수들보다 더 많은 상금을 지급해 왔다. 2007년 윔블던은 상금 정책을 변경하여 남녀 선수들간의 상금 차등을 없앴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남자 선수들이 여자 선수들보다 더 많은 세트를 소화하므로, 시간당 지급되는 보수를 균등하게 책정한다는 의미에서 남자가 상금을 더 많이 받는 것이 타당하다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테니스 선수는 플레이한 경기 시간을 기준으로 보수를 받는 직업이 아니므로, 상금 책정에 있어서 경기나 세트의 수 등을 따지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였다.
- 2009년~2019년 현재 상금규모의 변화표. 단위는 파운드(£)
윔블던의 상금 규모는 2009년에서 2019년까지 10년 사이에 총상금은 '''3.02배''' 정도, 우승상금은 '''2.76'''배 정도로 증가하였다.
2.5. 특징
2001년 고란 이바니셰비치와 패트릭 라프터의 결승전. 고란 이바니세비치는 이 경기를 승리하면서 윔블던 역사상 유일한 와일드카드 우승자가 되었다.
잔디 코트라는 특성이 작용하여 강서브 또는 서브 & 발리가 강한 선수가 이 대회에서 매우 강하다. 위의 고란 이바니셰비치가 대표적인데, 다른 기술은 대부분 ATP 평균 이하 수준이지만 190cm가 넘는 거대한 체구와 왼손잡이의 파워를 앞세운 강서브와 발리만으로 4번이나 윔블던 결승에 진출해 결국 우승까지 차지했을 정도이다. 그의 통산 기록 또한 다른 그랜드슬램 대회들 (61승 36패, 62.9%)보다 윔블던 (49승 14패, 77.7%)에서 더 좋았다.
잔디 코트가 왜 강서버에게 유리한지는 다음과 같다.
- 천연잔디는 미끄러운데다 하드코트와 달리 바닥이 단단하지 않아서 공이 잔디에 스치듯이 낮게 튄다. 거기다 윔블던은 초여름 야외 코트에서[11] 열리는지라 더위 때문에 코트에 물까지 뿌려서 미끄러운 성질이 더욱 강해지는데, 이때문에 서브가 빠르면 빠를수록 바운드도 빨라서 제대로 들어오면 리턴하기가 어려워진다.
- 천연잔디 코트는 인조잔디 코트나 클레이에 비해 손상에 매우 취약하다. 선수들이 수백~수천번 스탭을 밟거나 공에 맞은 잔디가 뭉개지는 현상이 필연적으로 생긴다. 그래서 아무리 관리 및 보수를 부지런히 잘한다고 하더라도 대회 후반쯤 되면 위의 대회 영상처럼 잔디 상태가 개판이 되는 건 물론이고 아예 맨땅이 드러난다. 이러한 코트 바닥에 공이 튕기면 누구도 예측이 불가능한 불규칙 바운드가 자주 발생하여 리턴은 물론 경기 운영이 매우 어려워진다.
때문에 주최 측도 이바니셰비치 같은 대포알 서버한테 너무 유리한 점을 인지하여 2001년 이후부턴 잔디 종류를 바꾸고 물과 모래를 뿌리는 등 바운스 속도를 줄이려는 노력을 하고 있으며, 이로 인하여 베이스라인 플레이어들의 우승이 그럭저럭 나오고 있다. 그래도 강서브 구사하는 플레이어가 유리한 건 변함이 없다. 위 영상 장면인 2000년대 전후에는 선수들이 사용하는 라켓 재질 강화까지 겹쳤던 시기라 리하르트 크라이첵, 마크 필리포시스 등 오픈 시대중 가장 서브 & 발리어가 강세였던 시기다. 그야말로 닥치고 파워로 서브 꽂으면 버틸 수가 없을 정도. 때문에 ATP에서 라켓 규정을 바꾸는 등 여러 방식으로 경기 속도를 늦추도록 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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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윔블던 대회를 참관중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게 예를 표하는 앤디 머리
다른 그랜드 슬램 대회와는 조금 다른 규정이 몇 개 있는데, 관중석에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포함한 영국 왕족이 있을 때는 경기 시작 전/종료 후에 선수들이 예를 표해야 했었으며, 2003년 이후에는 이 부분이 조금 완화되어 엘리자베스 여왕과 찰스 황태자에게만 예를 표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참고로 2010년대 들어선 여왕과 왕세자가 윔블던을 찾는 일이 줄었고, 대신 윌리엄 왕세손이 왕실 대표로 자주 얼굴을 비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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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위의 사진처럼 경기에 참여하는 모든 선수들(주니어 부분 포함)은 '''착용하는 모든 복장을 반드시 흰색으로 통일'''해야 한다는 엄격한 규칙으로 유명하다. 상하의 경기복은 기본이고 양말이나 운동화, 해어밴드, 암밴드 등 자잘한 것들도 흰색인 것을 착용하도록 규제하는 수준. 이 덕에 지적 먹는 선수들이 간혹 있는데, 2013년 대회 때 로저 페더러는 밑창이 주황색인 운동화를 신었다는 이유로 주최 측에게 지적을 당하여 테니스화를 바꾸어 신은 적이 있다. 대회 측 규정으로는 상하의 끝단 1cm 정도는 다른 색이어도 된다고는 하나, 사실상 흰색 외의 색이 겉으로 보이면 다 걸리는 셈.여성 선수의 경우 속바지(숏팬츠)는 흰색 이외의 색이 들어간 것을 입어도 되지만, 경기복에 가려서 안 보일 정도의 길이를 맟추어야 한다는 완화된 규정을 적용하다 2014년도부턴 숏팬츠를 포함 '''브래지어도 무조건 흰색인 걸 착용'''해야 한다며 규정을 대폭 강화했다(.....) 이 규정을 전해듣지 못하고 다른 색의 스포츠 브래지어를 입은 일부 여성 선수들이 출전하자 갈아입어 줄 것을 요청했는데, 여분의 흰색 스포츠 브래지어가 있는 여성 선수는 그나마 나았지만 없는 선수는 별도로 구입해오기 어려워 노브라로 경기를 뛰었다. 2017년 윔블던에서는 비너스 윌리엄스가 브래지어가 밝은 핑크색이라는 이유로 지적을 받고, 속옷을 갈아입고서야 경기를 속행했다. 안나 쿠르니코바는 2002년 대회에서 검은색 속바지를 지적받고, 남자 코치 바지를 입고 경기하기도 했다.
윔블던 측에서 이렇게 과도한 복장 규정을 정해놓은 이유는 의류를 통해 상업적 광고를 노리는 스포츠 용품 업체들의 경쟁이 대회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걸 막으려는 의도라고 한다. 이 때문인지 프로 테니스 선수들의 경기복에는 스폰서를 받는 용품 업체의 이름이 새겨진 패치나 로고가 박혀 있는데, 윔블던 주최측에서 이걸 아주 작은 크기만 허용하고 있다. 물론 상업적 광고를 아에 못하게 만들면 욕먹으니 어떻게든 최소화 하려는 규제의 일부다. 이러한 상황인 탓에 복장 규정이 너무 지나치다며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여성들에겐 민감한 부분인 브래지어 같은 속옷까지 걸고 넘어진 것은 확실히 심하다는 게 중론.
단,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는 당연히 이 복장 규정이 적용되지 않았다. 경기 자체는 윔블던에서 진행되지만 윔블던 대회가 아니라 올림픽이기 때문에 IOC 측에서 올림픽 기간 동안에는 이 규정을 적용하지 않을 것을 권고한 것. 정확한 규정은 이곳을 참고
일종의 VIP석인 로얄박스에 들어가는 관람객들의 복장에도 규정을 적용하고 있는데, 남성은 정장 / 여성들도 정장을 원칙으로 하고, 굳이 다른 복장을 입고싶으면 단정한 복장을 해야 입장이 허용된다. 보통 로얄박스서 구경하는 이들은 세계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이들인데다 언론에 노출되는 터라 복장 규정은 잘 지키는 편인데, 간혹 쫒겨나는 경우도 있다. 반바지 차림으로 왔다가 쫒겨나서 망신만 당한 F1 드라이버 루이스 해밀턴이 대표적.
테니스 경기에 반드시 필요한 스태프인 '''볼키즈'''(Ball Kids)[12] 들을 뽑는 방식도 상당히 특이하다. 본래 투어급 대회 이상에 참여하는 볼키즈 참가 자격은 국적을 불문하고 전 세계 모든 청소년들에게 동등한 기회를 주는 게 일반적인데, 윔블던은 공식 홈페이지에서 누구든지 볼키즈 참가 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해 놓았지만, 실제로는 거의 인근 중&고등학교에서 테니스를 하는 청소년들에게 볼키즈 자격을 부여한다. 물론 이것도 해당 학교 교장들의 추천서가 있어야 가능하다.
또한 윔블던 대회 중에 관중들은 딸기와 크림을 간식으로 즐기는 것이 전통이자 특이점. 주변 노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관객들과 선수들이 경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입장한 관객들이 핸드폰, 태블릿 등 전자기기를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전자기기를 반입하더라도 반드시 전원을 꺼야 한다.
2019년부터 5세트 스코어 12:12이면 타이브레이크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
2.6. 경기 이모저모
오픈 시대 최다 우승자인 로저 페더러와 2위 피트 샘프라스 역시 강서브와 발리 스킬이 완벽한 선수기 때문에 둘 다 4년 연속 우승을 포함해 각각 8회, 7회 우승을 달성했다. 여자부에서는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가 82~87년 6년 연속 포함 9회 우승으로 최다다.
2010년 6월 23~25일에 열린 윔블던에선 판타스틱한 경기가 하나 있었는데 이 경기를 지켜 본 관중들도 평생 보기 힘든 광경을 보지 않았을까 싶다. 그 경기는 1라운드 때 열린 존 이즈너(미국)과 니콜라 마위(Nicolas Mahut)(프랑스)의 시합이었는데, 다른 시합들은 2라운드로 넘어갔는데도 이 경기는 3일간 계속 이어지는 접전 끝에 존 이즈너의 승리로 끝났다. (참고1) (참고2) 3일에 걸쳐 총 11시간 5분 동안 경기를 치루었으며 스코어는 6-4 3-6 6-77 7-63 '''70-68'''.[13] 주요 기록이란 기록은 다 갈아치웠다.
- 최장 경기 시간 - 11시간 5분
- 최장 세트 시간(5세트) - 8시간 11분
- 가장 많은 게임을 한 세트(5세트) - 70-68로 총 138게임
- 가장 많은 게임을 한 경기 - 183게임
- 가장 많은 에이스를 기록한 경기 - 이즈너의 113개는 당연히 역대 1위며, 마위의 에이스도 103개로 역대 2위. 총합은 216개로 말할 것도 없이 1위다.
- 각자 연속으로 서비스게임을 지킨 경기 - 서로 84번씩 본인 서브게임을 지키면서 총 168게임 연속으로 지켰다.
- 한 경기에서 가장 많은 게임을 승리 - 183게임 중 승리한 이즈너가 총 92게임을, 패배한 마위가 91게임을 승리했다.
- 단일 경기에서 최다 득점 - 980포인트, 의외로 패배한 마위가 총 502포인트를 따냈으며 이즈너는 478포인트.
하필 8년 후 월드컵의 저주일까. 2018년 7월 13일 남자단식 준결승전에서 존 이즈너는 케빈 앤더슨과 6시간 36분 간의 치열한 경기를 펼쳤고, 경기는 앤더슨이 3:2로 승리했다. 이 경기 또한 (766 675 679 64 '''26-24''') 이란 무시무시한 스코어를 남겼다. 그나마 이 경기는 하루만에 끝나긴 했지만, 이어서 진행된 라파엘 나달과 노박 조코비치의 다른 준결승전 경기가 1박2일 경기로 치러졌으며, 이 경기 역시 5세트 '''10-8'''로 끝나는 대접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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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대회 때 주니어 부분에서 '한국 테니스의 기대주'로 불리는 삼일공고 소속의 정현(당시 만 17세) 선수가 대한민국 테니스 역사상 처음으로 남자단식 결승에 진출하여 준우승을 기록했으며 주니어 세계 랭킹 1위 등의 엄청난 강자들을 꺾는 등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평가.
참고로 한국 선수가 윔블던 주니어 부문 결승 진출은 이전에 1번 있었다. 바로 1994년 윔블던 주니어 여자단식에서 준우승을 기록한 전미라 선수인데, 당시 결승전의 상대는 마르티나 힝기스였다. 이후 1995년 US오픈에서는 힝기스와 복식조로 나서기도 했다. 전미라 선수는 가수 윤종신의 배우자로도 유명하며, 현재 테니스 해설위원으로도 활약하면서 후배 테니스 선수들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고 한다.
윔블던 남자 단식 본선에서 한국 남자 테니스 선수로는 이형택 선수가 2007년에 최고 성적인 32강전(3회전)까지 진출했다.
아시아로 범위를 넓히면 일본의 마츠오카 슈조와 니시코리 케이가 8강까지 간 적이 있으며 아시안계까지 포함하면 마이클 창 역시 8강까지 진출했다.
2.7. 윔블던 단식과 대한민국
- 굵은 표시는 현역 선수.
- 2019년 종료 기준
2.7.1. 남자
2.7.2. 여자
2.8. 역대 윔블던 남자 단식 결승전 결과
윔블던에서 프로 테니스 선수 출전을 허용한 것은 1968년이지만, 4대 그랜드슬램 대회 모두가 프로 테니스 선수 출전을 허용한 오픈 형식이 된 건 1969년이니 이때를 기준으로 표시한다.
2.9. 참고 링크
2.10. 관련 문서
3. 1을 연고로 했던 옛 잉글랜드 축구 클럽
4. 1을 연고로 하는 잉글랜드 축구 클럽
[1] 이곳의 우편주소가 '''런던 SW 19'''인데, 여기서 영향을 받아 윔블던 대회를 일명 '''SW 19'''로 부르기도 한다.[2] 1974년까지는 호주 오픈, US 오픈도 잔디 코트를 사용하고 있었으나 US 오픈이 먼저 1978년에 하드코트로 변경하였고, 이후 1988년에 호주 오픈마저 하드 코트로 변경했다.[3] 이 클럽에서 사용한 최초의 경기장은 윔블던 워플로드(Worple Road)에 위치.[4] 애거시+그라프 부부는 말할 필요 없는 테니스 레전드 이고, 킴 클레이스터르스도 그랜드 슬램 대회 4회 우승에 랭킹 1위에 오른 위대한 선수이다. 팀 헨만은 그랜드 슬램 대회 우승은 없지만, 영국인으로써 세계 랭킹 1위에 오른 유명 선수이다.[5] 2위는 피트 샘프러스의 7회.[6] 2위는 보리스 베커와 피트 샘프러스의 7회.[7] 2위는 지미 코너스의 84승.[8] 2위는 세레나 윌리엄스와 슈테피 그라프의 7회.[9] 2위는 세레나 윌리엄스의 11회.[10] 2위는 세레나 윌리엄스의 98승.[11] 단, 2009년부터 주경기장은 개폐식 돔구장.[12] 본래는 볼보이 & 볼걸로 불렀다가 2014년도부터 남녀로 구분하는 게 좋지 않다는 여론을 수용하여 볼키즈 또는 볼퍼슨(Ball Person)으로 부르길 권장하고 있다.[13] 당시 윔블던에서는 마지막 세트에 타이 브레이크가 없었기 때문에 이런 세트가 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