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기사와 마을
杉沢村
1. 개요
일본의 도시전설. 아오모리현에 있었다고 전해지는 마을에 얽힌 이야기이다.
2. 상세
스기사와 마을에 얽힌 이야기는 몇 가지 설이 있는데, 모두 '스기사와 마을에서 처참한 살인 사건이 일어났고, 그 이후로 마을은 폐촌이 되어 지도에서 사라졌다'는 큰 틀을 유지하는 것이 특징적이다.
옛날, 아오모리현의 산 속에 스기사와라는 이름의 마을이 있었다. 쇼와 시대 초기 스기사와 마을에 살던 한 주민이 돌연 미쳐서 도끼로 마을 사람들을 모조리 난도질해 죽이고 자신도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대량 학살 사건으로 인해 아무도 살지 않게 된 마을은 이웃 마을에 편입되어 폐촌이 되었고 지도에서도 사라졌으며, 각종 행정 기록에서도 그 존재가 지워졌다. 그러나 스기사와 마을이 있던 자리는 지금도 존재하며[1]
, 폐허가 되어 버린 집터에는 악령들[2] 이 깃들어 있다고 한다.
이 외에도 여러 설이 있으나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첫 번째의 대량학살설이다. 또한 스기사와 마을로 통하는 길을 나타내는 일종의 이정표에 관해서도 여러 설이 돌았는데,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이렇다.스기사와 마을에 살던 한 여인이 거액의 빚을 진 아들을 도끼로 내리쳐 죽이는 사건이 발생했다. 끔찍한 살인사건이 발생한 마을에서 계속 거주하려는 주민은 아무도 없었고, 결국 사람들이 하나둘씩 떠나기 시작하여 끝내 마을은 폐촌이 되고 지도에서 사라졌다.
- 마을로 가는 도로에 "여기서부터 들어오는 자 목숨은 보증하지 못한다(ここから先へ立ち入る者 命の保証はない)"라고 쓰여진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 마을 입구에 오래되어 썩어가는 토리이[3] 가 있으며, 그 아래에 두개골의 형상을 한 돌(혹은 바위)이 있다.[4]
- 안쪽으로 계속 들어가다 보면 폐허가 된 집터가 있는데, 그 안에는 혈흔 같은 것이 여럿 보인다.
3. 진상?
아오모리현에 실제로 스기사와라는 지명이 몇 곳 존재하기는 하나, 대부분이 도시전설의 스기사와 마을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그 중 위치상 가장 근접한 한 곳의 정확한 명칭은 ‘스기자와’가 아니라 '코스기’였다. 현재 아오모리시 외곽에 자리한 코스기는 아오모리 ‘오바타자와’ 지역의 하부 행정구역으로 과거에는 이곳을 통상 ‘스기자와’라고 칭했으며 원래 폐가가 밀집된 지역이었고, 해당 마을터로 여겨지는 곳은 개인 사유지라고 한다.
또한 이곳이 폐가 밀집지역이 된 원인은 고령화로 인한 인구과소현상으로 알려졌다.
4. 기타
- 모리무라 세이이치의 소설 '야성의 증명'에서 등장하는 이와테현의 가상의 마을 후도(風道)와 그 곳에서 일어난 대량 학살 사건은 스기사와 마을 전설을 모티브로 구상했다는 설이 있다.
- 스기사와 마을 전설에 등장하는 대량학살 사건에 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나, 실제로 그런 사건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굳이 전설의 내용에 가까운 사건을 추려 보면 츠야마 살인사건과[8] 니이나촌 사과농장 일가족 살해 사건[9] 정도가 거론되는데, 이를 근거로 스기사와 마을의 대량학살 이야기는 츠야마 살인사건과 니이나촌 일가족 살해 사건에서 각각의 요소를 따 온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 만화 누라리횬의 손자의 한 에피소드에서도 등장한다.
-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도 이 마을에 관해서 다루었다. 보러가기
[1] 혹은 옛터가 아닌 마을 자체가 쇠락한 상태로 온전히 존재한다는 설도 있다.[2] 대량학살 당시 죽었다고 알려진 사람들의 원혼을 말하는 것으로 추정된다.[3] 토리이는 보통 신사나 절 입구에 세우는 것이 일반적이며 마을 어귀에는 세우지 않는다.[4] '썩어가는 토리이'와 '두개골 모양의 돌(바위)'은 스기사와 마을 관련 키워드 중 가장 유명한 것들이다.[5] 오컬트 매니아 혹은 지역 주민들로 추측된다.[6] 참고로 일본 도시전설 중에서 가장 유명한 축에 속하는 사메지마 사건이 스기사와 마을 전설과 같은 시기에 인터넷을 통해 널리 확산되었다.[7] 2000년 8월 24일자 '2시간 공포 스페셜'.[8] 다만 이 사건은 오카야마현에서 발생한 사건이다.[9] 1953년 12월 아오모리현 니이나촌(현재는 히로사키시에 편입) 소재 사과농장의 3남이 술에 만취한 상태에서 엽총을 난사하고 불을 질러 일가족 8명 전원이 사망한 사건. 범인인 3남은 사건 직후 친척과 함께 주재소에 출두하여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