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테현

 



''' 의 현(県)
(いわ((けん'''
이와테현 | Iwate Prefec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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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image]
'''현기(県旗)[1]'''
'''문장(紋章)'''

'''현청 소재지'''
모리오카시 우치마루 10-1
'''국가'''
일본
'''지방'''
도호쿠
'''최대도시'''
모리오카시
'''면적'''
15,275.01km²
'''하위 행정구역'''
14시 15정 4촌[2]
'''인구'''
1,213,589명[3]
'''인구밀도'''
79.4명/km²
'''총 GDP(명목)'''
약 $422억(2019)
'''1인당 GDP'''
$34,477(2019)
'''현지사'''

닷소 다쿠야[4]
(達増拓也, 4선)
'''현의회
(48석)'''

'''[→ 회파별로 보기]'''

14석

9석

3석

2석

1석

19석
'''중의원
(3/465석)
'''

2석

1석
'''참의원
(2/245석)
'''

2석
'''상징'''
'''현화'''
오동나무꽃(キリ)
'''현목'''
남부적송(ナンブアカマツ)
'''현조'''
(キジ)
'''ISO 3166-2'''
'''JP-03'''
'''홈페이지'''

1. 개요
2. 지리
3. 역사
3.1. 현명 '이와테(岩手)'의 유래
4. 경제
5. 하위 행정구역
6. 정치
6.1. 현의회
7. 교통
8. 기타
9. 출신 인물
9.1. 실존 인물
9.2. 가상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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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 도호쿠 지방에 위치한 . 아오모리현, 아키타현, 미야기현과 접한다. 현청 소재지는 모리오카시.
이와테현은 한국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보니 모리오카, 하나마키, 이와이즈미 등 이와테에서 유명한 명소에서도 한국인 관광객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편이다.

2. 지리


'''일본에서 가장 넓은 현'''이다. 도도부현 중에서는 홋카이도에 이어서 2위. 면적 15,278㎢로 가장 작은 가가와현의 8배 크기. 한국의 경상북도, 강원도(미수복지구 제외)보다는 좁다.[5] 이북 5도를 포함하면 함경남도의 절반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다만 대부분이 산지인지라 인구는 많지 않다. 기후는 일본에서는 추운 편이지만 한국 기준으로 봤을 때는 그냥 평범한 수준이다.[6] 대부분의 땅이 산지라서 개발은 낙후되어 있으나 자연이 잘 보존되어 있다. 2011년 6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히라이즈미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지형은 전체적으로 서고-중저-동고형의 지형을 띤다. 중앙의 남북으로 긴 분지에 이와테의 주요 지역인 모리오카-하나마키-키타카미-오슈-이치노세키 라인이 몰려있으며, 서쪽에 오우 산맥이 있고 동쪽에도 넓은 산지와 리아스식 해안이 있다.
참고로 이와테현은 미개척지 비율이 홋카이도 다음으로 가장 많다, 대부분 연안에 위치해있으며 혼슈 최동단으로 알려진 토도가사키(魹ヶ崎) 역시 미개척지에 있어 육로로 접근이 힘들다. 애초에 육로로는 자연환경 보호로 인해 개방해놓는 시기가 극히 적으며 대부분 배에 타고 멀리 떨어져서 토도가사키를 관람한다.

3. 역사


도호쿠 지방의 동북쪽에 있는 지역이라 일본으로의 편입이 늦어졌으며, 8세기 말 혹은 9세기 초에 가서야 중앙조정의 영향권에 들어오게 된다. 그 이전까지는 에미시의 땅으로, 아테루이가 활동했던 지역이었다. 편입 이후에는 지금의 후쿠시마현, 미야기현, 아오모리현과 더불어 무츠노쿠니(陸奥国)로 불렸다.
11세기 말부터 12세기 초까지는 오슈후지와라씨(奥州藤原氏)가 히라이즈미에 거점을 잡고 조정에 대항하는 세력으로 성장했으나,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에 의해 멸망했다. 이후 가마쿠라 시대에는 난부씨(南部氏), 아소누마씨(阿曽沼氏), 카사이씨(葛西氏) 등이 곳곳에서 독립 파벌로 성장했으나 서서히 후쿠시마에서 북상한 다테씨(伊達氏)의 영향력 하에 들어가고, 전국시대에 들어서는 다테 마사무네에 의해 완전히 다테씨 영역이 되었다.
에도 시대를 전후하여 남부는 다테씨의 센다이번(仙台藩)[7], 다무라씨(田村氏)의 이치노세키번(一関藩), 루스씨(留守氏)의 미즈사와(水沢)로 나뉘었으며, 북부는 난부씨의 모리오카번(盛岡藩)[8]이 설치되었다. 보신 전쟁 중인 1868년에는 오우에쓰열번동맹(奥羽越列藩同盟)이 다테번과 난부번을 중심으로 결성되었으나 4달 만에 신정부군에 항복했다.
모리오카번은 결국 재정난으로 폐번치현이 이루어지기 전인 1870년에 폐번을 신청하고, 이후 '''모리오카현(盛岡県)'''이 설치되었다. 1년 후에는 '''이와테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876년에는 현의회가 개회했다. 1889년에는 시제(市制)가 시행되어 모리오카시가 설치되었고, 1937년에는 카마이시시가, 1941년에는 미야코시가 설치되었다.
2차 세계대전 말, 1945년 7월 14일에는 이 지역의 카마이시 제철소가 사우스다코타급 전함 사우스다코타에 의해 포격을 받았는데 이는 '''미국 전함으로서는 최초의 일본 본토 포격'''으로 기록되게 된다.
패전 이후에는 교통편도 나쁘고 소득도 낮으며 산업 진흥도 미진해서 자조적으로 '일본의 티벳'으로 부르던 적도 있었다. 이는 1964년에 하나마키 공항이 문을 열고 1982년에 도호쿠 신칸센이 개통되면서 개선되었다.
2008년에는 이와테 미야기 내륙 지진으로 약 450명에 달하는 사상자를 냈으며, 2011년에는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이 발생하여 현의 모든 해안에 쓰나미가 밀려와 막대한 인명 및 재산피해를 냈다. 아직도 피해는 복구중이며, 현 차원에서 산리쿠(三陸) 지역 부흥 프로젝트와 홍보를 추진하고 있다.
2020년 7월 29일까지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대유행하는 시점에서도 일본 내에서 유일하게 확진자가 없는 지역으로 주목 받았으나 코로나 검사 회피 등의 의혹을 받던 중 7월 29일 부로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청정 지역 타이틀이 무너져 버렸다.

3.1. 현명 '이와테(岩手)'의 유래


지명 이와테의 유래는 다양하지만 제일 널리 알려져 있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모리오카시의 토켄지(東顕寺)에는 시메나와[9]가 묶여있는 3개의 큰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는 옛날 이와테산이 분화할때 날아온 화산탄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미츠이시사마(三ツ石様)'라 불리며 지역 주민에게 신성시 되었다. 그 당시 라세츠키(羅刹鬼)라 불리는 오니가 그 지역 마을 주민과 여행객들을 괴롭히며 못살게 굴자 마을 주민들이 미츠이시사마에게 가서 마을사람들을 괴롭히는 오니를 벌해달라 부탁하였고 그 후 라세츠키는 그 죄가로 미츠이시사마 바위에 묶여버리게 되었다.
결국 묶여버린 라세츠키는 잘못을 뉘우치며 다시는 마을에 나타나지 읺겠다고 미츠이시사마에게 빌었으며, 미츠이시사마는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표시를 남겨라' 명령을 하여 미츠이시사마 '''바위(岩)에 손(手)자국'''을 찍고 서쪽인 난쇼산(南昌山)쪽으로 도망을 갔다 하여 이와테(岩手)가 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현재도 손자국이 찍혀있는 바위가 모리오카시의 미츠이시 신사에 남아있다.
여담으로 오니가 떠나자 마을사람들이 기쁨에 밤낮 가리지 않고 춤을 췄다는데 그 춤이 바로 모리오카 산사 오도리(さんさ踊り)의 기원이다. 지금도 8월쯤에 모리오카 시가지에서 대규모로 개최되는 오도리 마츠리이다.

4. 경제


신칸센 이전까지는 특별한 산업이 없었다. 그냥 현 전체가 시골. 그때는 일본 도도부현 통틀어서 경제력이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신칸센이 연결되면서 산업이 조금씩 생겨나서 지금은 30위 후반권이다.

5. 하위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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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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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정치


[image] '''이와테현의 국회의원'''
[image] '''참의원'''
선거구
국회의원
이와테현 선거구
2022년 개선
기도구치 에이지
2025년 개선
요코사와 다카노리
[image] '''중의원'''
선거구
국회의원
1구
시나 다케시
2구
스즈키 슌이치
3구
오자와 이치로
'''오자와 왕국''', '''일본에서 가장 반자민당 성향이 강한 곳'''[11]
야당계 현직 지사 닷소 다쿠야는 '''80%'''에 육박하는 득표율로 자민당 후보를 박살내고, 민주당이 57석(...)이라는 괴멸적인 성적을 받아들며 참패한 제4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도 민주당계 정당이 자민당을 이긴 '''유일한''' 현이었으며[12] 다른 곳에서 일본 미래당이 거의 모조리 떨어질 때 오자와는 이와테현 제4구에서 '''14선'''에 성공했을 정도.[13] 때문에 민주당의 성향이 강하다. 자민당의 지지세가 확실히 약한 오키나와현은 그렇다고 민주당의 세력이 강하다는 말은 아닌데, 이와테현은 비자민당 지지층의 표를 온전히 민주당 계열의 정당이 받아낸다. 세 지역구 중 두 곳에서도 민주당 의원이 당선되었고, 참의원의 2석도 전부 민주당 의원이다. 다만 2구는 자민당 지지 선거구로, 스즈키 젠코의 아들 스즈키 슌이치가 당선되었다.
2014년 중의원 선거에서도 오키나와현 정도를 제외한 일본 전국을 전부 자민당이 싹쓸이하는 와중에 이와테에서는 민주당은 4석 중 2석, 생활당은 1석을 얻었다. 비례대표 선거의 경우 생활당은 다른 지역에서는 모두 5%에 못 미치는 득표를 얻었으나 이와테에서 17.1%를 득표했다.
2017년 48회 총선거때도 이와테현 제3구에서 오자와가 당선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곳은 일본 내각총리대신 아베 신조의 먼 조상인 아베노 무네토의 출신지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아베 가문을 조슈 토박이로 착각하는데, 원래는 후슈(俘囚)[14]로써 이곳에 근거를 둔 아베노 호족의 일부가 조슈 쪽으로 건너간 것이다.


6.1. 현의회


  • 다른 현과 달리 현의원 선거가 9월에 시행되는데, 2011년 17회 선거 때 동일본 대지진의 영향을 고려하여 선거를 5달 연기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피해가 심했던 미야기현후쿠시마현은 7달 연기했다.
'''제19기 이와테현의회'''
(2019년 9월 14일 ~ 2023년 9월 13일)

의장 : 사사키 준이치 (佐々木順一) | 부의장 : 이쓰카이치 오 (五日市王)

'''개혁 이와테'''[15] - '''14석 (33.3%)'''

'''자유민주클럽'''[16] - '''13석 (20.8%)'''

'''이와테 신정회'''[17] - '''8석 (13.6%)'''

'''이와테 현민클럽'''[18] - '''5석 (8.4%)'''

'''일본 공산당''' - '''3석 (6.3%)'''

'''사회민주당''' - '''2석 (4.2%)'''

'''공명당''' - '''1석 (2.1%)'''

'''무소속''' - '''2석 (3.1%)'''
정수 : 48명

7. 교통


공항하나마키 공항이 유일하다. 위상은 국제공항이지만, 타오위안에서 오는 하계편 딱 하나뿐이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도 아시아나항공, 제주항공, 에어부산에서 부정기편으로 운항을 한 적도 있지만, 이용하는 승객은 비행기의 절반도 못 채울 정도로 적었다.[19] 따라서 하나마키 온천 여행상품을 내놓으면서 홍보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도호쿠 여행을 가더라도 센다이아오모리, 아키타로 많이 가는 추세다.
철도 노선으로는 도호쿠 신칸센이 현 중심을 관통하고 아키타 신칸센이 현 서쪽으로 뻗어 아키타현으로 넘어간다.[20] 신칸센 역이 제일 많은 도도부현 타이틀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도호쿠 신칸센에만 이치노세키역, 미즈사와에사시역, 키타카미역, 신하나마키역, 모리오카역, 이와테누마쿠나이역, 니노헤역으로 7개, 그리고 아키타 신칸센시즈쿠이시역까지 총 8개다. JR 재래선으로는 타자와코선, 키타카미선, 하치노헤선, 하나와선, 카마이시선, 야마다선, 오후나토선이 있다. 사철 노선으로는 IGR 이와테 은하철도 이와테 은하철도선산리쿠 철도 리아스선이 있다.

8. 기타


이와테현에 있는 카루마이마치는 일본의 인기 애니메이션 하이큐의 카라스노 고교의 배경이기도 하다.
여담으로 이와테현에서는 특이하게도 횡단보도를 건널 때 차에다 인사를 한다고 한다. 이는 이와테현에서만 있는 문화로 덕분에 이와테현의 교통사고 순위는 최하위에 머물러 교통사고 안전지역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9. 출신 인물



9.1. 실존 인물



9.2. 가상인물



[1] 岩手의 岩을 위아래 대칭이 되도록 찌그러뜨린 것[2] 정촌(町村) 위로 10개 군(郡)이 있으나 일상적으로는 잘 쓰이지 않는다.[3] 추계인구, 2020년 8월 1일.[4] 입헌, 국민, 사민, 공산 추천. 전 민주당 중의원(이와테현 제1구)[5] 일본의 면적이 한국의 약 3.5배 정도인걸 감안하면 일본의 행정구역들은 한국에 비해 촘촘한 편이다.[6] 모리오카시의 겨울철 기온은 서울과 거의 비슷하나 습도가 높아서 체감기온은 약간 더 낮다. 여름철은 서울보다 확실히 시원하다.[7] 후의 다테번(伊達藩)[8] 후의 난부번(南部藩)[9] 신사나 절에서 볼 수 있는 금줄[10] 니노헤시가 나노헤로 오타가 나있다. 추가로 후지사와초는 이치노세키시에 합병되었다.[11] 오키나와현은 야당들이 모두 뭉쳐 자민당에 대항하는 풍토 때문에 자민당이 약하지만, 이와테에선 민주당이 홀로 자민당을 박살낸다. 또, 현의회에선 오키나와현보다 이와테현이 자민당의 지배력이 확실히 약하다.[12] '''심지어 오키나와현에서도 자민당이 4석 중 3석을 차지하며 이긴 선거였다!''' [13] 일본 미래당 후보가 당선된 지역구는 이와테현 제4구(오자와 이치로)와 히로시마현 제6구(가메이 시즈카) 둘 뿐이다. 그나마도 전직 국민신당 대표였던 가메이 시즈카는 오자와 이치로의 복당을 비판하며 생활당으로 가지 않고 녹색바람에 입당. [14] 헤이안 시대 일본 조정에 동화된 에미시 부족장 가문들을 말한다.[15] 改革岩手. 국민민주당 8, 무소속 6.[16] 自由民主クラブ. 전원 자민당.[17] いわて新政会. 입헌민주당 2, 무소속 6.[18] いわて県民クラブ. 전원 무소속.[19] 2015년 아시아나 마지막 전세편 운항시 탑승한 승객이 비즈니스석 좌석수보다도 적었기에 기장이 편의를 베풀어 전원 비즈니스석을 타고왔다는 이야기도 있다.[20] 이 구간은 재래선표준궤로 개조한 구간인 데다 산악을 지나고 단선이라 속도가 느린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