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그라드급 순양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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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Крейсеры проекта 82'''
1. 개요
2. 제원
3. 함정 목록
4. 개발 과정
5. 결과
6. 출처
7. 매체에서의 등장


1. 개요


스탈린그라드급 순양전함은 소련 해군의 함선으로, 계획명은 Project 82이다. 총 3척이 건조될 예정이었다.

2. 제원


이전 함급
크론슈타트급
다음 함급
없음
배수량
36,500t (기준), 42,300t (만재)
길이
273.6m

32m
홀수선
9.2m
추진
4축 스팀 터빈
출력
280,000 마력
보일러
12보일러
최대 속도
35.4 노트
순항 거리
18 노트로 운행 시 5000 nm
무장
305 mm/62(12") SM-33 Pattern 1948 3연장포 3기
130mm/60 BL-109A 연장 양용포 6기
45mm/78 SM-20-ZIF 4연장포 6기
25mm/79 BL-120 4연장포 10기
주장갑대
180mm
주포탑
350mm
격벽
235mm
부포탑
25mm
상부갑판
50mm
주갑판
70mm

스탈린그라드급 순양전함의 모습

3. 함정 목록


함명
함번
조선소
기공
진수
완공예정
스탈린그라드(Сталинград)
400
Marti Yard, Nikolayev
1951년 12월 31일
1953년 11월 7일(예정)
1954년
모스크바(Москва)
406
Baltic Yard, Leningrad
1952년 9월
-
1955년
크론슈타트(Кронштадт)
401
402 Yard, Molotovsk
1952년 10월
-
-

4. 개발 과정


Project 82 순양전함의 뿌리는 1941년 5월에 키로프차파예프급 경순양함과 크론슈타트급 순양전함의 중간급의 순양함의 필요하다는 해군 주요 지휘관 전술적 요구사항(OTZ : Operativno Takticheskoye Zadanie)을 승인하면서 시작되었으며 해당 함선은 다음과 같은 역할이 요구되었다.
  • 203mm(8") 주포로 무장한 적 순양함과의 교전
  • 적 경순양함의 격파
  • 아군 경순양함을 지원
  • 기뢰 부설
  • 적의 중구경 해안포의 제압 및 아군의 상륙작전 지원
  • 적의 해상 통신선에 대한 작전 수행
이러한 임무를 수행하기위하여 해군은 20,000톤의 기준배수량, 8문의 203mm 주포 및 20문의 100mm 부포, 37mm 대공포 및 21인치 어뢰발사관을 갖추고 적의 203mm 주포를 방호할수 있어야 하며 36노트의 최대속도와 20노트기준 10,000nm(19,000km)의 항속거리 및 4대의 수상기와 2기의 캐터펄트를 갖출것을 요구하였다. 위 설계는 독일에서 구입한 중순양함 뤼초의 설계를 약간 변경하여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41년 독소전이 발발하며 더이상 독일제 203mm포를 인수할수 없게 되었고 전쟁이 격화되며 프로젝트가 보류되었다.
이후 1943년 9월에 프로젝트가 부활하였고 요구사항은 동일하였지만 항공모함을 호위하며 합동작전을 수행할것 이라는 새로운 역할이 추가되었으며 이 때의 설계는 20,000~22,000톤의 기준 배수량, 9문의 220mm 주포와 130mm 양용포 및 32문의 37mm 대공포를 무장으로 하였으며[1] 기타 요구사항은 이전과 같았다. 44년 5월까지 12개 이상의 예비설계가 제출되었지만 채택된것은 없었다.
1944년 11월 새로운 OTZ는 최대속도를 33노트로 낮추고 기준배수량을 현실화하여 25,000~26,000톤으로 변경하였으며 9문의 220mm 주포 및 16문의 130mm 양용포와 32문의 45mm 및 23문의 23mm 대공포[2]를 갖출것을 제안하였다. 하지만 설계사무국은 이미 과중한 작업량에 시달리고 있던터라 쿠즈네초프 제독의 압박에도 상세설계는 진행하지 못하였다. 1945년 정치국에서 프로그램이 언급되었을때 스탈린은 함선의 주포로 305mm를 선호하였으나 쿠즈네초프가 반대의견을 내어 추진되지는 않았다. 11월 27일 조선설계국의 인민위원회와 협의가 이루어짐에따라 1946년부터 220mm와 305mm 주포가 장착된 순양함의 상세설계가 시작되었다.
1947년 1월말 크렘린에서 스탈린이 참여한 군사 조선문제에 관한 특별회의에서 재차 Project 82의 주포를 305mm 변경할것을 제안하였으며 47년 8월 세가지의 설계안이 제출되었다. 1번안은 305mm 주포와 200mm의 주장갑대 2번안은 305mm주포와 150mm의 주장갑대를 갖추는 대신 기동성이 1안보다 뛰어났다 3번안은 220mm의 주포를 갖추는대신 상대적으로 배수량이 작았으며 속도가 가장 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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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3월 스탈린은 1안의 추가설계를 승인하였으며 이 설계는 305mm 주포와 200mm의 주장갑대 기준배수량 40,000톤 최고속도 32노트이다.
이후 여러 논의를 거치며 주장갑대 장갑과 양용포의수 및 항속거리를 줄이는대신 35노트의 고속을 낼수있게 되었으며 기준배수량은 36,500톤으로 조정되었다.[3] 1950년 12월 상세설계가 완료되었으나 51년 2월 해군 및 건함부의 검토결과 4월경 다시 설계가 변경되었다.[4]
1951년 12월 31일 니콜라예프의 #444 공장에서 1번함 스탈린그라드가 기공되었으며 52년 9월 레닌그라드의 #189 공장에서 2번함인 모스크바가 기공되었고 동년 10월 몰로톱스크의 #402 공장에서 3번함 크론슈타트가 기공되었다. 1번함 스탈린그라드는 10월혁명 36주년인 1953년 11월 7일에 진수하는것을 목표로 건조되었다. 하지만 1953년 1월 1일기준으로 1번함은 18.8%, 2번함은 7.5%, 3번함은 2.5%의 공정만이 완료되어 있었다.

5. 결과


1953년 3월 5일 스탈린이 죽으면서 동년 4월에 교통, 중공업, 건설부의 장관 I.I.Nosenko가 #00112 명령으로 스탈린그라드급 3척을 취소할것을 지시하였다.[5] 해군측에서도 반발없이 수용하였으며 2번함과 3번함은 스크랩처리되어 공장에 금속재료로 보내졌고 1번함 스탈린그라드는 표적으로 사용하기로 결정되었다.
1955년 5월 스탈린그라드의 선체를 세바스토폴로 예인하던 도중 강풍에 의하여 세바스토폴 남쪽 해안가로 밀려나 좌초해버렸으며 예인작업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동년 10월 전함 노보로시스크가 폭발사고로 침몰하면서 예인작업이 잠시 중단되었고 이후 56년 7월에 예인되어 해군사격장으로 이동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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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각종 함포탄, 항공폭탄, 어뢰 및 순항미사일과 대함미사일의 표적으로 사용되었으며 1962년 수명을 다하여 스크랩처리되었다.

6. 출처


# Unbuilt ships of the Russian Imperial and Soviet Navy Alexei Sokolovm, ISBN 978-5-902863-15-1 - Moscow, 2008.Project 82 Stalingrad
# Stalingrad-class battlecruiser

7. 매체에서의 등장


월드 오브 워쉽에서 스탈린그라드라는 이름을 달고 10티어 강철 프리미엄 함선으로, 선행설계안은 리가와 페트로파블롭스크라는 이름을 달고 각각 정규트리 9,10티어 중순양함으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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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함소녀에서 스탈린그라드가 등장한다.

[1] 어뢰발사관은 제거[2] 45년 25mm로 변경[3] 이 과정에서 스탈린의 주장이 강하게 반영되었다[4] 원래는 함수 디자인을 차파예프급과 비슷하게 설계하였으나 1950년에 취역한 차파예프급의 항해성능이 좋지못한것을 확인하여 플레어를 크게준 형태로 변경하였다.[5] 장관 본인의 의지는 아니고 최고 지도부중 누군가의 지시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