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미랄 히퍼급 중순양함
1. 제원
2. 개요
크릭스마리네의 중순양함 '''아트미랄 히퍼급 중순양함(Admiral-Hipper-Klasse)'''.
3. 개발
독일이 베르사유 조약을 파기하고 군사력을 본격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한 1934년에 크릭스마리네(독일 해군)도 그 동안의 제약에서 벗어나서 쓸만한 중순양함을 개발 및 건조하려고 계획을 잡기 시작했다. 이 당시의 개발 조건으로는 주요 열강의 8인치 주포를 장착한 조약형 중순양함과 동등한 싸움이 가능한 주포 무장, 프랑스의 됭케르크급 고속전함의 추격에서 벗어날 수 있을 수준의 속력, 대서양에서 벌어질 작전에 참가할 수 있는 수준의 항속거리가 있었다.
설계를 시작한 시기에는 프랑스와 영국을 너무 자극하지 않기 위해 배수량은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과 런던 해군 군축조약을 준수하는 1만톤급의 조약형 순양함으로 결정했으며, 주포의 경우에도 여러가지 구경의 다양한 물건들을 검토했으나, 역시 조약을 준수한다는 의미로 타국의 조약형 중순양함과 동일한 수준인 20.3cm 주포 8문으로 결정했다. 이를 통해 1934년 8월에 1차적으로 정리한 설계구상으로는 8인치 주포 8문과 현측장갑 80mm 수준의 방어력을 가지며 32노트의 속도를 달성가능한 기준배수량 10,700톤 정도의 중순양함이었다. 군축조약의 순양함 배수량 제한을 약 700톤 정도 초과했지만, 당대의 군함들은 배수량 분야에서 조약을 약간 넘어가는 것은 그냥 숨기고 발표하는 것이 일반화된 상황이었으므로 이 때까지는 조약을 엄청나게 위반한 군함이라고 보긴 어려웠다.
하지만 설계 초안을 검토한 독일 해군 총사령관 에리히 레더는 공격력과 방어력이 모두 빈약하다는 판단을 한 후, 공격력 측면에서는 대공화력과 어뢰공격능력 강화를 주 목적으로 삼고, 방어력에서는 주포탑과 탄약고의 방어력 강화를 중점적으로 해서 재설계할 것을 관련부서에 명령했다. 그러나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배수량의 증가가 불가피한데다가, 당시의 독일 해군은 대형함의 건조 역사가 10년 이상의 공백기까지 있어서 설계능력이 크게 감퇴한 실정이었으므로 목적 달성을 위해 엄청난 수준의 배수량 증가가 이루어졌다.[4] 그래서 기준배수량만 따져도 조약 따위는 없다 식의 14,050톤을 달성했고[5] , 만재배수량은 약 18,000톤을 초과해서 거의 1차대전의 순양전함급 배수량을 기록하는 대형순양함으로 체적이 불어났다. 그래서 에리히 레더는 대외적으로는 배수량이 크게 불어났다는 사실은 '''숨기고''' 아트미랄 히퍼급 중순양함은 군축조약의 규정을 지키는 10,000톤의 중순양함이라고 공개한다. 실은 이탈리아 왕국이 트렌토급 중순양함과 차라급 중순양함을 건조하면서 먼저 속인 적전이 있으나 성능은 이탈리아쪽이 우위이다. 차라급은 당대 최고의 중순양함중 하나였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설계가 완성된 후, 2척 건조를 시작했다. 그리고 1936년도의 독일 해군 건함계획에서는 아트미랄 히퍼급 중순양함의 설계를 기본 바탕으로 해서 6인치 주포를 보유한 경순양함 2척을 건조할 계획이 잡혀 있었으나[6] , 소련 해군에서 180mm 주포 9문을 보유한 키로프급 순양함의 건조를 시작했기에 경순양함 건조 계획을 취소하고 아트미랄 히퍼급 중순양함의 추가 건조를 하기로 계획변경을 했기 때문에 추가로 3척을 건조하기 시작했다. 이들 함선중 프린츠 오이겐은 기존 동형함보다 약간 배수량이 늘어서 전(前)드레드노트급 전함의 배수량에 도달했으며, 미완성으로 끝났지만 뤼초(Lützow)와 자이틀리츠 (Seydlitz)는 배수량이 추가로 늘어서 만재배수량이 19,800톤까지 늘어나는 바람에 1차대전 시기의 드레드노트급 전함과 비슷해질 수준까지 배수량이 늘어났다.
4. 장점
4.1. 높은 화력 기대치
주포는 새로 개발한 SK C/34 20.3cm 60구경장 함포를 사용한다. 60구경장이라는 포신은 미국의 동급 화포가 가지는 55구경장과 일본의 동급 화포가 가지는 구경장인 50구경장을 훨씬 뛰어넘는 장(長)포신이다. 그래서 장포신에 걸맞게 포구초속 925m/s의 속도로 122kg이라는 비교적 경량의 포탄을 +37°에서 33,500m까지 날릴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한다.[7] 사정거리만 따지자면 2차대전 시기의 최신예 전함을 제외한 나머지 전함의 주포 사정거리와 비슷한 수준으로 포탄이 멀리 날아간다는 것이다. 이런 능력을 통해 스펙'''상'''으로는 타국의 중순양함을 사정거리 바깥의 원거리에서 공격하거나, 전함에게 쫒기는 상황에서도 견제용 포탄을 날려서 전함의 비장갑구획에 손상을 줄 수 있다. 기본적으로 아트미랄 히퍼급 중순양함의 주포는 포탄을 강력한 힘을 사용해서 초고속으로 날리기에 근거리 관통력도 높은 편인데다가 협차시 포탄이 낙하하는 범위도 양호하기 때문에 근거리 전투에서나 중거리 이상의 전투에서나 유용하다고 당시의 독일 해군은 평가했다. 그러나 장거리 포격전시에는 미국에게 밀리고 포신의 수명도 타국에 비해서 짧은 300발 수준이다.[8][9]
주포탑의 경우에도 새로 개발한 Drh LC/34 2연장 포탑을 사용한다. 부앙 능력은 +37°까지 가능하며, 부각은 1번 포탑과 4번 포탑은 -9°까지, 2번 포탑과 3번 포탑은 -10°까지 가능하다. 포탑선회각도는 기본적으로는 360° 회전이 가능하며, 사격가능방향은 선체에 가려지는 후방의 70도를 제외한 290°다. 발사속도는 분당 4 ~ 5발이다. 포탑 회전 및 포신 부양, 장전등의 동작은 전기식으로 작동하며, 인력으로 보조한다. 포탑 배치도 전방 2기, 후방 2기를 적층식으로 배치해서 포탑간 간섭현상을 없애고, 화력도 전방과 후방 50%, 양 측면 100%를 사용할 수 있어서 영국과 미국과 비슷하게 만들었다.
대공포도 새로 개발한 SK C/33 10.5cm 65 구경장 대공포를 사용한다. 해당 대공포는 Dopp LC/31형 대공포대에 설치하며, 대수상용으로는 15.1kg의 포탄을 +45°에서 17,700m까지 날릴 수 있고, 대공용으로는 +80°에서 12,500m의 고도까지 도달하게 할 수 있다. 선회 및 부앙은 전기식 위주와 인력 보조로 이루어지며, 360° 회전이 가능하고 -10°에서 +80°까지 포신을 상하로 움직일 수 있다. 발사 속도는 분당 15 ~ 18 발이다. 이런 대공포를 6기 탑재해서 대공포의 숫자는 총 12문으로 동 시기의 중순양함과 비교하면 스펙상으로는 미국 다음으로 대구경 대공포가 많다.
대공기관포는 SK C/30 3.7cm 83구경장 2연장 대공포좌 6기와 2cm 65구경장 C/30 2연장 기관포좌 4기를 탑재한다. 3.7cm 대공포는 단발식 장전을 하는 물건이기 때문에 스펙상으로는 분당 30발의 발사속도를 자랑하지만 실제로는 인력장전식이라 지속발사시나 실전시에는 발사속도가 크게 저하한다. 그래서 +85°의 포신부앙각도와 6,800m의 최대포탄도달거리라는 이점을 다 까먹는다.[10] 2cm 기관포는 탄창 장전식 기관포로 '''카탈로그상으로는''' 분당 280발의 발사속도를 가지지만 탄창식 기관포인 탓에 수시로 재장전을 해야했기에 실제 발사속도는 120발을 넘기지 못한다.[11] 게다가 신뢰성 부족으로 심심하면 잼이 걸리는건 덤.[12]
따라서 초기의 대공기관포들은 스펙과는 달리 대공화력면에 상당한 문제가 있었기에 지속적인 개량이 있었다. 일단 아트미랄 히퍼와 프린츠 오이겐은 3.7cm 기관포를 4문 줄이고 대신 2cm 기관포를 28문까지 늘렸으며, '''프린츠 오이겐'''의 경우에는 1944년에 3.7cm 기관포를 완전 제거한 후, 4cm Flak 28 기관포[13] 를 15문 증설했다. 그리고 1945년에 이르면 항구방어용 부유대공포대로 사용하기 위해 20문의 4cm 기관포와 18문의 2cm 기관포로 대공기관포를 정리하였으며, 폐함상태였던 아트미랄 히퍼도 16문의 4cm 기관포와 14문의 2cm 기관포를 설치해서 고정대공포대로 사용했다.
어뢰의 경우에는 53.3cm 3연장 어뢰발사관를 함교의 측면과 후방사격통제소 측면에 각각 1개씩 총 4기를 배치해서 12문의 어뢰발사능력을 가진다. 이는 어뢰수량만으로는 당대의 중순양함중 최고급에 속한다. 어뢰는 G7a로 24기를 보유해서 12기는 어뢰발사관내에 장전한 상태고, 재장전용으로 12기를 보유한다. G7a의 성능은 탄두중량 300kg으로 1939년에 30노트로 12,500m를 항주 가능하며, 40노트로 7,500m를 질주 가능하며, 44노트로 5,000m를 고속질주 가능하다. 이 어뢰는 전쟁중에 엔진을 교체함으로서 항속거리가 더 늘어났는데, 30노트로 14,000m을 항주 가능하며, 40노트로 8,000m을 질주 가능하며, 44노트로 6,000m를 고속질주 가능하다. 다만 초창기 독일 어뢰의 신뢰성이 높지 않아서 실전에서 기대할 수 있는 화력은 이보다 떨어질 것이다.[14] 이 문제는 1942년 무렵에는 해결된다.
이외에도 기뢰를 운용 가능하다. 기본적으로 기뢰함으로 사용이 가능하며, 필요에 따라서 함미 갑판에 레일을 설치하고 기뢰를 투하 가능하다. 그래서 네임쉽인 아트미랄 히퍼는 실전에서 탄두중량 300kg인 EMC 기뢰 96개를 탑재한 후 기뢰 부설 임무를 수행했다.
5. 문제점
하지만 조약을 위반하면서까지 만든 물건임에도 문제점이 많은 함선이다.
5.1. 구식 설계
일단 독일에 대형함선의 제조기술이 10년 이상 단절된 이유로 인해 1차대전형 전함의 설계도를 완전히 그대로 답습해서 함체 구조가 구식이라는 것도 큰 문제지만, 이런 중순양함의 경우에는 그런 식으로 카피한 전함의 설계도를 '''축소해서 그대로 적용'''해 버렸다. 따라서 2차대전 시기의 중순양함 설계쪽에서 본다면 너무나도 어이없을 수준으로 배수량을 낭비하는 설계가 만들어진다. 함포를 주무장으로 사용하는 순양함 분야에서 끝판왕 취급을 받는 우스터급 경순양함과 디모인급 중순양함은 물론이고, 동시대로 비교 대상을 한정한다고 해도 볼티모어급 중순양함이나 차라급 중순양함을 보면 같은 수준의 배수량을 사용해도 결과가 천양지차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15] 또 이와 비슷한 축소 설계로 애물단지가 된 경우로는 같은 미국의 알래스카급 대형순양함이 있다.[16]
결국 구식 설계는 빈약한 무장과 얇은 장갑이라는 문제점으로 돌아왔다.
5.2. 빈약한 무장
아트미랄 히퍼급 중순양함이 채용한 20.3cm 60구경장 연장 주포 자체는 동급 주포중에서는 최상위권에서 노는 함포지만, 포문 수 면에서는 타국을 능가하지 못하고 비등하거나 약간 열세였다. 좀 무리수를 둬서 10문을 장착한 일본에는 상당히 밀리고, 9문을 장착한 미국에는 그 정도까지 밀리진 않지만 대신 그쪽은 3연장 포탑 채용을 통해 취약 부위를 줄이고 장갑 배치도 효율적으로 이루었는지라 공방면에서 모두 밀린다[17] . 영국이나 프랑스의 중순양함과는 포문 수가 동일하므로 화력 면에서 밀리지는 않지만 해당 국가의 중순양함은 배수량 1만톤 이내로 설계한 조약형 중순양함이므로 이들에 비해 더 많은 배수량을 가지면서도 포문 수가 동일하다는 것은 다소 아쉬운 점으로 남게 되었다.
더 큰 문제는 만재배수량이 2만톤에 육박하는 함선이라면 굳이 8인치 주포 같은 것에 연연하지 말고, 포켓전함이 탑재했던 11인치 주포 같은 것을 장착해야 배수량에 걸맞는 무장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18] 그리고 이미 독일은 11인치 함포에 대해서는 2연장 주포탑과 3연장 주포탑을 이미 개발완료한 상태였고, 실전에서도 사용중이었다. 따라서 가능하면 11인치 3연장 주포탑을, 좀 어려우면 11인치 2연장 주포탑을 개량해서 장착하면 적어도 알래스카급 대형순양함처럼 중순양함 킬러로 사용가능했을 것인데, 상기 언급된 구식 설계로 다 날려먹었다.[19]
5.3. 얇은 장갑
아트미랄 히퍼급 중순양함의 갑판장갑은 상갑판은 최대 30mm 두께로 선체 중앙부위가 가장 두꺼우며 선수와 선미쪽으로 점점 얇아지면서 12mm 까지 줄어든다. 주갑판은 최대 50mm로 상갑판과 같은 방식으로 20mm까지 감소한다. 현측장갑은 최대 80mm 두께의 중앙부 장갑을 가지며, 선수와 선미로 갈수록 70mm 두께까지 줄어든다. 선체 내부에는 20mm 두께의 어뢰공격 방어용 장갑과 격벽이 있다.
주포탑은 전면 105mm, 측면 70mm, 상면 70mm의 장갑을 가진다. 10.5cm 대공포좌는 포방패와 포 자체의 보호용으로 10 ~ 15mm의 장갑을 붙였다. 장갑함교는 150mm의 전면 및 측면과 50mm의 상면장갑을 가지며, 후부장갑함교는 30mm의 전면 및 측면장갑과 20mm의 상면장갑을 가진다. 대공지휘소는 기총소사 방어용으로 17mm의 장갑을 가진다. 동급함과 포격전을 대비해야 하는 중순양함의 장갑으로선 매우 부실하다.
5.4. 보일러와 터빈
증기기관을 군함에 추진기관용으로 쓰기 시작한 이래 고출력을 요하는 군함의 추진기관은 증기터빈이 대세가 되었다. 이 증기터빈을 돌리기 위한 액체를 증발시켜 증기를 만들어 공급하기 위해 등장하는게 보일러.
그러므로 보일러의 화력은 열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바꾸는 증기터빈에서는 출력과 바로 직결된다. 밑천이 있어야 움직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증기터빈은 필연적으로 일정이상의 용적을 추가로 요구하게 된다. 이 문제는 증기터빈의 출력을 키우면 키울수록 용적은 커지게 되며, 제한된 함선 내의 공간을 대량으로 잡아먹게 되므로 함선을 설계하는 입장에서는 큰 골칫거리로 작용하게 된다.
독일은 당시 세계에서 수위권에 들어가는 기관기술력을 가지고 있었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2개 장착할 공간에 독일은 2개를 1개로 묶어서 넣었다. 이 기술은 1차세계 대전 때부터 독일이 애용하는 기술로서 여유공간에 보일러 배치로 인한 남는 여유 공간을 수중방어구조로 재활용했기 때문에 쾨니히급 개발 이후부터 영국은 퀸 엘리자베스급을 건조하기 전까지는 독일보다 수중방어력이 낮았으며 이후에도 독일을 넘어서지 못하였다. 이런식으로 영국보다 보일러 총 숫자는 적지만 더 튼튼하게 만들어 큰 증기압 한계를 가진 독일 함정들은 증기압을 과부하 시키면 평시 출력의 최대 1.5배까지 나오게 되었다.
하지만, 독일 해군의 증기터빈은 더 큰 정비소요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독일 해군이 애용한 라모트식 증기 보일러는 세계 최고 수준의 450℃/80atu(증기압)의 출력을 가졌지만. 제대로 정비하지 않으면 애물단지가 되어버린다. 강제순환펌프에 가해지는 부담이 워낙커서 배관과 물저장고의 내구도에 악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전후에 프린츠 오이겐을 타국군이 관리했는데, 이 문제로 인해 인수한지 얼마 안지나서 12개 중 11개가 고장 났다.
독일은 아트미랄 히퍼급의 속도에 많은 기대를 걸었고, 그 결과 선체의 절반을 보일러와 터빈이 차지해 버리게 되었는데, 문제는 설계만 가지고 다 되는게 아니라[20] 온갖 문제가 쏟아져 나오게 된다. 이 속도에 대한 요구로 적함의 공격에 대비해서 보일러와 주기관을 분산배치 하지 않고 보일러 - 터빈 단일구조로 기관을 배치한 것이 가장 큰 문제였는데, 이렇게 하면 1발의 어뢰의 충격이나 포탄이 장갑을 관통하고 기관부로 돌입할 경우, 일시에 모든 동력을 상실하고 고정표적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었다.
이러한 결과로 네임쉽인 아트미랄 히퍼는 군의 요구사항에 못 미치는 실제 항해에서 19노트로 6,500해리를 기록하였다. (설계시 요구 성능은 20노트로 6,800해리를 항해하는 것)
5.5. 속력
속력의 경우에는 고온 고압 보일러를 채용해서 출력을 증대시키는 방법을 썼다. 이는 도이칠란트급 장갑함에 사용한 디젤엔진은 항속거리는 매우 길어지지만 반대급부로 신뢰성이 떨어지고 고속항진시 반응성이나 출력이 떨어지는 등의 문제점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일러의 작동 증기 온도는 450℃로 열강들이 채용한 함선용 보일러 중에서도 매우 높고, 중유 전소 보일러 12기에 고압 터빈, 중압 터빈, 저압 터빈 총 3기를 기어 드라이브에 연결하여 1세트로 1축를 담당한다. 이런 세트를 3개 탑재해서 3축 추진으로 최대 출력 132,000hp을 발휘하며, 배수량이 2만톤에 육박하는 거체를 최대 속력 32노트로 가속이 가능하다. 고속전함인 아이오와급 전함보다는 낮지만(전함인데도 33노트의 속력을 낼 수 있었다.) 2만톤급의 거체를 가진 함선가운데 이런 속도를 함선은 거의 없었다.
6. 실전
아트미랄 히퍼급 중순양함은 노르웨이 침공에서 처음 실전 경험을 했으며, 그 후에는 주로 통상파괴작전에 투입되었다. 이 중 동형함인 프린츠 오이겐은 비스마르크 추격전에서 장비한 8인치 함포를 후드에 명중시켜 약간의 화재를 발생시킨다. 이후 전함 비스마르크는 해당 화재를 확실한 조준점으로 잡아서 후드를 공격하여 침몰시켰다. 후드 침몰의 결정적 원인은 프린츠 오이겐이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래 동형함 단락에서도 보듯 이후의 전과는 상당히 초라했다.
7. 동형함
- 1번함 아트미랄 히퍼(Admiral Hipper)[21]
함급의 네임쉽으로 독일 함부르크에 있는 블롬 운트 포스사가 아트미랄 히퍼를 건조하였다. 첫 실전인 노르웨이 침공에서 영국 구축함 글로우웜에게 충각공격을 당하는 대굴욕을 당했으나 그 뒤로는 그럭저럭 무난한 해군 함선의 삶을 살며 나름대로 자주 사용되었으나 바렌츠 해 해전에서 기관부에 치명상을 입고 퇴역하였다.
이후 방치된 아트미랄 히퍼는 폐함처분을 받은 후 고정대공포대로 사용하다가 1945년 5월 3일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 킬시에서 연합군의 공습에 의해 침몰하였다.
- 2번함 블뤼허 (Blücher)
[image]
히퍼급중 가장 수명이 짧았던 함. 노르웨이 침공 당시 수도인 오슬로를 점령하기 위한 함대 소속으로 나갔다가, 오슬로 근방의 피요로드에서 노르웨이군의 구식 해안포 요새가 날린 사격과 그 요새에 설치되어있던 어뢰발사대의 어뢰를 맞고 순식간에 침몰한데다가, 화재 발생 및 전복되는 바람에 상당수의 승조원 및 탑승한 육군 산악사단 병력이 탈출하지 못하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 3번함 프린츠 오이겐 (Prinz Eugen)
위에도 나왔지만 비스마르크 추격전에서 후드 격침에 상당한 공을 세웠다. 이후 동부전선의 함포사격지원등에 활동하다가 종전후 미국에 배상함으로 넘겨진 다음, 크로스로드 작전에 표적으로 사용된다. 그 이후 함체 손상으로 인한 침수로 전복된 채 방치되어 있으며, 스크루 1개만 이후 이 함 승조원 출신 참전자들의 요청으로 독일로 돌아와 전시중이다.
경순양함 라이프치히를 박아버린 에피소드도 있다. 제2차 세계 대전/도시전설 참조.
- 4번함 자이들리츠 (Seydlitz)[22]
미완성함. 95%까지 건조가 진행되다가 중단된 후, 한동안 방치되다가 항공모함으로 개조하는 절차에 들어간다. 그러나 항공모함으로 개조하는 작업도 지지부진하다가 미완성한 상태로 남았다. 그러다가 소련군이 동프로이센까지 진격하자 쾨니히스베르크의 항구를 못쓰게 할 목적으로 자침했으며 나치 독일이 패망하자 전후 전리품으로 소련에 넘겨진다. 소련은 이 배를 완성해보거나 뤼초를 완성시키기 위한 부품 조달에 써 보려고 했지만 별 필요가 없다는 결론이 나자 스크랩 처리했다.
- 5번함 뤼초 (Lützow)
미완성함. 건조가 중단된 상태에서 1940년에 독일이 소련에게 판매하기로 결정한다. 뤼초는 소련에 넘어간 후에 Petropavlovsk라고 함명이 변경되었으며 조선소가 있는 레닌그라드에 도착했다. 이 때까지는 독일과 소련간의 관계가 그렇게까지 나쁘지는 않아서 건조를 지속하기로 결정했고 부품도 독일에서 상당량을 수입하기로 했지만 '''독소전쟁'''이 발발하자 운명이 바뀐다.
이 전쟁에서 뤼초는 미완성된 상태로 독일군의 공격으로부터 레닌그라드를 수비하는 부유포대로 활용되었다. 덕분에 '''독일군은 자신이 판매한 독일제 중순양함을 공격해서 격침시키는 삽질을 해야 했다.''' 이렇게 해서 1941년에 침몰한 뤼초는 1942년에 인양해서 수리했으며, 1944년에는 Tallinn으로 함명이 바뀐 상태에서 레닌그라드 포위망 파괴작전에 투입하였다. 물론 이때까지도 미완성된 상태에서 임시 부유포대였다는 것은 침몰당하기 전과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 훈련시설 겸 부유병영으로 활용하다가 1953년에서 1960년 사이에 스크랩 처리했다.
8. 관련 문서
Admiral Hipper-class cruiser
9. 매체에서의 등장
- 네이비필드에서 정규전함/항모 트리를 타기 위한 중순양함으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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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비필드2에서 독일 9티어 중순양함으로 등장한다.
- 월드 오브 워쉽 - 독일 8티어 순양함으로 등장한다. 프리미엄으로 프린츠 오이겐도 나온상황. 또한 이를 기반으로 만들어 낸것이 10티어 힌덴부르크. 그리고 4번함 뤼초가 소련 매각 후 명칭인 탈린이라는 이름으로 소련 중순양함 트리 8티어로 등장한다.
[image]
- 함대 컬렉션 - 프린츠 오이겐(함대 컬렉션)이 등장한다.
- 전함소녀 - 어드미랄 히퍼, 블뤼허, 프린츠 오이겐 모두 등장한다. 아트미랄 히퍼의 경우 글로우 웜을 격침시킨 것을 반영해서 개장 일러스트에 글로우 웜을 수상기 크레인에 메달아 놓고 있다.
- 벽람항로 - 프린츠 오이겐이 먼저 등장했고 이후 어드미럴 히퍼도 등장했다. 아직 실장되진 않았지만 히퍼의 대사로 블뤼허도 언급된다. 자이틀리츠는 원래 항공모함으로 개장될 예정이었음을 반영했는지 항공모함인 베저로 나온다. 소련으로 팔려간 뤼초는 탈린이라는 이름의 북방연합 소속 캐릭터로 등장.
[image]
- 워썬더에서 1번함 어드미럴 히퍼와 3번함 프린치 오이겐이 5티어 중순양함과 프리미엄 장비로 등장한다.
[image]
- 심해전선에서는 어드미럴 히퍼, 블뤼허, 프린츠 오이겐, 자이들리츠, 뤼초가 등장한다. 특히 심해화 뤼초의 일러가 잘뽑혀서 자매함중 유일하게 웨딩 스킨이 있을 정도다.
10. 관련 문서
[1] 동형함 사이에도 차이가 상당히 크다.[2] 동형함마다 다름[3] 동형함마다 다름[4] 남들 다 도입했던 집중방어구조를 끝내 몰라서 현측에 동일한 두께로 장갑을 둘렀다.[5] 프린츠 오이겐은 16,227톤까지 불어난다.[6] 이 계획이 월드 오브 워쉽에 나오는 8티어 프리미엄 순양함 마인츠의 모티브로 추정된다[7] 비교하면 이탈리아:125kg, 일본:125kg, 미국:152kg이고 영국만이 116kg으로 더 가벼운 포탄을 사용한다.[8] 비교한다면 미국:715발, 영국:550발로 미국이나 영국의 절반수준밖에 안된다. 그나마 비슷한게 일본으로 320~400발의 기대수명을 가진다.[9] 이 정도 수명이면 완벽히 전함 주포 수준이다. 당장 이 함포의 두 배의 구경을 가진 나가토급 전함의 16인치 주포가 이 함포와 동일한 300발의 수명을 가진다.[10] 게다가 실질적으로 대공사격의 중추는 40mm급 대공포가 담당하므로 이건 제법 심각한 문제다. 일제 군함의 대공화력의 문제도 40mm급 대공화기의 부재가 상당히 큰 문제였었다.[11] 다만 미국의 1.1인치 대공포나 '20mm 오리콘 기관포'도 탄창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1.1인치는 오리콘으로 대체되었고 20mm 오리콘은 60발짜리 나선탄창이라 장전 문제가 덜하다. 실제 분당 발사속도도 2~3배 더 빠른지라 적절한 비교는 아니다.[12] 희한한 점은 독일은 3,7cm FlaK 18/36/37/43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 기관포는 보판탄 및 탄창을 이용한 장전을 하는데, 육군에서 우수한 성능을 보였으며, Ju 87 G형에 장착되기도 했다는 점을 보면 왜 이 기관포가 함선에 장착되지 않고 단발포인 SK C/30가 사용되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다.[13] 독일제 보포스 40mm 포이다.[14] 가령 U-39는 HMS 아크로열을 공격했는데 어뢰가 너무 일찍 폭발해서 구축함들이 잠수함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달려들어서 격침시켜버린다거나 U-56이 넬슨에게 3발의 어뢰를 발사해서 2발을 명중시켰는데 2발이 전부 불발되고 1발은 조기폭발로 호위함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광고해버려서 호위함의 격렬한 환영 인사를 받고 간신히 빠져나오기도 했다. 이런 문제가 계속 이어지자 레더 제독은 결국 어뢰 개발 책임자를 해임하게 된다.[15] 볼티모어급의 경우에는 취역이 4년정도 늦다고 둘러댈 수 있으나 같은해에 취역한 위치타급 중순양함과 비교해도 장갑이 더 빈약하다. 게다가 위치타급은 '''조약을 준수해서 만들어진 1만톤 내외의 배수량을 가지고 있었다.''' 그나마 갑판은 비슷한 수준이지만 현측의 경우에는 절반 수준이다.(위치타급이 6.4인치, 히퍼가 3.1인치)[16] 알래스카급은 축소 설계보다는 취역 목적과 시점이 시대에 뒤쳐졌다는 것이 문제였다. 공방능력 자체는 12인치 주포에 대응방어 달성으로 히퍼급보다는 훨씬 우수한 설계를 가지고 있었다. 다만 취역한 시점이 대전 후반부라서 원래 목표물이었던 일본군 순양함들은 이미 거의 다 격침당했거나 항구에 틀어박힌 상태였다는 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겨우 12인치급이다보니 본격적인 전함과 치고받을 수 없다는 것도 문제였고.[17] 2차대전 기간 중 중순양함의 8인치 포에 3연장 포탑을 채용한 국가는 미국 뿐이다. 나무위키에서 심심하면 터져나오는 주장이 '미국 외 국가 8인치 3연장 포탑 개발 능력 없음'인데, 2차 대전 개전 시점에서 미국 외에도 영국, 이탈리아 및 독일은 모두 8인치급 3연장 포탑 제조 능력은 충분히 있었다 보는 것이 정설이다. 문제는 3연장 포탑을 실제 채용했다고 가정했을 때 주포간 간섭 문제로 인해 발생하는 명중률 하락으로써, 3연장을 기어이 채용한 미국 또한 이 문제는 똑같았으며(초기형인 Mk.9의 경우 일제 사격 시 탄착 범위가 무려 '''2천 야드 - 약 1,830m -''' 내외까지 벌어졌다는 기록까지 존재할 정도. 샷건 소리 듣는 리토리오급의 탄착 범위가 23km~30km에서 1000m 내외- 이마저도 저품질 포탄에 의한 명중률 하락 의혹이 존재한다-인 것을 감안하면...) 펜사콜라급에서 처음으로 3연장 포탑을 채용한 후 위치타급/볼티모어급에서 채용된 Mk.12 주포가 등장할 때까지 문제 해결에 10년 이상 걸렸다는 걸 감안한다면 그리 여유가 없는 1930년대 상황에서 유럽 국가들이 무리한 모험을 할 필요가 없었던 것. 특히 독일은 레이더나 광학장치를 사통에 연동시킨 장거리 함포사격으로 전력의 열세를 만회하려 했던 상황이었다. 일본의 경우 명중률이 떨어지는 문제는 둘째치고 연장포의 포 하나를 기준포로 잡아 거리계산을 한 후 정확하게 때리면 된다는 생각도 있고 기존의 연장포에 만족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술력은 둘째치고 별 필요성을 못느끼고 있었다.[18] 사실 도이칠란트급 장갑함과 비교해보면 아트미랄 히퍼급이 더 길고 무겁다.[19] 12인치 대응방어를 달성한 시점에서 알래스카급은 종이장갑은 아니다. '''애초에 알래스카급은 전함을 상대하라고 만든 함종이 아니다.''' 원래 목표대로 중순양함 사냥에 나섰다면 중순양함들의 악몽이 되었을 함급이다.[20] 설계나 기획 단계에서 다 문제 파악하고 해결할 수 있으면 시제, 초도, 시험평가를 할 이유가 없으며 사용자 피드백을 받을 이유는 없다. 군사기술같은건 시뮬로 해결이 안되는 경우도 많다.[21] 이름의 유래는 독일 제국 해군 제독 프란츠 폰 히퍼.[22] 제국 시절 자이들리츠급 순양전함을 계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