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리 투키 윌리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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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12월 30일 ~ 2005년 12월 13일
미국범죄자
살인범이자 갱단의 우두머리. 노벨평화상 후보로 5번이나 올라가 사면 탄원을 받기도 하였으나 당시 캘리포니아 주지사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사면 거부로 결국 사형이 집행되었다.
1. 갱단 설립
2. 비폭력 운동가로의 전환
3. 최후


1. 갱단 설립


그는 1971년, 친구들과 LA에서 악명높은 갱단 크립스를 조직했다.[1] 그는 1979년 2월, 편의점 직원을 등 뒤에서 으로 쏴 죽이고, 2주 뒤인 3월에는 모텔에서 대만인 가족 3명을 총으로 쏴 죽이고 100달러를 강탈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대만인 3명은 죽인후 시체에다 대고 동양인 비하발언 (Buddhaheads)을 하며 조롱하였다고 한다. 한다는 말이, 과거에 많은 폭행사건은 일으켰어도 사람은 안죽였다고 한다. 상식적으로, 깡패가 살인을 안 했다는 게 말이 된단 말인가? 그가 감형이 안된 이유는, 사람을 한두명도 아니고 3명 이상 살해했다는 것이기 때문에...[2]

2. 비폭력 운동가로의 전환


윌리엄스가 처음부터 고분고분 죄를 뉘우친 것은 아니었다. 탈옥을 시도한 적도 있으며 동료 죄수와 다툰 적도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는 달라진 모습을 보이게 된다. 그는 수감기간에 두 권의 책을 썼는데, 대충 뜻은 '''나처럼 깡패짓하지마라'''였었다. 조폭 항목에서 조양은김태촌출소 뒤에 어떻게 살아 왔는지 함 확인해 보자. 수익금은 모두 청소년 폭력 예방연구소에 기증했었다고 한다. 그는 사형판결을 받아서 살려고 노력 중이라는 생각해 보면 이유야 안 봐도 비디오......라는 평가가 있기도 하지만, 조양은이나 김태촌과 비교할 바는 아니다. 실제로 그의 책은 흑인 사회의 많은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받는다.
윌리엄스의 지지자들은 그를 노벨 평화상 후보로까지 추대했으며 그의 무죄를 강력히 주장하여 대규모 사면 운동을 벌이고 사형 집행일 당시에도 수백명이 교도소 앞에서 집회를 벌였다고 전해진다. 데스몬드 투투 주교와 배우 제이미 폭스, 수전 서랜던, 영화 <데드 맨 워킹>의 실제 주인공 헬렌 프리진 수녀 등도 사면 운동에 참여했고 그의 갱단 부하들도 당일 시위에 출석하였다. 반면 윌리엄스의 진정성을 의심하거나 윌리엄스의 지지자들이 그가 갱단을 만들어 사회에 온갖 해악을 끼친 사실을 무시한 채 그를 지나치게 미화하고 있다는 비판도 만만찮았다.

3. 최후


지지자들이 적극적으로 구명 운동을 벌였으나 사면은 최종적으로 기각, 2005년 12월 13일 새벽 0시 1분에 독극물 주사 투여로 사형되었다. 캘리포니아의 12번째 사형집행이다.


[1] 지금은 미국 최대의 흑인 갱단이다.[2] 물론 고의적이고, 을 강탈할 목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