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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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전 조직폭력배이자 현재 개신교의 선교사로 1950년 1월 18일, 전라남도 광주시(현 광주광역시) 동구 지산동에서 태어났다. 중학교 때 소년원에 여러 번 갔었고, 이 경험을 계기로 '''조직폭력배의 싹수가 보이기 시작했다'''. 고등학생 때는 아예 조직을 만들어서 광주 시내의 조폭 싸움에 개입했으며, 1960년대 후반에는 자신을 따르던 후배들과 함께 서울로 상경했다. 어릴 때에 주먹질 좀 하고 다니는 양아치의 행보로 조양은은 그나마 일이 잘 풀린 경우다. 대부분의 양아치들은 조폭이 되면 말 그대로 고기방패 신세나 감옥셔틀로 생을 마감한다.[5]
언론에 알려지기로는 김두한 시절의 낭만파 주먹의 계보를 끊고, 속칭 말하는 조폭시대를 연 장본인으로 사시미칼을 처음으로 실전에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6] 물론 조양은은 김태촌이 처음으로 칼부림을 했다고 주장했다. 사실 조폭의 무기사용은 해방 이후부터 흔했다. 소위 선후배간의 위계질서를 존중했으니, 무기를 안쓰고 일대일 주먹 싸움만 했다느니 하면서 낭만파 주먹이라는 하는 것은 모두 후대의 미화이다. 오히려 해방 직후부터 제1공화국 자유당 정권 시절에는 칼과 손도끼는 물론 총격전도 서슴지 않았으니 오히려 군사정권 시절에 조폭들의 무기사용이 줄어든 셈이다.
2. 생애
2.1. 본격적인 활동
1969년부터 서울에서 세력을 키우다가, 조창조-오종철 세력에 편입됐다. 1975년 그들의 지령을 받고 사보이호텔에서 신상사를 습격했으나 맹렬한 반격을 받아 전쟁은 결국 조창조, 오종철, 조양은 세력의 패배로 끝나고 말았다. 이 사보이 호텔 사건은 참 잘못 알려진게 많은데 대표적으로 조양은에게 신상사가 패배하거나 칼에 맞아 은퇴했다는 설이다. 실제로는 조창조, 오종철, 조양은 세력의 완패로 끝났다. 신상사는 90살이 다 된 노령임에도 불구하고 2020년 현재, 지금도 살아있다.
이 일로 조양은은 생명의 위협을 받아 도망다녔다. 조양은의 자서전에 따르면 3년간 도망다니면서 보디가드를 50명씩 데리고 다녔다고 한다. 김태촌과 조양은측은 서로 치열하게 전쟁을 벌였으나 결국 1978년 화해하고 조창조가 신상사에게 사과하면서 함께 데려가서 사과를 시켰다고 한다.#
1980년대에는 OB파[7] 와 양은이파, 범서방파(두목 김태촌)와 함께 언론에 알려지기로는 전국의 3대 조폭으로 불렸으며,[8] 그중 조양은은 양은이파를 이끌었다.
둘 사이에는 미묘한 갈등이 있었는데, 나이로는 김태촌이 조금 더 많지만 조양은이 더 빨리 상경해서 전국구 조폭이 되었으며, 특히 신상사파와의 항쟁으로 조양은이 세력도 커지고 적도 많아지면서 조폭계의 핫 아이콘이 되자 김태촌은 호남계 선배들의 힘을 업고 조양은을 치게 된다. 여기에 김태촌을 견제하기 위해 불러들인 이동재가 OB동재파로 성장하면서 1980년대를 주름잡게 되는 3대 조폭의 항쟁이 시작된다. 한참 후의 각자의 회고담도 웃긴데, 조양은은 자기가 주도해서 김태촌, 이동재와 만나서 자기가 큰 형, 이동재가 둘째, 김태촌이 막내가 되기로 하고 항쟁을 끝내자고 했으나 김태촌의 배신으로 계속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김태촌은 자기가 나이가 가장 많고 이동재는 한참 어린데[9] 무슨 큰형이 조양은이었냐면서 그때의 만남은 호남 조폭 선배가 불러서 얼굴 한 번 봤을 뿐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시대의 조폭들은 김태촌, 조양은에 대해서 '한때 반짝한 퇴물들' 이상의 평가를 내리지 않는다.
1980년에 신군부에 체포되어 재판을 받고 15년 동안 수감생활을 했다. 그런데 교도소에서 감히 고래회도 먹는 등 호화스러운 생활을 했다고 한다. 자서전에 따르면 김대중의 아들과 통방했다고도 하는데 # 또한 순천교도소에서 난동도 부리는 등, 수감 생활은 그리 얌전하게 보내지는 않았던 듯 하다. # 아무튼 95년 3월에 출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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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수감중이던 1994년에는 통역사였던 김모씨와 옥중 연애를 하고 결국 1995년에 출소 직후 결혼을 한다.[10] 결혼식은 여의도 순복음교회에서 했고 주례는 조용기 목사.김용건, 김수미, '''이명박'''이 화환을 보냈다. '''옥중중매'''를 서준 사람이 같은 조폭인 조일환[11] 인데 그 비하인드 스토리가 아주 가관이다. 조일환이 자신의 지인인 조양은의 현 장모에게 조양은의 정체를 '''"전두환에게 찍혀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하는 민주화 투사"'''라고 속였고, 조양은의 장모가 거기에 낚였다고 한다. 김모씨는 조양은이 출소할 때까지 조폭인 줄 몰랐고 얼마 뒤에 조폭부하들이 인사하러 찾아왔을 때 알았다고... 출소한 후 후술할 이 인간이 저지른 만행들을 생각해보면 참...
2.2. 출소와 자기 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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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한겨레신문사 씨네21 앞면에 나왔던 조양은.[12]
출소 이후 자신의 조폭활동을 미화하기 시작하는데 출소직후인 95년 6월에 자서전 '어둠 속에 솟구치는 불빛'을 시작으로 1996년에는 조양은이 20대에 서울로 와서 개판 치던 사실을 미화한 영화 보스를 만들었다. 이 영화에서 조양은이 직접 본인 역으로 출연했는데, 연기는 국어책 읽는 수준이다. 그외 주연들로는 독고영재가 출연했고[13] 유명 중견배우 박근형도 출연한다. 마지막에 조용기 목사가 실명출연, 당연히 조양은을 '''주님의 길로 인도하는''' 목회자로 나온다. 실제로 독고영재와 조양은은 토크쇼도 출연하는 등 꽤나 친한 사이라는 말이 있다. 참고 기사
영화 광고 겸해서 당시 유명한 토크쇼에 나와서 실제 무술 시범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실제보다 약화된 모습이라면서 자랑도 하는데, 영화 보스에서 나온 근육이나 발차기 등을 보면 당시 나이에 비해 세 보이는 것은 사실. 그러나 영화 촬영 후일담에 따르면 액션 장면을 촬영할 때 상대 배우나 엑스트라들이 조금 거칠게 하면 눈알을 부라리며 살살하라고 화를 냈는데, 자기가 반격하는 장면에선 진짜로 쳐서 맞은 상대가 열받아 하면 웃으면서 대충 넘어갔다고 한다. 그 외에도 촬영과정에서 스탭진을 폭행하기도 했다는 말이 있는데...
그 당시의 물가나 여러가지로 따지면 그냥저냥 흥행한 듯. 총 10만 관객을 동원했는데. 당시에는 조폭 두목이 자신의 일대기를 영화로 만들었다는 점 때문인지, TV에서 엄청나게 홍보를 했다. 학교의 불량학생들이 '보스'를 보면서 헛된 꿈을 키우기도 했다. 조양은의 이 영화 촬영은 그에게 나름대로 부와 명성을 안겨주었다.
2003년에는 자신의 일대기를 모은 만화 '조양은의 회상'을 출판했는데, 정말 어처구니없이 미화되었다. 학창시절의 폭력 행위나 비행 행위를 우정으로 미화시킨다.
출소 직후에는 자신이 조폭들의 칼부림을 없애는데 기여했으며 앞으로 조직간의 싸움 때 칼부림은 없애라고 당부#하기도 했다고 한다. 대신 필리핀에서 총질과 고문질을 하고다녔지만...
김성모는 조폭 아가씨라는 만화에서 '제양은'으로 패러디된 바 있다. 링크
'''그러나'''...
2.3. 아직도 갱생 못해
조양은 자신과 그의 아내인 김소영은 조양은이 개과천선했다고 말했다. 1998년에 출소한 이후 노숙자들의 발을 씻겨주는 기행을 펼쳤다. 2004년도에 신학 학위를 받아 등 목사 일을 하고 청소년 상담 등 활동으로 자신이 회개했음을 선전했지만 후술할 사건 사고들을 보면, 조양은이 회개했다는 소리는 완전히 헛소리임을 알 수 있다[14] . 그나마도 법원에서 인정받지 못한 혐의 중 폭행같은 자잘한 의혹들은 다 뺐는데도 이 지경이다.
1995년 4월 출소한지 한달만에 조양은은 중국의 한 조폭을 통해 메스암페타민 약 10kg를 밀수입하려다 실패했고, 1996년 8월에는 증기탕(터키탕) 업소의 임대를 돕겠다고 1억여원을 가로챈 혐의로 출소 1년만에 다시 구속되었고 수사과정에서 앞에 언급한 마약과 천부교 교주 박모씨의 자녀에 대한 살인미수로 검찰이 사형을 요청했다. 최종적으로 살인미수는 인정되지 않고, 사기와 마약 폭처법만 인정되어 최종적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영화로 반짝 명성을 얻었던 조양은은 이 사건으로 다시 완전히 추락한다
2001년에는 200억원 규모의 해외원정 도박으로 다시 체포되어 다시 2년형을 받아 감옥에 들어갔다. # 게다가 2003년에는 음주운전이 적발되었다. #
2005년 10월 역삼동 유흥업소에서 사람을 재떨이로 폭행했고 기타 갈취 혐의로 2007년 4월 구속 기소되었다. 기소 후 2달만에 보석으로 풀려났지만 결국 2008년 2월 재떨이 폭행이 인정되어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또 감옥에서 1년 넘게 썩었다. 보석기간 중인 2007년 8월에는 사람을 패고도 정신 못 차렸는지 벤틀리를 임대하려다 사기도 당했다.
2011년에는 1억원을 갈취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는데 웃기는 사실은 그 외에도 자신의 피의사실을 공표했다고 경찰관을 고소했단 거다. 2011년 5월에는 트로트 가수를 협박한 혐의까지 나왔고, 조양은은 경찰조사 도중인 2011년 6월에 중국을 거쳐 필리핀으로 도주했다가 도주과정인 2013년 초에 필리핀에서 교민을 협박하고 고문했다. 폭행피해자는 조양은에게 지인 한명을 소개해줬는데 그 지인이 200만원을 빌리고 잠적하자 피해자를 권총으로 위협하고, 구타에 중요부위를 담뱃불로 지지는 등 3시간 가까이 고문을 가했다고...
2013년경 당시의 조양은 영상.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것도 모잘라 필리핀 마닐라에 머무를 당시 교민들 사이에서 외압을 행사하는 등 과시를 했다고 한다. 조양은을 체포하기 위해 필리핀 경찰특공대, 유엔마약범죄수사국 등 버스 3대 인원의 병력이 투입됐다고 한다. 필리핀 교민들 사이에서는 유명인사? 였으며 외부에 자주 목격 했다고 한다.
결국 필리핀 카지노에서 검거되었고, 2014년 12월 19일에는 사기 혐의로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았고 조사과정에서 들킨 필리핀 교민 고문으로 2015년 8월에 고문과 협박으로 추가로 3년형을 추가로 선고받았다.
2015년 11월에 열린 항소심 2차 공판에서 "내 생사가 걸린 일이다, 세세히 따져달라"며 여전히 정신 못 차리고 무죄를 호소했다.
2016년 9월 항소심 고법에서 증거불충분으로 무죄를 받았다. 핵심 증인인 피해자가 공판에 나오지 않고 차일피일 미루고 처벌을 바라지 않는다고 처벌불원서를 법정에 내고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지금 이 피해자는 행방불명 상태이다.
그 후 기사에 안 나오는걸로 봐서는 복역을 마치고 조용히 사는 듯 하다.
2.4. 선교사의 길
2019년말 출소 후에는 아예 '아이야세계선교회'를 설립했으며 지인 130여명을 전도했다고 한다. 그리고 70세의 노구를 이끌고 개신교 선교사가 되어 해외선교를 가는 것으로 보인다.
2020년 배우 이정길[15] 과 함께 에티오피아로 가 선교활동을 했다고 한다.
이후 국내 유일의 전도 잡지 아름다운 사람에 출연해 단독으로 인터뷰도 했다. 하지만 이때까지 한 짓이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커버 칠 수 없는 정도라 네티즌들의 반응은 싸늘한 편이다. 올라온 댓글 중에는 조양은의 딸로 추정되는 댓글도 있다.
3. 미디어에서
전국구 조폭으로 악명높은 사람이다보니 드라마 같은 매체에도 종종 등장하는 편이고 무엇보다 본인이 회개했답시고 찍어놓은 영화까지 존재한다.
조양은 본인이 직접 제작하고 주연을 맡은 영화 보스에서는 주먹세계를 휘젓고 다니던 전국구 폭력조직의 두목이 조직생활에 환멸을 느끼고 어느 목사를 만나 회개하고 새 삶을 사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2011년작 드라마 빛과 그림자에서는 조태수라는 인물로 그려지는데 회칼하나로 전국을 평정했다는 설정 상 이사람을 모티브로 삼은 듯 하다. 배우는 김뢰하. 중반부까지는 주인공과 대립하다가 장철환에게 토사구팽 당한 것을 계기로 주인공과 의기투합하여 연예계에 뛰어드는 것으로 그려지는데 비록 시기상으로는 안맞는 부분이 있지만[16] 조양은 역시 연예계에 뛰어들기도 했고 삼청교육대에 끌려가는 장면도 있는 등 어느정도 잘 고증해놨다.[17] 배우 특유의 낮고 차가운 목소리가 배역과 잘 어울려서 그야말로 카리스마가 묻어난다.
[1] ‘조폭 큰형님’ 조양은, 선교사로 제3의 인생 참고[2] 前 조직폭력배[3] 1998년생이라고 한다. 그의 나이 48세에 본 늦둥이다.[4] 2017년 부터 불법 도박 사이트 및 불법 동영상 유포자들에게 점령당하고 2018년 2월 이후로 글이 하나도 안 올라오는 유령카페가 되었다.[5] 국내 조폭이나 일본 야쿠자 조직들 내에 "전투원"이라는 직무를 가진 조직원들이 따로 존재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전투원이 직접 사람을 죽이거나 불구로 만들면 증거조작을 통해 전투원들 대신 감옥에 가줄 이런 감옥셔틀들이 있기 때문이다. 여담으로 문화권은 다르지만 마리오 푸조의 대부에서도 이렇게 증거조작을 통해 직접 살인을 행한 전투원 대신 다른 사람을 감옥에 보내는 과정이 상당히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6] 그러나 사보이호텔 습격 당시에 회칼은 쓰이지 않았다. 조양은을 비롯해서 관련자들도 꾸준히 칼을 썼다는것은 부인한다. 실제로 조양은은 도망다니다 체포 된 뒤 사보이호텔 사건으로는 집행유예로 풀려났는데 칼을 써서 사람이 죽거나 다쳤다면 그런 형량은 불가능하다.[7] 정확히는 이동재가 이끌던 OB동재파. 처음 조직이 광주광역시 OB맥주 공장 일대에서 출발해서 경찰이 붙인 이름이 OB파.[8] 그러나 조폭계 인사들은 소위 3대 패밀리는 언론이 키운 과장이라고 깎아 내리기도 했다. 출처 - 김태촌, 조양은은 주먹사회 패잔병 부분.[9] 이동재는 1952년생이다.[10] 당시 그의 나이 46세였다. 지금도 늦은 편인데 당대로 친다면 매우 늦은 나이에 결혼 한 셈. 다만 조양은의 경우 감옥생활을 오래했으니 뭐 어찌보면 늦은 결혼이 당연할지도.[11] 친동생같이 챙겼다고 한다. 같은 본관 성씨인 것도 한 몫하기도 했다고도 한다.[12] 나중에 씨네21 편집부가 그동안 표지 모델들에 대한 회고를 하면서 "영화가 그렇게 흥행 대박이었던 것도 아니고 조양은 측에서 압박을 준 것도 없었는데 우리가 눈에 뭐가 씌였는지 조양은을 표지에 박았다"고 했다.[13] 독고영재는 실제 젊은 시절 뒷골목 주먹질 좀 했다고 SBS 강심장 3월 22일 방송에서 이야기했다.[14] 현실에서 진짜 회개했다고 드러난 조폭 출신 인물은 이성순, 이화룡, 안상민, 정일모(홍만길로 유명한 배우)등 극소수 밖에 없다.[15] 실제로 조양은과 배우 이정길 두 사람은 40년 전부터 인연이 닿았다고 한다.[16] 극 중 조태수가 영화계에 투신하는 것은 80년대 초이지만 실제 조양은이 영화계에 발을 들인 것은 95년에 출소한 이후이다.[17] 다만 조양은이 회칼 하나로 전국을 평정했다는 식의 묘사는 사실과 아주 다른게 조양은은 애초에 전국을 평정했다기에는 일개 행동대장에 지나지 않았으며 칼을 맞았다고 알려진 인물은 애초에 현장에 있지도 않았다. 당장 위의 1번 문단을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