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1. 理由
1.1. 관련 문서
2. EU
3. 동명이인
3.1. 진나라의 인물
李由
진나라의 승상 이사의 장남.
그의 기록은 사기 진(秦)세가, 진시황세가, 이사열전 등에 단편적으로 전해 내려온다. 승상 이사의 장남으로 요충지였던 삼천태수를 지냈다. 그런데 진승의 군대가 경내를 지나가는데도 이를 막지 않았고 결국 이것은 조고가 이사를 반역죄로 모함하는데 큰 구실 중 하나가 되었다. 결국 이사는 멸족당했으며 호해는 이유를 추궁하기 위해 사자를 보냈다. 그러나 이미 삼천은 항우에게 점령되었으며 '''이유는 죽음을 당한 후였다.'''
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에서는 아버지가 자신 때문에 체포됐다는 소식을 듣고, 자살공격을 벌여 자신의 결백을 보인다. 요코야마 미츠테루의 초한지에서는 이사의 아들이라는 건 안나오고 그냥 장함의 똘마니1로 등장. 초나라 항장을 쳐죽이는 등 맹장으로 묘사됐지만... 항우에게 얼간이 새끼라는 소리를 듣고 그가 휘두른 극에 머리가 깨져 사망.
이러한 표현은 창작의 영역이지만, 실제로도 삼천에서 항우와 교전할 당시 허무하게 항복하지는 않고 여러 차례 교전을 벌였다는 기록들이 단편적으로나마 있다.
3.2. 신라의 인물
李儒
생몰년도 미상
932년(경순왕 6년) 4월 부사로서 김불(金昢)과 이유가 후당(後唐)에 조공하였다는 기록 말고는 등장하지 않는다.
3.3. 조선의 인물
李愉
(1365년 ~ 1423년)
본관은 덕산(德山), 자는 명보(明普), 호는 은재(隱齋)이며 판도판서 이영(李英)의 아들이다. 조선초기 여진족 토벌과 북방개척에 공을 세웠다.
1382년 문과에 급제하였으나 조선 왕조가 들어서자 시골에 은거하며 지내다가 개국공신 하륜(河崙)의 천거로 벼슬길에 나아가 사헌부지평.우부승지.직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1405년에 여진족을 정벌하였고 이후 형조참의·판상주목사 등을 지냈다.
1418년에 사은사로 명나라를 다녀오면서 옷감을 들여와 옷 색깔만으로도 직위를 구분할 수 있도록 조정 중신들의 관복을 만들었다. 형조참판.형조판서를 거쳐 함길도 관찰사로 임명되어 여진족 정벌의 공을 세우다가 1423년에 죽었다.
3.4. 조선의 제 7대 임금
조선의 제 7대 임금 세조의 본명이 이유이다. 해당 문서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