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귀/애니메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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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시귀의 TV 애니메이션. 오노 후유미의 소설을 뼈대로 후지사키 류가 그린 만화를 기반으로 하여 2010년 7월 8일부터 후지 TV의 노이타미나로 총 2쿨 분량[1] 으로 애니메이션화되어 방영되었다. 감독은 마크로스 7 등으로 다양한 작품의 감독을 맡아온 아미노 테츠로가 담당했으며, 애니메이션 제작사 도우무의 마지막 원청작이다.
1권 판매량은 1300여장 정도. 안습. 그림체는 나름 모에를 노리긴 했으나 내용이 너무 어두워서인지 잘 팔리질 못했다.
미국에서는 영어더빙되어 방영되었다.
2. 등장인물
시귀/前 등장인물, 시귀/後 등장인물 문서 참고.
3. 주제가
4. 회차 목록
5. 평가
우선 비평적인 평가는 좋은 편이다. 아미노 테츠로 감독이 직접 음향 감독을 담당했기 때문에 성우들의 열연이 가감없이 담겨 있고, 애니메이션 자체 퀄리티도 상당한 수준으로 뽑혀나왔다. 수많은 인물들이 한 장면에 다수 나옴에도 작화가 붕괴되는 일 없이 빼어나게 유지되고 있으며 연출도 작품 본연의 호러 느낌을 잘 살리고 있다. 시귀가 되어 사람을 덮치는 장면에서는 무서움을 넘어 섬뜩함이 느껴진다는 평이 많다. 최후반부에 시귀의 정체를 알고 반격하는 마을 사람들의 시귀 사냥 장면의 연출도 광기어린 면모들을 잘 살렸다.
그러나 흥행에는 참패했는데, 캐릭터 디자인을 후지사키 류 만화판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너무 시골스럽지 않게 튄다는 거부반응이 많았다. 도시를 선망하는 시미즈 메구미와 아예 도시에서 이사온 카네마사 인물들은 그렇다치더라도 다른 시골 사람들도 시골인답지 않게 모습이 너무 초현실적인 모습이라 되려 현실감이 없었다는 평.[6] 그 외에도 작품의 분위기가 시종일관 어둡고 음울한데다 환기시킬만한 개그 에피소드도 없다 보니 이에 질리거나 무서워서 못보겠다는 반응도 있었으며 구성상 내용 절반 가까이 마을 사람들이 속수무책으로 죽어나가는 원패턴이 이어지기 때문에 지루함을 호소하는 반응도 많았다. 결국 흥행 면에서는 BD 판매량 1000여장이라는 성적을 내고 참패하고 말았다.
이야기는 처음에는 후지사키 류의 만화판을 기반으로 하였으나 방영 분량이 만화책의 분량을 거의 따라잡은 탓에 후반부는 원작 소설의 전개에 맞춰 진행되었다. 그 탓에 전개 자체는 자연스럽게 이어졌지만, 원작에도 만화판에도 충실하지 못해 초반과 후반 전개의 위화감이 상당하다.
애니메이션화 과정을 거치며 원작의 메인 플롯을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소소한 부분들에 가해진 수정을 몇 군데 찾아볼 수 있다. 허나, 주제의식이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은 주목되어야 할 부분이다.
시귀측의 입을 빌어 시귀와 인간이 다를바 없다는 것을 표현하고, 주민들의 침입자(시귀)에 대한 공동체 의식과 자기방어행동이 공포와 분노에 의해 변질돼 마녀사냥과 이분법적인 군중심리에 물들어가고, 그 군중심리의 부정적 표출에 휩쓸리더니 주민들의 행위가 급기야 광기와 가학적 파괴욕구로 화해 가는 과정을 통해서 그들을 비판한 염세주의와 허무주의가 근간을 이루던 원작의 가치관과 정면으로 충돌을 시도한다.[7][8]
대개 이런 주제의식이 간접적, 내재적이 아니라 직접적, 표면적으로 표출되는 부분이 종반부인 것처럼 등장인물들이 결말을 맞이하는 것 또한 종반부이다 보니 그 결말들이 사망한단 사실은 같되 다소 다르다. 나츠노와 타츠미가 대표적이고 원작에선 비중이 애니메이션보다 다소 낮았던 시미즈 메구미와 오오카와 토미오(거구의 노인인 술집 주인)또한 그렇다.
원작에서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던 허무주의를 대변하는 등장인물이 타츠미인데, 애니메이션에서는 그런 역할이 원작 그대로 주어지지 않았다. 관점에 따라서는 전락했다고도 할 수 있다. 대비적으로 나츠노는 타츠미와의 마지막 대결에서 지키던 침묵을 벗어나 인간을 비판한 작가 오노 후유미, 그리고 시귀의 이념과 논리에 그들의 행위적 정당성과 본질적 올바름에 근거한 역비판을 가하는 인물로 격상되었고 이 부분에서 본 애니메이션은 원작과 만화판이 지니던 염세주의와 허무주의적 색채는 퇴색해버리고 만다.[9]
만화와 원작 모두에서 집단의 배타성을 논하는 문제의식과 맞물려 '광기와 가학적 파괴욕구의 화신으로 변질되어버린 인간'을 표면적이고 직접적으로 상징하는 인물로 그려졌던 오오카와 토미오는 애니메이션에서 역시 대대적인 개수를 거쳤다.
스나코와의 마지막 대면에서 예수상 앞에서 신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며 원망하던 스나코를 더러 삶의 기반인 마을을 유지하기 위한 공동체, 그리고 그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조화와 질서를 직접적으로 설교하고 그 '조화와 질서'의 연장선에서 천륜(생명이 나고 죽는 과정, 인륜이 아니다.)을 거스르고 생명을 마음대로 해치는 시귀의 이념과 행동을 나츠노와 마찬가지로 자연원칙과 도덕적 정당성에 근거하여 비판하였다.[10]
시미즈 메구미의 최후또한 후지사키 류의 만화와 다르게 변했다. 초반부터 직접적으로 집단 내(內) 부적응자를 상징하는 인물로서 작중 위치에 있던 메구미는 보다 더 비참해진 최후로 더더욱 직접적이고 강렬하게 '공동체가 존재하는데 있어 대개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부산물인 <배타성>'에 대해 통렬한 문제의식을 제기한다.[11]
6. 둘러보기
[1] 노이타미나는 1쿨 분량의 기준인 12화도 항상 11화로 제작해온 특징을 지녔음. 2쿨은 22화.[2] 감독 이름의 알파벳 철자를 거꾸로 뒤집은 이름. 정확히는 アミノテツロ→aminotetsuro→orustetonima→オルツェトニマ가 된다.[3] BD 특전 수록[4] BD/DVD 8권 발매일[5] BD/DVD 9권 발매일[6] 후지사키 류도 이를 의식했는지, 타나카 카오리 같은 시골 사람들은 비교적 수수한 톤으로 그리려고 노력 했지만 그조차도 컬러풀함을 억제하지 못해서 내용이 요구하는 질박함하고 거리가 멀었다.[7] 오노 후유미의 원작이 단일한 주제의식을 가지던 것과 차별화되어 주제의식을 이루는 과정에서 대두되는 문제의식들에 대칭되는 문제의식을 임의적으로 내세워 각 의식을 상징하는 인물들을 통한 가치관의 대립이 작중에서 보다 두드러진다.[8] 좋은 방향으로 해석하면 균형잡히게 변했고 좋지 않은 부작용이라면 원작의 명확하던 주제의식이 산란되어 훼손되었다.[9] 원작에서 나츠노는 초반에는 비중 있게 나오다가 결국 사망하면서 급속도로 잊혀졌고, 만화판에선 타츠미가 나츠노와의 최후의 대결 끝에 쓰러뜨리지만 실성한 나츠노의 부친에 의해 샷건을 맞고는 주의가 흐트러지고 이어 나츠노가 그를 붙들고 절벽에서 뛰어내려 동반자살한다.[10] 원작 소설에선 공동체의 군기반장 역할을 하며 시귀화한 아들을 죽이고도 웃는 인물로 그려졌다. 게다가 세이신이 절로 도주하자 전후사정 살피지 않고 주민들을 데리고 절의 인간들도 한패라며 죽인다. 또한 결말에서 스나코에게는 그저 네가 원흉적 가해자이니 우리의 폭력은 정당하다고 합리화하며 즐겁게 한번에 죽이지 않고 괴롭힌다. 세이신에 의해 베여 죽는건 동일하다.[11] 원작상에선 마을에 대해 원망과 분노를 폭발시키며 비판하는 연출이 없고 그저 도망치다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