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스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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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드니 스완즈'''
'''Sydney Swans'''
'''정식 명칭'''
Sydney Swans Limited
'''별칭'''
'''스완즈 (Swans)''', '''블러즈(Bloods)'''
''' 팀컬러'''
'''빨간색 ''' '''흰색'''
'''창단'''
1874년 (창단)
1982년 (연고이전)
'''연고지'''
호주 뉴사우스웨일즈시드니
'''홈구장'''
시드니 크리켓 그라운드 (Sydney Cricket Ground)
'''CEO'''
톰 할리(Tom Harley)
'''감독'''
존 롱마이어(John Lomgmire)
'''주장'''
조시 P. 케네디(Josh P. Kennedy)
데인 램피(Dane Rampe)
루크 파커(Luke Parker)
'''공식 홈 페이지 와 SNS'''
#
'''기록'''
'''우승'''
(5회)
'''1909, 1918, 1933, 2005, 2012'''
'''최다 출전'''
애덤 굿즈(Adam Goodes) - 372 경기
'''최다 득점'''
밥 프랫(Bob Pratt) - 681 골

클럽 테마송. [1]

Cheer, cheer the red and the white,

Honor the name by day and by night,

Lift that noble banner high,

Shake down the thunder from the sky

Whether the odds be great or small,

Swans will go in and win overall

While her loyal sons are marching

Onwards to victory.

1. 개요
2. 역사
2.1. 창단
2.2. VFA 시절, VFL 초기
2.3. 침체기
2.4. 시드니로 연고이전
2.5. 바라시에서 루스까지
2.6. 2005년 시즌 - 72년만에 우승


1. 개요


오스트레일리안 풋볼AFL 팀. 뉴사우스웨일즈시드니 시에 위치하는 클럽. 시드니에 1982년에 연고이전하였으며, 전의 연고지는 사우스 멜버른 근교.[2] 별명인 '''백조'''는 서호주 출신[3]이 많았던 이유와 옛 연고지가 호수에 가깝기 때문. 팀 컬러인 적백은 창단부터 사용하고 있다. GWS와 함께 뉴사우스웨일즈 주에 연고하는 클럽.
동시드니 지역[4]AFL의 지원 버프를 받은 강호 클럽. 원래 사우스 멜버른은 재정이 안좋았는데 시드니로 옮기고 나서 재정적 & 성적적으로 강해졌다.

2. 역사



2.1. 창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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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스 멜버른 시절 사용되었던 레이크 오벌. 연고이전 이후로 폐기되었다.
1874년에 창단되었으며 6년 후에 주변에 있던 앨버트 파크 풋볼 클럽과 합하면서 이름은 유지하되[5] 색깔을 앨버트 파크의 빨강-하양색을 쓰게 되었다. 유니폼은 가로세로줄 아니면 띠를 사용했는데, 빨강의 사용으로 인해 지금도 쓰이는 블러즈(Bloods)라는 별명을 같게 된다.

2.2. VFA 시절, VFL 초기


앨버트 파크와 합한 사우스 멜버른은 VFA에서 꼽히던 강호로서 1881년에서 1890년 사이 5번 시즌.(1885년 무패우승과 1888~90년 3연패) 또한 VFL로 가기 전 1896년에 콜링우드와 시즌 끝 순위와 기록이 동일하게 되자 사상 처음으로 플레이오프으로 우승팀을 결정하게 되었지만 콜링우드가 우승. VFA 시절 세웠던 기록때문에 VFL 창단 8팀 중 하나로서 선택되었다.
1909년, 1918년과 1933년에 우승하면서 초기부터 1945년까지 3번의 우승과 8번의 준우승를 기록. 그 중 1930년대에 빅토리아와 여러 주로 부터, 잭 비셋(Jack Bissett) 아래 최고수준의 선수들을 데려오면서 당대 최고의 팀중 하나로서 서게 된다. 그중 서호주 출신이 많았던지라 서호주의 상징인 흑조를 가져와 현재의 상징으로 유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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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밥 프랫이 압박이였는데 1930년대와 1946년동안 182경기 681골을 기록. 우승해인 1933년에서 1935년동안 100골 이상을 넣으면서 당대 최고의 공격수/포워드로서 자리잡게 된다.
1934년에는 프랫은 지금까지 남아있는 공동기록인 150골을 넣었지만 결승에서 리치몬드한테 패하면서 준우승. 다음해에는 결승 직전 '''사우스 멜버른 팬이 운전하던 트램에 치어 부상당하면서''' 프랫이 없던 사우스 멜버른은 콜링우드한테 우승을 넘기게 되었고 또 다음해에도 콜링우드한테 준우승하였다.
1945년까지사우스는 4강 진출에 한번만 하였고 그해 결승에 진출해 첫 우승 상대였던 칼튼을 상대하였지만 날씨와 내용이 둘다 막장경기 속에서 준우승하게 되어 이후 사우스 멜버른은 나락의 길을 걷게 된다.

2.3. 침체기


2차 세계대전기 이후로 사우스 멜버른은 재정난으로 인해 최악의 상태로 1970년까지 4강 진출을 실패하게 된다. 그 당시동안 최고순위가 1952년 빼고 7~8위, 게다가 영입도 타 팀들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밀리던 지역 리그를 배정받아 선수실력이 오르는데 가름막고 있었다. 게다가 그리스축구팀 사우스 멜버른 헬라스(現 사우스 멜버른 FC)의 인기도 한못이 있기도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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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재정과 지역배정 부재로 인해 잡고 있던 성적에도 불구하고 이름난 선수들을 꽤 남겼는데, 그 예로 밥 스킬턴(Bob Skilton). 리그내 최고의 선수로서 활동하고 있었으며 브라운로 메달(최우수 선수)을 세번딴 선수 중 하나로 남게 되었다.
1946년부터 계속되는 부진으로 인해 파이널 시리즈도 겨우 두번밖에 못올라오고 침체되는 재정때문에, 사우스는 당대 계획되고 있던 13번째 시드니 클럽의 자리를 매우게 되었고 1982년부터 모든 홈경기를 시드니로 옮기게 된다. 그리고 그 다음해 현재 명칭 시드니 스완즈로 계명한다.

2.4. 시드니로 연고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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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에서 이전기념 사진을 찍은 선수단.
침체되었던 재정난에도 불구하고 연고이전은 말이 많았다. 팬들은 사우스 멜버른에 묵는 걸 원하였고, 보드진도 연고유지파가 차지했지만 선수들의 반발로 물러나고 1983년 완전히 시드니로 이전한다. 다만 재정의 문제는 계속 있었는지 1985년 의료 기업인 제프리 에델스턴(Geoffery Eldesten)이 클럽을 6백 3십만 호주 달러로 클럽을 구매한다. 에델스턴은 회장으로서 1년후 물러나지만 명감독 톰 헤이피(Tom Hafey)를 모셔다가 질롱에서 볼튼, 투히와 훗날 브라운로 메달리스트 그렉 윌리엄즈(Greg Williams)를 영입, 힐리와 네이글도 데려오고 1986년 시드니는 드디어 파이널 시리즈에 진출한다. 특히 주요 선수 중 워윅 캐퍼(Warwick Capper)는 컬트적인 면모와 패션을 이용하면서 팬들을 열광시켜, 인기가 오르는데 이를 썼다.
다음해에 파이널 시리즈 연속진출하는데 성공하지만, 그 다음 1988년에 다시 파이널 진출 실패하면서 헤이피는 사임한다.
게다가 사유화에 불구하고 재정난에 계속 시달리자 캐퍼나 윌리엄즈 등 주로 활약하던 선수들을 팔아버린 후 그니마 레전드 감독 론 바라시(Ron Barassi)를 1993년 도중에 불러오는데 불구하고도 12위를 못넘는 성적과 평균관중이 4자리 수로 떨어지면서1992년에서 1994년 3연속 최하위에 머무른다.


2.5. 바라시에서 루스까지



2.6. 2005년 시즌 - 72년만에 우승


[1] AFL의 원조 클럽들의 테마송은 자작이 아니기 때문에 원곡이 있다. 참고로 사우스 멜버른 시절이였기 때문. 원곡은 노트르담 대학교의 응원가.[2]멜버른 그랑프리 서킷이 사우스 멜버른의 앨버트 파크에 위치하고 있다. 사우스 멜버른의 전신 클럽은 앨버트 파크. 참고로 옛 경기장은 축구장으로 바뀌였다.[3] 서호주의 상징은 블랙 스완.[4] 시드니에서 부유한 지역.[5] 아이러니하게 앨버트 파크는 창단시 사우스 멜버른 명칭을 사용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