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달러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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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의 통화. ISO 4217코드는 AUD, 기호는 $인데 다른 달러계 통화와 구분할때는 A$ 또는 AU$라고 표기한다. 보조단위는 센트.
발행담당은 중앙은행이 아닌 준비은행에서 하고 있다. 호주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조폐강국으로 호주 달러 지폐와 동전 모두 호주 조폐국에서 찍어내고 있다. 후술하겠지만 전 세계에 폴리머 노트를 공급[1] 하며 대량의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는 효자사업체이기도 하다.
인플레는 1.6%로 안정적인 편인데, 2008년 이후로 이어진 경제위기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는 위엄을 보인 바, 환율이 가파르게 오른 통화 중 하나이기도 하다. 또한 금리도 높은 편이라[2] 인기가 좋다보니, 2012년 현재 무역통화량으로 3위를 기록하고 있다. 또한 한국에서는 돈 좀 만지는 사람들에게 호주달러 예금이 인기가 있다. 수요가 꾸준해 환율방어가 되는데다 금리까지 높으니까. 근데 이 해 이후로는 요즘 미친듯이 폭락중이다. 2016년 1월~2월은 830~860원대를 형성하고 있다.
세계에서 신뢰도가 높은 화폐 중 하나로, 오세아니아 권역의 다른 강자인 뉴질랜드 달러보다도 훨씬 독보적인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3] 미국 달러, 유로, 일본 엔, 파운드 스털링, 스위스 프랑, 캐나다 달러 등과 더불어 외환보유고 자산으로 쓸 수 있는 안전 통화 중 하나이다.
호주 외 키리바시, 나우루, 투발루에서도 통용화로 사용하고 있으며, 해외령인 헤럴드 섬, 맥도날드 섬[4] , 크리스마스 섬, 코코스 제도, 노퍽 섬에서도 사용된다.
전신은 호주 파운드로, 1966년 2월 14일에 10진법의 도입과 동시에 교체되었다. 교환비는 1파운드 = 2달러. 당시 환율은 AUD2.50/GBP, AUD1.12/USD였다. 단위에서 예상할 수 있듯이 영국 파운드화와 규격이 완전히 똑같았다. 하지만 영국 파운드는 1937년부터 은화였던 3펜스를 황동으로, 1946년부터 은화였던 6펜스,1실링과 2실링, 하프 크라운, 5실링을 백동으로 교체해서 발행한 것과 달리 호주 파운드는 해당 주화들을 꾸준히 은화로 발행하는 등(대신 1946년부터 해당 주화들의 순도를 은 92.5%에서 50%로 변경했다.) 차이는 있었다.
수정된 이 시점(2020년 12월 29일)에서 호주 파운드를 보유하고 있다면 호주 준비은행으로 가서 교환 요청해야 한다.
십진수 이전 지폐 교환의 경우 달러로의 변환은 액면가에 2를 곱하여 얻는다.
예를 들어, 1 파운드 지폐는 2 달러로 변환되며. £ 5는 $ 10로 변환된다. 그리고 £ 10는 $ 20로 변환된다. 이에 대한 유일한 예외는 $ 1로 변환되는 10 실링 지폐이다.[5]
2. 지폐
2.1. 1차
1966년부터 1988년경까지 쓰여진 통화로, 초창기 국명표기는 Commonwealth of Australia였으나, 개정판(고액권 2종 추가)이 나올 때는 앞부분이 모두 빠져 그냥 Australia로만 표기하게 되었다. 비십진법과 숫자가 안맞는 5달러(=£2,10/-)의 경우는 1년 늦게 출시되었다. 최근에 1차 면지폐는 환전이 불가능해졌지만 만약, 갖고 있다면 호주 여행때에는 현지 은행이나 사설환전소를 통해서 교환하는 것이 좋다.
2.2. 2차 (폴리머)
1988년부터 등장. 이때 세계 최초로[16] 개발이 완료된 찢어지지 않는 지폐인 폴리프로필렌(PP) 폴리머 지폐를 만들어 공급하고 있다. 참고로 특허가 걸려있기 때문에 원재료를 호주 조폐국 말고는 제작할 수 없으며, 특유의 투명창과 재질 때문에 완벽한 위조가 상당히 까다로운 정도를 넘어서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것으로 유명하다. 다만 출시가 워낙 오래돼서 위폐가 아주 안나온건 아닌데 유독 50달러 위폐가 정말 많다. 호주에서 위폐를 찍어내던 일당이 검거된적이 있었는데 비범하게도 직접 폴리머 필름으로 찍어냈다고 한다.
기존에도 앞뒷면에 인물이 배치되었지만, 이 시리즈에는 시대의 변화로 남자와 여자가 서로 번갈아가며 배치되고 원주민도 들어갔다.
- 10달러 배경부분에 깨알같은 글씨가 적혀있는 사실이 스펀지에 소개된 적이 있었다. 폴리머 지폐의 우월한 마이크로 텍스트(미세문자)의 한계를 보여주고자 도입한 것으로, 다른 권종에도 잘 찾아보면 하나씩 숨어있다.
2.3. 3차 시리즈
2016년 9월을 기점으로 한 해 주기로 새로운 호주 달러가 시중에 풀리고 있다. 폴리머 지폐의 원조 국가 답게 뛰어난 기술력을 공개하였는데 신권의 중앙 한줄을 통째로 비워 투명하게 처리했으며, 시각 장애인들을 위한 촉각감지기능도 새로이 도입하였다. 시중에 신권이 풀리면 구권은 발행이 중단되나 추가적인 회수조치나 통용중지로 이어지진 않으므로 구권과 신권을 함께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AUSTRALIA' 글씨체가 필기체에서 인쇄체로 바뀌었다. 50달러 신권이 인쇄된 단어중 철자가 빠진 단어가 익명의 라디오 청취자의 제보로 'responsibility'→'responsibilty'가 3번 사용됐다는 것을 발견되었다.#
3. 동전
1차 시기에는 1966년부터 발행한 1, 2, 5, 10, 20, 50센트 6종이었다. 그런데 70년대부터 서서히 드러나는 인플레로 인해 1달러가 1984년에, 2달러가 1988년에 새롭게 등장하며 동시에 지폐는 폐기크리. 따라서 2차 시기부터는 5센트부터 2달러까지 6종구성이다. 1센트와 2센트 주화는 1991년까지 발행하였지만, 지나치게 낮은 액면가로 인해 1992년부터 발행 중단하였다. 발행 중단되어 국가에서 보관하고 있던 1센트, 2센트 주화는 훗날 녹여서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의 재료로 쓰였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1966년~1968년 사이에 유통된 50센트는 은화라 제법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다.[29] 12각형인 현재와는 달리 원형이었으며, 계속 은화로 발행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은의 가격이 급상승하면서 동전의 액면가보다 재료비가 더 비싸지자[30] 재질을 백동(구리 75%, 니켈 25%)으로 바꾸었다. 또한 20센트 동전과 크기가 비슷하여 헷갈려하는 경우가 많았다보니, 구별을 쉽게 할 수 있도록 모양도 12각형으로 변경하였다.
한국의 원화 동전과 우연의 일치로 최초 발행년도가 똑같으며[31] 소액동전 2종류가 1991년을 마지막으로 발행중단된 것도 똑같다.[32] 호주도 매년마다는 아니지만 1센트와 2센트를 잊을만하면 한번씩 민트세트용으로 발행한다.
호주 달러에 쓰이는 소전[33] 은 대한민국의 소전 제작업채인 풍산그룹이 담당하여 호주 달러에 쓰이는 소전을 발행하고 있다.
4. 환율
2015년 9월 24일 기준으로 기존 10년간 환율 변동은 다음과 같다.
- AUD/USD 기준으로 할 때 환율 최고치가 1.10321 환율이 낮을 때 0.60492
- AUD/KRW 기준으로 할 때 환율이 높을 때 1214.80원, 환율이 낮을 때 687.69원
환전 스프레드율은 평균 2%이다. 더 싸게 살려면 사설 환전소나 서울역 환전센터에서 하는 것이 유리하다.
2020년 12월 29일 명동 어느 환전소 기준 현금 사실 때 환율은 1AUD = 840원[34]
A$5= \4,200
A$10= \8,400
A$20= \16,800
A$50= \42,000
A$100= \84,000
[1] 예로 베트남 동, 루마니아 레우, 캐나다 달러 등.[2] 기준금리는 3%대이지만 은행 금리는 5~6%씩 나오다 보니 인기가 없을 수가 없다. [3] 사실 이 지역에서 호주, 뉴질랜드 말고는 세력을 가진 나라가 없다시피 한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다.[4] 패스트푸드점 맥도날드와는 무관하다.[5] 예: 351 호주 파운드 = 702 호주 달러[6] 데이비드 말랑이(David Malangi). 노던 준주 출신의 원주민(욜릉우, Yolngu) 예술가이다. 처음 1달러 지폐 제작 당시 '''무단으로''' 그의 화풍을 따라한 도안을 박아다 발행하는 바람에 법정 소송까지 이어질 뻔하다가 준비은행측이 기념메달과 함께 보상금을 전달하는 등, 달래느라 애를 썼다고 한다.[7] 영국군 출신의 호주 개척가로, 양모산업에 큰 공헌을 남긴 인물이다. 그냥 검색하면 나타나는 동명의 목사님과는 동명이인.[8] 농학자. 호주에서 자생하기 좋은 밀 품종들을 만들어내, 밀 수출 사업에 공헌한 인물이다.[9] 자선 사업가.[10] 영국 태생인데 문서 위조범으로서 14년 유배형을 받고 시드니로 쫓겨나 건축가로서 살았다. 결과가 어떻고 간에 개과천선한 범죄자가 지폐인물로 선정된 상당히 드문 케이스.[11] 미국-호주 태평양 횡단 비행에 최초로 성공한 파일럿이다. 시드니의 킹즈퍼드 스미스 국제공항은 이 사람의 이름에서 따온 것.[12] 항공 공학 발명가.[13] 호주의 과학자로 코코스 제도의 초대 영주였던 존 클루니스 로스(John Clunies-Ross)의 종손(동생의 손자)이다.[14] 도안만 얼핏보면 아랍인처럼 생겼지만, 멀쩡한 유럽계 백인이다. 지질학자임과 동시에 남극탐험가이며, 어니스트 섀클턴 일행으로도 있었다.[15] 유성, 혜성 전문 천문학자.[16] 다만 시도 자체는 최초가 아니다. 일부 몇몇 국가에도 플라스틱으로 지폐를 만들어보고자 하는 시도가 있었고, 시제품도 조금 풀렸는데 여전히 소소한 문제(높은 생산단가, 내구력 문제 등)가 있어서 대중화되지는 못했다. 그런 가운데 호주가 가장 먼저 안정적인 완성형을 내놓았던 것.[17] 영연방에서 탈퇴할 경우를 대비해 만들었던 것으로도 추정되는데, 실제로는 연방 100주년 기념으로 등장하였다.[18] 뉴사우스웨일스 주 총리를 역임하며 대영제국 산하 자치령으로써의 호주 연방 결성을 주도했다.[19] 호주의 작가이자 정치가. 호주의 여성 참정권 운동을 이끌었다.[20] 월칭 마틸다로 유명한 시인.[21] 호주의 작가.[22] 호주의 사업가. '''19세기'''에 '''여성''' 사업가로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23] 호주의 목사. 호주의 낮은 인구밀도를 고려해 플라잉 닥터 서비스(Royal Flying Doctor Service) 창설을 주장한 사람이다.[24] 호주의 작가, 발명가, 종교인. 원주민 태생으로 원주민 권익 향상을 위해 노력했다. 별명이 '''호주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25] 호주의 정치가. 호주 첫 여성 국회의원으로 여권 신장과 여성 및 아동 복지 향상에 노력했다.[26] Nellie Melba, 세계적인 소프라노. 영국 왕실로부터 Dame 작위를 받았다. 성격이 좀 오만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유독 고향사랑이 남다른 사람이라, 다른 스케쥴은 제쳐놓더라도 고향인 멜버른이라면 작은 공연이라도 반드시 참가했다고 한다. 더불어 프랑스 요리의 대변혁을 이끈 오귀스트 에스코피에가 그녀의 광팬이어서 특별히 그녀의 이름을 딴 디저트가 있는데, 그것이 멜바 소스를 끼얹은 페슈 멜바(복숭아 멜바)이다.[27] 호주의 군인.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였으며, 갈리폴리 전투에도 참여하였다.[28] 앞면은 모두 영국 왕/여왕을 넣는것이 원칙이라, 현재는 엘리자베스 2세의 초상이 들어가 있다. [29] 발행은 1966년 한 해에만 이루어졌다.[30] 액면가와 재료비가 일치하는 지점을 멜팅포인트라 한다. 한국의 구형 10원 동전도 멜팅포인트를 넘어서서 최근까지 황동괴 제조에 악용되는 사례가 종종 있었다.[31] 한국도 화폐개혁 이후에 1원, 5원, 10원을 1966년부터 발행하였다.[32] 1원과 5원도 법정통화긴 하지만 현재는 민트세트를 제외하고 생산하지 않는다.[33] 주화가 발행되기 전, 아무런 무늬도 없는 주화를 뜻한다.[34] 지폐만 적용하며 당시 스프레드율은 1.3%